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은 무너졌다
자크 사피르 지음, 박수현 옮김, 김병권 한국판 보론 / 책으로보는세상(책보세) / 2009년 1월
평점 :
품절


이 책은 오프라인 독서모임에 참여한 후 <행동경제학>과 <지도로 보는 중동이야기>에 이어 세 번재 교재다.
이번 공부모임에는 이 책의 저자인 자크 사피르의 문하생으로 연구를 하다 귀국한 LG경제연구소 유승경 연구원이 함께 할 예정이다.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를 읽으면서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했다는 말이 계속 뇌리에 남았다.

"인간은 자기가 보고 싶은 것, 보이는 것만 본다..."
최근에 인터파크 블로거의 리뷰 제목도 비슷한 것이었다.
"인생은 보이는 게 다가 아니야..."
 
이 책 역시 내가 보고 듣고 읽는 세상의 변화가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다시 느끼게 해준다.
나 역시 세상이 돌아가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그 이면에 자리잡고 있는 의도와 흐름을 읽을 생각을 하지 않았고 파악하기도 쉽지 않았다.
특히 국제정세에 대해서는 서구언론과 국내언론이 보도하는 것을 기초로 생각하는 것 이상을 노력해보지 않았다.
 
1991년 이라크가 쿠웨이트와 전쟁을 벌이고 이에 대응하여 미국이 ’사막의 폭풍작전’이라는 이름으로 이라크를 침공했을 때...
그 해에 나는 구파발에서 송추로 가는 도로 중간의 노고산 아래에서 일병 계급장을 달고 방위로 근무 중이었다.
TV에서 보여주는 그 전쟁은 말 그대로 ’게임도 되지 않는’ 수준이었다.
1997년1998년. 아시아에 금융위기가 도래하여 환율이 치솟고 김대중 전대통령이 당선되자마자 IMF로부터 구제금융을 받아내고 전국민이 ’금모으기 운동’을 벌인다고 전국이 들썩였을 때...
나는 근무하던 설계회사가 구조조정을 선언하였고 별다른 고민 없이 다른 설계회사로 옮겼다.
금융위기에 함께 휩쓸린 아시아의 다른 국가, 러시아, 그리고 남미 국가들의 소식을 접했을 때 특별한 생각이나 느낌이 들지도 않았다.

1998년 인도와 파키스탄이 핵실험을 강행했을 때에도, 1999년 동유럽에서 코소보 사태가 발생했을 때에도 초기에 미국을 중심으로 나토가 공습을 벌이고 평화유지군을 파견할 때에도 ’남의 나라’ 소식으로 치부했다.
1998년 11월 나는 다니던 설계회사를 그만두고 부동산 회사로 옮겼을 뿐이다.
2001년 9월 뉴욕 무역센타에 비행기가 충돌하여 무너져 내릴 때, 나는 잠시 회사를 쉬면서 차를 가지고 홀로 여러도시를 다니면서 친구들을 만나면서 여행을 즐기고 있던 중이었다.
당시, 나는 언론에 보도되는 이야기만 들어서는 그런 방식으로, 그런 시간에 대형빌딩이 산산이 무너져 내린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소위 ’911 테러’는 미국 국내의 ’자작극’일 가능성이 높다는 생각은 지금도 가지고 있다.
2001년 10월 미국이 알카에다의 지취자인 빈 라덴이 숨어있다는 아프카니스탄을 침공하고 2003년 대량살상무기를 이유로 이라크를 침공할 때에도 미국의 ’신보수주의(네오콘)’가 극에 달했다고 성토하는 정도였다.
 

하지만, 난 이 책을 통해 지난 20년 간 국제정세가 어떻게 변화되어 왔는지, 현재 어떤 상태인지에 대한 나름의 통찰을 얻었고 남은 21세기에 국제정세와 한반도 정세에 어떤 시나리오가 가능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부분적으로 감을 잡을 수 있게 되었다.
 
이 책의 저자는 1991년부터 2008년까지의 국제정세의 본질적인 흐름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는 미국이라는 거대한 제국이 무너지게 된 배경과 그 의미를 모색하면서, 다가오는 다극화 세계와 국민국가의 부활, 새로운 21세기를 살아가기 위한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저자의 주장의 요지는,
1. 20세기에서 21세기로의 전환은 1991년부터 시작되었다.
2. 1991년~1997년까지만 해도 ’극초강대국’으로서 미국이 21세기를 지배하는 것이 당연시 되었다.
3. 하지만 1998년~2003년 사이에 미국은 ’극초강대국’은 커녕 세계전체에 대한 ’일국지배’의 자리도 무너졌다.
4.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신자유주의는 1997~1998 금융위기와 2007~2008 금융위기를 해결하지 못하면서 몰락했다.
5. 이제 21세기는 다극적 세계질서와 국민국가의 부상 속에서 혼돈이 이어질 것이다.
는 것이다.
오늘날 미국의 가치는 직접적으로 도전받고 있으며, 라틴아메리카에서 미국 모델에 대한 반대가 점점 더 격렬해 지고 있는 상황이라는 것...
저자는 1991년부터 2007년까지 주요한 세계사적 사건을 분석하면서 자신의 주장에 대한 논거를 제시한다.
[미국의 GDP 대비 가계대출]
  

