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논의의 최전선
레베카 클로센 외 지음, 김철규 외 옮김 / 필맥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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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온난화, 기후변화, 식량부족, 삼림파괴, 동식물 멸종, 핵발전소 위기, 공진화 위기, 생태학적 패러다임, 지속가능한 사회, ...
이들은 20세기 중반부터 각종 언론과 논문, 정치가와 환경운동가들에게서 본격적으로 제기되는 단어들이다. 인류가 자신들만의 생존과 성장을 위해 지구 생태계에 끼친 각종 폐해와 죽음의 그림자라 할 수 있다. 다행히 이미 지구 전지역에서 뜻 있고 양심있는 수 많은 사람들이 지구의 생태계 위기를 극복하고자 두 팔을 걷어부치고 나섰으며, 나라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유럽 등 선진국부터 개발도상국에 이르기까지 환경운동가들과 전문가들, 시민운동가들이 각종 생태계 위기를 막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하지만, 그러한 지구의 생태계 위기를 가져온 것이 특정 세력과 집단만의 문제일까? 탐욕에 굼주린 자본가들과 일부 정치, 언론, 사회, 종교, 문화의 상층 인사들만이 이 위기의 책임을 져야만 하는가에 대해서는 쉽게 단정지을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크기의 차이가 있고 전후의 차이가 있을 수는 있지만, 지난 300년 정도의 인류사회의 전개과정이 지금의 지구 위기를 급속하게 가져왔다고 볼 때 어느 누구도 그 책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게 아닐까? 인류사회의 작동방식이 상호간의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는 것이라면 보다 근본적인 문제의 뿌리를 찾아야 한다. 지금 가설을 세워본다면 아마 자본주의적 생존양식이, 즉 자본주의적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철학, 도덕 등이 지구 위기의 기초적이고 근본적인 원인이라 할 수 있다... 
 
지난 달(4월) 21일 [평화나눔아카데미]의 다섯 번째 강연에서 강사로 나온 윤순진 서울대 환경대학원 부교수는 "기후변화시대, 그러나 재앙은 평등하지 않다"라는 제목으로 강연을 진행하였다. 강연을 듣고 나서 생태학과 생태문제에 대한 관련 책을 찾던 중, 저자가 번역자로 참여한 이 책을 찾아 읽게 되었다.  
 
이 책은 생태사회주의를 기본적인 관점으로 해서 환경문제 또는 생태문제에 내포된 정치경제적 맥락과 그 의미를 짚어본 것으로 세계의 3대 진보저널로 꼽히는 [먼슬리 리뷰 Monthly Review]의 환경문제 특집호에 실린 글들을 번역해 엮은 것으로, 책에 실린 글들의 기본적인 관점은 '생태사회주의'라고 할 수 있다.

'생태사회주의'는 환경문제의 발생과 확산, 심화를 인간이 자연과 자본주의적 관계를 맺은 결과로 설명한다. 총11장으로 구성된 이 글들은 환경문제를 유발하는 근원은 '끊임없는 경제성장 추구'에 있으므로 이것에 변화를 일으키지 않는 한 환경문제의 해결을 어렵다고 단언한다. 자본주의와 환경위기의 연관성 및 체제이행의 문제에 대해 논의하는 동시에 다양한 환경문제 가운데 특히 기후변화, 에너지, 농업, 물과 관련된 쟁점을 중심으로 환경문제의 본질과 환경문제에 대한 기존의 대처방안들을 비판적으로 해부하고 있다. 이를 통해 지구의 생태문제에 대한 논의가 어느 지점까지 와있고 앞으로 어느 방향으로 전개될 것인지를 가늠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1~3장(1장 [생태, 그 결정적인 순간], 2장 [자본주의에서 사회주의로의 이행과 생태], 3장 [균열과 전환: 환경위기의 뿌리 찾기])은 환경문제의 원인을 진단하고 그 해결책을 찾는 과정에서 왜 자본주의 체제를 문제 삼지 않을 수 없는지를 다양한 각도에서 설명해준다. 이 책의 이 부분은 특히 최근 진보적 생태논의에서 자주 등장하는 '인간사회와 자연환경 사이의 물질대사(metabolism)'라는 개념이 어떤 의미를 갖고 있고 우리에게 어떤 전망을 열어주는지를 알게 해준다. 이 물질대사는 스티븐 슈나이더가 <실험실 지구>에서 제시한 '(지구생태계의)공진화' 개념과 유사하다.
 
