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종과 이혼의 연대기
정광모 지음 / 산지니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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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종과 이혼의 연대기> - 경계 위를 걷는 기분

📌 책 소개

📖상상 속에서 반사된 인간의 초상

등장인물은 인간, 혹은 인간처럼 설계된 존재들이다.
소설집엔 일곱 편이 실려 있고, 각각 다른 공간과 시점을 갖고 있지만 어떤 이야기든 ‘현실 같지 않은 현실’ 을 다룬다.
‘멸종’ 이라는 말은 거창한 듯 들리지만 실제로는 우리의 불안한 감정, 인간이라는 종이 느끼는 존재 불안을 직접적으로 건드린다.
‘이혼’ 역시 관계에 대한 이야기지만, 더 깊이 들여다보면 연결과 단절을 반복하는 감정의 구조 자체가 주제다.
인물들은 도망치기도 하고, 맞서기도 하고, 때론 그냥 흘러가기도 한다.
그 움직임을 SF라는 틀 속에 담아놓은 이야기들이다.
허구 같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상상이 아닌, 실제일 수도 있는 이야기.
결국 어디까지가 현실이고 어디까지가 상상인지는 읽는 사람의 감각이 결정하게 된다.

💬서평

💡불편한 감정에 이름을 붙이지 않고

처음엔 뭔가 복잡한 설정이 나올 줄 알았다.
제목도 거창하고, 장르도 SF라고 하니까 미래 얘기겠거니 했다.
그런데 막상 펼쳐보면 대부분의 이야기에는 복잡한 과학 기술보다 훨씬 사소한 감정이 먼저 등장한다.
아프다는 말 대신 피곤하다고 말하고, 외롭다는 말 대신 그냥 지쳤다고 말한다.
그렇게 말끝을 흐리는 인물들이 많다.
감정을 드러내지 않아서, 오히려 감정이 더 크게 보이는 이야기들이 있다.
불안하다거나 슬프다는 표현은 거의 등장하지 않는데, 읽는 내내 그런 감정이 주변을 감싸고 있는 느낌이 든다.
감정이 직접적으로 튀어나오지 않는데도, 그 분위기는 아주 또렷하게 남아 있다.
그래서 이야기의 구조는 조용하지만, 그 안에 담긴 기운은 꽤 크다.
가만히 있는데도 확장되는 느낌.

💡기계는 식지 않지만 사람은 지친다

작품을 만드는 시스템이 등장한다.
온몸을 차가운 탱크에 넣고, 글을 쓰기 위해 열을 내고, 저장 장치로 글을 전송하는 방식이다.
말만 들으면 되게 공상과학 같은데, 그 묘사가 너무 현실적이다.
마치 매일 마감하는 사람의 생리처럼 느껴진다.
누구나 한번쯤 경험했을만한 고단함이 들어 있다.
글을 쓰는 일에 특별함이 없다는 걸 아주 특이한 설정을 통해 보여준다.
효율적으로 쓰는 것보다 꾸역꾸역 이어가는 게 더 중요해 보인다.
거창한 상상보다 피곤한 몸이 먼저 등장하는 장면이 많다.
창작을 위한 에너지가 남아 있을 때까지는 뭔가를 만들 수 있지만, 그 에너지가 떨어지면 시스템이고 뭐고 다 멈춰 버린다.
아이디어보다 체력이 먼저 떨어지는 날이 있다면, 그런 느낌과 꽤 비슷하다.

💡닿을 듯 닿지 않는 거리감

멀리 떨어져 있어도 통화 한 통이면 가까워질 수 있을 것 같지만, 꼭 그렇지도 않다.
이야기 속 사람들은 서로의 안부를 묻고, 잘 지낼 거라고 말하고, 힘들지 않을 거라고 단정하지만, 그런 말들은 대개 마음을 덮지 못한다.
딸을 걱정하는 엄마와, 그런 걱정을 애써 가볍게 넘기려는 목소리 사이엔 무게 차이가 있다.
말은 오가지만 감정은 걸쳐진 채로 남는다.
안드로이드나 긴꼬리족 같은 설정이 나올 때도 마찬가지다.
서로를 이해하려 애쓰고는 있지만, 그 거리감은 쉽사리 줄지 않는다.
묘하게 친절한 말들이 자꾸 벽처럼 느껴지는 순간들이 있다.
서로를 향해 있는 듯한 대사들이 자꾸 비껴간다.
말은 이어지지만, 그 말이 닿는 건 어쩐지 전혀 다른 방향이다.

