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도 동물 열전 - 최애, 극혐, 짠내를 오가는 한국 야생의 생존 고수들
곽재식 지음 / 다른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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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다른 @darunpublishers 을 통해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팔도 동물 열전> - 도심에 나타난 야생, 원래 그 자리에 있었다

📌 책 소개

야생은 텔레비전 속 다큐멘터리나 멀리 떨어진 국립공원에만 있는 게 아니다.
도심을 걷다 마주치는 고라니, 동네 뒷산의 너구리, 전설처럼 남은 여우까지!
실은 우리가 사는 곳이 곧 그들의 삶의 터전이다.
과학자이자 소설가인 저자는 한국의 산과 들을 직접 발로 누비며 야생동물들의 생태, 역사적 기록, 민속 속 상징성을 엮는다.
고구려 설화부터 박쥐의 드라큘라 이미지까지, 동물들의 생존 전략은 그 자체로 살아 있는 기록이다.
익숙하다는 이유로 무심히 지나쳤던 존재들을 재조명하며, 인간과 함께한 수천 년의 공존과 충돌을 유쾌하게 풀어낸다.
이야기는 과학적 사실 위에 상상력과 문화적 맥락을 덧붙이며, 도시의 일상과 야생 사이의 경계를 허문다.

💬서평

💡야생동물은 지금 여기 있다

어느새 도심은 고라니와 멧돼지의 무대가 되었다.
사람들은 놀라지만, 그들은 원래 그 자리에 있었다.
변화한 건 그들의 서식지가 아니라 인간의 공간 침범이다.
익숙해진 환경 속에서 우리는 야생을 잊는다.
하지만 숲과 산은 여전히 살아 있다.
고라니는 논두렁을 건너고, 너구리는 담장을 넘는다.
문제는 그들의 출현이 아니라, 우리가 그들을 낯설게 여긴다는 데 있다.
생존 전략을 바꿔가며 적응해온 그들에게 위협이 된 건 인간이다.
인간 중심의 도시 구조는 동물들의 삶을 방해한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그들은 다시 도시로 향한다.
환경을 선택하지 못하는 존재는 침입자가 아니라 살아남기 위한 또 다른 시민이다.
야생은 자연 속에만 있지 않다.
지금 여기에도 있다.

💡이름에 새겨진 오해와 역할

청설모와 다람쥐의 혼동은 단순한 외형 문제 이상이다.
익숙하다는 이유로 우리는 이름조차 혼동한다.
여우는 교활하다는 이유로 미움받았고, 담비는 잊힌 존재였다.
반면 곰은 귀엽고 강하다는 이미지 덕에 보호받는다.
생물학적 특성이 아니라 인간의 시선이 동물의 운명을 결정짓는다.
귀엽거나 상징성이 있으면 보존되고, 불쾌하거나 해롭다고 여겨지면 사라진다.
이름은 정체성을 설명해주는 도구이지만, 동시에 편견을 고착시키는 장치이기도 하다.
멸종 위기에 처한 동물이 누군가의 무관심 탓이라면, 그 무관심은 대부분 이름에서 비롯된다.
동물의 운명은 그들의 생태보다 우리가 그들에게 부여한 의미에 달려 있다.

💡생존은 전략이자 선택의 문제

돼지의 심장이 인간의 목숨을 구하고, 담비는 무리를 지어 사냥한다.
한국 너구리는 겨울잠을 자지 않고, 청설모는 남향에 다주택을 짓는다.
이 모든 행동에는 이유가 있다.
생존을 위한 전략이자, 환경에 맞춘 적응이다.
인간이 과학으로 분석한 이 생태는 사실 놀라운 직관과 선택의 결과다.
땅 위에서, 나무 위에서, 밤과 낮을 나눠 살아가는 동물들은 인간의 관점으로 보면 이상해 보이지만, 그들에게는 살아남기 위한 최적화된 방식이다.
생존은 단순한 본능이 아니라 끊임없는 조정과 판단이다.
그 안에는 고단한 진화의 역사가 담겨 있고, 인간과의 오랜 상호작용도 포함되어 있다.
적응력은 경쟁력이 아니라 삶 그 자체의 태도다.

