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 지친 나에게 내가 해주고 싶은 말
서동식 지음 / 함께북스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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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사람들은 공짜를 좋아해

하지만 공짜를 소중하게 여기지는 않아

사람들은 공짜로 얻은 것들을 노력하지 않고

아무런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얻은 것들을

우습게 여기고 함부로 대해

노력 없이 얻었다고 해서

모두 소중하지 않은 것은 아니야

때로는 노력 없이 얻은 것들이

세상 그 무엇보다 소중할 때도 있어

너 역시 노력 없이 거저 얻은 소중한 것들을

너무 가볍게 여기고 있지는 않니?

    

너 자신을 사랑하지 않고

너 자신을 믿어주지 않고

너 자신을 칭찬하지 않고

너 자신에게 할 수 있다 말해 주지 않고 있다면

너는 지금 네 인생에 브레이크를 밟고 있는 셈이야

이제 너의 인생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브레이크에서 발을 떼자

너 자신을 사랑해 줘

너 자신을 믿어줘

너 자신을 칭찬해줘

너 자신에게 할 수 있다 말해줘

네 인생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엑셀러레이터를 힘껏 밟아

   

네가 동의하지 않는 한

세상 누구도 너를 열등하다고 느끼게 할 수 없어

너의 자존심이 무너지고

심한 열등감에 시달리고 있다면

그건 너를 열등하다고 말하는

너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무지한 사람들의 의견에 네가 동의했기 때문이야

니 스스로조차 네가 너무 부족하고 모자란 사람이라고

남몰래 생각하고 있었다면 더욱 괴롭겠지

무대 위에서 움츠러들고 부끄러워하는 가수가 매력이 없듯이

인생이라는 무대 위에서 스스로를 최고라고 믿지 않는 사람은

매력적이지도 근사하지도 않아

너의 무대에서만큼은

네가 세상에서 가장 멋지고 아름답고 근사한 사람이라고 생각해

너의 무대에서 가장 빛나는 주인공은 바로 너야

가장 빛나는 주인공답게 가장 반짝이는 주인공다운

자신감을 가지자

   

너를 이해해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생각될 때에도

언제나 한 명쯤은 네 편이 있어

너 역시 그런 경험이 있잖아

누군가 부당하고 정의롭지 못한 일을 당했을 때

그를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지는 못해도

그가 잘 되기를 바라고 기도해주며

마음속으로 그의 편이 되어 준 적이 말이야

지금 이 순간에도 외로운 너를 위해

누군가 기도해 주고 있을지도 몰라

어쩌면 너보다 더 너의 일에 분노하고

가슴 아파할지도 모를 일이야

너의 편이 너의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혼자라고 생각하지는 마

비록 너의 편들이 두려움이 많아

적극적으로 너에게 도움을 주지는 못하지만

마음속으로 열심히 너를 응원하고 있을 거야

그들을 위해서라도 절대 포기하지 말고 승리를 쟁취해

   

밝은 대낮에 사람들의 응원과 환호를 받으며

꿈꾸는 사람도 있지만

어두운 밤에 아무도 모르게 외로이

꿈꿔야 하는 사람도 있지

어두운 밤에 꿈을 꾸는 것은

외롭고 지치고 때로는 너를 우울하게 만들지만

그래도 꿈을 꾸고 살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이야

칠흑같이 어두운 밤

그 어떤 응원도 도움도 없이 꿈을 꾸는 너일지라도

절대 초라하거나 불행하다고 생각하지 마

언젠가는 너도 낮을 비추는 해가 될 수 있을 거야

분명히 그렇게 될 거야

    

후회 하나 없이 사는 인생이 있을까?

나는 언제나 완벽한 선택만을 하며 살아왔어

라고 말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있을까?

