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 20년의 열망과 절망 - 진보.개혁의 위기를 말하다
경향신문 특별취재팀 엮음 / 후마니타스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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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는 참으로 역동적이다. 특히 1948년 해방 이후의 한국사회는 1년 뒤를 예측하기 어려울 만큼 예측불가능한 상황이 연속 되었고 지금까지 그런 분위기는 이어지고 있다는 느낌이다. 1950년 전쟁, 1960년 4.19 혁명, 1961년 박정희에 의한 군사쿠테타, 1965년 한일협정, 1972년 유신체제, 1979년 박정희 피격과 전두환의 군사쿠테타, 1980년 서울의 봄과 전두환의 광주학살, 1987년 6월항쟁과 직선제 등 개헌, 그리고 양김 분열에 의한 군사정권의 연장, 1990년 3당 야합과 1992년 김영삼의 당선, 1997년 구제금융 위기와 김대중의 당선, 2002년 노무현의 당선, 2007년 이명박의 당선, 그리고 이제 2012년...

1948년 이후 한국은 미국의 세계 지배체제에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에 어찌보면 대외적인 상황은 어느정도 예측이 가능할 수도 있지만, 국내상황 특히 국민들의 모습은 가히 'Dynamic Korea'라고 불릴만큼 역동적인 모습이었다. 특히 1987년 6월 항쟁이 그러했다. 6월 항쟁은 이 책의 제목 그대로 '열망' 그 자체였다. 그러나 1987년 이후 20년의 역사는 '절망'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처음 10년은 1987년 6월 항쟁에도 불구하고 노태우, 김영삼으로 이어지는 군사독재의 연장이었고 그 이후의 10년은 김대중, 노무현으로 이어지는 민주화 세력이 집권했지만 무력함과 개혁의 실패로 인해 소위 진보,개혁세력에 대한 신뢰의 하락으로 점철되었다. 더군다나 민주정부가 거듭될수록 더욱 심해지는 양극화는 서민들의 삶의 위기로 나타났다. 그 반대급부는 2007년 '단군 이래 최악의 정권'인 MB정권을 등장시켰고 민주주의는 더욱 후퇴하고 서민의 삶은 최악의 나락으로 빠져들었다. 

최근의 MB 정권 4년은 유권자들이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도록 만들었다. 국민들은 새롭게 깨달았으며 스스로 변화하고 있다. 그동안의 경험과 기억과 깨달음을 기초로 하여 2012년은 1%의 기득권 체제를 무너뜨리고 민주화를 다시 바로 세우고 빈곤과 양극화를 되돌리기 위한 한바탕 승부의 해로 만드려고 벼르고 있는 것이다.

작년 10월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부터 시작하여 2012년 새해 벽두부터 '심판'과 '정권교체', '승리'와 '국회점령', '참여'와 '99%'라는 단어가 키워드가 되고 있다. '심판'과 '정권교체'는 해방 후 최악의 정권인 이명박 정권과 집권여당인 한나라당을 총선과 대선에서 꺽어야 함을 의미한다. '승리'와 '국회점령'은 정권교체의 의미를 포함하면서도 유권자의 참여를 조금 더 강조한 의미다. '참여'와 '99%'는 작년에 미국에서 시작된 'Occupy' 운동의 한국판 개념이라 할 수 있다. 진정한 민주주의와 사회복지는 대의민주주의나 시혜가 아니라 유권자의 직접적인 참여를 통해 가능하다는 메시지라 할 수 있다. 
유권자가 변한 만큼 2010년 지자체 선거에서 주요 쟁점으로 부상한 '사회복지'는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도 여전히 주요 쟁점이 될 것이다. 문제는 막연하게 '사회복지'를 외치는 것이 아니라 제도적이고 실질적으로 '사회복지'가 가능하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 것인지 판단해야 하는 것이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지난 10년간의 민주정부는 무엇을, 어떻게, 왜 잘못했는지 밝혀야 한다. 그렇지 않고, 무엇을 잘못했는지, 무엇이 문제였는지 규명하지 않은 채 또 다시 진보,개혁세력이 국회와 정권을 되찾아봐야 지난 민주정부 10년의 실패를 되풀이할 가능성이 클 수 밖에 없다.

