漢詩 99篇 - 우리가 죽기 전에 꼭 읽어야 할
오성수 지음 / 김&정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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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왕각((縢王閣)

 

                                                  왕발(王勃.650~676)

 

滕王高閣臨江渚(등왕고각임강저)  등왕이 세운 높은 누각 감강 기슭에 있는데

 

佩玉鳴鑾罷歌舞(패옥명란파가무)  패옥 소리, 방울 소리 가무도 사라졌다.

 

畫棟朝飛南浦雲(화동조비남포운아침에는 아름답게 칠한 용마루에 남포의 구름이 날고

 

朱簾暮捲西山雨(주렴모권서산우저녁에는 주렴에 서산의 비가 걷힌다.

 

閑雲潭影日悠悠(한운담영일유유한가로운 구름과 강물에 비친 그림자 날마다 유유한데

 

物換星移幾度秋(물환성이기도추사물이 바뀌고 세월이 흐른 지 몇 해던가?

 

閣中帝子今何在(각중제자금하재누각에 있던 왕자는 지금 어디 있는가?

 

檻外長江空自流(함외장강공자류난간 밖의 양자강만이 부질없이 흐른다.

 

 

세월의 무상함이 절로 느껴지는 시다. 이 시의 <등왕각(縢王閣)>은 바로 앞에서 설명한 그 유명한 <등왕각서(縢王閣序)>의 대미(大尾)를 장식한 칠언고시이다. 이 시 하나만 놓고 보아도 뛰어난 작품이지만, 등왕각서(縢王閣序) 전체와 함께 읽으면 더욱 실감이 나고, 감동도 더할 것이다.

   

관찰력이 뛰어난 독자라면 이 시를 읽고 나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길 것이다. 첫 구절에 분명히 감강(竷江)’ 기슭이라고 하더니 마지막 구절에서는 느닷없이 왜 양자강(揚子江)’이 나오느냐고 말이다. 어차피 감강이 양자강의 지류이기도 하고, 또 부질없이 흐르는 것은 비단 감강만은 아닐 것이다. 양자강도 부질없이 흐르고, 다른 많은 강도 우리네 인간들의 좁은 눈으로 보면 다 부질없이 흐르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고 이 시를 깎아 내리는 것은 절대 아니다. 불철주야(不撤晝夜) 쉬지 않고 흘러내리는 것이 바로 강물의 속성인 바에야 또 그렇게 군소리 없이 흐르는 강물이 고맙기도 하고, 내심으로는 부럽기도 할 것이다. 시간도 그렇게 흐르지 않는가. 유한한 것은 바로 인간이요, 무한한 것은 강물이요, 시간이다.

  

강물의 눈으로, 세월의 눈으로 인간을 쳐다보면 또 인간이 한없이 가엾고 부질없이 보일 것이다. 태어나자마자 시기와 질투와 싸움, 탐욕 속에서 부대끼다가 그리 길지도 않은 인생을 살다가 허망하게 가버리는 인간이 얼마나 부질없는 존재로 비춰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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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발은 당나라 시인으로, 자는 자안(子安)이다. ()나라의 유학자 왕통(王通.584~617)의 손자이며, 19세에 과거에 급제하여 고종(高宗. 649~683)의 여섯째아들 패왕(沛王) 이현(李賢. 654~684)의 부()에서 일을 보았다. 당시에 여러 왕이 투계(鬪鷄) 놀이에 빠져 들자, 이를 희화(戱化)하여 영왕(英王) 이현<李顯. 후에 중종(中宗. 683~684, 705~710)>의 투계를 비난하는 격문(檄文)을 지었다. 그러자 고종이 이를 듣고 노하여 왕발을 면직(免職)시켰다. 그 뒤 괵주(虢州)의 참군(參軍)이 되었는데, 관노(官奴) 조달(曹達)을 죽인 죄로 사형이 내려져 또다시 위기를 맞았으나, 다행히 사면을 받았다. 이 사건에 연좌되어 교지(交趾)로 좌천된 아버지 왕복치(王福峙)를 만나고 돌아오던 중 남해(南海)에 빠져 익사했다. 양형(楊炯), 노조린(盧照隣), 낙빈왕(駱賓王)과 함께 초당사걸(初唐四傑)이라고 일컬어진다.