비틀거리며 걸어도 포기하지 않고 걸어왔다면

그것으로 된 거야

한 번쯤 발을 헛디딜 수도 있고

한 번쯤은 넘어질 때도 있고

한 번쯤은 벤치에 앉아 게으름을 피울 수도 있어

사람이니까

우리는 신이 아니라 사람이잖아

사람이니까 실수해도, 후회할 일을 해도 괜찮아

너의 선택이 네가 원하는 결과를 내지 못했다고 해서

네가 그 선택에 후회한다고 해서

그 선택이 꼭 나쁜 선택인 것은 아니야

그때 그랬어야 했었지

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겠지만

정말 그때 그랬으면 정말 좋은 결과가,

네가 원하는 완벽한 결과가 나왔을까?

너의 선택이 완벽하지 않더라도

최선의 선택을 했다면 그걸로 된 거야

네가 후회하고 있는 그 선택도

정말 오래 고민하고 생각해서 선택한 거잖아

충분히 신중했다면

그리고 최선이라는 확신 속에서 한 선택이라면

그 선택이 그 상황에서 가장 옳은 선택이었을 거야

그러니 이제 과거의 선택에서 빠져나와

후회 속에 파묻혀 또 후회할 일을 만들 셈이야?

     

너무 많은 실수를 저지르고

잘못된 선택으로 인생을 망쳐 버린 것처럼 보여도

아직 너에게 남은 날이 너무도 많아

그리고 오늘은 너에게 남은 날 중 첫 번째 날이지

뿐만 아니라 너에게 남은 인생에서

지금 네가 가장 젊기까지 해

이것 봐 젊은이, 자네는 그 청춘으로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갈 텐가?

   

사람들은 너에게 항상 말하지

어느 대학에 가야 한다

어느 직장에 들어가야 한다

어떤 사람이랑 결혼해야 한다

애는 몇을 낳아야 한다

집은 몇 평이어야 한다

노후 준비는 어떻게 해야 한다

그런 말들을 듣기 싫어하면서도

너는 어느새 그런 말들에 이끌려 살아왔어

그 사람들의 말들이, 그런 충고들이

정말 너를 행복하게 해 주었어?

아니잖아

너를 행복하게 하기는커녕

오히려 너를 더 지치게 했지

주변 사람들의 말, 기대를 충족시키느라

너는 완전히 그로기 상태잖아

언제까지 그렇게 살 수 있을 것 같아?

이미 너는 너무 지쳐 버렸는데

지칠 대로 지쳐서 아직도 주변 사람들의 기대를

채우려 한다면 이제 그런 바보 같은 일 따위는 그만둬

그러라고 사는 인생이 아니잖아

   

신은 죄를 지은 아담에게 벌을 내렸어

일을 해야 먹고 살 수 있게 했지

하지만 일하다가 죽으라고 한 적은 없어

건강을 잃을 만큼 일만 하라고

인생의 모든 즐거움을 포기하고 생존에만 매달리라고

쉬지 않고 일, 오직 일만하라고 한 적은 없어

가끔 네가 하고 싶은 일을 하거나

혹은 네가 쉴 수 있는 기회가 생겨서 휴식을 취하면

너는 불안감을 느끼지

왠지 네가 너무 게으른 것 같고

더 열심히 뛰어야만 될 것 같고

이래서는 안 될 것 같고

그렇게 불안하고 초조함을 느끼며

하고 싶은 것도, 제대로 된 휴식도 취하지 못해

너는 사람이야

계속 일만 하다가는 네 수명이 짧아져 버릴지도 몰라

아무리 의지가 강하다 해도 일만 하며 살 수는 없어

너에겐 쉼이 필요해

쉬는 건 죄가 아니라 당연히 해야 하는 의무에 더 가까워

그러니 이제 편안히 쉬어

불안에 떨지 말고 초조해하지도 말고

편히 쉬어

신은 아담에게 휴식을 취하라고 밤을 준 것이니까

  

다른 사람들이 널 어떻게 볼까

다른 사람들이 널 어떻게 평가할까

걱정하고, 염려하는 일은

너의 마음과 몸을 지속적으로 갉아먹는 일이야

도무지 알 수 없는 사람들의 마음을 알려고 하니

어떻게 지치지 않을 수 있겠어

너는 다른 사람의 생각을 알고 싶겠지만

사실 그들은 너에게 별로 관심이 없어

그들의 관심은 자기 자신에게 있을 뿐이야

너 자신을 봐

너도 마찬가지잖아

너의 관심도 온통 너 자신에게 있지

다른 사람 사는 일에는 관심 없잖아

다른 사람이 널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것도

결국 너 자신에 대한 관심일 뿐이잖아

다른 사람들이라고 특별히 다를까?

