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드 부모들의 자녀 교육법 - 아이들을 하버드에 보낸 8인의 비밀노트
변윤숙 외 지음 / 물푸레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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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이 행복하려면 농사를 짓고, 3년이 행복하려면 예쁜 아내를 얻고, 10년이 행복하려면 나무를 심고, 백 년이 행복하려면 자식교육을 시켜라.“는 옛말이 있다. 1년 농사를 망치면 내 년에 잘 지으면 되지만, 정말로 자식교육은 평생 정성을 기울여 투자할 사업(?)인 것 같다. 세계에 내로라하는 유수의 대학이 많이 있지만 ‘꽃 중의 꽃’이라 불리는 미국의 ‘하버드 대학’에 자녀를 당당히 합격시킨 8인의 한국인 부모들의 합격담을 실었는데, 자녀의 장래를 위해 원대한 포부를 지닌 부모님이라면 귀담아 들어야 할 내용이 많고 미래의 자녀교육에도 많은 참고가 되고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된다.

 

근래 유행하는 말 중에 ‘개천에서 용 안 난다.’는 말이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고 있다. 사법고시도 2017년 이후에는 폐지되어 하류층이 일약 상류층으로 도약할 수 있는 길이 봉쇄되었고, 경제활동 또한 가진 자 위주로 편제되다 보니 부지런히 자영업을 한다고 해서 성공을 보장할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 그만큼 세상은 재력이 없는 사람들이 성공할 기회가 줄어들고 있다. 그렇다고 마냥 세상 탓만 할 수도 없겠다. 우리나라 뿐만아니라 세계 경제 질서가 신자유주의로 재편되면서 상위 1%가 세계경제의 70%를 주물럭거리는 상황이니, 빈익빈 부익부 현상의 심화는 어쩔 수 없는 시대적 산물이라 해야 할 것이다.

 

자녀를 하버드대학에 보낸 8인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대부분 형편이 넉넉지 못했고, 자녀들을 큰돈을 들여 과외를 시킬 형편도 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세상을 비관적으로 보지 않았고, 어떤 희망과 방법을 찾고자 노력하면서 더 나은 교육을 위해 자녀가 어릴 때 과감히 미국행을 결정했다. ‘인생은 모험이다.’ 라는 말을 많이 하지만 실제로 한국이 아닌 타국으로의 이민 결정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수십 년 갈고 닦은 한국의 탄탄한 직장을 버리고 낯설고 물설은 외국으로 나선다는 것은 먼 미래를 내다 본 크나큰 모험일 것이다. 오로지 자녀의 미래를 위해 그들은 기득권을 버리고 과감히 미국의 쓰리디(3d) 직종에서 숱한 고생을 선택했다.

 

‘부모의 행동은 자녀의 본보기다.’라는 말처럼 힘들게 자녀들을 위해 애쓰시는 부모님을 보면서 자녀들도 스스로 착실하게 행동하고 공부에 매진했다. 한국 같았으면 방과 후 집에 오면 간식도 챙겨주고 살뜰히 관심을 가져 주겠지만, 자신의 교육비 부담을 위해 하루 종일 일에 매달려야 하는 부모님을 이해하면서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자신의 앞날을 위해 노력하며 잘 자라 주었다. 때론 사춘기에 접어들어 부모님과 사소한 다툼이 있었지만 모두 서로의 처지를 알고 확고한 목표가 있었기에 난관을 쉽게 극복할 수 있었다.

 

세계 최고의 교육시스템을 자랑하는 미국에서도, 예전에 한국 엘리트의 기본코스가 된 경기중-경기고-서울대처럼,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의 엘리트 코스 과정이 잘 갖춰져 있다. 요즘은 외고나 특목고가 서울대 입학에 위세를 떨치고 있듯이, 미국도 지명도 높은 중,고등학교를 가야 명문 아이비리그대학, 그 중에서도 하버드대학에 들어갈 확률이 높다.

 

