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플라스의 마녀 라플라스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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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의 주인공들, 자칭 라플라스의 악마와 마녀인 겐토와 마토카의 눈에는 단순히 물리 현상뿐만 아니라 인류는 어디로 나아갈지, 이 사회는 어떻게 될지 희미하게나마 보일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예측만 할뿐 무엇을 변화시킬 수는 없다. 그럼에도 기회가 주어진다면 나 역시 마도카처럼 수술에 자진할 것 같다. 치기어린 과학도의 욕심이겠지만 그들의 눈에는 세계가 어떻게 보일지 몹시 궁금하기 때문이다. 사실 화학자에게도 물리화학이란 영역이 있지만 그 어떤 화학 과목보다 어렵게 느껴지는 게 사실이다. 가장 심플한 가정을 하고 기초적인 방정식을 풀어도 그 과정에 꽤나 길고 복잡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난해한 계산을 하며 끙끙 앓지 않더라도 세상의 물리 법칙이 자연스레 읽힌다는 것, 그것은 분명 많은 과학자들에게 선망의 대상이다. 

 

인간은 원자야. 하나하나는 범용하고 무자각적으로 살아갈 뿐이라해도 그것이 집합체가 되었을 때, 극적인 물리법칙을 실현해내는 거라고. 이 세상에 존재 의의가 없는 개체 따위는 없어, 단 한 개도. -p. 497


그럼에도 책이 막바지를 향해 갈수록 겐토와 마도카가 불쌍하단 생각이 자꾸만 든다. 여전히 그 능력이 탐이 나면서도 알고 싶지 않은 걸 알게 되고 일반 학생들과는 전혀 다른 일상을 보내기 때문이다. 그것이 어리고 가능성 많은 아이들에게 빼앗아간 것은 과연 무엇일까. 세상을 움직이는 물리 법칙들을 슈퍼 컴퓨터보다 빠른 속도로 계산할 수 있게 되었지만, 되려 그러한 능력 때문에 그들은 꿈을 잃고 세상에 대한 기대없이 살아가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그것을 마냥 축복이라고 부를 수만은 없다. 말그대로 라플라스의 악마, 혹은 마녀가 되어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는 그런 것이었을테다. 희망을 품을 수 없는 삶이라는 것, 그것은 분명 과학이 부른 참사다. 과학이 가진 어마무시한 힘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된다. 과학에게 인문학적인 소양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는 점에 대해 깊이 공감하게 되는 부분이다.

사실 이런 수학이나 물리 천재가 무시무시한 계산 능력을 이용하여 사람을 죽이는 소재들은 만화책에서도 한 두 번쯤은 다뤘던 것이다. 그런 면에서 신선함이 떨어진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여기에 뇌과학과 풀리지 않는 미지의 방정식 등 호기심을 자극하는 전문 지식이 뒷받침되니 소재의 퀄리티가 다르게 느껴진다. 막연한 상상 속의 이야기가 아니라 이거 진짜 실현 가능성이 충분한 게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우리가 미쳐 알고 있지 못 했던 영역들일뿐, 이미 오래 전부터 이런 연구기 진행되어 왔을지도 모른다는 그런 오싹함.  이것이 30년 필력의 히가시노의 내공이 아닐런지. 

 

인간의 양육 행동, 남성에 대해서만 말하자면 부성 행동이라는 것을 봐도 결국은 유전적으로 프로그래밍 된 것이예요. 그리고 그 프로그램을 편의상, 사랑 혹은 애정이라고 부르는 것뿐입니다. -p. 452

개개인은 자유의지에 따라 움직인다고 생각하지만 인간 사회라는 집합체로서 바라볼 경우에는 그 행동을 물리 법칙에 적용해 예측하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다 -p. 456

인간은 원자야. 하나하나는 범용하고 무자각적으로 살아갈 뿐이라해도 그것이 집합체가 되었을 때, 극적인 물리법칙을 실현해내는 거라고. 이 세상에 존재 의의가 없는 개체 따위는 없어, 단 한 개도. -p. 4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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