그들도 아마 널 보며 너와 같은 걱정을 하고 있을 걸

저 사람은 날 어떻게 생각할까?”

바보 같은 걱정과 고민으로

너 자신을 그만 괴롭혀

어차피 답도 없는 고민 따위 해서 뭐 하겠어

무의미한 고민이라는 거 이미 너도 알고 있잖아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서 너를 자유롭게 해 줄 수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너 자신이야

이제 그만 타인의 시선과 평가에서

너를 해방시켜줘

너에게 이제 자유를 허락해

   

하고자 했던 일이 실패하고

고민하며 준비했던 일들조차 모두 실패해 버리고

일상 속의 작은 일들조차 제대로 굴러가지 않으면

너는 자신감을 잃어버리고 기가 죽어 버리지

괜히 사람들이 널 더 우습게 보는 것 같고

사소한 일에도 무시당하는 것 같고

그저 너 자신이 실패자인 것만 같은 기분에

하루 종일 우울하고 슬프고

밥 먹다가도 우울해서 눈물이 나고

내가 왜 이럴까 하면서도

기분이 좀처럼 나아지지 않을 때가 있어

그런 상황에서 네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사실 아무것도 없어

무언가 더 해서 이 상황을 변화시켜야만 할 것 같은데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면

더 무력감을 느끼고 우울해지기도 해

너의 상황을 바꾸기 위해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면

아무리 고민해도 좋은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하지 마

무언가를 해야만 긍정적인 변화가 일어나는 것만은 아니야

때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야 변화가 일어날 때도 있는 법이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언제나 정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야

그저 기다리는 것이 최선의 행동일 때도 있어

너의 감정과 너의 마음이 회복될 때까지

새로운 변화의 기회와

내가 해야 할 명확한 행동이 보일 때까지

그때까지 차분하게 기다려

우울한 실패가 아니라

먹잇감을 매섭게 덮칠 기회를 노리는 맹수처럼

수풀 속에서 조용히 먹잇감이 나타날 때까지 기다려.

  -내용 중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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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근묵란도> 민영익. 종이에 수묵.  128.5x 58.4cm. 호암미술관 소장

 

<노근묵란도(露根墨蘭圖)>는 예사 난초그림이 아니다. 고운 자태와 그윽한 향기를 자랑하는, 그저 고상한 옛 그림만은 아니다. 그것은 작가 민영익(閔泳翊. 1860~1914)의 분신이다.

1910829, 벌써 일주일 전에 이완용(李完用) 등이 남몰래 조인해두었던 매국(賣國)의 한일합방조약이 순종(純宗)의 조칙을 가장하여 공식으로 발표되었다. 오백 년 조선 왕조가 하룻밤 꿈인 양 스러진 것이다. 비보(悲報)를 접한 민영익은 쓰라린 통한과 오갈 데 없는 절망감 속에서 뿌리 뽑힌 난초를 그렸다. 가슴 저미는 망국(亡國)의 아픔을 난 이파리마다 아로새길 적에 난꽃이 눈물에 흠뻑 젖은 눈처럼 그려진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림에는 빼앗긴 국토의 흙 한 줌도 그리지 않고, 연약한 뿌리는 마치 쑥대머리인 양 처참하게 드러내었다. 청나라 상해(上海)에서 망명생활을 하던 민영익은 합방의 소식을 듣자 날이면 날마다 폭음으로 지새웠다. 그리하여 1914년 윤515, 뿌리 뽑힌 난초 같았던 그의 삶도 마감하였다.