저자들은 인류가 중대한 생태적 문턱을 넘어서고 있어 머지 않아 여러가지 '티핑 포인트'에 이를 것이로 예상되며, 이로 인해 환경주의자들 사이에 절박감이 점점 더 커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아울러 이처럼 결정적인 순간에 생태문제를 제대로 다루려면 혁명적인 해결책이 요구되지만 기존의 사회체계에서는 결코 혁명적인 해결책이 나올 수 없다고 잘라 말한다. 그리고 생태문제는 사회주의로의 이행에서 핵심에 해당하는 문제라고 본다.
 
4~9장은 쟁점이 되고 있는 몇 가지 주요 환경문제를 하나하나 점검한 글들이다. 여기서 다뤄지는 환경문제는 기후변화(4장 [기후변화, 성장의 한계, 사회주의]), 석유정점(5장 ‘[유정점과 에너지 제국주의]), 대안의 에너지원으로 선전되는 액화천연가스(LNG)와 바이오연료가 갖고 있는 문제점(6장 [액화천연가스와 화석자본주의]와 7장 [바이오연료의 정치경제학과 생태학]), 생태위기와 농업의 관계(8장 ‘[계사적 시각에서 본 생태위기와 농업문제]), 수산업 등 자본주의적 경제방식에 따른 바다의 오염과 퇴화(9장 [바다의 위기: 자본주의와 해양생태계의 악화]) 등이다. 여기서는 특히 대기 중 온실가스 축적과 기후변화에 관한 각종의 시나리오에 대한 평가와 석유정점 문제를 바라보는 관점, 미국의 LNG 산업이 갖고 있는 생태제국주의적 성격에 대한 서술과 바이오연료를 둘러싼 신화의 허구성을 폭로하고 있다. 또한, 이른바 ‘농업혁명’의 역사적, 사회적 의미에 대한 분석과 해양생태계 훼손이 얼마나 심각한 문제인지에 대해 경고하고 있다. 

10장 [인도의 수자원 위기: 근대적 대형 댐의 정치학]은 인도에서 전개돼온 대형 댐 건설사업의 문제점을 들여다 보았, 11장 [푸른 협약: 대안적인 물의 미래]는 물에 대한 권리를 인권의 차원에서 세계의 모든 사람에게 보장하는 국제법의 제정을 촉구하는 글이다. 이 두 글은 한국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대운하사업 또는 4대강 정비사업 등과 관련해 우리에게 많은 사례와 시사점을 제공한다. 
 
결국 이 책의 종합적인 결론은 환경문제 등 제반 생태문제를 유발하는 근원은 "자본주의를 추동하는 요소이자 자본주의의 본질적 존재원리인 '끊임없는 경제성장 추구'"에 있으므로 이 것에 변화를 일으키지 않는 한 문제해결은 요원하다는 것이다. 생태문제에 대한 자본주의적 해법이란 대개 "기술적 처치나 개인적 행위의 변화를 통해 지구생태계에 대한 경제의 영향을 완화시키는 것"을 목표로 할 따름이지만, 궁극적으로는 "또 다른 생태 문제"를 낳을 뿐이라는 것... 저자들은 결국 생태사회주의를 위한 노력과 투쟁을 통해 생태사회주의로 이행하는 것만이 궁극적인 해결책임을 주장한다.
 
저자들이 현재 전지구적으로 수 많은 이들이 문제해결을 위해 싸우고 노력하고 있는 모습을 무의미하다거나 평가절하하려는 것은 결코 아닐 것이다. 저자들은 현재 진행되는 무수한 환경,생태운동이 올바른 방향으로 전개되어 뫼비우스의 띠처럼 제자리로 돌아오지 않기를 바라고 있는 것처럼 생각된다. 지금의 노력과 결실들이 모아지지 않으면 어떤 미래도 만들어 갈 수 없을 테니까...
 
이 책의 문제의식은 법정스님이 남긴 글과 이반 일리히의 <성장을 멈춰라>, 쓰지 신이치의 <슬로 라이프>와 아메리카 인디언의 주장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우리 후손들과 미래 세대들을 위하여 열린 가슴과 머리로 계속 고민해야 할 과제인 것 같다.
 