💡보호라는 이름의 정치

멸종위기종 보호 정책에는 언제나 여론이 필요하다.
국민이 관심을 가져야 예산도 생긴다.
그래서 반달곰은 살아남았고, 여우는 한동안 잊혔다.
정책의 기준은 과학적 절박성보다는 대중의 공감대다.
자연보호는 생태 문제이기 이전에 사회적 문제다.
누가 주목받는가에 따라 보호받는 생명도 달라진다.
황금박쥐는 그 희소성과 이름 덕에 이야기로 남았지만, 평범한 벌레의 절멸에는 아무도 반응하지 않는다.
생태계는 균형의 문제지만, 인간 사회는 선택의 문제다.
자연을 지키는 일도 결국은 정치다.
이미지, 스토리, 관심도 모두 동물 보호의 전략 요소가 된다.

공감할 수 있어야 지킬 수 있다는 사실은 야생조차 선택받아야 살아남는 시대임을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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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살인
카라 헌터 지음, 장선하 옮김 / 청미래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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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청미래 @cheongmirae 를 통해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가족 살인> - 진실은 누가 조작하고, 누가 소비하는가

📌 책 소개

20년 전 일어난 미제 가족 살인 사건을 소재로, 전 세계로 방영되는 리얼크라임 쇼의 제작 현장이 펼쳐진다.
방송 연출자는 피해자의 의붓아들.
전문가 패널로 참여한 인물들은 ‘강력 용의자’ 라는 꼬리표를 단 인물들이다.
시청률 경쟁에 따라 점점 자극적으로 흐르는 연출, 제작진 내부의 긴장, 감춰진 가족사, 그리고 결정적인 진실을 둘러싼 충돌까지.
방송이 추구하는 것이 진실인지, 아니면 가면을 쓴 복수인지 묻는 이야기가 촘촘하게 구성된다.
사건은 과거의 것이지만, 그에 접근하는 방식은 현재의 미디어 논리 위에 있다.
방송 대본, 기사, 댓글, 인터뷰 등으로 서술이 구성되어 독자는 쇼의 시청자이자 사건의 관찰자이자, 때로는 배심원이 되기도 한다.

💬서평

💡진실을 좇는다는 명목 아래

누군가의 죽음을 파헤치는 쇼는 정의보다 흥밋거리를 추구한다.
사건의 중심은 20년 전 살인사건, 그러나 쇼의 포맷은 그것을 미스터리 퀴즈처럼 만든다.
각본과 연출이 있고, 출연자는 자신이 피해자든 전문가든 '콘텐츠' 로 편집된다.
의붓아들은 피해자의 가족이자 연출자다.
복잡한 감정 속에서 그는 자신의 진심이 조작되지 않도록 노력하지만, 카메라의 앵글은 그마저 흡수한다.
과거의 진실보다 지금의 화면 구성이 더 우선이 되는 순간들.
그렇게 진실은 말해지기보다 소비된다.
쇼는 점점 진행되지만, 누구도 온전히 안전하지 않다.
타인의 과거를 다룬다는 건 누군가의 아픔을 무대 위로 올리는 일이기 때문이다.

💡전문가라는 이름 아래 펼쳐지는 쇼

쇼에는 심리학자, 전직 경찰, 법의학자까지 출연한다.
그들은 이 사건의 전문가라는 타이틀로 불린다.
그러나 방송의 목적은 수사라기보다 '서사' 다.
전문가가 해야 할 일은 사실 분석이 아니라 시청자의 궁금증을 유지하는 설명자 역할이다.
그래서 분석보다는 반응이 중요하다.
긴장하는 표정, 확신에 찬 말투, 추측이 포함된 발언.
그들이 앉아 있는 자리는 법정이 아닌 세트장이다.
수사처럼 보이지만, 어디까지나 드라마다.
전문가가 말하는 순간, 그 말은 진실처럼 기능한다.
그러나 아무도 그 진실을 검증하지 않는다.
그저 다음 회차를 위한 복선처럼 활용된다.
타인의 권위를 빌려 무게감을 주지만, 실제로는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감당하는 일