이 책은 그런 점에서 의미가 크다. 지난 민주정부의 10년 동안 진보,개혁세력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검토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는 1987년 이후 20년간 '열망과 절망'을 온몸으로 체험해 온 민주화 세력과 서민들의 목소리를 통해 2007년 시점에서 한국 민주주의의 사회경제적 모습과 진보,개혁 세력의 위기를 진단하고 있는 것이다. 짧게는 참여정부 4년에 대한 평가이고 길게는 민주정부 9년에 대해 평가한 것이다. 

민주정부 9년(참여정부 4년)의 성적표를 도표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집필진은 발간사에서 참여정부를, "중간평가 성격의 2006년 지방선거 결과는 외형상 열린우리당의 완패와 민주노동당의 동반 하락이었지만, 그 본질은 집권 세력에 대한 환멸, 나아가 우리 사회 진보,개혁 세력 전반에 대한 불신의 표출이었다는 것이 우리의 진단이다. 노무현 정권은 보수 세력이 보낸 트로이의 목마인가? 노 정권 자체가 주요 정책에서 신자유주의를 추구하며 보수화하고 있는 것과는 달리 보수 세력으로부터는 좌파 정권이라는 공격을 받아왔다. 보수 쪽의 선전은 먹혀들었다. 노 정권은 본의 아니게 좌파 정권 대접을 받는 모순적인 상황이 전개되어온 것이다. 한국정치의 희극이자 비극이다."라고 요약하여 평가했다.

경향신문 특별취재팀은 2006년 5.31 지방선거 이후 진보,개혁세력의 위기를 신문에 기획기사로 실었다. 이는 2006년 9월~12월에 실은 28회 연재 "진보개혁의 위기 - 길 잃는 한국 시리즈"를 말한다. 특히 이 책에 소개되어 있는 일반 서민들, 직장인들, 소상공인들의 인터뷰 기사는 4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언론에서 읽을 수 있기 때문에(더 심한 수준으로...) 마음이 아플 수 밖에 없었다.
당시 이 기획기사는 참여정부 인사들로부터 엄청난 반발을 불러왔다고 한다. 국정홍보처 김창호 처장은 "참여정부에 대한 비판의 기준이 왜 진보진영의 위기에 대한 심층적 성찰과 반성을 향해 가지는 않는지, 그 날선 칼날이 왜 보수세력들에게는 그렇게 무딘지 묻지 않을 수 없다"라고 반발했다. 청와대는 "성장율, 물가상승율, 수출 다 좋은데 왜 민생을 싸잡아 도탄이라고 하느냐, 대통령이 정치에만 올인하고 국정 마무리를 외면한다고 하지만, 이는 증거도 없는 감정적 비방이다"라고 비난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2월 17일 브리핑에서 "당신들이 왜 나를 민주주의가 아니라고 하느냐. 진짜 민주주의, 진짜 진보는 나다"라고 항변했다.
하지만 당시 한국의 성장율, 물가상승율의 안정, 삼성을 비롯한 재벌기업의 이윤이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임금 노동자를 비롯한 서민들의 삶은 전혀 개선되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에 대해서 참여정부는 여전히 모르쇠로 일관했다.(이런 인식은 지금 민주통합당 지도부를 구성하고 있는 한명숙, 문성근, 박영선, 문재인, 이인영, 김부겸, 박지원 최고위원도 비슷하기에 걱정스럽다...ㅠ)

물론, 집필진은 참여정부만을 다룬 것이 아니었다. 제도권에 진입한 지 3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정파 문제와 민족 문제에 발목이 잡혀 제대로 된 정책 하나 추진하고 있지 못하고, 정작 자신들이 대변한다고 이야기하는 서민들의 지지를 이끌어 내지 못하고 있는 민주노동당, 조직된 대기업 노동자들의 조합주의적 이해만을 대변한 채 정책 없는 투쟁 단체로만 각인되어 있는 민주노통, 여전히 시민의 참여 없는 시민운동 등을 모두 다룬다. "밥 먹여 주는 민주주의를 못하면 진보,개혁 세력의 미래는 없다"라고 주장하면서...