 

민영익은 조선후기의 정국을 주도했던 노론(老論) 명문가 출신이었다. 명성황후(明成皇后) 민씨가 일찍이 그 총명함을 눈여겨보고 친정의 양자로 끌어 들였다. 그는 황후의 조카로서 약관 19세에 이미 민씨 세도(勢道)의 중심이 되었다. 그리하여 1883년에는 서양 문물을 확인코자 지구를 한 바퀴 돌아 미국과 유럽을 순방하고 남모르게 개화(開化) 의지를 키워 나갔다. 그러나 이듬해 갑신정변에서 뜻밖에도 자신이 키워왔던 김옥균(金玉均) 등에게 습격을 받고 생부(生父)마저 잃는 비극을 맞았다.

 

이후 민영익은 복잡다단한 정세 때문에 27세부터는 홍콩, 상해 등지에서 망명 아닌 망명 생활을 하게 되었다. 30세에 일시 귀국해 이조판서에 오른 일도 있었지만, 대체로 중국에 머문 날이 더 많았다. 그리고 1895년 다시 을미사변이 터졌다. 자신의 절대적 후원자였던 국모(國母) 명성황후가 일인들에게 비참하게 시해되고 나자, 이제는 정치적 포부를 완전히 접어두고 시서화(詩書畵)에 남은 뜻을 붙일 수밖에 없었다.

 

민영익은 원래 추사 김정희의 학문을 이어받았던 인물이다. 그의 호 운미(芸楣)는 청나라의 대학자 완원(1764~1849)의 호 운대(芸臺)()’ 자를 취한 것으로, 이것은 김정희가 스승으로 모셨던 완원의 성()을 따서 완당(阮堂)’이라 했던 것과 같은 맥락이다. 운미는 15세 어린 시절부터 서화로 이름났고 특히 문인화의 정수로 일컬어지는 묵란을 잘 쳤으니 이 또한 바로 김정희 문하의 학예일치(學藝一致) 전통에 따른 것이었다. 그러나 귀인자제요, 왕실 외척으로서 소년세도(少年勢道)라는 말까지 들었던 그였지만 이제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상해에서 민영익은 우창쉬(1844~1927), 포화(蒲華.1834~1911) 등 서화와 전각(篆刻)의 대가들과 어울리며 나날을 보냈다. 당시 중국의 지우(知友)들은 민영익이 연마한 최고의 학예 수준과 조선 귀공자의 고고한 품격에 감탄해 마지않았다. 이는 중국을 대표하는 화가이자 최고의 전각자였던 우창쉬가 그를 위해 무려 300알이 넘는 인장(印章)을 새겨준 사실로 증명된다.

 

19091026일 안중근(安重根) 의사(義士)께서 을사늑약의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하얼빈 역에서 쏘아 죽이고 여순 감옥에 갇혔다는 소식이 머나먼 상하이까지 들려왔다당시 민영익은 사기를 당하여 재정적으로 큰 손해를 보고 있었지만 즉각 거금 4만 원을 쾌척하여 러시아와 프랑스인 국제변호사를 사서 고국의 열혈남아를 구하고자 백방으로 노력하였다. 이들 두 외국인 변호사는 일본의 거부로 끝내 법정에 설 수 없었지만 민영익은 이국의 동떨어진 삶 속에서나마 끝까지 조선을 잊지 않고 있었다. 그가 <노근묵란도>를 그린 뜻을 미루어 짐작케 하는 이 일화는 <매천야록>에 보이는 것인데, 그 저자인 황현(黃玹) 선생 역시 한일합방을 목도하고 통분했던 나머지, 일개 선비의 신분이었지만 참담한 책임감을 못 이겨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은 예부터 고고한 인격자를 뜻했다. 특히, 왕조시대에는 임금을 향한 충신의 일편단심(一片丹心)을 상징하는 꽃이었다. 일찍이 <예기(禮記)>“5월 여름에 난초를 모아 우려낸 향기로운 물로 몸을 씻어 깨끗이 한다.(五月蓄蘭 爲沐浴也)”고 하였다. [주역] <계사전>에는 마음을 함께하는 착한 사람의 말은 그 향내가 마치 난초와 같다.(同心之言 其臭如蘭)”는 글이 있으니, “그런 까닭에 착한 사람과 함께하는 것은 갖가지 난초가 놓인 방에 들어가는 것과 같아서 오래 있으면 저절로 그 향내가 몸에 배게 된다.”는 말이 나왔다. 이로부터 훌륭한 벗끼리의 사귐을 일러 지란지교(芝蘭之交)라 불렀다. 난꽃은 이른 봄에 피지만 추운 겨울에도 그 고결한 모습은 한결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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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근묵란도>가 그 자체로 아름다운 그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런 분은 정녕 우아하기 이를 데 없는 1896년 작 <노엽풍지도(露葉風枝圖)>부터 감상해보시는 편이 좋을 성 싶다. 이 작품은 먹빛이 윤택해서 참기름이 물 위를 떠다니는 듯하고, 낭창낭창하게 뽑아 올린 긴 이파리의 미끈한 탄력이며 빼어난 자태가 비할 데 없이 곱다. 꽃 이파리를 보아도 거침없이 시원스럽게 펼쳐서 망울진 작은 봉오리와 함께 길고 짧고 크고 작은 조화의 극치를 보이며 작은 한 획 속에도 드러난 농담의 변화가 천연스럽다.