저자의 주장의 핵심을 인정하게 되면, 1950년 한국전쟁 이후 한반도의 운명은 가장 최고 수준의 위험한 상황에 처하게 되는 것이다.
한반도는 북한의 핵문제를 중심으로 여전히 갈등과 반목이 이어지고 있고 이에 대한 한국 내부의 의견과 입장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또한, 한국 군대의 작전권은 미군에게 있는 상황에서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도 북한-중국-러시아 대 한국-미국-일본이 대립하고 있고,
미국와 중국, 미국과 러시아, 중국과 일본은 여러가지 문제에서 서로 대립각을 세우고 있고 미국은 위기에 처한 지배력을 회복하기 위해, 일본은 재무장을 위해 한반도의 위기를 능히 이용할 가능성이 높은 국가들이기 때문이다.
 
도대체 1991년부터 2008년까지 지구상에 어떤 일이 벌어졌는가?
 
1991년 소련의 해체와 쿠웨이트 전쟁은 20세기 종말을 알리는 일대 사건이었다.
이런 점에서 다가올 21세기는 군사력, 경제력 모두에서 초강대국인 미국이 지배하는 세기가 될 듯싶었다.
그러나 ’미국의 세기’는 1997년과 2003년 사이 갑자기 소멸하고 말았다.
이는 1997∼1998년 국제금융 위기 시 미국이 보여준 위기 대처 능력의 부재와 이에 따른 각국의 새로운 경제 전략들의 등장, 그리고 이 틈을 틈타 러시아가 다시 국제무대에 얼굴을 강력히 내밀었기 때문이다.
또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은 미국 모델을 버리기 시작했고, 극동아시아는 중국이 안보의 중심 국가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이러한 상황에 맞서 미국은 자국의 헤게모니를 힘으로 복원하고자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정치적·군사적 대재앙을 일으켰다.
2001년 9.11 테러 당시 피해자였던 미국은 오늘날 관타나모 수용소에서 벌어진 가혹 행위의 이미지에 맞닥뜨려야 했다.
결국 21세기 문턱에 들어서자마자 미국은 곧바로 무너져버리고 말았다.

21세기가 시작되던 2001년 9월 11일.
이 끔찍한 테러를 두고 한편에서 미국의 몰락을 예상했다고 대부분 이야기하지만 저자는 "할리우드 대작 ’재난 영화’의 미학 코드에 부합할 정도로 압도적이기 때문에 외양만 보는 우를 범한다"며 "21세기가 시작되기 전인 1997년부터 미국의 몰락은 시작되었다"고 단언한다.
바로 1997∼1999년 국제금융 위기를 일컫는 것이다. 

이 금융 위기는 미국이 주도하고 많은 국가들에게 강요했던 신자유식 금융 시스템이다.
이 시기 금융 위기는 현재의 IMF 위기를 초래하는 원인이 되었고, 오늘날 미국 경제의 심각한 위기로까지 이어지게 된다.
1990년대와 21세기 초 경험했던 미국의 경제 성장은 유례없는 소득 불평등과 더 많은 인구가 사회보장제도의 혜택을 전혀 받지 못하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미국 주택담보 대출 시스템 위기는 어떻게 보면 빙산의 일각일지 모른다.
구조적 문제는 더욱 심각해 ’서브프라임’ 위기보다도 더욱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게 될 듯싶다. 

이 금융 위기를 기점으로 중국은 책임 있는 정책을 통해 극동 지방의 안정성을 상당 부분 보장했고, 미국의 걸프전으로 인한 군사적 위협은 중국을 국제무대로 나서게 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다.
사실 중국은 미국과의 직접적 갈등을 회피하고자 했으나 경제 발전을 위해서는 안전한 자원 수급이 필요하게 돼 어쩔 수 없이 미국의 대외 정책과 맞붙게 되었다.
중국은 걸프전을 미국의 석유 자원 통제로 간주하고 중국에 대한 잠재적 협박 수단을 확보하려는 시도로 해석했다. 
이후 중국의 수단 정권과 미얀마 군사 정권을 지지하는 이유도 이런 맥락에서 쉽게 분석할 수 있다. 

