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를 넘어서 - 2010년 개정증보판
이한 지음 / 민들레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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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이시습지 불역열호(學而詩習之 不亦說乎)'... 중학교인가 고등학교에서 배운 것이다. 공부나 학습, 교육에 대해 생각할 때 문득 머리속에서 떠오르는 구절이다. 지금으로부터 3천년 전에 공자가 한 말이라지만 당연한 말이면서도 21세기에도 관통하는 더할 나위 없는 진리라는 생각도 든다. 공자의 삶을 생각해보면 공부하는 것이 군자가 되어 나라의 정책을 펼치거나 백성을 위해 일하기 위함이가도 했지만, 역으로 그렇게 되지 못하더라도 말 그대로 스스로가 '배우고 익히는' 것이 공부이자 학습이고 그것 자체로 기쁘고 즐거울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공부는 '고행'이고 '지옥'이 될 것이다. 지난 번 읽은 다산 정약용의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중애서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나온다.
하지만 한국 아이들의 현실은 그렇지가 않다. 학부모들도 그렇고 교육자들도 그렇다. 그래서 총선이나 대선 때만 되면 자신이 교육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정치인들은 앞다투어 교육공약을 발표한다. 지난 20년 이상 정치인들은 이런 저런 심각한 공약을 선거 때 제시했다가 막상 정치권력을 획득하면 근본적인 교육문제를 진지하게 다루기보다 '대학입시제도'를 개편하거나 되먹지도 않는 명분과 이유를 대면서 섣부른 교육정책을 실시하고 결국 아이들을 더 극심한 입시지옥으로, 학부모들을 사교육 광풍으로 몰아넣는다. 이 땅의 정당과 정치인들이 과연 아이들과 학부모들의 고통과 좌절에 진심으로 공감하는지, 관심이나 있는 것인지 의심스럽다.

여러 전문가나 교수, 학자들이 제시하는 교육문제 해결책을 읽다보면 "아! 이렇게 하면 가능할 수도 있겠다"싶은 내용도 보인다. 그러면서도 근본적으로 풀리지 않는 문제의식은 벗어나지 않는 것이 솔직한 마음이다. 그것은 '근대사회의 제도화'와 '인간 스스로의 자율'의 대립이다. 근대사회 이후 인류는 인간의 기본 생활과 의식주, 건강, 학습, 자치, 안전 등 모든 분야에 법과 제도를 적용하여 왔다. 외형적인 이유는 인구폭발에 따라 복잡해진 인간사회의 현상과 관계이지만 다른 측면에서 보면 결국 특정 집단의 '이익'이 강화되고 보장되는 것이기도 하다. 인간의 자치와 규율은 국가라는 제도와 공무원이라는 집단을 형성시켰고, 건간에 대한 관심은 '의료'와 '의사'라는 제도를 탄생시켰다. 안전은 군대와 직업군인을, 주거는 건축사와 건설회사를, 위생은 상하수도와 공기업을, 보행은 자동차와 도로를, 식생활과 더위와 추위와 어두움은 석유와 석탄과 기업과 통제기구를 가져왔다. 이 모두가 산업사회의 산물이라 할 수 있다.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는 이제 사람들에게 먹거리마저 외부에 의존하게 만들고 있다. 공부와 학습 역시 학교라는 제도와 교사, 교수라는 자격증을 가진 이익집단을 형성시켰다. 근대 산업사회의 '제도화'의 공통점은 그 제도와 집단에서 벗어나는 순간 곧바로 '부정'으로 낙인찍는 것이다. 건강은 오로지 자격증이 있는 의사가, 폭력과 살인은 면허가 주어진 경찰과 군인이, 공부는 자격증이 있는 교사만 가능하다, 인간 스스로가 공부하거나 치료하거나 방어하거나 먹거리를 만들면 '국가와 법률과 제도'라는 이름으로 처벌한다. 
이런 문제의식의 요점은 한마디로 "근대사회의 제도화는 인간의 모든 자율성을 감소시키고 박탈한다"는 것이다. 나는 이반 일리히()의 저작을 통해 이런 식의 문제의식을 구체적으로 정리하기 시작했다. 이 책의 저자 역시 이반 일리히의 <학교없는 사회 Deschooling Society>의 문제제기와 비슷한 맥락에서 교육과 학교를 다룬다.

이 책은 1998년 처음 초판이 나왔고(이 책을 처음 썼을 때 필자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얼마 되지 않는 학생이었다. 그는 저 끔찍한 선착순 달리기에서 맨 앞에 들어온 선수 가운데 한 명이었다.), 2003년 개정판에 이어 2010년 개정증보판으로 새롭게 출간된 책이다. 저자와 출판사는 초판이 나오고 12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지만 우리의 교육 현실이 그다지 나아지지 않았기 때문애 재출간했다고 말한다. '공교육 정상화'와 '경쟁력 강화'라는 명목으로 진행되는 '한 줄 세우기 교육'이 오히려 강화되고 있고 아이들의 삶의 질은 더욱 나빠져, 교육 문제 이전에 인권 문제로 접근해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한국의 학교는 어떠한가? 저자는 "오늘날 학교가 자신의 존재 가치를 외치는 것은 마치 쌀을 매점매석한 뒤 모래를 섞어 팔아먹는 고약한 상인이 자기가 없으면 모두 굶어죽을 것이라고 외치는 것과 같다!"고 선언한다." 저자가 판단하는 바로는 학교의 진짜 역할이 다름 아닌 '사회통제' 작업과 '사회계층화' 작업이다. 학교는 폭력의 피해자가 아니라, 그 두 가지 본분을 다하기 위해 폭력을 생산해 내는 가해자이다. 학교교육은 무늬만 '공교육'일 뿐 그 실상은 블평등하고 억압적인 교육임을 말한다. 

저자는 한마디로 '탈학교 사회'를 꿈꾼다. 교육의 본래 가치는 자율과 자유와 평등이며 현재의 학교 제도는 이런 본래 가치를 역으로 훼손하기 때문에 학교 밖에서 교육의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각종 노력, 즉 학습공동체나 학습협동체, 학회, 대안학교나 홈스쿨링 등이 활성화되어야 함을 역설한다. 또 이러한 대안 교육이 정착되기 위해 교육보험제도와 교육화폐제도, 교욱지원시설과 지식개발 사업, 분야별 평가제도와 학습네트워크를 제시학 제도적인 뒷받침을 위해 학력폐지법을 제안하기도 한다. 

이 책을 페이스북에 소개했더니 일부 페친들이 '과거의 학교 이야기'라고 치부하거나 '대안학교 마케팅 교재'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나 역시 초판이 발행된지 12년이나 지났고 그 사이에 학생들의 인권에 대한 여러가지 노력과 진보교육감을 탄생 등으로 학교의 실태가 분명히 개선되었을 것이라는 데에는 이의가 없다. 하지만 '배움을 독점'하는 현행 학교제도가 건재하게 존재하고 여전히 입시지옥과 무한경쟁이 존재하는 한 학교가 본래의 교육가치를 제대로 달성하지 못하고 국가기구로서의 기본적인 역할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라는 점 또한 현실일 것이다. 그리고 배움과 학습을 제도가 독점하지 않아야 한다는 기본적인 취지에 내가 동감하기에 저자의 주장과 시도에 긍정적이다.
저자가 '탈학교 사회'를 주장한다고 하여 '교육기관'과 '제도교육' 그 자체를 한꺼번에 없애자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제도교육'을 학생과 학부모들에게 획일적인 강요하는 것을 반대하는 것이다, 
 
[ 2012년 7월 19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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