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을 소중히 하라 - 생존과 저항에 관한 긴급 보고서
존 버거 지음, 김우룡 옮김 / 열화당 / 2008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서평] 존 버거(John Berger) 저, 김우룡 역 <모든 것을 소중히 하라 Hold Everything Dear : 생존과 저항에 관한 긴급 보고서 >를 읽고 / 2008. 04., 159쪽, 열화당


저자 존 버거는 지구를 지배하는 독재와 전체주의는 물론 그에 저항하는 집단 속에서 자칫 무시될 수 있는 개개인의 슬픔, 희생, 욕망, 기억을 이야기하며, 그 제목처럼, 세상 구석진 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심지어 나귀 한 마리, 풀 한 포기까지에도 세심하게 눈길을 돌린다. 육성급 호텔 안에 갇혀 세계평화를 이야기하는 엘리트들과는 달리, 작가는 스스로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일상 속으로 걸어 들어가 인간적인 삶에 관한 깊은 사유를 보여준다. 

9·11 테러, 미국의 이라크 침공,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 그리고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폭력과 독재 행위들을 통해 오늘의 세계를 지배하는 부정의(不正義), 거짓 희망, 새로운 형태의 독재를 고발하고, 나아가 이러한 전제주의, 양자택일을 강요하는 전체주의에 저항하는 세상 모든 사람들과 소통하기를 꿈꾸고 있다. 


미국에 대해 구체적으로 고민해보지 않았던 사람들,  미국과 한국의 언론 권력이 제공하는 정보만을 접한 사람들, 한국에서 한미동맹과 자유민주주의와 진보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진정으로 진보와 평화를 바라는 사람들은 존 버거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이념과 정치세력화와 정치에만 매몰된 사람들도 그의 말에 귀기울여야 한다.


9 ·11 테러 그리고 미국의 이라크 침공 이후, 세계는 더욱 극심한 물질적 탐욕과 정신적 구속의 양극단을 달리고 있다. 미래를 약속하던 정치적인 슬로건들은 쓰레기통에 버려지고 있으며, 한편에서는 경제적인 독재가, 다른 한편에서는 군사적인 독재가 오늘의 세계를 휩쓸고 있다. 이는, 오직 이윤만을 추구하고 탐욕만을 부추기는 '지구적 전제주의'에 다름 아니다. 세계는 이러한 전제주의를 유지하기 위한 군사적 경제적 시스템에 지배당하고 있는 것이다.


9.11 이후 서구에서 오늘날의 가장 시급한 질문은 "테러리스트는 과연 왜 생겨나며 그 극단적 형태인 자살 순교자는 도대체 왜 만들어지는 것일까."라 할 수 있다. 저자는 테러리스트는 '절망 때문에' 만들어진다고 말한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테러는 어떤 초월의 길이자, 스스로의 목숨을 바쳐 절망을 온전히 이해하는 길이라 할 수 있다. 순교자는 그런 초월을 통해 커다란 승리감을 맛본다. 그러므로, 자살이라는 단어는 어느 면에서는 적절치 않다. 

"무엇에 대한 승리일까. ... 절망의 어떤 켜에서 비롯된 수동성과 비통함, 그리고 어리석음에 대한 승리를 말한다. 제일세계의 사람들이 그런 절망을 상상하기란 쉽지 않다. ... 여기서 내가 언급하는 절망은 사람들로 하여금 외곬의 선택을 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고통의 조건들과 닿아 있다. 이를테면 수십 년간 난민캠프에 수용되어 있는 것과 같은 상태를 말한다. 이런 절망은 무엇으로 이루어질까. 자신의 삶과, 또 자신과 가까운 사람들의 삶에 아무런 가치도 없다는 느낌. 여러 다양한 켜들에서 이런 것이 느껴지다가, 이윽고 그 느낌은 삶 전체가 되어 버린다. 이렇게 되면 전체주의에서처럼 의문을 용납지 않는다."


저자는 강자와 약자, 지배자와 피지배자, 가해자와 피해자의 차이를 이야기하면서, 조작된 희망과 화려함에 눈먼 현 세대의 맹목을 비판한다. 소비주의 이데올로기는 고통을 흔하고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만든다. 일례로 그는 9 ·11 테러와 2차대전 당시 일본 원폭 투하 사건을 비교하면서 강자(가해자)의 승리 속에 감춰진 약자(피해자)의 고통을 이야기하는데, 강자의 이데올로기와 거짓 희망으로 사람들이 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의로운 척 가장하고 있지만 무엇보다도 자신들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정치지도자들, 특히 오늘의 세계를 쥐락펴락하는 미국의 부시 대통령을 비롯한 극소수의 권력자들에 대한 비판도 서슴지 않는다. 일례로, 2005년 뉴올리언스를 강타한 태풍 카트리나가 미국 역사상 최악의 참사로 기록된 것은 부시를 비롯한 지도자들의 무관심, 오직 물질적인 이익에만 가치를 두는 권력자들의 방치 때문이었다. 이는 '이익의 추구'가 인류의 교조(敎條)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일종의 광신주의이며, 권력자들이 미화하는 이른바 '테러와의 전쟁'은 실상 두 광신 집단 간의 전쟁과 다르지 않다고 작가는 말한다.


