죽고 싶어지면 전화해
이용덕 지음, 양윤옥 옮김 / arte(아르테) / 2015년 8월
평점 :
품절


 

2012년 가을께 애써 억눌러 오던 7년간의 설움과 핍박이 최고조에 달하고 결국 터지고 말았다. 인분교수 못지 않은, 지도 교수님과 선배들의 폭언과 부조리함, 그리고 이어지는 따돌림은 사람을 수동적이고 무가치하게 만들었다. 나의 존재 자체가 부정당하고 그들이 주는 갖은 수치심과 모멸감 속에서도 언젠가는 이 또한 다 지나갈 것이라는 헛된 희망을 부여잡고 버텨왔었다. 하지만 해가 바뀌어도 나아지는 것은 없었고, 도리어 심해지기만 했다. 심각한 것은 그러한 폭력 앞에 나 역시 굴복하고 어느새 길들여졌다는 것이다. 무엇이 계기가 되었는지 정확히 기억나진 없지만 깊은 우울감과 조절할 수 없는 분노로 인하여 내 발로 학교 상담 센터를 찾아 갔었다. 그 때, 가장 바라는 일이 무엇이냐고 상담 선생님이 물으셨을 때 나는 대답했다.
 
"지구 종말이요. 인간은 존재 자체가 악입니다."

인간의 선한 본성의 이면에는 굉장히 악하고 폭력적이고 잔인한 악, 그 자체가 자리하고 있다. 어쩌면 성선설은 인간의 이상이자 자기 만족일 뿐 성악설이 더 적확한 시선인 것 같다. 그것은 오랜 인간의 역사를 통해 끊임없이 증명되어 왔으며 지금 이 시간에도 어딘가에선 불합리하고 부조리한 폭력과 억압이 이루어지고 있을 것이다. 아무리 그럴싸하게 포장하고자 해도 지구상의 그 어떤 동물보다 악랄하고 파괴적이며 교활한 것이 인간이다. 가장 탐욕스럽고 이성이라는 편리한 도구를 앞세워 자신들의 추악한 본성을 그럴싸하게 가리운 채 가식적으로 살아가는, 가장 혐오스러운 동물. 어쩌면 이 동물이라는 말조차도 아까운 것이 인간인지도 모른다. 

이 책 속의 하쓰미는 인간의 이러한 측면에 집중한다.  아주 병적으로 집착해서 그녀의 서가는 그러한 책들로 빼곡하다. 그것을 낭독하며 남자친구인 도쿠야마와 잠자리를 가질 정도로 변태적인 여자다. 인간의 삶 자체를 혐오하며 언젠가는 죽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찰나의 순간과 같은 아름다움을 간직한 채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이 제대로 존재할 수 있는 삶의 방식이라고 믿는 사람이다. 그런 그녀는 묘한 카리스마가 있어서 주변 사람들을 장악하고 자신의 뜻대로 이끌어 나가는데 능숙하다. 실제로 책을 읽는 동안 하쓰미의 말에 공감하고 그녀에게 깊이 사로잡히는 느낌을 여러 차례 느꼈다.

그래서였을까? 지극히 평범하고 조용한 성격의 도쿠야마는 그녀에게 완전히 사로잡힌다. 말 그대로 그녀의 손바닥 안에서 살아가는 삶을 택한다. 수더분한 청년이었던 그는 완전히 돌변하여 주변 사람들에게 비수같은 말들을 쏟아내 상처주고 마구 헤집어 놓는다. 그리고 단호하게 그들과의 관계를 단절해 나간다. 이 세상에 자신의 편은 오직 하쓰미 뿐이라고 생각하면서, 그 작은 맨션 안으로 그의 세계를 좁혀간다. 나름 목표가 있는 삼수생이었던 도쿠야마는 원하던 대학에 합격하고 나서도 그 기쁨을 뒤로한 채 삶을 놓아버린다. 그저 자신의 삶과 존재 자체에 대해 비관하고, 애쓰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냉소적으로 바라보며 비웃는다. 하루 종일 하쓰미와 침대에 누워 잠들고 잠시 일어나는 한심한 생활을 반복하면서.