 

왕발의 문장은 기려하여 그에게 글을 청하는 자가 아주 많았고, 그 대가로 받은 금은 비단이 집안에 그득 쌓일 정도였다고 한다. 그는 마음(글을 쓰는 재주)을 짜서 옷을 해 입고, 붓으로 농사지어 먹고 살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는 깊이 생각하여 이리저리 재보는 체질이 아니었다. 그는 시작(詩作)에 임해서는 먼저 먹을 잔뜩 갈아놓고는, 술에 흠뻑 취하여 잠시 잠에 곯아 떨어졌다. 그리고 깨어나서는 붓을 잡아 문장을 완성하고는 한 글자도 바꾸지 않았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복고(腹稿)’라 불렀다. 화려하면서도 격조 있는 시풍을 지녔고, 율시(律詩)에 뛰어 났으며, 근체시(近體詩)의 성립에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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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왕각은 당고조(高祖. 재위 618~626) 이연(李淵)의 아들이자, 태종(太宗. 재위 626~649) 이세민의 동생 이원영(李元嬰)이 등왕(縢王)으로 봉해져 홍주(洪州) 도독(都督)으로 지낼 때인 659년에 이 누각을 세웠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중국 강남(江南)3대 누각은 호북성 무한(武漢)의 황학루(黃鶴樓), 호남성 악양(岳陽)의 악양루(岳陽樓), 강서성 남창의 등왕각을 꼽는다.

    

상원(上元)2(675)에 재건되었고, 홍주 도독 염백서(閻伯嶼)가 중양절을 맞아 수많은 빈객을 초대해서 연회를 크게 베풀고, 높은 곳에 올라 부()를 지어 경축했다. 또한 사위 오자장(吳子章)을 시켜 <등왕각기(縢王閣記)>의 서문을 짓도록 하여, 자신의 등왕각 중건 업적과 사위의 재주를 자랑할 참이었다. 염백서는 내빈들에게 서문을 써줄 것을 청했으나, 저간의 사정을 아는지라 모두 사양했다. 오로지 왕발만이 오지에서 온 까닭에 그 속사정을 몰랐고, 또 20대 중반의 나이라 혈기 왕성한 까닭에 사양하지 않고 그 자리에서 일필휘지(一筆揮之)하게 되었다. 이에 기분이 언짢아진 염백서는 사람을 시켜 몰래 왕발을 감시하게 하고, 왕발이 쓰는 글을 엿보게 했다.

  

첫 번째로 알리기를, <옛날에 남창군이었던 이곳은 지금은 홍도부라.>라고 했다. 염백서가 말하기를, “그저 세상 사람들이 늘상 하는 얘기일 뿐이로다.”라고 했다. 또 알리기를, <별자리로는 익성(翼星)과 진성(軫星)에 해당되며, 땅은 형산(衡山)과 여산(廬山)에 접해 있네.>라고 하자, 염백서는 이를 듣고 생각에 잠겨 읊조리기만 하고,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또 알리기를, <저녁놀은 짝 잃은 집오리와 함께 나는데, 가을 강물은 멀고도 넓은 하늘과 한 빛을 이루었네.>라고 하자, 염백서가 벌떡 일어나 말하길 이 자가 정말로 천재로세. 의당 불후(不朽)에 드리워지리라!”하고는 드디어 왕발을 연회 장소로 초청하여 마음껏 즐긴 뒤 파했다. 이때부터 등왕각은 곧 왕발의 <등왕각서(籐王閣序)>와 함께 천하에 명성을 떨치게 되었으며, 수많은 사람의 발길이 오가는 명승지가 되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다른 유적들과 마찬가지로 등왕각 역시 1350여 년을 거쳐 오면서 수차례 훼손되고 중건되었다.

 

지금의 누각은 1989, 송대(宋代)의 양식을 본떠서 중건한 것으로, 강을 향하여 우뚝 서 있는 것이 장관인데, 이것이 무려 29번째였다. 현재 등왕각은 감강(竷江)과 무하(撫河)의 합류지점에 있는데, 처음에 세운 등왕각과는 불과 100미터밖에 떨어지지 않았다. 이 등왕각은 중국의 여러 문헌과 문장가들에 의해 인용되거나 소재로 사용되었다. 예로부터 등각추풍(縢閣秋風)’이라고 해서 가을 풍경이 특히 아름답기로 소문나 있다. p.254~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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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詩 99篇 - 우리가 죽기 전에 꼭 읽어야 할
오성수 지음 / 김&정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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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중국 문장계(文章界)를 이끌었던 사대 명문(四大名文)으로는, 제갈공명의 출사표(出師表), 왕희지의 난정서(蘭亭序), 소동파의 적벽부(赤壁賦)와 함께 왕발의 등왕각서(縢王閣序)를 꼽는다.