* 책 속의 문장 :
- 오늘날의 환경주의는 우리가 현재 직면하고 있는 엄청난 환경문제를 야기하는 경제시스템을 문제 삼지 않고, 주로 지구의 생태에 대한 경제의 영향을 줄이는 데 필요한 조처만을 목표로 삼고 있다. 우리가 ‘환경문제’라고 부르는 것은 근본적으로는 정치경제의 문제다.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기존의 경제적 시도들은 그 가운데 가장 대담한 것조차도 지구를 보호하기 위해 요구되는 수준에 턱없이 못 미친다. (p.21~22)

- 자본주의가 자연을 자원 조달처와 쓰레기 배출처로 과도하게 이용하는 것이 결국은 자원 조달처로서의 자연과 쓰레기 배출처로서의 자연 둘 다를 훼손하는 부정적인 결과를 낳으며, 그 부정적인 결과는 처음에는 단지 지역 차원에서 나타나지만 나중에는 기후 자체에 영향을 미침으로써 세계와 지구 전체의 토대를 해치게 된다. (p.27)

- 지배적인 경제적 세력들은 사회를 크게 변혁하지 않고도 자본, 기술, 시장을 이용해 모든 위협을 다 막아낼 수 있다고 우리에게 장담하면서 기회포착을 시도하고 있다. 예를 들어 그들은 지구적 기후변화를 완화시키기 위한 수많은 기술적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다. 여기에는 농작물연료와 핵에너지도 포함되고, 탄소를 포획해 땅속에 격리시키는 새로운 석탄화력발전소도 포함된다. (p.52)

- 자본주의 체제가 손상되지 않고 유지되는 한 자본주의의 운동법칙은 개인적인 의지와는 독립적으로, 그리고 중상층 환경주의자들의 희망과는 반대로 작동하기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진짜로 양심적인 환경주의자라면 생태적 지속가능성에 헌신하든가 착취적이고 억압적인 사회체제에 헌신하든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할 시점이 조만간 올 것이다. (p.83)

- 지난 10년 동안 종종 치열하게 벌어진 석유정점 논쟁은 이제 두 가지 기본입장으로 좁혀졌다. 하나는 ‘이른 정점론자들(early peakers)’(석유정점 주창자들이라고 하면 보통은 이들을 가리킨다)의 입장이다. 이 입장에 선 분석가들은 석유정점이 아마도 2010~12년에 올 것이라고 주장하거나, 어쩌면 2005~06년에 이미 석유정점이 왔을지도 모른다고 주장한다. 또 하나는 ‘늦은 정점론자들(late peakers)’의 입장이다. 이 입장에 선 분석가들은 2020년이나 2030년에 가서야 세계가 석유정점에 이를 것이라고 주장한다. (p.103)

- 부시 행정부가 2006년에 옥수수를 이용한 에탄올 생산을 장려하는 등 대체연료에 대해 보다 적극적인 태도를 보였던 것도 바로 휘발유의 가격과 국가 에너지안보에 대한 불안, 그리고 의심할 여지 없이 세계 석유정점에 대한 공포 때문이었다. 2007년의 통계를 보면 미국에서 생산된 옥수수 가운데 20%가 자동차 연료로 사용될 에탄올을 생산하는 데 쓰였다. 이런 움직임이 부분적인 이유로 작용한 결과로 세계적으로 곡물가격이 급등했다. (p.110)

- 미국의 새로운 에너지 제국주의는 이미 전쟁확대로 귀결되고 있다. 워싱턴이 기존의 자본주의 경제를 보호하고 미국의 패권이 쇠퇴하는 것을 막으려고 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전쟁은 세계적인 것이 될 수 있다. 시먼스는 이렇게 경고했다. “만약 에너지에 대한 우리의 내재적 수요와 사용할 수 있는 에너지의 양 사이에 존재하는 엄청난 잠재적 격차에 대한 해결책을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우리는 가장 추잡하고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전쟁을 치르게 될 것이다. 나는 문자 그대로의 전쟁을 말하는 것이다.” (p.117)

- 세계의 모든 사람에게 만족할 만한 식량이 공급되기 전에는 농지를 연료생산을 위한 작물재배에 사용해서는 안 된다. 현재 67억 명인 세계인구가 이번 세기 중반까지는 90억 명 이상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는 현실을 고려하면 모든 농지가 다 식량생산을 위해 이용돼야 하며, 단위면적당 생산되는 식량의 양이 증가한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p.164)

- 2000년의 통계를 보면 8,000만 톤의 물고기를 잡기 위해 130억 갤런의 연료가 사용됐고, 그 과정에서 약 1억 3,400만 톤의 이산화탄소가 배출됐다. 이는 세계의 어업이 식품으로 공급한 단백질 에너지보다 12.5배나 많은 연료 에너지를 사용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193쪽)  
 
[ 2011년 5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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