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일본군, 인민군, 국군이었다 - 시베리아 억류자, 일제와 분단과 냉전에 짓밟힌 사람들
김효순 지음 / 서해문집 / 2009년 8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일제의 식민지 침략과 약탈, 그 과정에서 자행된 강제노동, 징용, 학살 등을 다룬 <역사가에게 묻다>의 저자인 김효순씨의 또 다른 기록작품이다.

그동안 우리나라와 세계 어디에서도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현대사의 비극이 있다. 식민지 백성으로서 1940년대 한반도와 만주 일대에서 일제 징병으로 만주로 끌려갔던 이들이 해방 뒤에는 소련군 포로가 되어 시베리아에 억류되어 수년 간 강제노동에 시달렸다. 고국에 돌아와 38선을 넘을 때는 총알 세례를 받고 엄격한 심문을 받은 사람들. 식민 지배와 조국 분단, 그리고 전쟁으로 이어지는 가혹한 역사의 짐을 고스란히 짊어져야 했던 사람, 그들은 누구인가?
그들이 바로 시베리아 억류자들이고 이 책은 ‘시베리아 억류자’ 문제를 본격적으로 조명한 최초의 공개기록이다.

<역사가에게 묻다>를 읽으면서도 느꼈지만, 이 책을 읽게 되면 우리나라의 역대 대통령, 행정부, 국회가 얼마나 자국의 동포들과 시민들에게 무정하고 무책임한지 분노가 치밀게 된다. 뿐 만 아니라 언론사들과 학자들, 대학과 연구소, 지식인들의 미천한 역사의식과 이중성이 역겨워진다. 국가의 존재 이유, 민족을 떠드는 그들의 허울, 민중을 위한다는 사탕발림에 진절머리가 난다.
개인적으로 미국이 모든 외교정책을 자국과 자본가들 위주로 운영하면서 한국을 비롯한 제3세계 국가를 침략하고 착취함을 비난하는 나임에도 불구하고 내가 적어도 미국 정치인들과 행정부의 존재를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그들이 자국민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쏟는 정성과 노력 때문이다. 내가 보기에 그들은 시간이 얼마나 많이 지났는지, 얼마나 정부관료의 입장이 어려운지, 돈이 많이 드는지 상관하지 않고 자국민 한 사람을 위험으로부터 구출하기 위해, 죽은 시체를 자국의 땅으로 데려가 묻어주기 위해 심혈을 기울인다는 인상을 강하게 받기 때문이다.
도대체 한국의 정치인들과 정부관료, 언론들은 무엇을 위해, 왜 존재하는 것일까? 그러고도 한국사회의 공동체가 계속 온존하게 유지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1945년. 일제 말기 만주(현재의 동북 3성), 쿠릴 열도, 사할린의 일본군 부대에서 복무하던 조선인들이 있었다. 식민지 백성으로서 일제의 징병 정책으로 인해 끌려간 이들이다. 일본이 항복하기 직전인 1945년 8월 9일, 소련은 한때 승승장구하던 관동군을 궤멸시키고 만주 등지에서 일본군 60여만 명을 포로로 잡았다. 스탈린은 8월 하순, 포로들을 시베리아 각지로 이송하라는 극비 지령을 내렸다. 이른바 ‘시베리아 억류’로 알려진 사건이다.
문제는 일본군에 끼여 있는 조선 청년들이었다. 이들은 일본 군인으로 간주돼 혹한의 시베리아 등지에서 중노동을 하고 3, 4년 만에 고국에 돌아왔다. 1948년 12월 말 약 2,200명이 소련 화물선을 타고 흥남항으로 귀환했다. 만주나 북한이 연고지인 사람들은 가족을 찾아 떠났지만, 남한이 고향인 사람 500여 명은 이승만 정부에게 골칫거리로 남았다. 이미 남북에 별도 정부가 수립돼 38선을 경계로 팽팽하게 대치하던 때였다.

북한 당국은 남쪽과 이들의 송환을 공식적으로 협의하지 않고 1949년 1, 2월께 한밤중에 38선을 넘도록 했다. 지긋지긋한 일본 군대와 소련 포로 생활을 이겨내고 마침내 고향으로 돌아오는 이들을 맞이한 것은 38선 경비 부대의 발포와 대공 수사기관의 엄격한 신문이었다. 더구나 조사를 마치고 고향에 돌아가서도 오랜 기간 요시찰로 묶여 감시 받았다. 이어진 한국전쟁의 소용돌이에서 목숨을 부지한 억류 귀환자들은 남북이 대치하는 상황이 엄연히 계속되는 상황에서 소련 체험은 천형 같은 낙인이었다. 1990년 6월 한국과 소련이 수교를 맺기 전까지 이들은 자신들의 기막힌 처지를 내놓고 호소하지도 못했다.