  

왕발은 교지(交趾)로 좌천된 아버지를 뵙고자 6757월경에 낙양을 떠나 수로(水路)로 교지까지 간 것으로 보인다. 그 기나긴 여정 중에 99일 무렵 홍주에 도착했다. 때마침 홍주에서 중양절을 맞이해 등왕각 중수(重修)를 기념하는 낙성식(落成式)을 열었는데, 왕발은 우연히 여기에 들렀다가 저 유명한 등왕각서를 지었다. 등왕각서의 정식명칭은 <추일등홍부등왕각전별서(秋日登洪府縢王閣餞別序 : 가을날 홍도부의 등왕각에 올라 작별의 잔치 서문을 쓰다)이며, <등왕각>은 바로 이 서문의 대미(大尾)를 장식한 칠언고시이다.

  

 

옛날 남창군(南昌郡)이었던 이곳은 지금은 홍도부(洪都府). 별자리로는 익성(翼星)과 진성(軫星)에 해당되며, 땅은 형산(衡山)과 여산(廬山)에 접해 있네.

세 강이 옷깃처럼 두르고, 다섯 호수가 띠처럼 둘러져 있으며, 만형(蠻荊)을 누르고 구월(甌越)을 끌어당기는 위치네.

  

(이곳) 물산(物産)의 풍요로움은 하늘이 내린 보물이니 용천검(龍泉劍)의 검광(劍光)이 견우성(牽牛星)과 북두성(北斗星) 사이를 쏘았고, 인물이 걸출하고 땅은 영기가 있으니 서유(徐孺)는 태수인 진번(陣蕃)이 걸상을 내려주며 맞아들이게 하였네.

경치 좋은 주()와 군()이 안개처럼 즐비하고, 뛰어나고 빛나는 인물들이 밤하늘의 뭇별처럼 찬란하네.

  

누대(樓臺)와 성 둘레의 못은 초()나라와 중화(中華) 사이에 자리 잡고 있고, 손님과 주인은 동남지방의 훌륭한 인물들이네.

도독(都督) 염공(閻公)은 높은 명망을 갖추어 멋드러진 창을 앞세우고 멀리서 부임해 왔네.

눈에 뜨이는 훌륭한 위의(威儀)를 갖추어 새로 부임하던 우문씨(宇文氏)는 휘장을 두른 수레를 잠시 멈추게 하였네.

  

마침 십 순(十旬)의 휴가 날이라 훌륭한 벗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었고, 천리 먼 곳의 사람들도 맞아들이니 인품이 고매한 벗들이 자리에 가득하네.

하늘로 날아오르는 교룡(蛟龍)의 광채와 깃을 펴고 일어나는 봉황의 오색날개 같은 (벗들의 뛰어나게 빛나는 문재(文才)는 문장의 대가인 맹 학사(孟學士), 붉은 번개와 차가운 서릿발 같은 지조는 왕 장군(王將軍)의 무기고네.

아버님이 현령(縣令)이 되시니 가는 길에 유명한 곳을 지나게 되었네.

어린 제가 무엇을 알아서 이 훌륭한 잔치를 만났으리요.

때는 구월이요, 계절로는 가을이네.

    

길바닥에 고인 물은 마르고 (가을의)쓸쓸한 연못은 맑은데, 안개와 노을이 어우러지니 저녁산은 더욱 붉네. 길가에 말 네 필을 위엄 있게 치장하고, 높은 언덕에서 풍광을 찾아 완상(玩賞)하네.

제자(帝子)가 노닐던 장주(長州)에 임하니 선인(仙人)의 옛 관저가 있었네.

층층이 솟은 여러 형태의 지붕들은 비췻빛을 머금고, 위로 솟아 드높은 하늘을 찌르니, 나는 듯한 누각 물에 비추어 붉게 흐르고, 아래를 보니 땅이 보이지 않네.

학과 오리가 노니는 물가는 섬을 빙 둘러 있고, 계수나무 전각과 목란(木蘭) 궁궐은 언덕의 형세에 따라 줄지어 있네.

수놓은 작은 문을 열고 아로새긴 용마루를 굽어보니, 산과 들은 광활하여 시야에 가득하고, 시내와 연못은 드넓어 바라보다가 놀라네.

마을은 민가가 꽉 들어서 있고, 종은 울리고 진수성찬을 먹는 대가(大家)도 있네.

큰 배들이 수도 없이 나루터에 오가니, 청작(靑雀)과 황룡(黃龍)을 그린 뱃고물이 보이네.

무지개 사라지고 비도 개니, 햇살이 구름에서 드러나네.

저녁놀은 짝 잃은 집오리와 함께 나는데, 가을 강물은 멀고도 넓은 하늘과 한 빛을 이루었네.

