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과 의식화
파울로 프레이리 지음, 채광석 옮김 / 중원문화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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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년 만에 파울로 프래레이리의 <페다고지 : 피억악업자의 교육학(1970)>을 다시 읽고나서 프레이리의 교육철학이 궁금해 찾은 저작이다. 이 책 <교육과 의식화>가 처음 발간된 해가 1978년이니 <페다고지>를 읽을 때와 마찬가지로 21세기 한국 상황과 전혀 다른 맥락과 조건에서 쓰여진 글이라는 점은 동일하다. 나는 다만 <페다고지>만 읽고서는 프레이리의 교육철학을 제대로 알 수 없다고 판단하여 이 책과 다른 책(<체 개바라, 파울로 프레이리의 혁명의 교육학>,2012)을 한 권 더 읽어보려고 했다.

프래이리는 제1장 '자유실천으로서의 교육'에서 브라질의 근대사를 통해 브라질 사회가 어떻게 변해왔으며 외세(포루투칼)에 의해 어떻게 브라질의 정치경제적, 사회문화적 체계가 왜곡되어 구축되어 왔으며, 그 과정에서 브라질 민중들의 뿌리 깊은 굴종과 체념의 인식이 각인되었는지 말한다. 외세의 의해 심어지고 유지된 사유대토지하의 브라질 사회에서 인간관계의 특징은 사회적 거리감이며 이는 '대화'를 절대 허용하지 않았다. '반대화' 사회체제는 브라질 민중의 침묵증의 근원이 되었고 이는 사회적으로 정치사회적 연대감과 대화, 참여, 정치, 사회적 책임감을 필요로 하는 사회, 정치제도가 자라날 여지가 전무하였다. 여기에서 브라질 사회와 민중에게 대화식 교육과 의식화의 과제가 도출된 것이다.
프레이리는 자신이 브라질 동북부 농촌에서 직접 실험한 문맹퇴치교육의 경험을 소개하면서 '대화식 교육을 통한 민중의 의식화 가능성'을 발견하였다. 그는 착 속애 농촌에서의 문화 써클에서 농민들과 토론했던 구체적인 과정을 소개하면서 참여를 통해 민주적 과정을 겪으면 어떻게 농민들의 주체성을 일으킬 수 있고 의식화가 가능한지 설명한다.

프레이리가 규정하는 억업자는 호령, 명령, 지시, 착취, 거짓 관용, 거짓 사랑을 행하는 지배엘리트와 이른바 혁명을 운운하면서도 반대화적 행위를 일삼는 좌익 분파주의자 모두를 지칭하는 말이다. 그들의 행동 이론은 민중을 피보호자로 보는 가부장주의, 지배문화의 이데롤로기를 신화화시키는 조작주의, 존재가 아니라 소유를 추구하는 물화주의 등의 "죽음을 긍정하는" 정신으로 보고 이의 구체적 양상이 분할 지배, 조종, 문화적 침략, 정복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분석한다. 이로 인해 피억압자들에게는 심리적 왜곡 현상의 하나로 '자유에 대한 공포(fear of freedom)'라고 말한다. 반대로 그는 인간화의 주체인 피억압자의 행동 이론이 해방을 위한 일치, 조직, 문화적 종합, 협동이어야 하며 이의 밑바탕에는 민중에 대한 믿음, 신뢰, 사람, 희망이 자리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러한 주장은 그의 저서 <페다고지>와 이어진 주장으로서 그의 근본적인 문제의식과 분석, 해결방향은 21세기인 지금 한국 상황에서도 발견되고 필요하다고 본다.

