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어나라! 협동조합 - 더 좋은 세상을 만드는 정직한 노력
김기섭 지음 / 들녘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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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김기섭 저 < 깨어나라 협동조합 : 더 좋은 세상을 만드는 정직한 노력 >을 읽고 / 2012. 04., 306쪽, 들녘


대통령 선거로 인하여 대다수 사람들의 관심이 정치에 쏠려 있지만 대통령 선거 결과 하나가 개인의 삶을 벼락처럼 바꾸지는 못할 것이다. 정치가 '더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다수의 노력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정치는 외부적인, 사회적인 조건을 만드는 것에 불과하다. 정치에 대한 관심 만큼이나 개인과 가족, 집단이 '더 좋은 삶"을 만드려고 노력해야 하는 것도 필요하다.
그런 면에서 정치적인 분위기와 관계없이 하루하루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협동조합에 대한 관심이 날로 커지고 있다. 지인으로부터 협동조합 관련 책 중에서 드물게 한국의 역사적 과정과 현실에 근거하여 분석하고 대안을 제시한 것을 소개받았다.

저자는 머리말에서 '줄탁동기(啐啄同機)'라는 고사성어로 한국 협동조합의 상황에 대한 자신의 문제의식을 표현한다. '줄탁동기'는 "병아리가 달걀 껍질을 깨고 나오기 위해서는 어미가 새끼가 모두 안팎에서 껍질을 쪼아야 한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한국에서 협동조합은 아름 크게 성장하였고 그동안 걸림돌로 지적되던 법과 제도 역시 시대에 맞게 제정되었음에도 협동조합 내부에서 위기를 맞고 있음을 지적하는 것이다. 그는 협동조합의 위기는 농협과 신협, 그리고 생협 모두에게서 공통적으로 나타난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1장 '협동조합을 넘어, 다시 협동조합을 향해'에서 한국에서 향후 30년 내에 도래할 세 가지 위기, 즉 에너지와 식량의 위기와 저출산 고령화의 위기, 그리고 남북 위기를 제시하고 시장이나 국가가 이에 대해 제대로 대처할 수 없을 것이라는 우려 속에 협동조합이 이에 대한 대안을 제시해야 함을 제시한다. "자연과 인간 사이의 협동, 세대 간의 협동, 부자와 가난한 사이의 협동이 협동조합을 통해 구체화되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우선 협동에 대한 우리의 인식부터 바뀌어야 한다"고 말한다.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협동조합에 대한 잘못된 생각, 즉 '협동조합의 사람만 한다'와 '협동은 동시대 힘없고 가난한 사람만 한다'에 대해 비판하고 먼 과거의 한국식 협동조합이라 할 수 있는 두레와 계를 통해 협동조합의 원리를 환기시킨다. 두레는 "농사일을 함께 하는 공동노동 조직이면서, 동시에 마을신에게 함께 제사지냈던 집단적 제의 조직이고, 또 두레패를 통해 함께 놀았던 집단적 유희 조직"이며, 계의 진정한 목적은 "개개인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가 본연의 기능을 상실하여) 개인 간의 사회적이고 경제적인 불공정과 불균형을 자발적 참여와 약속에 따라 시정, 보완하려는 데" 있었다는 것이다.
향후 30년 내에 한국에 도래할 위기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공감하기 쉽지는 않다. 하지만 현재 사람들 사이에서 협동조합에 대한 잘못된 이해가 많고 협동조합 조직이 위기에 처해있다는 점은 공감할 수 있다. 두레와 계에 대한 저자의 해석은 상당부분 공감할 수 있었다. 

제2장 '협동조합의 역사 : 로치데일에서 배운다'에서  저자는 로치데일 협동조합의 설립 배경, 태동과 발전을 분석하여 로치데일에서 배워야 하는 것을 제시한다. 그것은 "상호자조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며 소비의 조직화로부터 출발해야 하고, 조직된 소비의 힘으로 생산을 변화시키고 조직된 소비와 변화된 생산으로부터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는 것"이다.