미국 명문대학의 입학요건을 보자면 오로지 한국처럼 수능성적만으로 합격의 당락을 결정하지 않고, 부가적으로 인성이나 과외활동, 봉사활동, 취미 등 다양한 요건들을 심사한다. 그래서 SAT 만점을 받고도 명문대학에 떨어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한다. 그리고 미국에서는 작문능력을 중요시하는데, 자기소개서나 자기 PR을 위해서는 반드시 글쓰기 능력을 갖춰야 하고, 글을 잘 쓰려면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 그러니 하버드대학에 합격한 학생들은 예외 없이 독서광 들이었다. 그 외 자연친화활동, 어려운 이웃을 위한 봉사활동, 취미생활 등 공부를 하면서도 시간을 쪼개 틈틈이 자기 할 일을 실천한다. 수재끼리 치열한 경쟁에서 지칠때도 있지만 그들은 억지로 공부하기 보다는 미래를 생각하며 스스로 고통을 즐기면서 한다고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 점은 하버드 합격생들은 어려서부터 확고한 목표의식이 있었고, 그기에 맞춰 꾸준히 준비하며 노력했고, 부모들도 자녀교육을 최우선으로 삼고, 어려운 여건 속에서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으며, 진로방향에 대해 많은 정보를 얻어 자녀를 잘 리드해 주었다는 점이다. 세상에 독불장군이 어디 있겠는가? 성공의 이면에는 부모님의 한없는 헌신과 자녀들의 불타는 향학열이 잘 매치가 되었기에 합격의 영광이 있는 것이다. 세계 최고의 대학에 한국 학생을 당당히 합격시킨 부모들의 ‘맹모삼천지교’를 보면서 가슴 뿌듯했고 더 많은 학생들이 넓은 세계무대에서 한국인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고 자신의 포부를 맘껏 펼쳤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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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으로 읽는 오륜서 - 미야모토 무사시의 Picture Life Classic 1
미야모토 무사시 지음, 양원곤 옮김 / 봄풀출판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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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무사의 나라로 예부터 검劍 문화가 발달하였다. 청동기 야요이 문화를 통해 중국이나 한국으로부터 영향을 받았고. 중국 전국시대(BC403~221)때 철기가 전래되어 제련 기술을 더욱 발전시켰다. 일본의 막부시대에는 주로 무사에 의해 나라가 운영되던 시기였는데, 카마쿠라 막부시대(1192~1337), 무로마치 막부시대(1338~1573), 에도(도쿠가와) 막부시대(1603~1867)가 있었다. 이 시기엔 주로 힘에 의해 나라가 통치되던 시기였으므로 다양한 칼 문화가 성행하였다.

 

<오륜서>의 저자 미야모토 무사시(1584~1645)는 전국시대 말기에서 에도 막부시대 초기에 활동한 영웅적인 인물로  그는 검술에 정통했을 뿐만아니라 맨손 격투의 고수이기도 하다. 그는 열세 살의 나이에 인생 최초의 결투를 벌이게 되는데 상대는 신토류의 병법가 '아리마 키효에' 였다. 이 결투에서 승리한 무사시는 스물 아홉살이 되는 16년 동안 약 60여 차례에 걸쳐 전투를 벌였는데, 단 한 번도 패한 적이 없는 기적같은 기록을 만들어냈다. 이후 그는 단 한차례도 결투를 하지 않았다.

 

무사시는 만년에 그 동안의 경험과 수련을 통해 갈고 닦은 무예를 집대성하여 2년간에 걸쳐 <오륜서>를 집필하고 곧 죽음을 맞이하였다. 혼신을 다해 심혈을 기울인 결과 그의 저서는 손자의 <손자병법>과 19세기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과 더불어 세계 3대 병법서에 오르는 영광을 안았다. 일본인은 물론 세계 경제의 큰손이라 불리는 잭 웰치도 <오륜서>에서 경영철학을 배웠다고 말할 정도다.

 

손자병법이 단순한 병법서를 넘어 현대 인간관계나 경영학까지 확대되어 정치가나 기업인들에게 널리 읽히듯 '오륜서'도 이제 국내 병법서에만 머물지 않고 세계의 군사 전문가나 경영인, 일반인에게도 널리 읽히는 애독서가 되었다. 동서고금의 수많은 고전들을 사례로 들면서 왜 성공했고, 실패했는지 '심리기법' 등 다양한 오륜서의 병법과 연관지어 상세하게 설명하는데, 오늘날에도 배울점이 많았다.

 

역자는 <오륜서>를 설명하면서 각 장마다 관련 그림을 삽입하여 독자들이 한결 내용을 수월하게 이해할 수 있었고, 일본의 검 문화의 '시대별 변천사'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하여 무사의 나라 일본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병법서를 넘어 경영서, 철학서, 인생 처서세로 <오륜서>를 폭넓게 읽는다면 인생을 지혜롭게 살아가는데 적잖은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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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詩 99篇 - 우리가 죽기 전에 꼭 읽어야 할
오성수 지음 / 김&정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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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유명한 여류시인 하면 설도(唐)나 이청조(宋)를 떠올리지만, 조선에도 쟁쟁한 여류시인이 있었다. 신사임당, 황진이, 허난설헌, 이옥봉, 이매창(계랑)은 조선 여걸 5인방으로 손꼽힌다. 그 중에 단연 황진이가 유명세를 떨쳤다. 숱한 염문과 일화를 남긴 그녀의 시 중에 아직 덜 알려진 '상사몽(相思夢)'이란 시가 있는데, 이옥봉의 '몽혼(夢魂)'과 느낌이 비슷하면서도 읽을수록 애절한 그리움이 묻어난다. 