💡상상이 아니라 구조의 문제

이야기에는 상상력 넘치는 설정이 많다.
창작을 기계처럼 수행하는 시스템, 인간과 감정적으로 연결되는 외계 문명, 건강 회복을 위해 누군가에게 양도되는 탑승권 같은 것들.
그런데 그 설정들이 뭔가 대단한 모험이나 반전을 위한 장치는 아니다.
대부분의 서사는 조용히 흘러간다.
관계를 복원하거나, 감정을 감당하거나, 잠깐 멈춰 서는 식이다.
그래서 더 묘하게 읽힌다.
환상적 세계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사실은 관계가 유지되지 않는 구조를 보여준다.
이야기는 늘 감정보다 상황을 먼저 보여주고, 인물들은 상황을 받아들이기보다는 흘려보낸다.
이 책에 나오는 상상들은 현실을 피해 도망치는 도구가 아니다.
오히려 현실을 이해하기 위한 틀처럼 보인다.

기술보다 인간이 먼저 등장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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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BI 사람예측 심리학 - FBI 행동분석 전문가가 알려 주는 사람을 읽는 기술
로빈 드리크.캐머런 스타우스 지음, 고영훈 옮김 / 코리아닷컴(Korea.com)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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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BI 사람예측 심리학> - 믿음은 직감이 아니라 기술이다

📌 책 소개

📖FBI가 사용하는 사람 판별의 기술

사람을 읽지 못하면 관계에서 길을 잃는다.
FBI 행동분석센터장이었던 저자는 수많은 실제 수사와 방첩 경험을 통해 ‘사람을 예측하는 6가지 기준’ 을 체계화했다.
이는 단순한 심리 기술이 아니라, 신뢰와 기만 사이에서 올바른 선택을 하기 위한 생존 전략에 가깝다.
신뢰, 동맹, 성실성, 위기 반응, 변화 예측 등 상대의 행동을 통해 진심을 파악하는 방식이 사례 중심으로 정리되어 있다.
인간관계는 감정보다 예측 가능성이 더 중요하다는 전제 아래, 저자는 누구를 믿고 누구를 경계해야 하는지를 명확하게 구분할 수 있는 관찰력을 제시한다.

💬서평

💡내가 틀렸던 건 그 사람이 아니라, 내 판단이었다

사람을 신뢰하고 난 뒤에야 후회하는 순간들이 있다.
그때의 실수는 사람 자체보다, 내가 가졌던 확신에서 비롯되었는지도 모른다.
사람을 대하는 일에 ‘예측’ 이라는 단어가 낯설게 느껴질 수 있지만, 곱씹을수록 그것만큼 현실적인 단어도 없다.
감정으로 움직이던 날들엔 후회가 많았고, 그 후회는 고스란히 내 몫이었다.
한 사람이 어떤 결정을 내릴지, 위기에서 어떤 태도를 보일지를 미리 읽을 수 있다면, 많은 관계는 시작부터 다르게 흘러갔을 것이다.
이 책은 ‘사람을 알기 위한 접근법’ 이 감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신뢰를 줄 수 있는가, 함께할 수 있는가, 그 판단은 결국 반복되는 선택의 결과다.
인생의 결은 결국 사람에 대한 예측으로부터 결정된다.

💡성실함은 재능보다 훨씬 단단하다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이 애매한 시대다.
다정한 사람이 유능한 것도 아니고, 말이 빠른 사람이 신뢰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실력보다 중요한 건 태도이고, 재능보다 오래 가는 건 성실함이다.
어떤 사람이 평소에 보여주는 일관성과 책임감은 위기 상황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감정적 호감이나 이미지로 누군가를 판단했던 지난 시간은 결국 불안함으로 이어졌고, 결국 실망이나 손해로 귀결되었다.
예측 가능한 사람이야말로 진짜 안정적인 관계를 가능케 한다.
성실한 사람은 잘못해도 배우려고 하고, 익숙하지 않아도 책임지려고 한다.
능력 있는 사람보다 성실한 사람을 선택하라는 말은, 감성적인 충고가 아니라 통계적으로 더 안전한 선택에 가깝다.
오래 두고 보았을 때 신뢰는 실력보다 꾸준함에 가깝다.

