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 이와 그려진 이가 하나

 

눈처럼 흰 화선지가 펼쳐져 있다. 옆에는 검은 먹물이 담긴 벼루와 그 농담을 조절하기 위한 빈 접시 하나. 그리고 붓 한 자루가 있다. 화가는 한참 동안을 텅 빈 화면 속에서 무엇을 찾는 것처럼 가만히 쏘아 보고만 있다. 이윽고 붓대를 나꿔채어 하얀 종이 한복판에 옅은 선을 빠르게 그어 나간다. 억센 매부리코에 부리부리한 눈, 풍성한 눈썹과 콧수염, 한 일 자로 꽉 다문 입, 턱 선을 따라 억세게 뻗쳐나간 구레나룻을 거침없이 그어댄다. 구레나룻 선을 쳐나갈 때는 마치 한창 달아오른 장단에 신(神 )이 들린 고수(鼓手)처럼, 연속적으로 퉁기듯이 반복하면서 묵선을 점점 더 여리게 조절하며 붓에 운율을 실어 풀어 놓았다. 끝으로 이마와 뺨의 윤곽선을 긋고 나자 미묘한 표정의 달마가 확실하게 떠올랐다.

 

아마 붓을 종이에 대기 시작한 지 채 1분도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모두 예리한 붓끝으로 빠르게, 그러나 약간은 조심스럽게 몇 줄의 먹선을 그은 게 다지만, 이로써 달마는 살아 있는 존재가 되었다. 얼굴에 만족한 화가는 이제 좀 더 호기롭게 가사(袈裟)로 감춰진 몸 부분을 그리기 시작한다. 진한 먹물을 붓에 듬뿍 먹여 더 굵고 빠른 선으로 호방하게 쳐나갔다. 꾹 눌러 잡아채는가 하더니 그대로 날렵하게 삐쳐내고, 느닷없이 벼락같이 꺾어내서는 이리 찍고 저리 뽑아낸다. 열 번 남짓 질풍처럼 여기저기 붓대를 휘갈기고 나니 달마의 몸이 화면 위로 솟아올랐다. 달마는 두 손을 마주 잡고 가슴 앞에 모았다. 윗몸만 그려졌음에도 불구하고 그 자세는 분명 앞을 향해 성큼 발을 내딛고 있었다.

 

다시 화면을 지그시 바라본다. 구레나룻 오른 편 끝이 두포(頭布)의 굵은 획과 마주친 지점에 먹물이 아직 다 마르지 않았다. 슬쩍 붓을 대어 위로 스쳐준다. 훨씬 좋아졌다. 다시 구레나룻 아래 목 부분에 날카롭게 붓을 세워 가는 주름을 세 줄 그려 넣었다. 이제 달마의 얼굴과 몸은 하나가 되었다. 작품이 완성된 것이다. 끝으로 달마의 얼굴 앞쪽 화면 가장자리에 기대어 ‘연담(蓮潭>’이란 자신의 호(號)를 휘갈긴다. 글씨 획은 그림의 선과 완전히 꼭 같은 성질의 선이다. 빠르고 거침없는 그 획들은 그려진 달마와 그린 사람이 하나임을 말해 준다. 인장(印章)을 찾아 누른다. 화가의 호와 이름이 선홍색 인주 빛깔에 선명하다. ‘연담(蓮潭)‘ ’김명국인(金明國印)‘...

 

 

진흙물에서 연꽃을 피우다.

 

김명국은 조선의 일개 화원(畵員)이었다. 다시 말해 그림을 그리는 하급 벼슬아치였다. 화원은 양반 다음 가는 중인(中人)들의 직업이었지만 그는 그보다 더 아래인 천민 출신이었다. 김명국은 성품이 호탕해서 얽매인 데가 없었고 거리끼는 것 또한 없었다. 그가 엄청난 술꾼이었던 것은 ‘취한 늙은이’라는 뜻의 별호(別號) ‘취옹(醉翁)’으로 짐작된다.