  

고기잡이배에서 저녁에 노래를 부르니, 그 소리가 팽려(彭蠡)의 물가까지 미치고, 기러기 떼 추위에 놀라니 그 소리가 형양(衡陽)의 포구에서 끊어지네.

멀리 바라보며 읊조리고 고개 숙여 마음을 누그러뜨리니, 풍류 있는 흥취가 금세 사라지네.

상쾌한 퉁소 소리에 맑은 바람이 일고, 고운 노랫소리가 모여드니 흰 구름도 멈추네.

수원(脽園)의 푸른 대나무 그 기상이 평택 현령(彭澤縣令) 도연명(陶淵明)의 술잔을 능가하고, 업수(鄴水)가의 붉은 꽃 그 광채가 임천 내사(臨川內使) 왕희지(王羲之)의 글씨를 비추네.

  

(오늘 이 자리가) 네 가지 아름다움이 갖춰지고, 두 가지 어려움도 함께 하였네.

하늘의 한가운데까지 아득히 다 바라본 듯하고, 한가로운 날에 마음껏 즐겨 노네.

하늘은 높고 땅은 아득하니, 우주가 무궁(無窮)함을 깨닫네.

흥이 다하면 슬픔이 오니, 차고 비움이 정해진 운수(運數)가 있음을 아네.

멀리 태양 아래 있는 장안(長安)을 바라보며, 구름 사이에 있는 오군(吳郡)과 회계군(會稽郡)을 가리키네.

  

지세(地勢)가 다하니 남쪽 바다가 깊고, 하늘이 끝없이 높으니 북극성은 멀기만 하네.

관산(關山)은 넘기가 어려우니, 그 누가 길 잃은 나를 슬퍼해줄까.

부평초처럼 떠돌다 만났으니 모두 다 타향의 나그네이네.

제왕(帝王)의 궁문(宮門)을 그리워해도 보이지 않으니, 몇 해가 지나야 선실(宣室)에서 만날까?

  

아아! 시운이 고르지 못하고 운명은 어긋나는 일이 많으니, 풍당(馮唐)(등용되기 전에) 늙기 쉬웠고 이광(李廣)(공적이 있어도) 봉해지기 어려웠네.

가의(賈誼)가 장사(長沙)에 물러난 것은 어진 군주가 없어서가 아니요, 양홍(梁鴻)이 바닷가에 숨어 산 것은 어찌 태평한 세상이 아니어서 이겠는가.

(내가) 믿는 바, 군자는 가난을 편안하게 여기고, 달인(達人)은 천명(天命)을 아네.

늙었는데도 더욱 건장해진다면, 어찌 노인의 마음을 알겠는가.

곤궁할수록 더욱 굳세어진다면, 청운(靑雲)의 뜻을 꺾지 않을 것이네.

  

탐천(貪泉)을 마셔도 상쾌함을 느끼고, 학철(涸轍)에 처해도 오히려 기뻐할 것이네.

북해(北海)가 비록 아득하여도 회오리바람을 타면 닿을 수 있을 것이요, 소년 시절은 이미 지났으나, 노년은 아직 늦지 않네.

갓끈을 청할 길이 없으니, 종군(終軍)의 약관(弱冠) 때 일을 기다렸고, 붓을 던질까 생각해 보았으며, 종각(宗慤)의 장풍(長風)을 부러워했네.

  

백 살이 될 때까지 벼슬할 생각을 버리고, 만 리 먼 곳에 계신 부모님 안부를 받들리라.

(나는) 사씨(謝氏) 집안의 보배로운 나무는 아니지만, 맹씨(孟氏)처럼 좋은 이웃은 만나리라.

훗날 뜰을 종종걸음으로 지나다가 리()가 외람되이 어버이를 모시고 배운 것처럼 (나도 어버이의 가르침을) 받으리라.

오늘 아침 소매를 들어 올려 용문(龍門)에 의탁하니 기쁘네.

양득의(楊得意) 같은 사람을 만나지 못해서 능운부(凌雲賦)를 읊으면서 홀로애석해하지만, 종자기(鍾子期) 같은 사람은 이미 만났으니 유수곡(流水曲)을 연주한들 무엇이 부끄럽겠는가.

  

아아! 경승지도 언제나 아름답지 못하며, 성대한 잔치도 다시 만나기 어렵네.

난정(蘭亭)은 이미 버려졌고, 재택(梓澤)은 빈터만 남아 있네.

작별에 임하여 글을 지어 올림은 다행히 성대한 전별(餞別)잔치에 참석하는 은혜를 받았기 때문이네.

등고(登高)하였으면 부()를 지으라고 하였으니, 이는 여러 공()들께 바라는 바이네.