💡신호는 언제나 처음부터 있었다

뒤늦게 알게 되는 사실은 언제나 이전의 ‘신호’ 를 되짚게 만든다.
돌이켜보면 관계의 거의 모든 실망은, 그 사람에게 없었던 신호가 아니라 내가 애써 무시했던 신호에서 비롯된다.
말투 하나, 회피하는 눈빛, 반복적인 핑계와 같은 자잘한 패턴들이 결국 하나의 흐름을 만든다.
그 흐름은 나중에 폭발처럼 느껴지지만, 사실은 아주 작은 징후들로 시작된다.
저자가 말하는 여섯 개의 신호들은 수사 현장에서만 쓰이는 기준이 아니다.
그것은 삶의 수많은 판단에서 우리가 무의식중에 놓치는 ‘알려진 경고’ 들이다.
관계의 처음을 다시 생각해보면, 사실 처음부터 예상 가능했던 결말이었다는 깨달음이 따라온다.
중요한 건 감정이 아니라 관찰이다.
신호는 늘 그 자리에 있었고, 보려 하지 않은 건 내 쪽이었다.

💡믿음은 운이 아니라 훈련이다

우연히 좋은 사람을 만나는 건 인생의 기쁨이다.
하지만 그런 우연에만 기대어 살아가기엔 세상은 조금 더 냉정하다.
중요한 관계일수록 그 사람의 행동을 면밀히 보는 습관이 필요하다.
그 사람이 어떻게 말하는가보다, 언제 침묵하는지를 봐야 한다.
무엇을 자주 이야기하는가보다, 어떤 말을 피하는지를 기억해야 한다.
단호함과 회피의 경계, 열정과 과장의 차이, 신중함과 책임 회피의 거리.
이런 것들은 날카로운 직감보다 느린 관찰에서 드러난다.
결국 믿음도 연습이다.
신호를 읽는 눈은 공부로 단련된다.
믿음은 선의만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예측할 수 있는 관계는 서로를 위한 안전장치이고, 그런 예측은 반복되는 관찰과 판단의 훈련에서 비롯된다.
사람을 믿고 싶다면, 먼저 읽을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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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달새 언덕의 마법사
오키타 엔 지음, 김수지 옮김 / 비채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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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달새 언덕의 마법사> - 마법이 머문 자리에 남는 것들

📌 책 소개

📖소원을 품은 사람들이 모이는 언덕

조용하고 평화로운 종달새 마을에 어느 날 소문이 돈다.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사람들의 소원을 들어주는 마녀가 산다는 것이다.
그 언덕에는 ‘종달새 언덕 마법상점’ 이라는 이름의 작은 가게가 자리하고, 간판은 담쟁이덩굴에 가려져 있어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여기에 서로 다른 상처와 고민을 지닌 사람들이 찾아든다.
소꿉친구와 멀어진 중학생, 병상에 누운 노화가, 슬럼프에 빠진 소설가, 상실감에 무너진 형을 걱정하는 동생까지.
그들은 자신만의 소망을 품고 마녀 스이를 만난다.
마법은 화상 자국을 지우고, 마음의 흉터를 어루만진다.
단, 죽은 이를 되살리는 것만은 불가능하다.
이들은 슬픔과 마주하고, 울고, 그리워하고, 다시 살아갈 방향을 찾는다.
마법은 소원을 이루는 수단이지만, 진짜 변화는 그들 스스로의 선택에서 비롯된다.
그렇게 각자의 마음에 작고 조용한 변화가 일어난다.

💬서평

💡‘마법’ 보다 단단한 무언가

사람들은 흔히 마법에 기대를 걸지만, 실제로 삶을 움직이는 건 그것보다 더 단단한 무언가다.
이야기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모두 각자의 이유로 언덕에 오르지만, 마녀의 힘이 모든 것을 해결하진 않는다.
상점의 문은 조용히 열리고, 조용히 닫힌다.
그 안에서 벌어지는 변화는 단번에 일어나지 않고, 사건의 외피를 바꾸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마법은 잠깐 곁을 내어줄 뿐이고, 남은 여백은 스스로 채워야 한다.
그들은 더 이상 누군가의 도움만을 기다리지 않는다.
각자의 슬픔을 지닌 채 언덕에 올라왔지만, 다시 내려갈 땐 자신만의 방식으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용기를 챙겨 간다.
그러니까 마법은 시작일 뿐, 핵심은 그 이후다.