폭력으로 가득 찬 세계와 현대사회의 냉혹함을 똑바로 응시하면서 화가 프랜시스 베이컨과 영화감독 파솔리니에게 찬사를 보내거나, 약자의 삶, 투쟁과 저항을 노래한 여러 시인들을 추억하며 그들의 시를 인용하기도 한다. 이는 바로 작가가 꿈꾸는 '연대'의 한 형태로, 새로운 형태의 독재에 저항하는 강력한 수단이 될 수 있다. 팔레스타인에서는 희망이 아닌 절망이 저항의 힘이 되기도 한다. 감옥에 다녀오는 것을 통과의례처럼 여기고, 자식들의 안위를 불안해 하면서도 그들의 결단에 동의를 표하고, 하루에 고작 이 달러도 안 되는 치료를 받지 못해 죽어 가는 그들, 그런 그들로 하여금 죽지 않고 살아가도록 만드는 힘은 바로 '지독한 절망'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그리고 모든 불의와 독재 권력들은 이러한 저항을 가장 두려워한다.


강자가 약자를, 다수가 소수를 핍박하는 근본적인 원인은 바로 두려움이다. 돌멩이, 모래주머니, 구식권총으로 무장한 사람들을, 토마호크 미사일, F16 전투기 등 최신식 무기로 상대하려는 것이 바로 그 증거다. 이러한 극심한 차이를 작가는 장벽에 비유한다. 이 '장벽'(특히 팔레스타인의 장벽)은 모든 것을 양극단으로만 구분하는 흑백논리와 자신과 다른 것은 인정하지 않으려는 획일화한 전체주의의 상징물이다.


이는 [두 여성 사진가 자세히 보기]라는 글에서 소개되는 아흘람 시블리의 '추적자' 연작을 통해서도 잘 이해할 수 있다. '추적자'란, 적군인 이스라엘군에 자원 입대하여 동족을 추적하고 죽이는 팔레스타인 병사들을 이른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이들은 명백히 배신자지만 그저 비난할 수만은 없는 이유를 시블리의 사진을 통해 말하고 있다.


책 속에서 저자는 '절망의 일곱켜'라는 팔레스타인 난민들의 '절망'을 노래한 시 한 편을 소개한다. 문장 하나, 구절 하나에서 가슴 깊이 파고드는 아픔과 절망이 느껴진다. 그런데 한국사회 주류에서 배제된 소수 집단과 단체, 해고자, 비정규직, 실업자, 극빈층, 저소득 장애인, 다문화가정에서도 똑 같은 '절망'을 느끼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어찌할까...


< 절망의 일곱 켜 >


"또 하루를 살아남기 위해

부스러기를 찾아 헤매야 하는

매일의 아침.


눈을 뜨면

이 합법의 황야 어디에서도

생존의 권리를 찾을 수 없다는 깨달음.


해가 가고 달이 가도

나아지는 것 없이

더욱 나빠지기만 하는 삶의 경험.


아무것도 바꿀 수 없는,

아무리 진력해도

또 다른 궁지에 닿기만 하는, 굴욕.


지켜지지 않은 채 끊임없이

피해 가기만 하는,

셀 수 없이 많은 약속에의 경청.


조각조각 산산이 깨지면서 보여주던

저항자들의 본보기.


드러나려 애쓰는 순수를

영원히 눌러 두기에 충분한

우리 스스로의

그 숱한 몸들, 무게들."


저자 존 버거는 스스로를 마르크스주의자라고 밝힌다. 그는 평소 세상에 팽배한 불평등과 억압받는 자들의 삶에 많은 관심과 애정을 보였다. 2006년 이스라엘의 레바논 폭격으로 죄 없는 민간인들이 죽어 가자, 그 무도한 폭력과 서구세계의 외면을 강력히 비난하는 글을 기고하고 레바논을 위한 '게르니카'를 그리기도 했다. 피카소의 명작 [게르니카]를 모사한 이 그림이 책 앞머리에 실려 있다.

팔순을 넘긴 작가의 눈은 때로는 날카롭게, 또 때로는 따뜻하게 지금의 시대를 바라보고 있다. 한국의 독자들에게 보내는 서문에서 밝힌 것처럼, 이 열여섯 편의 글은 세상의 독재와 부정의에 희생된 사람들을 기억하고 그들의 뜻을 지켜내기 위한 하나의 저항이다. 그리고 이러한 저항이 결코 헛되지 않음을 알리려는 것이다.


< 모든 것을 소중히 하라 >


"오후의 벽돌이 여행의 장밋빛 열기를 품을 때


장미는 숨 쉴 푸른 공간을 싹 틔우고

바람처럼 꽃 피울 때


듬성한 자작나무들이 트럭 안의 급한 마음들에게

바람의 은빛 애기를 속삭일 때


울타리 나뭇잎들이 한순간 잃어버렸다고 생각하던

빛을 간직할 때


그녀의 손목 맥박이 공중을 맴도는 굴뚝새의 가슴처럼 고동칠 때


대지의 합창단이 하늘에서 자신들의 눈을 발견하고

밀밀한 어둠 속에 서로의 눈을 뜨게 할 때


모든 것을 소중히 하라" (개리스 애번스)


[ 2013년 3월 22일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