감히 보잘것없는 정성을 다하여 공손히 짧은 인()을 짓고, ()와 더불어 한마디의 시를 지으니, 사운(四韻)으로 이루어졌네.

  

등왕(縢王)이 세운 높은 누각 감강(竷江) 기슭에 있는데,

패옥(佩玉)소리 말방울 소리와 가무(歌舞)는 사라졌네.

아침에는 아름답게 칠한 용마루에 남포(南浦)의 구름이 날고,

저녁에는 주렴에 서산의 비가 걷히네.

한가로이 떠 있는 구름과 강물에 비친 그림자 날마다 유유한데,

사물이 바뀌고 세월이 흐른 지 몇 해던가.

누각에 있던 왕자는 지금 어디 있는가?

난간 밖의 양자강만이 부질없이 흐르네.

p.268~2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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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향기 2015-10-08 0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300여 년 전 명문장이라지만 옛글이라 용어가 낯설고 이해가 어려울 것입니다. 고사나 난해한 용어마다 주를 달기에는 분량이 너무 많아 원문을 해석한 그대로 올렸습니다.
 
마흔, 논어를 읽어야 할 시간 - 인생의 굽이길에서 공자를 만나다 마흔, 논어를 읽어야 할 시간 1
신정근 지음 / 21세기북스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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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문(入門)>

 

왜 공부를 하는 걸까? 모르는 것을 알고 싶어서 공부한다는 답이 가장 빨리 찾아온다. 그럼 알고 나면 어떻게 할까? 그때 가면 또 모르는 것이 생길 것이고 그걸 알려고 또 공부를 한다고 대답할 수 있다. 우리는 신이 아니므로 전지(全知)를 목표로 할 수 없다. 하지만 전문적인 학문은 해당 분야에만 적용되지만 인문학은 삶 전체와 관련을 맺는다. 그 덕분에 인문학은 전지가 아니라 하더라도 인생을 조망하고 역사를 일별하며 현재와 미래를 설계하는 힘을 준다. 즉 모든 것을 알 수는 없지만 자신이 가진 앎으로 인생과 역사 그리고 세계를 나름대로 조직할 수가 있다.

 

그럼 끝인가? “철학자는 이제까지 세계를 해석만 해왔다. 이제 중요한 것은 세상을 변혁하는 일이다.”라는 마르크스의 ‘포이에르바하에 관한 11번째 테제’에서 보듯 해석 너머의 변혁이 남아 있는 것일까? 내가 세상을 아름답고 바람직하게 만드는 그림을 그려놓는 것도 엄청난 가치가 있다. 그것이 없던 시절에는 그림 그리기가 최종 목표가 되겠지만 그림이 그려졌다면 목표가 달라질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 공자는 ‘박시제중’이란 과제를 던진다.

 

 

<승당(升堂)>

 

자공이 물었다. “예컨대 누군가 백성들에게 널리 은혜를 베풀고 많은 사람들을 구제한다면 어떻습니까? 그 사람을 평화의 사도라고 일컬을 수 있습니까? 공 선생이 대꾸했다. ”어찌 평화 차원에서 일삼겠는가. 반드시 세계질서의 산출자일 게다! 요임금과 순임금 같은 위대한 제왕들도 그런 면에서는 오히려 부족하였다고 생각했을 터이다.“

 

子貢曰 : 如有博施於民而能濟衆, 何如? 可謂仁乎? 子曰 : 何事於仁! 必也聖乎! 堯舜其猶病諸!

 

 

<여언(與言)>

 

막연히 알고 싶어서 공부를 할 수 있다. 이 단계에서는 내적 동력이 떨어지면 공부를 계속하기 어렵다. 더 이상 궁금해 하지 않는 사람에게 이야기하면 귀찮아하지 솔깃해하지 않는다. 시험공부는 시험 끝나면 더 이상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책이 지긋지긋해서 쳐다보기도 싫다. 어학공부를 할 때 보던 책을 그 뒤에도 쭉 보는 사람은 없다. 이처럼 실용적인 공부는 실용이 끝나면 더 이상 하지 않게 된다.

 

하지만 공부하는 이유가 살아가는 이유가 된다면 사정은 달라진다. 이것이 바로 인문학의 힘이다. 인문학은 한갓 자신의 학식을 뽐내기 위하여 자신을 장식하는 것도 아니고 눈앞에 닥친 시험에 합격하기 위하여 외워야 하는 암기 대상이 아니다. 인문학(철학)은 나를 돌아보고 또 나를 주위 세계 속에 집어넣어보고, 세계에서 발생하는 병리 현상의 원인을 찾아들어가게 한다.