쇼의 연출자인 남성은 사건 피해자의 의붓아들이다.
그는 20년 전의 죽음을 현재의 콘텐츠로 바꾸는 역할을 자처한다.
진실을 밝히고자 한다는 명분은 있지만, 그 과정은 모호하다.
그는 복수를 꿈꾸는 것일까, 아니면 화해를 원하는 것일까.
가족이라는 연결고리는 그를 피해자이자 기획자로 만든다.
그러나 쇼가 진행되며 그의 역할은 점점 분열된다.
그는 연출자이면서도 누군가의 아들이고, 동시에 시청자의 궁금증을 자극하는 인물이 된다.
그는 중립적이지 않다.
동시에 객관적이지도 않다.
감정은 편집되고, 행동은 연출된다.
가족이라는 감정적 진실은 쇼의 논리 속에 침식된다.
그리고 결국 그는 스스로 선택한 무대 위에서 자신마저 의심하게 된다.

💡종결이 아닌 폭로로 끝나는 결말

사건은 해결된다.
하지만 그 해결은 재판이 아니라 쇼의 마지막 회차에서 일어난다.
누군가가 폭로하고, 모두가 침묵하고, 진범이 밝혀진다.
시청자는 그것을 '해결' 이라고 받아들인다.
그러나 그 순간을 만든 건 수사가 아니라 대본 없는 클라이맥스다.
긴장과 몰입은 충분했지만, 결론의 무게는 의외로 가볍다.
진범은 드라마적으로 납득되지만, 법적으로는 어떠한 절차도 없다.
누군가가 말했기 때문에 그 말이 진실이 된다.
그리고 아무도 그 말의 진위를 되묻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야기가 끝났기 때문이다.
모두가 다음 에피소드를 기대할 뿐, 그 말이 맞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진실이 아니라 '종결감' 이 이 쇼의 마지막 장면을 결정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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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리 루소가 쏘아올린 공 - 무언가를 하기에 너무 늦은 나이란 없다!
김지명 지음 / 비엠케이(BMK)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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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채성모의손에잡히는독서 @chae_seongmo 를 통해 비엠케이 @bmk_book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앙리 루소가 쏘아올린 공> - 시작은 종종 가장 늦은 때에 온다

📌 책 소개

49세에 전업 화가의 길로 들어선 앙리 루소의 삶을 따라가는 책이다.
세관원으로 일하며 평범하게 살아가던 그는 평균 수명이 짧던 시대에 과감히 직업을 내려놓고 새로운 꿈을 좇는다.
정규 미술 교육을 받은 적도 없고 화가로서의 기반도 전무했지만, 루소는 독창적인 시선과 태도로 자신의 예술 세계를 구축한다.
그의 결정은 삶 전체를 재조정한 선택이었다.
책은 루소의 삶을 통해 중년 이후의 방향 상실, 전환의 갈림길에서 필요한 태도와 실천을 구체적으로 짚는다.
실패와 고독을 두려워하지 않고 스스로에게 충실했던 한 사람의 궤적은, 무엇을 시작하기에 늦은 나이라는 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준다.

💬서평

💡숫자보다 방향을 본 사람이었다

49라는 숫자는 보통 어떤 것을 정리하거나 내려놓는 시점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루소는 그 나이에 정반대의 선택을 했다.
세관원으로 살아온 22년을 뒤로하고 화가가 되겠다고 결심했다.
여기서 흥미로운 건 그가 어떤 재능을 보였는지가 아니라, 그 결정을 어떤 근거로 내렸느냐다.
특별한 미술 교육을 받은 적도 없고, 전업 작가로의 명분도 없었지만, 그는 ‘이제야 그림을 그릴 수 있다’ 고 생각한 것이다.
당시 평균 수명이 지금보다 훨씬 짧았음을 감안하면, 삶의 전체 방향을 바꾸는 일이었다.
그는 수치를 기준으로 선택하지 않았다.
자신의 흐름에 따라 전환점을 만들었고, 그 판단은 이후 모든 길을 가능하게 했다.