제3장 '협동조합의 정의, 가치, 원칙'에서 저자는 1995 개정된  ICA 성명과 협동조합의 정의(본질, 주체, 목적, 수단), 가치, 원칙을 세밀하게 해석하고 있다. ICA(국제협동조합연맹)에서 1995년 정의한 바에 따르면, "협동조합은공동으로 소유하고, 민주적으로 운영하는 사업체를 통하여, 그들 공통의 경제적, 사회적 그리고 문화적 필요와 염원를 충족시하고자 자발적으로 결합한 사람들의 자율적인 결사체(A Co-operative is an autonomous association of persons united voluntarily to meet their common economics, social and cultural needs and aspirations through a jointly-owned and democratically-controlled enterprise)"이다. 그는 ICA 성명을 설명하면서 한국의 협동조합의 위기에서 벗어나야 할 방향이 '조합원의 재발견'과 '사회 개혁'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이다. 저자는 특이하게 곽암(廓庵)의 '십우도(十牛圖)'를 통해 '조합원의 재발견'과 '사회 개혁'이라는 주제를 재확인한다. 
이 장을 읽으면서 느끼는 점은, 협동조합의 정의, 가치, 원칙 등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와 어떻게 실현하느냐에 따라 협동조합에 대한 생각과 자세, 기대와 운영이 달라질 것 같다는 것이다. 그리고 '조합원의 재발견'이라는 문제제기는 협동조합 뿐 아니라 

"협동조합은 대부분 가난한 사람들로 구성된다. 하지만 진정으로 가난한 사람은 경제적으로 못사는 사람이 아니라 절망과 패배의식에 휩싸인 사람이다" (p.105)

제4장 '협동조합의 다양한 주체와 역할, 그리고 관계'에서 저자는 협동조합의 주체, 즉 조합원과 직원 간의 역할과 관계에 주목한다. 특히 인류에게 있어 노동의 역사적 변천 과정과 협동조합 내 노동의 변천 과정을 비교, 분석하면서 협동조합 내 세 가지 노동(조합원 활동과 직원의 노동, 그리고 조합원 노동)의 성격과 역할에 주의를 기울일 것을 주장한다. 조합원 활동은 호혜의 관계이며, 직원의 노동은 교환의 관계이고, 조합원 노동은 "호혜를 기초로 하는 부분적인 교환의 관계"라는 것이다.
나는 '조합원의 재발견'과 '사회의 개혁'이라는 협동조합의 위기 탈출 방향이 협동조합 내에서 세 가지 노동의 관계를 고찰해야 한다는 저자의 주장이 쉽게 수긍이 가지 않는다. 

제5장 '생활협동조합과 함께 해온 지난 시간들'에서 저자는 '생활협동조합'이라는 이름으로 출발하기 시작한 1980년대의 시대적 특징과 생협의 특징, 그리고 이후의 성장과정을 설명한다. 그는 일제시대나 해방 후 1970년대까지 면면히 이어져 온 협동조합의 역사는 다루지 않았다. 무시한 것인지, 생협이 아니기 때문인지... 그리고 현재의 민간 협동조합운동을 주도하는 생협이 지향하는 네 가지 순환, 즉 돈과 재화, 물질과 에너지의 순환에 대해 설명하고 생협과 공정무역의 관계와 특징을 말한다.
생협은 기존 남성 위주의 운동에서 벗어나 여성이 주체로 나선, 구체적 생활 영역에서 사용가치를 통해 생산을 변화시킨, 생산과 소비를 호혜로 관계 맺은 생활운동이자 경제운동이고 사회운동이었다. 생협의 이러한 선구적 비전은 그 속에 몸담은 사람들의 헌신적 노력으로 짧은 시간에 비약적인 성장을 이룰 수 있었지만, 요즘 위기를 맞고 있다. 날로 확대되어가는 글로벌 경제와 금융자본주의의 폐해에 따른 위축된 경제 활동, 유통 대자본의 유기농산물 시장 진출, 생협 간 경쟁의 격화 등의 징후가 드러나고 있지만 변변한 대안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이 장은 뒷 장에서 새로운 생협운동의 방향을 제시하기 위해 삽입한 것 같은데, 앞 장들과 별로 연결되지는 않는다.