 

호주가(好酒家)인 명국은 대개 술기운을 틈타 그린 작품에 걸작이 많았으며, 술을 못 마시게 되면 아예 붓을 잡으려고도 하지 않았다 한다. 그래서 취옹의 그림을 얻으려는 사람들은 반드시 좋은 주안상을 마련해야만 했다. 하지만 넋 놓고 술대접만 하다가는 화가가 완전히 곤드레만드레가 되어 버리는 까닭에 아무렇게나 그어댄 졸작을 받는 낭패 또한 적지 않았다. 그래서 세간에는 소위 ‘취옹의 그림을 받아내는 요령’ 이라는 것이 저절로 생겨났다. 그것은 화가의 취흥(醉興)이 바야흐로 막 올랐으되 취하지는 않은 아슬아슬하고도 절묘한 순간을 포착해서 잽싸게 손에다 붓을 쥐어주는 것이었다.

 

김명국은 원래 해학적인 인물이었다. 하지만 작품에 보이는 그의 호 연담(蓮潭)은 ‘연꽃 핀 못’이란 뜻이다. 연꽃은 더러운 진흙물 속에서 뿌리를 박고서도 늘 한없이 곱고 깨끗한 봉오리를 꽃피운다. 그래서 괴로운 사바세계(娑婆世界) 속에서 거짓 없는 깨달음을 얻은 경지를 상징하는 것이 바로 연꽃이다. 그는 나라 안에 첫째가는 화원이었지만 타고난 신분이 천했다. 그래서 진흙물에서 연꽃들이 핀다는 생태가 어떻게 보면 그의 처지와 닮은 데가 있었다. 전하는 그의 갖가지 기행(奇行)들은 아무래도 울울했던 자신의 처지와 관련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불화(佛畵)는 그림을 잘한다고 해서 아무나 그리는 것이 아니며, 본래 스님이 아니면 적어도 재가신도(在家信徒)가 그리는 것이 법도였다. 이러한 점들을 고려하면 아무래도 김명국은 불자였지 싶다. 그래서 그의 취중일갈(醉中一喝) 역시 단순한 장난만은 아니었다고 생각된다.

 

김명국이 그린 유명한 <지옥도>가 있었는데 현재 전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것을 그렸을 때의 심리 상태와 창작 과정은 <달마상>을 그릴 적이나 마찬가지였다고 생각된다. 요컨대 작품에 대한 생각은 오래고, 그 구상은 깊되, 드러난 필획은 매우 간결하였다. 우리 옛 그림의 의미심장함이 여기에 있다. 이를테면 달마는 이미 김명국이라는 한 사람의 존재 깊은 곳에서 충분히 농익어 있었다. 달마는 김명국에게 대상(對象)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었으며 역사속의 인물이 아니라 살아 숨 쉬는 존재였다. 그러므로 김명국은 <달마상>을 ‘창조’할 수 있었다. 물론 김명국의 달마는 육신의 달마가 아니라 정신의 달마였다. 그러므로 <달마상>은 또한 약동하는 선(線)이 될 수밖에 없었다.

 

<달마상>에는 색(色)이 없다. 먹의 선(線), 그것은 형태이기에 이전에 하나의 정신의 흐름이기 때문에 사물의 존재적 속성의 대명사인 색깔은 껴안을 자리가 없었다. 색이 필요하지도 않았지만 거기에 색을 칠할 수도 없었다. 필요한 모든 것이 묵선(墨線) 속에 이미 갖추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불가(佛家)에서 색(色)은 존재를 가리킨다. 실제로 세상 각각의 색에 모두 각각의 감정이 담겨 있다. 이런 느낌, 저런 느낌, 세속 일상의 자질구레함과 화사하고 범속한 욕망들을 모두가 나름의 색깔을 가지고 있다. 색깔이 소멸된 것이 흑색이고 먹빛이다. 그러나 흑색은 참선이 그러하듯이 소극의 상징이 아니다. 고요한 듯하지만 오히려 타오르는 불길보다도 더 맹렬한 것이 선(禪)이라고 하지 않는가? 흑색은 모든 존재의 소멸인 동시에 다시 온갖 존재의 출발점이 된다. 모든 색을 낳을 수 있는 생명의 원점(原點)인 것이다. 그래서 <달마상>에는 색이 없다. 

 

오주석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1> p.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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