💡기회를 기다리지 않고, 기회를 조직했다

루소는 누구에게 선택받아 시작한 인물이 아니었다.
그는 고독했고, 주변의 평가가 늘 호의적이지만은 않았다.
그러나 그는 기다리지 않았다.
피카소가 먼저 알아보았고, 칭찬도 했다.
그건 그가 타이밍을 잘 맞춰서가 아니라, 먼저 자기 일을 시작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전업 화가가 된 이후 그는 반복적으로 자신의 세계를 구축했고, 그 세계는 평단의 기준과는 거리가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그의 독창성은 무시할 수 없는 무게를 가지게 되었다.
시작이 완벽해서가 아니라, 지속해서 완성된 것이다.
대단한 배경이나 스승 없이, 자기만의 기회를 만들어낸 과정은 결국 준비된 사람보다 움직인 사람이 오래 남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위기는 단절이 아니라 재조정의 시점이었다

중년이 되면 누구나 한 번쯤은 멈춘다.
그 시기가 삶의 정리냐 새 출발이냐는 개인의 선택 문제다.
루소는 자신에게 주어진 방식을 유지하는 대신, 자신이 원하는 것을 향해 방향을 바꿨다.
그는 고독을 선택했고, 그 고독 속에서 스스로를 정리했다.
실패를 피하지 않았고, 정체되지도 않았다.
루소의 사례를 통해 중년의 불안이 꼭 부정적인 감정만은 아니라는 점을 구조적으로 보여준다.
오히려 익숙함이 무너지며 발생하는 그 틈이 새로운 삶을 시도할 수 있는 시간이라는 관점이 계속 반복된다.
멈춘 상태를 견디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거기서 방향을 다시 잡아야 한다는 메시지는 반복되는 실존적 감정에 균열을 만든다.

💡예술은 선택이 아니라 방식이었다

루소에게 예술은 특별한 취미나 고상한 자아실현이 아니었다.
그는 그림을 그렸고, 그렸기 때문에 다시 살아갈 수 있었다.
예술이 그에게 중요한 이유는 그걸 통해 무언가를 표현할 수 있어서가 아니라, 그것이 삶을 운영하는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자신만의 질서를 구축했고, 타인의 평가가 아니라 자신의 리듬으로 그것을 유지했다.
이 책은 중년 이후 삶에서 예술이라는 매체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과거의 기술이나 이력에 의존하지 않고도 새로운 자리를 만드는 사례로서, 루소의 선택은 자의식보다는 실천에 가까웠다.

창조적 행위가 인생을 재구성할 수 있다는 근거가 되는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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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침몰한다고? -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지진의 공포|동일본 대지진 경험자의 실존 생존 매뉴얼
나운영 지음 / 책이라는신화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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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채성모의손에잡히는독서 @chae_seongmo 를 통해 책이라는신화 @chaegira_22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일본이 침몰한다고?> - 지진은 예고 없이 온다

📌 책 소개

‘2025년 7월, 일본에 대지진이 온다’ 는 예언에서 출발해, 예측과 대비라는 두 개의 키워드로 이어지는 이야기다.
저자는 일본에서 20년간 거주하며 겪은 지진의 실상을 바탕으로, 예언서를 둘러싼 열풍과 그것이 가진 맥락을 하나씩 짚는다.
일본 정부의 통계, 미디어의 반응, 재난에 대한 한일 양국의 태도까지 세밀하게 비교하며, 실제 재난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지침도 함께 제공된다.
동일본 대지진 당시의 경험, 방사능 사고, 쓰나미로 사라진 마을 풍경까지, ‘이야기’ 와 ‘매뉴얼’ 을 동시에 담고 있다.
일본을 타자의 재난으로만 보지 않고, 바로 옆의 현실로 마주보게 만드는 한 권이다.

💬서평

💡예언이란 무엇이고, 사람들이 그것에 반응하는 방식

예언이라고 하면 대체로 가볍게 치부된다.
그런데 날짜가 박혀 있고, 과거에 한 번 맞춘 이력이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다쓰키 료의 ‘2025년 7월 5일 새벽 4시 18분’ 이라는 설정은 그 자체로 사람들의 경계심을 끌어올린다.
저자는 그 날짜가 어디서부터 비롯되었고, 어떻게 해석되고 확산되었는지를 정리한다.
단순히 작가의 그림 하나를 근거로 삼는 게 아니라, 이후 대중의 반응과 언론 보도, 홍콩 항공편 축소 같은 실제 사회 현상까지 엮어서 살펴본다.
흥미로운 건, 예언의 힘이 허구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럴듯한 수치’ 에서 비롯된다는 점이다.
예상 사망자 30만 명, 쓰나미로 인한 피해 70%, 경제 손실 270조 엔 같은 수치는 국가가 내놓은 전망인데, 이게 도리어 예언을 강화하는 근거가 된다.