또한 제2장 '지도나 교호나(Extenttion or Communication)'에서는 브라질 농촌사회에서 실시된 농업 기술자들(technicians)과 농민들이 새로운 농촌사회를 이룩해가는 과정에서 어떻게 서로 상호 의사소통할 수 있는가에 관해 분석했다. 그는 '지도'라는 용어를 낱말의 언어학적 의미, 철학적 지식론에 입각한 비평, 지도와 문화적 침략의 여러 개념 간의 관계 등 서로 다른 여러 가지 관점에서 분석함으로써 '지도'에 대해 종합적으로 비판한다. 그는 지도의 개념이 어떻게 해서 농민을 믈건으로 만드는 여러 행위로 전개되는가를 밝혀준다. 따라서 일반적인 교사와 마찬가지로 영농기술자인 교육자는 그가 역사적 현실 속에서 사람들과 추상적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관계를 맺으려 하는 한 반드시 지도와 교호 중 교호를 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프레이리는 다시 한번 인간화를 위한 '문제제기식 교육'의 개념과 필요성을 역설한다. 그는 교육 행위란 인간을 자유롭게 하는 것이어야 하며, 방법, 기술 과정 전체가 인간 해방의 구현 방법이어야 한다고 본다. 그는 인간 해방으로서의 교육은 실제나 상황에 대한 반성 이상의 것 즉 프랙시스(praxis)라고 보는 것이다. 그래서 그에게 있어 교육으로서의 프랙시스는 실재에 대한 반성과 그 실재를 변형시키는 행동 사이의 통일점을 뜻한다.
 
이 책은 <페다고지>와 마찬가지로 주로 성인문맹퇴치교육을 중심으로 한 민중교육론인 까닭에 상당히 주의 깊게 읽어야 할 성질의 것이다. 프레이리의 브라질과 남미에서의 교육대상이 가난과 억압에 찌든 농민과 도시지역 빈민들이면서도 우리나라의 경우와는 달리 문맹자들이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둬야만 그의 교육론의 틀과 방법론이 명확히 이해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본서의 전편을 꿰뚫고 흐르는 프레이리의 브라질 근대사 인식을 우리나라 역사와 비교하여 읽는 것도 중요하다고 본다. 어쨌든 리챠드 쇼올이 지적했듯이 프레이리의 이론과 방법론은 브라질의 경우뿐만 아니라 소외된 민중 일반의 교육에 있어서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21세기 한국에서 같은 인간존재로서 동등하게 인정받지 못하고 평등한 사회적 기회를 보장받지 못하며 인간적 노동도 성취도 구조적으로 불가능한 사람들을 여전히 '민중'이라 지칭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중에서 상당수가 역사의 주인으로 스스로를 자각하지 못하고 지배계급으로부터 미디어와 시스템을 통해 음으로 양으로 세뇌되어 있는 수 많은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은 여전히 우리사회의 숙제가 아닐 수 없다.
또한, 프레이리의 교육철학은 그런 사람들 뿐 아니라 어떻게 보면 현대인 모두가 참된 인식으로부터 상당히 떨어진 도구적 존재이므로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간에 자기 자신의 참된 모습을 되찾고 역사적 존재로 되살아나려면 한 번쯤 숙고해 볼만한 교육론이라고도 말할 수 있겠다.
 
책 속의 프레이리의 사상, 교육철학은 깊이가 있고 어떤 때는 따라잡기가 힘들다. 그렇지만 그는 정곡을 찌르고 있으며 진리의 세계와 이들 진리 간의 연관관계 및 논리 정연한 개념설정을 보여준다. 인간들의 여러 행위, 자연의 세계를 지배하고 자기들의 문화와 역사를 창조하려는 인간의 투쟁 등이 개별적으로만이 아니라 전체적 기능 속에서도 중요한 뜻을 지니는 하나의 전체를 이루고 있음을 제시한다.
이반 일리히와 비교해 아쉬운 점은 프레이리가 억압자와 피억업자의 대립 구조를 중심으로 민중의 교육학에 집중하는 대산 인간과 자연을 대립적, 위계적인 관계로 구성하면서 근대사회의 반환경, 반생태, 산업사회의 구조적 문제점을 인식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반 일리히가 생활하고 분석했던 사회경제적 제도와 구조가 프레이리의 그것과 전혀 달랐기 때문에 '학교의 교육 독점'과 '학교화'애 대한 문제의식은 프레이리의 관심을 끌지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 2012년 3월 24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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