💡나도 모르게 무너지는 마음들

무너지는 순간은 항상 느닷없다.
마음을 단단히 다졌다고 생각했는데, 예상치 못한 한마디에, 오래된 상처 하나에, 익숙한 거리의 낯선 바람에 주저앉는다.
이야기 속 인물들도 그랬다.
어떤 이는 소꿉친구와의 관계 앞에서, 어떤 이는 예고 없는 작별 앞에서, 또 다른 이는 ‘잘 살아야 한다’ 는 부담 앞에서 맥이 풀린다.
이들이 마법상점을 찾아간 건 단순히 바라는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무너져 버린 마음을 누구라도 조금 알아주길 바라는 갈망 때문이었다.
마음은 무너지고 회복되는 과정을 반복한다.
그런 과정을 통과하는 사람에게 필요한 건 크고 대단한 해결책이 아니다.
조용히 들어주는 존재,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감정의 잔재, 다시 시작할 용기.
어쩌면 그것이면 충분하다.

💡진심은 언제나 언저리에

이야기에는 눈에 잘 띄지 않는 진심이 많다.
중심에 있는 것보다 언저리에 숨어 있는 게 더 깊은 울림을 주곤 한다.
한 마디의 대사보다는, 누군가가 던진 눈빛 하나, 미처 닫지 못한 문틈에서 새어 나온 말 한 조각에서 진심이 읽힌다.
등장인물들이 오랫동안 말하지 못했던 감정이나 숨겨왔던 상처는 대개 그렇게 드러난다.
무언가를 해결하려 하기보다는, 있는 그대로 머무는 시간 속에서 그들은 조금씩 변화한다.
아무리 비현실적인 상황이라도, 그 안에서 인물들의 고민과 고통은 현실 그 자체처럼 다가온다.
우리가 무심코 지나친 순간들이 이야기를 통해 다시 소환되고, 어느새 그 안에서 익숙한 얼굴을 찾게 된다.
진심은 거창하지 않아도, 늘 마음 가장자리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상처는 치유보다 이해가 먼저다

상처는 항상 치유의 대상은 아니다.
때로는 그것을 정확히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숨통이 트이기도 한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슬픔, 설명할 수 없던 상실, 정당하지 않은 미안함 같은 것들은 대개 ‘이해받고 싶음’ 으로 남는다.
등장인물들은 단지 문제 해결을 원한 게 아니라, 자신의 고통이 무의미하지 않다는 사실을 누군가에게 확인받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런 확인은 오히려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도착한다.
아무 말 없이 건네는 차 한 잔, 예고 없이 마주한 벽장 속 바람, 낡고 금 간 항아리 같은 것들.
상처가 완전히 사라지지 않더라도, 그것을 감당할 언어가 생기면 조금은 편해진다.

그 언어는 어쩌면 마법보다 더 현실적인 힘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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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집
정보라 지음 / 열림원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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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집> - 돌봄이 국가의 일이던 시절의 기록

📌 책 소개

📖아이를 키우는 기술 사회의 풍경

로봇 공학과 인공 자궁 기술이 자리 잡은 근미래.
사람들은 아이를 직접 낳지 않아도 된다.
육아는 점점 ‘관리’ 의 영역이 되고, ‘돌봄’ 은 시스템 안으로 흡수된다.
어떤 아이는 훈육을 빌미로 기계에 연결되고, 어떤 아이는 선택받은 만큼만 애정을 받는다.
과잉 보호도, 과잉 학대도 명확한 기준 없이 기술과 섞여버린다.
이야기 속 세계는 분명 비현실이지만, 모든 인물은 현실의 얼굴을 하고 있다.
국가는 아이를 ‘구조’ 하고, 부모는 아이를 ‘위탁’ 하며, 누군가는 그 아이를 상품처럼 사고판다.
죽은 아이가 벽 속에서 비명을 지르거나, 기억을 잃은 아이가 기계 안에서 울음을 터뜨리는 풍경이 낯설지 않은 이유는, 우리가 그 아이들을 이미 지나쳤기 때문이다.

