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적 개입 - 정의로운 무력행사는 가능한가
모가미 도시키 지음, 조진구 옮김 / 소화 / 2003년 3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내일 공부모임 교재 중 하나다. 지난 번 공부모임에서 참석자들이 최근 리비아 민주혁명 과정에서 서구 국가들이 유엔의 결의 없이 임의로 리비아 내전에 군사적으로 개입하는 현상에 대해 우려하면서 서구 국가들이 명분으로 내세우는 '인도주의'에 대해 공부하기로 한 것이다.
 
국제법의 권위자인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냉전 후 무고한 시민들이 대량으로 죽어 가는 내전이나 민족분쟁은 우리들에게 새로운 과제를 제기했다고 지적하며, 어떤 한 국가에서 죄없는 많은 사람들이 죽어 가는 비인도적 상황이나 심각한 인권침해가 발생했을 때, 무력행사 이외에 다른 수단이 없을 경우 국제 사회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문제 삼아 여러 사례와 함께 전반적인 내용을 다룬다.  저자는 1999년 NATO군에 의한 유고 폭격 이후 각광을 받게 된 '인도적 개입'이라는 중요한 과제를 국제법의 시점에서 다각도로 분석하였다.  
 
유고슬라비아에 대한 폭격 자체는 인도적 개입의 모델 케이스로 간주하기 어렵다. 코소보 자치주에서 반인도적 행위가 벌어졌던 것은 사실이지만, 취한 수단(폭격), 절차(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무시), 얻은 결과(박해의 순환) 등 어느 것을 보아도 의문이 남는 행동이었기 때문이다. 저자는 여러 증언과 자료를 통해 폭격 전후에  코소보에서 세르비아 군대 및 민병대에 의한 알바니아계 민간인 학살, 학대 뿐 아니라 코소보 민병대에 의한 세르비아계 민간인 학살, 학대로 동시에 존재했다는 것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통용되고 있는 '인도적 개입'의 공통적인 정의는,
첫째. 극도의 인권침해 또는 인도에 대한 죄라고 부를 수 있는 심각한 박해가 있을 것.
둘째. 해당국 정부가 그러한 박해를 자행하고 있거나 주민간의 박해를 멈추게 할 의사와 능력을 갖고 있지 않을 것.
셋째. 개입하는 것은 통상 다른 국가 또는 복수의 국가일 것. 복수의 국가에는 나토와 같은 군사동맹도 포함 된다'
넷째. ‘개입’은 통상 군사력을 사용한 ‘무력개입’일 것(무력을 사용하지 않는 경우도 있을 수 있으나 무력을 사용할 경우가 첨예한 문제가 된다)  (p.22) 
'인도적 개입'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합법적이라고 해도 어떠한 종류나 형태의 인도적 개입이 합법적인가"와 "합법적일 수 있다는 것과 그것을 적극적으로 행사해야 한다는 것은 별개의 문제"라는 것이다.
 
'인도적 개입'이 유엔 차원에서 타당성을 결여하는 것은 주로 법적인 이유에서다. 즉 '인도적 개입'이라고 하면 무력행사를 수반한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유엔헌장 상 무력행사를 수반하는 유엔활동은 ‘강제행동’(유엔헌장 제7장 특히 제39조와 제42조)으로 구분할 수 있으며, 이것은 ‘개입’과는 다른 합법성이 분명한 것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유엔의 경우, 유엔군은 존재하지 않지만 평화유지활동을 위한 '평화유지군'은 지금까지 여러 차례 설치되었다. 평화유지활동의 경우 병력의 전개는 그것을 받아들이는 국가의 동의에 입각하고 있어 상대의 의사에 반할 경우에도 행해지는 강제행동이나 개입과 본질적으로 다르다. 또한 무력행사에도 많은 제약이 있으며 대상국에 명령할 권한도 없다. 평화유지군이 아닌 군사활동은 원칙적, 대체적으로 유엔의 동의를 받기 어렵고 국제법에 저촉되기 마련이다.
 
유엔 헌장 제2조4항에는 국제 관계에서 무력행사 또는 무력에 의한 위협의 금지 & 다른 나라의 '영토보전 또는 정치적 독립'을 존중해야 함을 명시적으로 정의한다. 이것은 제2차 세계대전의 파괴력 자체가 세계에 교훈을 주었기 때문에 가능했고 '인도적 개입'과 관련해서는 2차 세계대전 직전에 히틀러가 체코슬로바키아를 침공하면서 내세운 명분이 '인도적 개입'이었고 그 외에도 다수의 국가간 침공행위가 '인도적 개입'이라는 이유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조심스러울 수 밖에 없다. 저자는 '인도적 개입'을 명분으로 한 또 다른 침탈행위로 1983년 미국의 그레나다 침공을 예로 들고 있다.
 
'인도적 개입'의 정당성을 따지기 어려운 여러가지 사례로는 1971년 동파키스탄(지금의 방글라데시)에 대한 인도의 무력개입, 1978년 캄보디아에 대한 베트남의 개입, 1979년 우간다에 대한 탄자니아의 개입 등을 들 수 있다.
 