 

향그러운 꽃은 물론이요, 흙 위에 툭툭 친 이끼점(苔點)조차 너글너글하고 유정하며 물기가 낙낙하니 그야말로 귀인자제의 고상한 품격 그대로다. 여백의 균형 또한 수려하기 이를 데 없다. 그리하여 왼편 위쪽에 중국 서화가 포화(蒲華)는 다음과 같은 화제(畵題)를 적었다.

 

나라(중국)안에 난 그리는 사람 드무니

마땅히 나라 밖에서 구해야 하리

그대(민영익)는 참된 이치 터득했구려

먹 향기 이파리에 드러나 바람을 타네.

海內華蘭人少  當於海外求之  君家能悟眞諦  墨香露葉風枝

 

이제 <노근묵란도>를 보자. 한눈에 빽빽하게 떨기를 이루어 타는 듯한 먹선들이 시커멓게 엉겨 있다. <노엽풍지도>의 여백은 얼마나 여유롭고 풍치가 있었던가? 그러나 민영익은 이제 고통에 압도되어 숨쉬기도 어려웠던 모양이다. 난 이파리가 촘촘해서 마치 파 묶음 몇 단을 세워놓은 듯, 바람이 들고날 작은 틈새조차 없다. 쭉 뽑아 내친 듯 격렬한 이파리들은 다시 가늘어짐 없이 갑자기 툭 끊겨버렸다.

 

<노엽풍지도>의 이파리는 얼마나 사랑스럽게 굽이쳤던가? 그러나 이제 민영익은 마치 철사를 잘라놓은 선(鐵線)’인 양 퉁명스레 붓을 세워 그냥 꼿꼿하게 꼿꼿하게만 쳐내고 있다. 그것도 매우 급박하게 몰아붙였으며, 심지어 잎 위에 잎을 거듭 때려 넣기도 하였다. 막대기처럼 뻣세고 짤막짤막한 저 이파리들, 끝에 가서 오히려 더 굵어진 저 이파리들을 보면, 그것은 마치 화가가 무력한 자기 자신을 매질하는 화초리인 양 느껴진다. 지나친 감상일까? 이파리 묵선은 물기가 적고 까슬까슬해서 완전히 메말라 타버린 작가의 가슴속을 들여다보는 듯하다.

 

꽃줄기는 흐리고 좀 더 물기가 많은 묵선(墨線)으로 세웠다. 이어 꽃이파리를 붙였는데 먹이 채 마르기 전에 그 위로 짙은 묵점(墨點)들을 번지게끔 덧찍어 화심(花芯)을 묘사했다. 그러나 잎은 활짝 핀 것이 거의 없고 이제 막 벌어지려는 것이 대부분이다. 비를 맞은 듯 하나같이 아래로 수그러진 꽃망울들은 마치 눈물에 흠뻑 젖은 사람의 퉁퉁 부은 눈처럼 느껴진다. 저 많은 눈들이 하나같이 울고 있다.... 왼편 떨기 중간에 고개 숙인 두어 송이 꽃을 보라. 머리를 깊이 처박고 하염없이 울고 있다.... 허옇게 드러난 뿌리 쪽으로 시선을 옮긴다.

