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漢詩 99篇 - 우리가 죽기 전에 꼭 읽어야 할
오성수 지음 / 김&정 / 2007년 6월
평점 :
절판
중국의 유명한 여류시인 하면 설도(唐)나 이청조(宋)를 떠올리지만, 조선에도 쟁쟁한 여류시인이 있었다. 신사임당, 황진이, 허난설헌, 이옥봉, 이매창(계랑)은 조선 여걸 5인방으로 손꼽힌다. 그 중에 단연 황진이가 유명세를 떨쳤다. 숱한 염문과 일화를 남긴 그녀의 시 중에 아직 덜 알려진 '상사몽(相思夢)'이란 시가 있는데, 이옥봉의 '몽혼(夢魂)'과 느낌이 비슷하면서도 읽을수록 애절한 그리움이 묻어난다.
相思夢 (상사몽 : 꿈에 서로 그리워하다.)
황진이 (조선 중종때 기생, 생몰년 미상)
相思相見只憑夢 (상사상견지빙몽) 서로 그리워하면서도 만나볼 길은 꿈길 밖에 없는데
농訪歡時歡訪농 (농방환시환방농) 내가 임 찾아가면 임도 날 찾아 떠나셨다고
願使遙遙他夜夢 (원사요요타야몽) 바라건대 다른 날 밤 아득한 꿈에서라도
一時同作路中逢 (일시동작노중봉) 똑같은 시각 서로의 꿈길을 떠나 도중에서 만났으면.
*농(人+農 : 나, 당신, 저)
<해 설>
역시 황진이의 명성에 어울리는 탁월한 감각이 돋보이는 시다. 간략하면서도 함축적인데다 그 안에 담겨 있는 애틋함이 근자에 유행하는 노래들에도 전혀 뒤지지 않는다. 피눈물 나는 사랑을 해본 사람만이 이렇게 담백하면서도 절절한 시를 읊을 수 있지 않을까.
"청산리 벽계수야 수이 감을 자랑마라.
일도창해 하면 다시 오기 어려우니,
명월이 만공산 하니 쉬어간들 어떠리. "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다 알고 있는 이 시조는 황진이가 연모했지만 끝내 이루지 못한 벽계수와의 애틋한 사랑을 노래한 것이다. 그 동안 벽계수가 과연 누구인지에 대해서 설이 분분했는데, 최근에 그토록 황진이의 애간장을 태웠던 벽계수는 세종의 증손자인 벽계도정(碧溪都正) 종숙(終淑)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이종숙은 세종의 손자인 영해군파 길안도정의 다섯째 아들로, 1508년에 출생했다. 조선조 후기 서유영이 '금계필담(錦溪筆談)'에 적었듯이, 벽계수가 종실(宗室)인물임이 확인되었고, 황진이의 출생연도가 1506~1515년으로 추정되는 만큼 동시대 인물임도 밝혀진 것이다.
하지만 아직 정설은 없다. 혹자는 벽계수와 황진이가 숱한 염문을 뿌렸다고 하니, 과연 어디까지가 맞고, 어디까지가 풍문인지 알 수가 없다.^^ P. 574~5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