💡정당한 양육이란 무엇인가

가난한 집에 아이를 그대로 두는 것과, 부유한 집으로 ‘보내는’ 것.
둘 중 어느 쪽이 아동복지인가.
누군가에게 이 질문은 정답이 있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두 선택 모두 폭력처럼 느껴진다.
그러니까 양육은 늘 논리적으로 설명되지만, 그 감정 안에는 말로 환원되지 않는 복잡한 것이 있다는 뜻이다.
누군가는 선의를 가장해 아이를 데려가고, 누군가는 책임을 다하기 위해 아이를 놓는다.
이야기 속에서 아이는 어른들의 손에 쥐어진 존재가 아니라, 계속해서 물러지는 존재다.
물려지고, 조정되고, 때로는 제거된다.
양육이라는 단어는 점점 누군가의 행위가 아니라 시스템의 작동처럼 느껴진다.
그 과정에서 아이는 점점 사라진다.

💡무심한 설정, 날 선 묘사

항아리 안에 들어 있는 아이들.
벽 속에서 기계에 연결된 아이들.
죽은 아이를 데려가는 손.
이런 장면들은 대사도 없이, 설명도 없이 툭하고 떨어진다.
그런데 바로 그 무심함이 감정을 만들어낸다.
이 세계에서 가장 날카로운 건 비명이 아니라 침묵이다.
묘사는 길지 않고, 설정은 생략되어 있다.
하지만 그 자리에 독자의 상상이 들어간다.
그래서 이야기는 불친절할수록 강해진다.
누구는 아이의 뇌파를 바꾸는 기계를 두려워하고, 누구는 그 기계를 아이의 성장에 필요한 것으로 여긴다.
그런 선택들은 선악이 아니라 온도처럼 다가온다.
따뜻하지도, 차갑지도 않은 회색 세계에서 중간 지점을 찾지 못한 채 머문다.

💡기술이 뒤덮은 감정의 단면

이야기 속 사람들은 감정을 설명하지 않는다.
‘너무 아파서 싫어’ 같은 말만 겨우 흘린다.
그러다 문득, 엄마가 원하는 아이가 되고 싶다는 말이 나온다.
기계는 고통을 주고, 아이는 그 고통을 통해 사랑받으려 한다.
어떤 감정은 너무 단단해서 부서질 수 없고, 어떤 감정은 너무 낡아서 아무 감촉도 없다.
기계가 먹어치우는 건 신체나 기억이 아니라, 그런 감정의 자취다.
양육은 더 이상 관계가 아니라 과정이다.
이 과정에서 감정은 기능처럼 소비된다.
그러니 더 무섭다.
부모는 아이의 감정을 통제하고 싶어하고, 국가는 그 통제를 돕는다.
기술은 그 사이에 끼어 감정을 효율화한다.
그러다 보니 누구도 울지 않게 되었다.
울 수 없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도저히 외면할 수 없는 목소리

비현실이라는 외피 속에서도 익숙한 이름들이 들린다.
색종이, 섬, 항아리 같은 단어들이 차가운 배경과 맞물리며 오히려 이야기의 온도를 높인다.
누군가는 아이를 ‘이름 없이’ 만들고, 또 누군가는 그 아이를 지키기 위해 기계를 멈추려 한다.
그 움직임들은 클라이맥스를 향하지 않는다.
그저 잔잔하게, 반복적으로 이어질 뿐이다.
하지만 그 반복이 이야기의 비명을 만든다.
아이들이 비명을 지르지 않아도, 울음소리는 벽 너머에서 들린다.
이 소설은 분명 끝이 있다.
하지만 그 끝이 마침표 같지는 않다.
오히려 어떤 문장이 열린 채로 멈춘 느낌이다.
그래서 더 오래 남는다.

