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비밀 문서로 본 한국 현대사 35장면 - KISON REPORT 2
이흥환 엮고 지음 / 삼인 / 2002년 12월
평점 :
절판


[서평] 이흥환 편저 < 광주에서 한국전쟁까지, 미국 비밀문서로 본 한국 현대사 35 장면 >를 읽고 / 2002. 12., 289쪽, 삼인

1. "한국군의 가장 기본적인 문제점은 인력이나 장비가 아니라 지휘력 부재와 훈련 미흡이 있음. 극소수의 경우를 제외하고 한국군 내에는 지휘력 부재가 만연되어 있음. 지휘력 부재와 훈련 미흡의 상태가 개선되지 않는 한, 추가 조직을 허가하고 추가 장비를 조직하는 것은 의심의 여지 없이 낭비가 될 뿐임. 한국전 개전 후 지금까지 한국군이 유실한 장비는 10개 사단이 필요한 장비의 양을 초과했음. 더구나 장비를 유실해 가며 그만큼 적에게 타격을 입힌 것도 아니며, 어떤 경우에는 전투와 아무 상관없이 유실된 경우도 있었음"(1951. 5)

2. 대화록 (1971. 12)
- 하비브 : "이전에 (당신이) 내게 말하길, 가까운 장래에 북한이 침략해 올 것이라는 조짐은 없다고 했는데,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는가?"
- 이후락 : "변한 것은 없다. 침략 조짐은 없다."

3. "박정희 시해 사건이나 12.12 사태가 한국에서의 우리의 기본적인 이해관계를 변화시키지는 않았음. 안정이 유지되고 대다수 한국 국민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정치발전이 진행된다면 안보, 정치, 경제 모든 면에서 최상의 상태가 유지될 것임. 한국인들이 국제사회에서 미국 없이는 안보 정치 경제적 발전을 꾀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고, 또 국내의 간극을 잇는데 (최소한 당분간만이라도) 그렇게 결정적이진 않지만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에 대한 우리의 영향력은 종전보다 커졌음."(1979.12)

4. "박 대통령이 또 북한 위협론을 과장하고 있음. 우리 측 정보 판단으로는 현재 그런 조짐은 없으며, 이 문제에 관한 한 한국에 아무런 대꾸도 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됨. 그럼에도 박 쪽에서 반복해 이 문제를 거론할 경우, 미국 언론 등을 통해 직접 북한 위협론에 대한 우리 측의 판단을 대중에게 알리는 방안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음"(p.166)

'1'은 맥아더에 이어 미국 극동군 사령관으로 한국전쟁을 총 지휘한 리지웨이 장군이 육군참조총장에게 보낸 1급 비밀전문 중 일부이고, '2'는 주한 미국 대사인 하비브가 미국 국무부에 보낸 1급 비밀문서로서 1971년 12월 2일 박정희 군사정권이 비상사태 선포를 며칠 앞둔 상태에서 자신에게 이를 알리려고 온 한국 중앙정보부 부장인 이후락씨와의 대화록 중 일부다. '3'은 1979년 전두환의 12.12 쿠데타 이후 긴박했던 3주 정도의 막후 활동을 끝낸 후 글라이스틴 주한 미국 대사가 본국 국무부에 보낸 2급 비밀문서 '상황 평가서' 중 일부. '4'는 1972년 2월 미국 닉슨의 중국 방문 전에 자신을 만나달라는 박정희의 친서에 대한 1971년 12월 미국 국무부의 평가 보고서 비밀전문 중에 들어 있다.
이 비밀기록들은, 대한민국의 체제가 어떻게 이루어지던 미국의 입장이고 태도는 오로지 '미국의 국익'이 우선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한국인의 생명도, 한국민중의 삶과 행복도, 자유니 민주주의니 하는 하찮은 것들도 모두 후순위일 뿐이다. 결국 '한미동맹'이나 '상호수호조약'은 '미국의 국익'이라는 범위 내에서 가능할 뿐임을 보여준다.

최진섭 작가의 <법정 콘서트 무죄>를 읽다가 기억 속에 묻어두었던, 작년에 구해놓았다가 읽지 못한 미국 외교비사를 다룬 이 책을 책꽂이에서 찾았다. 이 책은 저자가 미국 워싱턴에서 운영되는 KISON(Korea Information Service on Net) 프로젝트의 자문위원으로 참여했다가 KISON의 한국보안문서(KSA, Korea Security Archive)에 보관되어 있는 미 행정부의 비밀 해제 문서를 가려 모은 일차 자료집입니다. 미국은 정보공개법에 의해 그동안 기록하여 두었던 비밀문서를 단계적으로 해체한다.