억눌렸던 이들이 시베리아에서 당한 고초를 잊지 말자는 뜻에서 [시베리아 삭풍회]라는 모임을 결성한 것은 한국이 소련과 수교한 이후인 1991년이었다. 초창기에는 러시아 정부로부터 노동증명서를 발급받는 일에 주력하면서 정부에 시베리아 억류의 억울함을 호소하고 문제 해결을 요청했다. 그러나 되돌아 온 것은 성의 없는 회신뿐이었고, 그것은 정권이 바뀌어도 마찬가지였다. “우리 정부가 해준 것이 하나도 없다”며 분통을 터트리는 이들은 일본 총리에게도 피해 보상을 요구했지만, 일본 정부의 태도 역시 변함없었다. 일본 정부는 박정희가 1965년 졸속으로 체결해준 한일회담으로 모든 식민지배상이끝났다고 큰소리치고 있다. 일본에서는 박정희가 저지른 지금은 일본 군국주의의 피해자이면서 시베리아 포로 생활을 같이 했던 일본 억류자 단체와 교류하면서 서울, 모스크바, 도쿄를 오가면서 보상 촉구 운동을 함께 하고 있다.
이들의 삶은 한국 현대사에서 최대 피해자의 하나로 꼽힌다. 그러나 당한 서러움과 고난에 비하면 이들의 삶은 의외라고 할 정도로 우리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이들의 인생에 정부와 권력기관의 위로와 보살핌은 없었다. 전쟁의 사지로 끌고 간 일본이나 시베리아에서 노예 노동을 시킨 러시아는 이제까지 사죄와 보상 요구를 외면했다. 우리 정부도 이들의 하소연에 진지하게 귀를 기울인 적이 없다.”

국내에 시베리아 억류를 경험한 남쪽 피해자는 이제 30여 명 정도가 생존해 있는 것으로 추정한다. 저자는 그동안 억류 피해자들뿐만 아니라 유족, 관련 단체 관계자, 학자, 국가기록원, 경찰국 등 정부기관의 관료, 정치인 등 한국과 일본 인사 수십 명을 만나 취재했다. 이들의 증언과 인터뷰를 바탕으로 우리 현대사에서 큰 공백으로 남아 있는 시베리아 억류 문제를 하나하나씩 풀어헤쳤다. 이병주, 이규철, 동안 등 생존자들의 육성과 치밀한 자료 분석으로 되살아난 역사의 현장은 참으로 생생하다..
저자가 개록해 놓은 기록이 보여주는 시베리아 억류자들의 고난어린 역정 속에는 해방 전후에 복잡했던 남북한-소련-일본 관계가 농축되어 있다. "1949년 초 갑자기 38선을 넘어 내려와 소련에서 왔다고 주장하는 이들은 과연 누구인가? 도대체 무슨 사연이 있었기에 일제가 패망한 후 소련으로 끌려가 노예 노동을 했을까? 일제의 식민 통치 피해자인 조선 청년이 왜 종전이 됐는데도 오히려 가해자 취급을 받아야만 했을까? 냉전이 격화되면서 침략 전쟁의 소모품으로 동원된 이들은 어떻게 버려졌을까? 이들의 억울한 사연이 이제껏 널리 알려지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저자는 이런 질문을 던지지 않고 개인의 피해 사례만 나열하면, 야만의 시대에 짓밟힌 수많은 사람들이 털어놓는 또 하나의 넋두리 정도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저자는 어떤 역사적 맥락에서 이들의 기구한 삶이 전개됐는지에 주목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국뿐만 아니라 일본·러시아·중국·만주·미국을 포함한 이 지역의 20세기 현대사를 폭넓게 이해하는 게 필요했다. 그렇게 해서 저자는 독자들에게 한반도를 둘러싼 동아시아의 현대사, 제대로 배우지 못하고 무관심 속에 묻혀있던 근현대사에 대한 새로운 관심을 불러일으킨다..


저자는 아마추어 학자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시베리아 억류는 한 개인이 조사·연구해서 전모를 밝히기에는 너무 과제가 방대하다. 그러나 한참 늦었지만 이제라도 하지 않으면 이들의 역사는 영원히 어둠 속에 묻힐 것이다. 정부, 정치권, 언론, 학계가 모르는 사실을 저자가 공개했으니 이제 그들이 저자의 기록을 토대로 나머지 역할과 책임을 다해야 할 것이다.

'시베리아 억류'가 벌어진지 70여년이 지났다, 시간이 오래된 것을 관련 사실을 조사하고 연구하기 어렵다는 단점도 있지만, 당시의 책임을 추궁당할까 두려워하는 이들이 현실에 없기에 시작하기에 좋은 여건이라는 장점도 있는 것이다. 이제 남은 것은 의지와 노력 뿐이라고 생각한다. 국립대학이나 연구소라도 나서서, 개인적인 학자, 교수라도 나서서 추진해야 한다. 
 
그리고 이제라도 그 사실을 알게된 이들은 각자 할 수 있는 역할을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공부모임에서 <역사가에게 묻다>와 <나는 일본군, 인민군, 국군이었다>를 교재로 선택한 이유가 김효순씨의 활동을 알고자 함도 있지만, 조금이라도 인세를 보태어 그분의 활동에 도움이 되고자하는 마음도 있었다.
 
[ 2012년 3월 27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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