 

 

 


책의 1부. [진보,개혁 위기의 현상과 진단]에서는 진보,개혁의 위기가 단순히 담론이나 이념의 퇴조가 아니라, 한국사회 구성원들의 삶의 위기로 나타나고 있음을 증명하고 있다. 부동산 폭등, 사교육비는 치솟고 빈부격차는 심해져 가고만 있고 참여정부를 비롯한 시민단체 등 진보,개혁 세력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가 바닥을 치고 있음을 당사자들이 스스로 고백한다. 참여연대 김기식 사무처장은 "개혁세력은 무능했고 진보진영의 현실적 대안은 부족했다. 민주화를 이끈 세력은 이제 기득권층이 되어 일상에 매몰되었다. 민주화 20년, 민주세력 집권 9년이 되었지만 민주화의 성과는 어디로 갔으며, 그 원인은 누구에게 있는지 질문을 던진다."라고 말했다.(스스로 평가하는 과정에서도 진보,개혁의 위기는 느껴진다. 위기 진단 대담에 참가한 이정우 경북대 교수, 노회찬 민주노동당 국회의원, 김기식 참여연대 사무처장이 주장하는 위기의 내용과 원인, 진단과 대책, 전략이 서로 다르다. 당연히 2007년 이후 이들의 움직임과 행동반경도 서로 달랐고 지금도 전혀 다르다...ㅠ)


2부 [진보,개혁세력의 실상]에서는 2000년 16대 총선 때부터 의회에 본격적으로 진출한 386 정치인들이 세대교체의 축이 되고 정치개혁의 희망봉이 될 것이라 각광받았지만 17대 국회에서는 '가장 실망스러운 집단 1위'로 꼽히고 있음을 지적한다. 2004년 4월 15일, 국회 안으로 화려한 발걸음을 내딛었던 민주노동당은 자신들이 대변하고자 하는 서민과 노동자의 지지를 이끌어 내지 못하고 있다. 민주노총, 전교조, 시민운동 단체, 대학의 현실과 무능력도 함께 비판하고 있다.(이 챕터에 대한 대담 참여자인 김혜정 한경운동연합 사무총장, 단병호 민주노동당 국회의원, 조희연 성공회대 교수의 진단과 처방도 역시 크게 다르다...ㅠ)

3부. [보수의 부상과 혁신]에서는 진보,개혁세력의 퇴조와 맞물려 보수주의자들이 속속 집결하고 보수셩향의 학자들이 커밍아웃을 외치고 있음을 분석한다. 2004년 11월부터 자유주의 연대, 뉴라이트전국연합 등이 출범하기 시작했다. 이처럼 한국사회에서 보수가 부상하게 된 이유와 보수담론이 생산,유통되는 동학을 살펴본다.

 

 

4부. [진보의 10대 의제]에서 진보,개혁세력이 집중해야 할 10대 의제를 제시한다. 조세개혁, 부동산, 교육정상화, 재벌개혁, 고령화/저출산, 소외된 소수, 건강 불평등, 생태주의, 빈곤문제 해소, 비정규직 해소 등이다.


5부. [진보의 전략은 무엇인가]에서는 진보,개혁의 위기가 진보,개혁에 대한 환멸과 서민, 중산층의 삶의 위기를 초래했음을 지적하면서 반대와 투쟁만으로 자기 존재를 확인하는 과거 방식 대신 새로운 전략을 세우고 실천적 대안을 내놓아야 함을 말한다. 그러면서 진보의 가치가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을 전제로, 진보를 확장하고 심화시킬 수 있는 방향과 2007년 당시 논의되고 있는 전략들을 소개한다. 그것은 첫째, 기존의 정규직 노동자,농민에서 비정규직 노동자, 이주노동자 등 진보의 주체를 확장해야 하는 것이고 둘째, 진보가 주장이나 선언을 넘어선 일상적인 삶에서 체화되고 구체화되어야 한다는 것이며 셋째, 사회적 대타협을 주도적으로 추진해야 하고 넷째, 연대의 대상과 공간을 동아시아로 확대해야 하는 것을 말한다.