더욱 우스운 것은 두 사람 모두 자신의 삶을 상대의 선택에 맡겼다는 점이다. 그렇게 자살을 옹호하면서도 혼자 죽지 못했던 하쓰미는 동반자살을 원했고 마지막까지 '당신 탓이야.'라고 도쿠야마에게 말했다. 도쿠야마 역시 모든 것을 하쓰미의 뜻대로 하고자 했다.  사실은 두 사람 모두 살고자 하는 의지를 상대에게서 찾고자 했던게 아닌가 싶다. 정말로 죽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서로가 절망이라는 파도에 떠내려가지 않도록 꼭 붙잡아주는 닻이 되어주기를 간절히 원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두 사람의 어처구니 없는 동반자살 앞에서 어쩐지 숙연해지는 기분이 든다. 누군가에게는 간절했을 내일이라는 시간이 이들에게는 왜 그리 무가치 했던 것인지 안쓰럽고 화가 난다. 이들이 보여주는 절망과 파멸의 끝자락에서 되려 나는 삶에의 애착과 의지와 희망이 샘솟는 것을 느꼈다. 세상과 인간을 부정하며 냉소적으로 바라봤던 어린 날의 미숙한 나를 반성하면서.

아무리 긍정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려 해도 삶은 냉혹하고, 인간은 여전히 악행을 저지른다. 선을 행하려는 사람들은 너무나 적고 그들의 힘은 미약하다. 마냥 인과응보나 권선징악 같은 것을 믿고 살기에 세상살이가 절대 녹록치 않다는 것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착취적이고 탐욕스러운 인간일수록 더 높은 자리에 오르고, 더 많은 것을 누리며 사는 것 같은 이상한 세상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삶의 어두운 측면보다 따스한 측면에 집중해야 한다. 시작은 미미할지라도 그런 시선과 생각들이 모여 조금씩 세상을 바꿔나갈 힘을 비축하기 때문이다. 어느 날, 하루 아침에 세상이 바뀌지는 않았고 또 그러할 것이다. 하지만 결국 인간은 자신이 옳다고 믿는 방향을 위해 투쟁하는, 소수의 사람들의 뜻대로 아주 조금씩 변화해 왔다. 그러한 변화들이 켜켜히 쌓여 지금의 민주주의와 복지 국가의 형태로 나타난 것이다. 몇 백년 전만해도 평등, 자유와 같은 가치들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여전히 우리의 세계는 고쳐나가야할 부분들이 산재해 있지만 희망을 잃어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세상살이가 고되고 무의미하게 느껴지는 사람들, 사람들에게 치여 상처받고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에 깊은 회의감을 갖게 된 분들 모두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하쓰미의 시원시원한 냉소와 비판에 대한 격한 공감의 끝에는 아주 자그마한 희망이 존재한다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책장을 덮는 순간 기묘한 안도감과 함께 아주 편안하게 잠들 수 있을 것이다. 

 

죽읍시다. 동반자살, 그게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유일한 탈출 방법이예요. 유일한 방법, 제대로 존재할 수 있는 삶의 방식. 의지와 목적과 결과가 일치하고 게다가 성공의 순간이 그대로 영원히 되는 유일한 아이디어. 동반자살하자고요. 응? 응? -p. 164

본심 따위,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이제 더 이상, 어떻게 일이 펼쳐지건 흑에 흑을 덧칠할 뿐이다. -p. 226



하쓰미는 원래부터 예의 바른 여자가 아니다. 악의가 철철 넘치는, 벌을 주고 싶어서 배겨낼 도리가 없는 나쁜 여자다. -p. 244






마음이 정해지지 않는 것을, 정해버렸다. 믿음에 대한 지나친 강조는 배신에 대한 과도한 두려움 때문이라능 것을 말이 아니라 머리로 이해해 버려서, 온갖 것들을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p. 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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