 

그 과정에서 나는 변하게 된다. 그것은 내가 인격적으로 성숙된다는 것만이 아니라 나와 세계를 관련짓고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지게 된다는 것이다. 아울러 이전에 나의 세계에 없던 이웃의 문제가 나의 문제이자 우리 모두의 문제로 다가오게 된다. 공자는 이를 ‘박시제중’이라고 말하고 있다. 내가 가진 것을 나만의 것으로 독점하지 않고 절실한 사람과 함께 나누고 음식, 식수 등 기본적인 생존권이 위협받는 사람을 위해서 기꺼이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것이다.

 

불교는 윤회의 사슬에서 벗어나는 해탈을 추구한다. 소승불교는 개인의 해탈에 초점을 둔다. 대승불교에 이르면 세상에서 한 사람이라도 고통을 겪는다면 그 사람을 내버려두고 개인 해탈을 우선시 하지 않겠다는 서원을 내세웠다. ‘박시제중’은 바로 세상이 나를 위해서 돌아야 한다는 사고에서 내가 세상으로 들어가 함께 돌겠다는 방향 전환을 나타내는 말이다. 쉽지 않은 일이다. 유일신의 문화 전통에서는 신의 영광을 위해서 기부와 나눔의 길에 동참한다. 우리나라에는 영광을 나누도록 하는 신은 없지만 박시제중의 책무를 자각한다면 기부가 활성화될 수 있을 것이다. p.182~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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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륜스님 지음 / 정토출판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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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이의 허물로써 그가 선했는지 악했는지 판단하지 말라.

다만, 자기의 행동이 선했는지 악했는지를 살펴라.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여러 가지 문제로 괴로워합니다. 자식 때문에, 부모 때문에, 남편과 아내 때문에, 형제나 친척 친구 때문에 괴롭다고 합니다. 또 부모가, 자식이나 남편이, 아내가 나를 속박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런 괴로움과 속박에서 벗어나고 싶어 합니다. 깨달음을 얻고자 발심한 수행자만 괴로움과 속박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는 게 아닙니다.

사람을 비롯한 생명 가진 존재는 모두 다 이러한 괴로움과 속박에서 벗어나고 싶어 합니다. 그런데 실제는 어떤가요? 우리는 과연 얼마만큼 이런 괴로움과 속박에서 벗어난 삶을 살고 있나요?

 

괴로움과 속박에서 벗어나려면, 우선 이런 괴로움과 속박이 어디에서 생겼는지 알아야 합니다. 보통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배우자를 잘못 만나서, 자식이 못나서, 부모가 무능해서, 친구가 문제가 있어서 이런 식으로 다른 사람 탓을 합니다. 또 돈이 없어서, 물려받은 재산이 없어서, 직업이 보잘것없어서, 신분이 낮아서, 일류 대학을 못 나와서 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런 괴로움과 속박에서 자유로워지고 행복해지려면 좀 더 좋은 남편, 좋은 아내, 좋은 자식, 좋은 부모, 좋은 친구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 좀 더 돈이 많거나, 좀 더 좋은 대학을 나오거나, 좀 더 높은 지위나 직장을 갖게 되면 행복하고 자유로워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평생 동안 사람을, 재산을, 명예를, 권력을 찾아 헤맵니다. 우리의 괴로움은 바로 이 얻고자 하는 생각 때문에 일어납니다.

 

이 세상에는 노력하지 않고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또한 사람마다 다 생각이 다르므로 세상일이 자기 생각대로 될 수도 없고, 자기 생각이 꼭 옳다고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노력하지 않고 쉽게 얻으려고 합니다. 자기 생각대로 되기를 원하고, 자기 생각이 옳다고 고집합니다.

 

모든 괴로움과 속박은 다른 사람 때문에, 어떤 물질 때문에 생기는 게 아닙니다. 바로 이런 나의 잘못된 생각에서 생겨납니다. <반야심경>에서는 이것을 ‘전도몽상(顚倒夢想)’이라고 표현합니다. 뒤집어진 잘못된 생각, 꿈같은 생각이라고 합니다.

 

수행은 부처님이나 하느님 같은 절대자에게 빌어서 내가 바라는 바를 이루기 위해 하는 게 아닙니다. 잘못된 생각과 마음을 버리고 올바른 이치에 따라 행동함으로써 괴로움과 속박에서 벗어나 참자유와 행복을 누리기 위해 하는 것입니다.