💡2011년 3월 11일, 그날 이후로 생긴 습관들

현관문은 지진이 오면 가장 먼저 열어둬야 한다고 했다.
남편은 반복해서 말했다.
지진은 출입구를 무너뜨리고, 사람을 방 안에 가둬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시작된 동일본 대지진의 체험은 구조된 시간표처럼 펼쳐진다.
아이 셋을 안고 안방에서 나오는 장면, TV와 창틀이 동시에 흔들리던 순간, 그리고 원전이 폭발했다는 뉴스를 들은 날.
저자는 그때 어떤 선택을 했고, 어떤 생각을 접어야 했으며, 어떤 생각은 끝까지 놓지 못했는지를 기록한다.
흔한 감상이 아니라, 행동을 기록한 글이다.
대피소에 가져갈 가방이 문 앞에 항상 놓여 있는 이유, 냉장고 위에 생수를 올려두는 이유, 잠들기 전 양말을 챙기는 이유는 모두 그날 이후로 생긴 습관들이다.

💡필요한 것은 물도 음식도 아니고, 우선순위다

재난 대비 물품 리스트는 대부분 비슷하다.
그런데 문제는 무엇을 사야 하는지가 아니라, 무엇을 ‘먼저 챙겨야 하는지’ 다.
저자는 가족 인원수에 따른 비상 식량과 물의 양을 표로 제시하고, 휴대용 화장실, 손전등, 생리대 같은 생필품까지 빠짐없이 정리한다.
하지만 목록보다 더 중요한 건 판단 순서다.
아이가 셋일 때, 각각이 어떤 역할을 맡아야 빠르게 움직일 수 있을지.
잠에서 깼을 때 불이 꺼져 있다면 어느 쪽으로 몸을 틀어야 할지.
지진은 말 그대로 몇 초 안에 결정이 나버리는 일이기 때문에, 평소에 세워둔 시나리오가 실전의 전부가 된다.
물품보다 동선, 동선보다 결정 구조를 먼저 이야기한다.
정보는 누구에게나 있지만, 준비는 결국 습관이 된다.

💡피해는 물러간 뒤에도 계속 남는다

해일은 지나가고, 마을은 사라진다.
흙더미 위에 선 아이가 보던 풍경은 예전과 완전히 다르다.
초등학교에 멈춰 있는 시계는 여전히 2시 46분을 가리키고 있다.
그 순간 아이들이 모두 피난했는지, 아무도 확신할 수 없다.
저자는 쓰나미 이후 정비되지 않은 지역을 직접 둘러본다.
집들이 밀려난 자리엔 표지판 하나 남지 않았고, 둔덕만 남아 지형만 증명한다.
복구라는 말이 숫자와 예산으로 표현되는 동안, 실제 풍경은 ‘없는 자리’ 를 중심으로 기억된다.
게다가 난민의 가능성까지 고려하면 이 문제는 국가 간의 일이 된다.
일본인이 보트를 타고 한반도에 도착했을 때, 우리는 어떤 태도를 취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재난은 더 이상 지리적 사건이 아니다.
물리적 국경을 넘어 문화와 정책까지 덮고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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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하마스를 모른다 - 금기와 편견 너머, 하마스를 이해하기
헬레나 코번.라미 G. 쿠리 지음, 이준태 옮김, 팔레스타인평화연대 감수 / 동녘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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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동녘 @dongnyokpub 을 통해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당신은 하마스를 모른다> - 테러 단체라는 프레임을 걷어낼 때

📌 책 소개

팔레스타인의 무장 정파 ‘하마스’ 를 입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한 인터뷰집이다.
세계 각지의 팔레스타인 전문가 여섯 명이 참여해 하마스의 역사, 이념, 조직구조, 정치적 전략을 조망한다.
하마스가 단순히 ‘테러 조직’ 으로 낙인찍히는 현실 속에서, 각 대담은 하마스를 정치운동으로 바라볼 수 있는 논점을 제시하고,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의 복잡한 역사적 맥락을 되짚는다.
협상 가능성과 정당성, 무장 저항의 배경, 두 국가 해법에 대한 입장 등을 중심으로 하마스의 실제 목소리를 되도록 왜곡 없이 전달하려는 노력이 돋보인다.
편견을 걷어내고, 이들이 어떤 배경에서 어떤 선택을 해왔는지 ‘있는 그대로’ 의 맥락을 묻는다.