누군가 이 이야기를 다시 꺼내지 않는 이상, 아이들은 벽 안에 그대로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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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합리적 낙관주의자
수 바르마 지음, 고빛샘 옮김 / 흐름출판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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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리적 낙관주의자> - 무너지지 않는 마음을 설계할 때

📘책 소개

📖감정을 다루는 심리 훈련법

감정은 순간이지만, 해석은 지속된다.
정신과 전문의 수 바르마는 9.11 테러 트라우마 회복 프로젝트의 경험을 바탕으로, 감정을 억누르지 않으면서도 삶의 균형을 되찾을 수 있는 심리 훈련법을 제시한다.
불안, 무기력, 분노 같은 감정은 외부 사건보다 내면의 해석에서 비롯되며, 이는 반복되는 사고 패턴으로 굳어진다.
그는 인지행동치료에 기반한 구체적인 전략을 통해 감정을 인식하고, 재구성하며, 행동으로 옮기는 방법을 정리한다.
몰입, 자기 연민, 목적의식, 관계의 질 같은 실제적이고 일상적인 주제들을 통해, 감정을 없애는 것이 아닌 감정을 다루는 기술을 익히게 한다.
핵심은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감정을 지나가게 하는 것, 그 위에 삶을 설계하는 것이다.

💬서평

💡감정은 훈련 가능한 대상이다

누구나 감정을 느끼지만, 모두가 감정을 다룰 줄 아는 것은 아니다.
불안이 계속되면 자신이 유별나다고 생각하고, 분노가 반복되면 성격 탓으로 돌리기도 한다.
하지만 감정은 반사작용이 아니라 패턴의 결과일 수 있다.
수십 년간 임상 현장을 누빈 정신과 전문의는 사고의 방향을 바꾸는 법이 생각보다 기술적이라는 사실을 짚는다.
감정을 없애는 게 아니라 흐르게 두는 방식, 거기서 출발해 다시 사고의 구조를 바꾸는 과정은 단순한 조언을 넘어서 실제적인 변화로 이어진다.
감정은 감각이자 언어이고, 반복된 감정은 결국 습관이 된다.
그렇기에 훈련이 가능하다.

💡회피보다 구조화된 대처가 먼저다

감정이 밀려올 때마다 도망치는 것 말고 다른 선택은 없을까.
반복되는 감정 반응 뒤에는 종종 자동화된 해석이 존재한다.
'나는 늘 이런 식이야' 같은 사고는 생각보다 빠르고 날카롭다.
이 구조를 재조립하는 데 필요한 건 감정 억제가 아니라 새로운 틀이다.
감정을 있는 그대로 인식하고, 반응을 유예한 뒤 다시 판단하는 연습은 감정 자체를 약화시키지 않는다.
오히려 감정을 다룰 수 있다는 안정감을 키운다.
감정을 막는 게 아니라 흐름을 바꾸는 것.
그 방향이 생각보다 기술에 가깝다는 점에서, 반복되는 정서 문제를 다른 방식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목적은 방향을 고정하는 힘이다

무기력이라는 감정은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는 느낌처럼 보이지만, 실은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다' 는 신호일 때가 많다.
마음의 동력을 되살리기 위해 필요한 건 동기 부여보다 방향 설정이다.
목적이 분명해지면 선택이 쉬워지고, 선택이 쉬워지면 행동이 자연스러워진다.
목적은 빠르게 도달하기 위한 표적이 아니라, 흔들릴 때 돌아갈 수 있는 기준점이다.
감정이 크고 요동칠수록, 삶을 지탱하는 방향의 중요성은 커진다.
정서 조절이 단지 멘탈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흐름을 정비하는 일과 연결돼 있다는 걸 다시 확인하게 된다.

💡감정과 관계는 분리할 수 없다

사람 사이의 갈등은 언제나 감정으로 시작해서 감정으로 끝난다.
말의 문제가 아니라, 그 말이 어떤 감정을 건드렸는지가 핵심이 된다.
하지만 감정을 말로 정확히 표현하는 건 쉽지 않다.
어떤 이는 감정을 숨기고, 또 어떤 이는 감정을 과잉 전달한다.
그 사이에서 관계는 종종 오해로 어긋난다.
감정을 잘 다룬다는 건, 감정을 없애거나 감정을 감추는 일이 아니다.
타인에게 감정을 해치지 않고 꺼내는 기술이며, 동시에 스스로를 무너지지 않게 지키는 방식이다.

감정은 늘 관계 안에서 흔들리기에, 두 가지를 동시에 다룰 수 있어야 삶이 망가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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