 

붓다의 가르침은 이렇게 살아라, 저렇게 살아라, 이렇게 살면 안 된다, 저렇게 살면 안 된다 하는 식의 가르침이 아닙니다. ‘이렇게 하면 이런 결과가 나고, 저렇게 하면 저런 결과가 난다.’는 걸 알게 해주는 가르침입니다. 그래서 이런 결과를 원하면 이런 행동을 해야 하고, 이런 결과를 원하지 않으면 이런 행동은 하지 말아야 함을 스스로 깨닫게 합니다. 이것이 인연과보(因緣果報)의 원리입니다.

 

지금 나에게 일어난 일은 내가 이러저러한 인연(원인과 조건)을 지었기 때문에 나타난 과보(결과)입니다. 따라서 이미 나타난 결과를 놓고 억울해 하거나 거부하지 말고 내가 이미 지은 인연의 결과임을 알고 기꺼이 받아들여야 합니다. 또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바르게 노력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런 결과가 싫다면, 앞으로는 다시는 이런 결과를 만드는 인연은 짓지 말아야 합니다. 이 원리를 알게 되면 어떤 어려움이 오더라도 진정한 자유와 행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인연법을 알고 수행을 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p.2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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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 이와 그려진 이가 하나

 

눈처럼 흰 화선지가 펼쳐져 있다. 옆에는 검은 먹물이 담긴 벼루와 그 농담을 조절하기 위한 빈 접시 하나. 그리고 붓 한 자루가 있다. 화가는 한참 동안을 텅 빈 화면 속에서 무엇을 찾는 것처럼 가만히 쏘아 보고만 있다. 이윽고 붓대를 나꿔채어 하얀 종이 한복판에 옅은 선을 빠르게 그어 나간다. 억센 매부리코에 부리부리한 눈, 풍성한 눈썹과 콧수염, 한 일 자로 꽉 다문 입, 턱 선을 따라 억세게 뻗쳐나간 구레나룻을 거침없이 그어댄다. 구레나룻 선을 쳐나갈 때는 마치 한창 달아오른 장단에 신(神 )이 들린 고수(鼓手)처럼, 연속적으로 퉁기듯이 반복하면서 묵선을 점점 더 여리게 조절하며 붓에 운율을 실어 풀어 놓았다. 끝으로 이마와 뺨의 윤곽선을 긋고 나자 미묘한 표정의 달마가 확실하게 떠올랐다.

 

아마 붓을 종이에 대기 시작한 지 채 1분도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모두 예리한 붓끝으로 빠르게, 그러나 약간은 조심스럽게 몇 줄의 먹선을 그은 게 다지만, 이로써 달마는 살아 있는 존재가 되었다. 얼굴에 만족한 화가는 이제 좀 더 호기롭게 가사(袈裟)로 감춰진 몸 부분을 그리기 시작한다. 진한 먹물을 붓에 듬뿍 먹여 더 굵고 빠른 선으로 호방하게 쳐나갔다. 꾹 눌러 잡아채는가 하더니 그대로 날렵하게 삐쳐내고, 느닷없이 벼락같이 꺾어내서는 이리 찍고 저리 뽑아낸다. 열 번 남짓 질풍처럼 여기저기 붓대를 휘갈기고 나니 달마의 몸이 화면 위로 솟아올랐다. 달마는 두 손을 마주 잡고 가슴 앞에 모았다. 윗몸만 그려졌음에도 불구하고 그 자세는 분명 앞을 향해 성큼 발을 내딛고 있었다.

 

다시 화면을 지그시 바라본다. 구레나룻 오른 편 끝이 두포(頭布)의 굵은 획과 마주친 지점에 먹물이 아직 다 마르지 않았다. 슬쩍 붓을 대어 위로 스쳐준다. 훨씬 좋아졌다. 다시 구레나룻 아래 목 부분에 날카롭게 붓을 세워 가는 주름을 세 줄 그려 넣었다. 이제 달마의 얼굴과 몸은 하나가 되었다. 작품이 완성된 것이다. 끝으로 달마의 얼굴 앞쪽 화면 가장자리에 기대어 ‘연담(蓮潭>’이란 자신의 호(號)를 휘갈긴다. 글씨 획은 그림의 선과 완전히 꼭 같은 성질의 선이다. 빠르고 거침없는 그 획들은 그려진 달마와 그린 사람이 하나임을 말해 준다. 인장(印章)을 찾아 누른다. 화가의 호와 이름이 선홍색 인주 빛깔에 선명하다. ‘연담(蓮潭)‘ ’김명국인(金明國印)‘...

 

 

진흙물에서 연꽃을 피우다.