 



집필진의 참여정부 4년(또는 5년)과 민주정부 10년에 대한 평가에 대해서 개인적으로 '위기'라는 진단에 대해서는 동의히지만, '위기'의 원인과 대책에 대해서는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위기'의 원인이 다르니 '대책'도 다를 수 밖에 없지만...
나는 '위기'의 원인으로, 노무현 대통령의 개인적인 한계가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당선 과정 자체가 진보개혁 진영 전체가 하나의 '준비된 조직'이 되어 이루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노무현 대톨령의 후보 선출 과정 자체가 역동적인 과정에서 이루어졌고 후보 선출 이후 '후보 흔들기'가 민주당 내에서 벌어졌고 야권단일후보로 나서지도 못했기 때문인 것이다. 그것은 당연히 노무현 개인이든, 측근이든, 지지세력이든 전혀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대통령 선거가 진행되었고 대톨령으로 당선된 이후에도 노무현 대통령 스스로 뿐 아니라 정권 준비주체들도 진보개혁 진영 전체라는 관점보다 '권력 획득'이라는 구태 관점에서 5년의 집권플랜을 짜고 인사정책 등을 펼쳤기 때문인 것이다. 즉, 진보개혁 진영이 서로 '전체로서 하나의 세력'이라는 관점이 없었고 뿔뿔이 흩어진 채 각개약진했다는 것이다.
또 하나 위기의 원인은 '참여'의 문제다. 노무현 정부는 스스로 명칭을 '참여정부'로 표방했지만, 전혀 '참여'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진보개혁 세력 전체를 참여의 대상이자 주체로 생각하지 않았을 뿐더러 자신을 대통령으로 만든 '노사모'마저 일부를 제외하고는 진보개혁 추진에서 참여동력으로 고려하지 않았다. 노무현 개인과 집권세력의 역사의식과 철학, 정책, 비전, 전략의 부재인 것이다.(그런 면에서 지금 읽고 있는 베네수엘라 차베스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의 집권 기간을 너무도 180도 대비된다...ㅠ)
나는 민주주의든, 총선과 대선의 승리든, 정권교체 이후 광범위한 진보개혁의 추진에서 '참여'의 문제는 여전히 가장 중요한 동력이라고 생각한다. 99% 국민들이 스스로 참여하려고 노력하고 정부와 정치권에서 국민들의 참여를 보장, 지원하지 않고서는 지난 60년 동안 한국사회를 그물처럼 장악하고 있는 1% 기득권 세력에 대항하여 진보개혁을 이루어낼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책의 내용에 나타나 있는 정도의 참여정부의 평가는 어쩌면 국민들 사이에서 공통적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참여정부에서 MB정권에게 넘어간 뒤로는 참여정부에 참여한 인사들을 한 때 '폐족'이라고까지 지칭되었다. 너무 심하게 대했던 시절도 있었다.(나도 당시 그런 보통사람의 하나였다.) 그런 인사들을 정치적으로 살려준 것은 노무현 대통령과 MB정권이었다. MB정권의 무지막지한 공격과 불편부당한 수사로 인해 고통받던 노 전대통령은 자신의 죽음으로 참여정부의 인사들과 성과를 보호하려 했다. 그리고 그 분의 죽음으로 많은 국민들과 진보개혁 진영의 사람들이 노무현 대통령 개인에 대한 '지못미'를 느끼면서 들고 일어났고 참여정부 인사들은 그런 분위기를 타고 2010년 지방선거에서 화려하게 부활했다. 

그리고 참여정부 인사들에 평가에 있어서 나는 한명숙, 문재인, 이인영, 박영선, 박지원, 유시민, 천호선, 안희정, 이광재 등 참여정부의 공과에 일정 책임이 있는 인사들을 무조건 비난할 생각은 없다. 그것이 한미FTA든, 빈부격차 심화든, 부정부패든, 집회시쉬의 자유 탄압이든... 
중요한 것은 참여정부에서 시행한 정책이 잘못된 것이면 지금이라도 솔직하고 겸허하게 인정하고 공개 반성하고 참회하고 어떻게 바로 잡을 것인지 국민들에게 약속하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 당장, 자신의 위치에서 그것을 바로 잡기 위해 노력하면 되는 것이다.
아주 악질적으로 나쁜 것은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자신의 잘못은 없다고 발뺌하고 둘러대는 것이다. 국민들의 노무현 대통령 개인에 대한 미안함과 고마움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이다. 그런 자는 정치인 자질은 커녕 기본적인 인격적인 자질도 없는 인간일 뿐이다. 

[ 2012년 1월 2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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