그동안 유엔은 소말리아, 르완다, 그리고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에서 기아와 살육이 발생하였을 때 대응을 요청받고 평화유지활동을 했다. 하지만 미묘한 형태로 행해진 활동이기 때문에 제약도 많았다. 세 경우 모두 문제점을 남긴 사례이기는 하지만 조금 단순화해서 말한다면 유엔에 의한 ‘구호 활동의 과잉과 과소’라고 요약할 수 있다. 
저자는 소말리아의 경우, 유엔이 과잉개입하여 내전을 확대한 후 마무리하지 못하고 평화유지군이 철수할 수 밖에 없었고 르완다의 경우, 유엔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여 내전 및 민병대에 의한 학살이 광범위하게 전개되었음을 지적한다. 그리고 유엔은 유고연방의 인종청소를 제대로 막아내지 못했고 스레브레니차에서는 평화유지군이 파견되었음에도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여 인종청소의 학살을 막아내지 못했다.
 
서구 국가들이 자주 내세우는 개념 중에 '정전(正戰)'이 있다. '정전'이란 말 그대로 정당한 전쟁이며 적극적으로 싸워야 할 전쟁이다. 무력을 기본으로 하여 세계질서를 구축하려는 것이 아니라면 싸워야 할 정당한 전쟁을 설정하고 주장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엄격한 조건을 붙일 필요가 있다. 그것은 특정 국가의 판단에 의해 행해져서는 안 되며 국제사회, 즉 유엔의 총의를 바탕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공격하는 상대방이 아무리 ‘악’해도 통상의 전쟁과는 달리 상대방을 정복하는 것이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되며, 공격하는 대상이나 수단은 매우 제한적이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인권을 침해당하고 구호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 자신이 그러한 방법으로 구호를 받고 싶어 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나 아프카니스탄 침공, 그리고 현재 벌어지고 있는 리비아 개입은 모두 불법적이고 부당한 것이다. 이미 유엔과 학자들은 이라크나 아프카니스탄 침공은 인도적 목적이 아니라 특정한 국가들의 정치경제군사적 목적이 중요했음을 인정한다.

만약 비인도적 상황에서 ‘주권보다 인권’을 주장할 경우 우선 생각해야 할 것은 어떻게 인권(생명에 대한 권리·평화에 대한 권리·식량에 대한 권리·가족생활의 권리 등)을 보장할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해당국의 주권을 일축하며 죄 없는 시민들을 말려들게 할 가능성을 내재하면서 징벌적인 무력 공격을 하는 것 자체는 아닌 것이다. 저자는 극도의 비인도적 상황에서 주권은 제한받을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렇지만 그것은 무엇보다도 우선 해당 국가가 보호하려고 하지 않는 사람들에 대해서 타국 또는 국제기구 혹은 다양한 인간집단이 보호하고 구호하려고 할 때 그것을 방해할 권리를 해당 국가는 갖지 않는다는 의미에서만 그러하다. 인도주의 단체가 임의로 피해 민간인을 구제, 보호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을 예외로 인정할 수 있다 하더라도 특정 국가가 개입하는 것은 정당화될 수 없는 것이다.(적지않은 인도주의 단체의 '인도적 개입' 역시 많은 학자나 전문가들에게 그 동기에 있어 의혹을 받고 있다.)
 
저자의 결론은 국제사회가 '인도적 개입'을 이유로 하여 타국에 무력으로 개입하는 것에 대해 필요성, 수단, 절차, 결과를 모두 감안하여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무력에 의한 개입 이전에 유엔과 국제사회는 실제 비인도적 상황에 처한 피해자들을 구제하기 위한 NGO 등 민간단체의 역할을 적극 장려, 활용해야 하고 유엔은 평화유지군 등 인도적 활동을 지원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갖추어야 한다. 저자는 궁극적으로는 '예방적 개입'을 주장한다. 이는 "해당국의 인권침를 비난하고 인권조약의 비준과 실행을 촉구하며 인권을 침해하는 책임자를 법에 따라 처벌하는 것"을 말한다. 사후적으로는 무력개입보다 평화유지군 파견을 통해 피해를 최소한으로 줄이는 것이 필요하다고...
 
이 책을 읽고나니 미국이나 일본, 한국 주류언론의 시각이 아닌 유엔과 국제법 전문가의 시각에서 '인도적 개입'에 대한 관점과 입장을 이해할 수 있었다. '우물 안의 개구리'의 시각을 벗어났다고 해야 할까... 내가 이 책을 통해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이번 리비아 내전에 서구 국가들이 무력으로 개입하는 행위를 자신있게 반대할 수 있다는 것. 미국과 영국, 프랑스가 무력으로 개입하는 것은 인도적인 정당성도 없고 국제법적인 절차와 명분도 없을 뿐이다. 십중팔구 리비아 내의 종족 간 내전을 확대시킬 것이고 그 과정에서 수 많은 죄없는 민간인들의 피해만 엄청나게 발생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라크, 아프카니스탄에 이어 리비아에 대한 무력개입은 이후 미국, 영국, 프랑스에 우호적이지 않은 국가, 또는 상황이 오면 또 다시 그들은 타국에 무력으로 개입하여 막대한 피해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 2011년 4월 4일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