💬서평

💡하마스를 혐오하기 전에 먼저 구조를 보라

하마스는 공격적인 이미지로 소비되는 일이 잦다.
하지만 대담자들의 분석을 따라가다 보면, 이 단체는 단순한 전투 집단이 아니라 복잡한 정치 조직이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저항이 이들의 존재 이유이자 정당성의 핵심이라는 점은 반복해서 언급된다.
이스라엘의 점령이라는 맥락 없이 하마스를 바라보는 시선은, 마치 이유 없는 분노를 감정적으로 해석하는 것과 같다.
국제사회가 주목해야 할 것은 폭력의 시작이 아니라, 그 폭력이 뿌리내린 역사다.
정치운동으로서 하마스는 이스라엘과의 협상 경험도 있으며, 두 국가 해법에 대한 공식 입장을 내놓은 바도 있다.
전투에만 주목하는 한, 그들의 정치적 가능성은 영원히 지워지게 된다.

💡‘선명한 악’ 이라는 환상은 너무 편리하다

하마스를 ‘테러 집단’ 으로 단정하는 말은 너무 익숙해서 의심조차 잘 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누가 그런 이미지를 만들어냈는가’ 라는 구조적 질문을 던진다.
교도소 안에서도 협상을 이어간 하마스의 전략, 2017년 두 국가 해법 수용 공식화 같은 사실은 잘 드러나지 않는다.
이유는 명확하다.
대중에게는 복잡한 설명보다 선명한 구도가 더 쉽게 먹히기 때문이다.
적이 필요했던 이스라엘, 그리고 이를 받아 적는 언론, 관망하는 국제사회는 모두 복잡한 이야기를 단순하게 포장하는 데 일조해왔다.
악을 ‘명확히 설정하면’ 누군가의 폭력은 정당화된다.
그 구도를 거부하는 것이 이 책이 택한 서사의 방식이다.

💡전쟁을 기록하는 방식은 항상 정치적이다

하마스를 다루는 뉴스와 이 책이 다루는 하마스는 거의 다른 존재처럼 느껴진다.
이유는 간단하다.
전쟁은 언제나 정보전을 동반하고, 서사는 늘 누군가에게 유리하게 구성되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자국의 폭격을 ‘정밀 표적 공격’ 이라 부르고, 하마스의 반격은 ‘무차별 테러’ 라고 규정한다.
이런 언어 구성이 얼마나 일방적인지를 반복해서 짚는다.
특히 허위 정보가 어떻게 여론을 움직이고, 어떤 방식으로 생명에 대한 감각을 무디게 만드는지에 주목한다.
누가 말을 많이 했느냐보다, 누가 이야기 구조를 만들었느냐가 훨씬 중요하다.
따라서 하마스라는 주제 자체보다 그것이 설명되는 프레임을 점검하는 것이 더 급선무다.

💡‘중립적 태도’ 라는 환상이 만든 공범자들

가자지구에서 수만 명이 죽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그래도 하마스가 먼저 공격했잖아” 라는 말은 너무 쉽게 나온다.
이런 태도는 중립적이라기보다는 무기력한 동조에 가깝다.
하마스의 존재가 불편하다고 해서, 이스라엘의 폭력에 면죄부가 주어져서는 안 된다.
이 책은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로 하마스를 바라보게 만든다.
하마스를 지지하는 사람들의 입장에는 ‘저항’ 이라는 키워드가 있다.
압도적인 힘의 불균형 속에서, 최소한의 주권조차 보장받지 못한 이들이 택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이었는지를 묻는다.
모든 저항이 옳다고 말하려는 게 아니다.

다만 누가, 왜 그 자리에까지 몰렸는지 먼저 이해하려는 시도는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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