 

           相思夢 (상사몽 : 꿈에 서로 그리워하다.)

                     황진이 (조선 중종때 기생, 생몰년 미상)

 

相思相見只憑夢  (상사상견지빙몽)  서로 그리워하면서도 만나볼 길은 꿈길 밖에 없는데

농訪歡時歡訪농  (농방환시환방농)  내가 임 찾아가면 임도 날 찾아 떠나셨다고

願使遙遙他夜夢  (원사요요타야몽)  바라건대 다른 날 밤 아득한 꿈에서라도

一時同作路中逢  (일시동작노중봉)  똑같은 시각 서로의 꿈길을 떠나 도중에서 만났으면.

*농(人+農 : 나, 당신, 저)

 

<해 설>

역시 황진이의 명성에 어울리는 탁월한 감각이 돋보이는 시다. 간략하면서도 함축적인데다 그 안에 담겨 있는 애틋함이 근자에 유행하는 노래들에도 전혀 뒤지지 않는다. 피눈물 나는 사랑을 해본 사람만이 이렇게 담백하면서도 절절한 시를 읊을 수 있지 않을까.

 

"청산리 벽계수야 수이 감을 자랑마라.

일도창해 하면 다시 오기 어려우니,

명월이 만공산 하니 쉬어간들 어떠리. "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다 알고 있는 이 시조는 황진이가 연모했지만 끝내 이루지 못한 벽계수와의 애틋한 사랑을 노래한 것이다. 그 동안 벽계수가 과연 누구인지에 대해서 설이 분분했는데, 최근에 그토록 황진이의 애간장을 태웠던 벽계수는 세종의 증손자인 벽계도정(碧溪都正) 종숙(終淑)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이종숙은 세종의 손자인 영해군파 길안도정의 다섯째 아들로, 1508년에 출생했다. 조선조 후기 서유영이 '금계필담(錦溪筆談)'에 적었듯이, 벽계수가 종실(宗室)인물임이 확인되었고, 황진이의 출생연도가 1506~1515년으로 추정되는 만큼 동시대 인물임도 밝혀진 것이다.

 

하지만 아직 정설은 없다. 혹자는 벽계수와 황진이가 숱한 염문을 뿌렸다고 하니, 과연 어디까지가 맞고, 어디까지가 풍문인지 알 수가 없다.^^   P. 574~5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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찻자리, 디자인하다
이연자 지음 / 오픈하우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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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누구나 건강이다, 웰빙이다 해서 녹차를 마시는 시대가 되었지만,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 차는 커피에 밀려 얼굴 내밀기도 힘들었다. 

내력이 있는 집안이나 사찰에 가야 겨우 우리 차를 얻어 마실 수가 있었다.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녹차 바람이 불어서 길거리, 운동장에서도 마실 수 있게 되었는데, 물론 새로 개발한 티백 덕분이다. 티백은 간편하게 마실 수 있지만 찻잎을 우려냈을 때의 깊은 맛은 없다. 

그냥 건성으로 시늉만 낼 뿐이다. 하기야 언제 어디서나 손쉽게 구해서 먹을 수 있는 컵라면이 어떻게 어머니의 손맛을 따를 수 있을 것인가. 

역대 고승들과 선비들의 차시(茶詩)를 보면 역시 차는 아무나 마시는 것이 아니구나 하고 깨닫게 된다. 차는 결코 손과 입으로만 마시는 것이 아니다. 차는 온몸으로 마시는 것이다. 

그러나 너무 예절만 따져도 가까이 접하기 어렵다.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고 조용히 마시면 되는 것이다. 깨끗하지 않으면 또 어떤가. 잠시 마음을 가다듬고 편안하게 마시면 된다.

 문득 아름다운 차향이 흐르는 글과 사진을 보면서 차시 한 편 생각나 옮겨 본다.

                      偶吟(우음 : 문득 떠올라 읊다.)
                               서산대사(休靜,1520~1604)

松榻鳴山雨  (송탑명산우)  산비는 솔밭을 울리는데 
傍人詠落梅  (방인영락매)  옆 사람은 매화가 진다고 시가를 읊네. 
一場春夢罷  (일장춘몽파)  한바탕의 봄꿈이 끝나니 
侍子點茶來  (시자점다래)  시중드는 사람이 차를 달여 오는구나. 

 - 우리가 죽기전에 꼭 읽어야 할 한시 99편에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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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의 서재 - 안철수의 독서 세계 탐구
이채윤 지음 / 푸른영토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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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정치적 호불호를 떠나 그의 삶은 모범적이고 존경받아 마땅하다. 1500억 가치의 주식을 조건없이 사회에 기부하여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였고, 바이러스연구소를 설립하여 퇴치에 크게 기여하였다. 그에게 있어 책은 인생의 좌표가 되어 성공으로 이끌었고 위기때마다 돌파구를 제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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