 

김명국은 조선의 일개 화원(畵員)이었다. 다시 말해 그림을 그리는 하급 벼슬아치였다. 화원은 양반 다음 가는 중인(中人)들의 직업이었지만 그는 그보다 더 아래인 천민 출신이었다. 김명국은 성품이 호탕해서 얽매인 데가 없었고 거리끼는 것 또한 없었다. 그가 엄청난 술꾼이었던 것은 ‘취한 늙은이’라는 뜻의 별호(別號) ‘취옹(醉翁)’으로 짐작된다.

 

호주가(好酒家)인 명국은 대개 술기운을 틈타 그린 작품에 걸작이 많았으며, 술을 못 마시게 되면 아예 붓을 잡으려고도 하지 않았다 한다. 그래서 취옹의 그림을 얻으려는 사람들은 반드시 좋은 주안상을 마련해야만 했다. 하지만 넋 놓고 술대접만 하다가는 화가가 완전히 곤드레만드레가 되어 버리는 까닭에 아무렇게나 그어댄 졸작을 받는 낭패 또한 적지 않았다. 그래서 세간에는 소위 ‘취옹의 그림을 받아내는 요령’ 이라는 것이 저절로 생겨났다. 그것은 화가의 취흥(醉興)이 바야흐로 막 올랐으되 취하지는 않은 아슬아슬하고도 절묘한 순간을 포착해서 잽싸게 손에다 붓을 쥐어주는 것이었다.

 

김명국은 원래 해학적인 인물이었다. 하지만 작품에 보이는 그의 호 연담(蓮潭)은 ‘연꽃 핀 못’이란 뜻이다. 연꽃은 더러운 진흙물 속에서 뿌리를 박고서도 늘 한없이 곱고 깨끗한 봉오리를 꽃피운다. 그래서 괴로운 사바세계(娑婆世界) 속에서 거짓 없는 깨달음을 얻은 경지를 상징하는 것이 바로 연꽃이다. 그는 나라 안에 첫째가는 화원이었지만 타고난 신분이 천했다. 그래서 진흙물에서 연꽃들이 핀다는 생태가 어떻게 보면 그의 처지와 닮은 데가 있었다. 전하는 그의 갖가지 기행(奇行)들은 아무래도 울울했던 자신의 처지와 관련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불화(佛畵)는 그림을 잘한다고 해서 아무나 그리는 것이 아니며, 본래 스님이 아니면 적어도 재가신도(在家信徒)가 그리는 것이 법도였다. 이러한 점들을 고려하면 아무래도 김명국은 불자였지 싶다. 그래서 그의 취중일갈(醉中一喝) 역시 단순한 장난만은 아니었다고 생각된다.

 

김명국이 그린 유명한 <지옥도>가 있었는데 현재 전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것을 그렸을 때의 심리 상태와 창작 과정은 <달마상>을 그릴 적이나 마찬가지였다고 생각된다. 요컨대 작품에 대한 생각은 오래고, 그 구상은 깊되, 드러난 필획은 매우 간결하였다. 우리 옛 그림의 의미심장함이 여기에 있다. 이를테면 달마는 이미 김명국이라는 한 사람의 존재 깊은 곳에서 충분히 농익어 있었다. 달마는 김명국에게 대상(對象)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었으며 역사속의 인물이 아니라 살아 숨 쉬는 존재였다. 그러므로 김명국은 <달마상>을 ‘창조’할 수 있었다. 물론 김명국의 달마는 육신의 달마가 아니라 정신의 달마였다. 그러므로 <달마상>은 또한 약동하는 선(線)이 될 수밖에 없었다.

 

<달마상>에는 색(色)이 없다. 먹의 선(線), 그것은 형태이기에 이전에 하나의 정신의 흐름이기 때문에 사물의 존재적 속성의 대명사인 색깔은 껴안을 자리가 없었다. 색이 필요하지도 않았지만 거기에 색을 칠할 수도 없었다. 필요한 모든 것이 묵선(墨線) 속에 이미 갖추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불가(佛家)에서 색(色)은 존재를 가리킨다. 실제로 세상 각각의 색에 모두 각각의 감정이 담겨 있다. 이런 느낌, 저런 느낌, 세속 일상의 자질구레함과 화사하고 범속한 욕망들을 모두가 나름의 색깔을 가지고 있다. 색깔이 소멸된 것이 흑색이고 먹빛이다. 그러나 흑색은 참선이 그러하듯이 소극의 상징이 아니다. 고요한 듯하지만 오히려 타오르는 불길보다도 더 맹렬한 것이 선(禪)이라고 하지 않는가? 흑색은 모든 존재의 소멸인 동시에 다시 온갖 존재의 출발점이 된다. 모든 색을 낳을 수 있는 생명의 원점(原點)인 것이다. 그래서 <달마상>에는 색이 없다. 

 

오주석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1> p.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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