며칠 전 이명박 정부에서 국가기록법에 의해 보관해두어야 할 정보 중 비밀기록을 모두 폐기했다는 언론기사를 접한 것은 이 책을 읽은 다음이었다. 역사적 사실을, 그것도 행정부의 최고 권력을 행사하면서 중대사를 담당했던 청와대와 행정부의 중요 비밀기록을 폐기해 버리면 당장은 차기 대통령이 행정부를 운영하는 데에서도 난관이 발생할 것이고, 장차 집권 5년을 객관적이고 냉정하게 평가할 역사 자료도 없어지는 것이다. 
조선시대의 왕도 자신의 재임기간 전부에 대한 사관의 기록을 폐기한 경우가 없었다. 짧은 기간은 있어도. 이런 반역사적인 관점과 저질스런 태도를 가진 자가 5년간 대통령으로 군림하고, 대통령실에 근무하였으니 무엇 하나 당당하고 타당한 일이 있었을 지 안타까움과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이 책을 읽은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미국은 조선 말기와 일제 강점기에도 한반도와 연관이 있었지만, 특히 1945년 이후 한국의 정치, 외교, 군사, 경제, 사회, 문화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그리고 지금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 미국에 대해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현대사를 이야기하고, 북핵 문제를 이야기하고, 한미FTA를 이야기하고, 국가보안법을 이야기하고, 개혁과 진보를 이야기하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나 자신이 갑자기 한심해지는 순간이었다. 책을 펴는 순간 출판사의 소개 글에 꽂혔다.

"미국은 단 한순간도 한국 현대사에서 눈을 땐 적이 없다. 지금 이 순간에도 미국은 한국을 관찰하고, 토론하고, 기록하며, 보존한다. 한국사를 쓰기 위해서가 아니다. 미국의 국익이 걸려 있기 때문이다. 백악관, CIA, 국방부, 국무부 등 미 행정부 비밀문서함 속의 1차 기록들은 한반도에 얽힌 미 국익의 함수 계산이 어떻게 계산되고 어떤 답을 이끌어냈는지 그 전 과정을 속속들이 보여준다. 미 행정부의 비밀문서함이 열리는 순간, 1980년의 광주에서부터 신군부 탄생, 박정희 시대의 정치판, 6.25 비화에 이르기까지 한국 현대사의 물줄기를 바꾼 결정적인 역사적 장면들이 생생한 현재형으로 되살아난다."(출판사 소개 글)

이 책에 속에 들어있는 비밀자료는 미국 국무부 자료가 대부분이지만, 국방부와 CIA 자료도 일부 있다. 미국 정부는 한미관계에서 극도로 민감하여 최대한 공개를 늦추어야 할 자료들, 예를 들어 한국전쟁시 미군의 작전과 CIA의 활동, 5.16 쿠데타시 주한미군과 군정보국과 CIA의 활동, 광주학살 당시 미군과 군정보국, 그리고 CIA의 활동은 공개하지 않았다. 
물론 저자가 직접 번역하고 정리한 자료 말고도 보안문서는 무진장 많다고 한다. 저자 이야기로는 저자가 사용한 자료는 전체의 백만분의 일도 되지 않는다. 

저자가 정리한 내용만으로도 대부분의 한국 내 보수적인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결코 인정하고 싶지 않은 내용들이다. 어떤 내용은 평소에 반미 성향을 강하게 지닌 시람들도 싫어할 것들이다. 하지만 저 자료는 실제로 존재하고 저런 자료와 정보를 토대로 미국 정부는 한국을 분석, 판단한 후 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한다.
유신시대 북한의 군사적 위협이라는 허위 정보와 대국민 협박, 주한미군 철수의 진실, 광주항쟁에서 전라도 출신 장교의 투입, 미국의 판단과 행동의 기준, 유신 계엄 선포의 막전막후, 818 도끼사건에 대한 주한미군과 백악관의 대처 과정 등 전혀 몰랐던 또는 소문으로만 듣던 애기들을 재검토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도 '실사구시'해야 한다. 추측과 정황판단, 부족한 정보를 토대로 언론에 마사지되어 발표되는 정보로 자신이 생각하고 판단을 내리기에는 한미 관계는 너무 민감하고 위험하기 때문이다.

[ 2013년 3월 1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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