제6장 '새로운 생협운동을 위하여'에서 저자는 생협운동의 의미와 당면 과제, 생협 내에서 여러가지로 균열되는 현상을 '분화'로 평가한 후 생협운동의 새로운 주체와 가치, 영역과 조직방식을 제안한다. 새로운 주체는 전업주부로서의 여성에서 노동, 육아, 교육, 돌봄으로서의 여성으로, 새로운 가치는 사용가치에서 생명가치, 새로운 영역은 먹을거리에서 노동, 육아, 교육, 돌봄으로, 새로운 조직방식은 소비의 조직화에서 '지역을 넘어 다양한 영역에서의 조직화'로 변화할 것을 요구한다. 그는 이 장에서 제4장의 내용과 연결하여 노동의 재정립과 조직화를 제시하는데, 노동의 재정립을 위해 이반 일리히의 '버내큘러(Vernacular : 자율적인 공동노동)'를 도입한다. 일리히는 그의 저서 <그림자 노동 >에서 '자율적인 공생사회(Conviviality)'와 '버내큘러'를 제시한 바 있다.
이반 일리히의 '자율적 공생사회'와 '버내큘러'는 산업적 생산양식의 구조와 특징에서 필연적으로 파생하는 임노동과 그림자 노동의 이분법적 대립구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일리히가 제안한 것이다. 저자가 협동조합의 위기를 극복하는 방향을 제시하는 과정에서 '조합원 노동'의 개념을 '버내큘러'로 확장 또는 변용한 셈인데, 일리히의 개념이나 구성과 맞아 떨어진다고 동의하기는 어렵다.

마지막 제7장 '협동조합의 사회적 경제'에서 저자는 사회적 경제의 뜻과 특징, 국가와 시장 및 사회운동과의 관계 등에 대해 설명한다. 사회적 경제는 저자가 제6장에서 제시한 새로운 노동의 개념인 '버내큘러'로 인해 자연스럽게 도출된다. 결국 저자가 협동조합의 정의와 본질과 가치를 명확히 해석하고 협동조합의 위기를 규정하면서 협동조합이 새롭게 나가야할 방향으로 제시하는 결론은 '사회적 경제'와 '사획적 기업형 협동조합'인 셈이다.

생협이 사회적 협동조합으로 발전해야 한다... 동의하기 어렵다. 생협은 소비자 협동조합으로서 자신의 정체성과 역할을 분명히 해야 할 뿐이지 않을까 싶다. 저자가 본문에 문제의식으로 제기한 '조합원의 재발견'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하지만 나는 현재 한국의 생협들의 위기가 대부분 ICA의 가치와 원칙을 제대로 구현하지 못하기 때문에 발생한다고 생각한다. '조합원의 재발견'은 그런 위기를 극복하는 방향에서 새롭게 도전하고 혁신해야 할 주제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나는 현재 두 개의 협동조합에 가입해 있다. 생협 한 곳과 의료생협 한 곳. 두 협동조합 모두 조합원의 역동적인 참여를 이끌어내지 못하고 있고 따라서 나는 현재 협동조합은 '조합원의 재발견'에 주력해야 한다고 본다.

저자가 서론과 본론을 내가 어느 정도 동의할 수 있게 풀어 나가다가 결론 부분에서 방향을 잘못 잡았다. 생협의 조합원과의 분리 상황을 문제제기 하다가 이애 대한 면밀한 분석과 연관관계, 대안 및 전략 없이 새로운 영역의 생협 과제를 찾으려 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저자는 20년 동안 국내 협동조합의 현장을 누빈 사람이라는 데 많이 아쉽다.

[ 2012년 12월 10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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