[중국의 GDP 성장율]
 

1997∼1999년 금융 위기 때 러시아는 모라토리엄을 선언할 정도로 은행 시스템이 완전히 붕괴되는 상황을 맞이했다.
그러나 이 위기는 러시아의 종말을 의미하기는커녕 쇄신의 신호였다.
1990년대를 지배했던 신자유주의 테제와 점차 결별하고 산업 정책 중심의 국가 프로젝트를 통해 재건에 박차를 가했고, 결국 경제가 성장세로 돌아서면서 10년의 불황을 극복하게 된다.
1998년 예브게니 프리마코프 정부의 최초 조치들을 계기로 실현된 사회적 쇄신과, 푸틴 정권의 개입주의 정책, 구조조정 등으로 명실상부하게 러시아는 강대국의 면모를 점차 회복하게 된다.
집권 초기 푸틴은 대테러 전쟁을 다자주의적 시각에서 수행하도록 미국을 설득하는 한편, 러시아가 그동안의 고립을 벗어나고자 미국의 9.11 테러에 대한 대응을 곧바로 지지한 바 있다.
푸틴은 두 가지를 계산했다. 미국의 지도층이 오랫동안 용인해주고 있던 광신적 이슬람 운동과 단절하게 만드는 것과 미국의 정당한 군사 보복이 다자주의적 틀에서 수행하도록 유도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미국은 러시아가 내민 손을 거절했다.
이후 러시아는 라틴아메리카에서 볼리비아와 베네수엘라, 아시아에서는 중국과 구축하고 있는 반대 동맹처럼 ’거부의 전선’을 형성하게 된다. 

2006년 중-러 합동 군사 훈련에서 보여지듯 상하이 협력기구는 미국이 후원하는 기구들에 대응한 아시아의 공식적 전략적 협력 기구로 급부상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중국과 러시아의 부상과 더불어 세계 각국들의 경제 전략도 대부분 수정하게 되는데, 특히 통상 분야에서는 좀더 공격적인 정책으로 방향을 돌리게 된다.
결과적으로 공격적인 통상 정책은 세계 경제를 전반적으로 취약하게 만들었다.
이와 더불어 신자유주의 담론이 갑작스럽게 신뢰를 잃어버리는가 하면, 국가 경제 정책, 산업 정책, 국제금융 플로우 규제, 보호무역주의 같은 개념들이 점차 정당성을 회복하게 된다. 금융 위기가 초래한 결과였다. 
[러시아의 GDP 추이와 경제성장 요인]



또 인도와 파키스탄의 핵실험은 미국이 비교적 가깝다고 생각했던 국가들마저 미국의 통제를 벗어나 독자적인 전략을 구축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미국의 세계에 대한 인식은 이제 두려움으로 점철되었고 우리가 신보수주의자, 네오콘이라 일컫는 자들의 집권을 돕게 된다.
이들의 정책은 일련의 이데올로기적 생략을 통해 구축된 정책으로 진정한 극초강대국의 권력을 구성하는 것과는 반대 방향이었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을 예에서 보듯 미국은 신군사주의 전략에 입각한 군사적 대재앙의 폭풍으로 밀려들어가 반죽음 상태에 이르게 된 것이다.
  

 미국의 몰락은 국제 관계가 재편성되고 새로운 국가들이 완전한 행위 주체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으로 받아들여진다.
경제적 지배력과 정치적 지배력 사이의 관계가 핵심 문제가 된 것이다.
이 책은 다극적 세계 질서에, 국민 국가의 부상으로부터 프랑스가 새로운 21세기에 있어 주체로 나설 것을 촉구하지만 우리에게 역시 똑같이 해당되는 문제로 사회 정책, 경제 정책, 군사 정책의 글로벌 전략을 마련하라고 촉구한다.
더불어 이런 전략의 핵심 요소들을 전진시킬 수 있는 국제적 동맹을 사고하라고 당부한다.

이 책의 한국판 보론을 쓴 김병권 새사연 연구센터장은 글로벌 금융 위기에서 한국이 처한 상황을 진단하고, MB노믹스의 실패를 예견한다.
이는 미국과 유럽은 경제 위기를 맞이해 정부 개입과 규제 강화, 재정 지출 확대를 꾀하고 있으나 MB는 반대로 규제 완화, 감세, 민영화, 개발주의 정책들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MB정권 탄생의 신화가 된 ’경제 살리기’는 이미 ’경제 확실히 죽이기’로 180도 회전하여 현재 마구 진행 중이다.
(사실, 한국판 보론 내용은 책의 주제와 동떨어져 ’왜 들어가 있을까?’는 궁금증만 남는다. 차라리 한반도의 정세와 MB의 외교를 평가하는 것이 필요한데...)

[ 2011년 11월 22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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