 

중간 농도의 먹선을 천천히 끌어당겨 그렸는데 흐트러진 머리칼인 양 심란하기 그지없다. 이리저리 봉두난발처럼 송두리째 드러난 뿌리를 한 줄 두 줄 그어가던 민영익의 핏기없고 처량 맞은 눈빛이 언뜻 뇌리에 어른거린다. 그러나 역시 그는 소년 재상을 지낸 인물이다. 오른 편 위로 아주 길게 쭉 뽑아낸 이파리며, 오른편 아래 구석 올곧게 똑바로 세운 꽃대의 의연함은 결코 현실의 비참함 속으로 함몰되지 않는다.

 

운미(芸楣)의 난잎은 당시 유행하던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 1820~1898)의 그것과는 전혀 다르다. 화법에서 말하는 이른바 세 번 꺽어내기(三絶法)’에 전혀 얽매임 없이 곧게만 곧게만 뻗어나간 것이다. 이렇듯 호방하게 이파리를 길게 뽑아내는 방법(長葉法)’은 중국의 조맹견(1199~1295), 조맹부(1254~1322), 문징명(1470~1559) 등으로 이어져 내려오는 오래된 예술 전통 위에 서 있는 특징이다. 하지만 <노근묵란도>의 그것은 저들 중국 대가들의 작품보다 더욱 매섭고 옹골찬 기세를 보인다.

 

그것은 작품이 기본적으로 민영익의 비극적인 삶에서 연유한 절절한 개인감정으로부터 흘러나온 까닭이겠지만, 한편으론 추사 김정희의 강경하면서도 엄정했던 예술 유산에 힘입은 것이라고 생각된다. 난이란 본래 결코 부드러운 식물이 아니다. 여린 듯한 그 잎사귀를 가만히 만져보라. 강인하고 뜨거운 혼이 뿌리 깊이 숨어있다   오주석 <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 2> p.176~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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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의 기원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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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문명의 고발을 통해 선량한 인간본성을 회복하고, 소수의 세상이 아닌 다수가 공존할 수 있는 심도있는 주제를 다루는 정유정 작가의 소설은 간호사 출신답게 꼼꼼한 구성으로 강인한 흡입력과 특유의 서사력을 보여준다. 작가의 바람처럼 날로 메말라가는 인간의 정서와 선(善)의 회복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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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왕자와 깊이 만나는 즐거움 - 최복현 시인이 <어린왕자>를 사랑한 30년의 완결판
최복현 지음 / 책이있는마을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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섭씨 90, 목욕탕에 가면 고온 찜질방이 있어요. 거기에 모래시계가 있잖아요. 그놈을 시작으로 해 놓고 들여다보고 있으면, 모래가 밑으로 규칙적으로 쏟아져요. 뜨거움을 참으며 그것을 보노라면 아주 더디게 내려가요. 그러다 반이 넘으면 제법 빨리 쏟아져 내려요. 그게 빨라진 것은 아니잖아요. 이렇게 심리적인 시간과 물리적인 시간은 확연하게 차이가 나요. 이를테면 사랑하는 사람과 있을 때와 미운 사람과 있을 때에 느끼는 시간은 심리적 시간이에요. 아주 확연하게 시간이 빠르거나 더디지요. 우리는 때로 그런 자기 심리에 속곤 해요.

 

요즘 사람들은 아주 바빠요. 시간은 예나 지금이나 같은 속도로 흐르는데, 이전 사람들보다 현대인은 더 바빠요. 그러다 보니 할 수만 있다면 모든 것은 쉬운 방법으로 해결하려고 해요. 가능하다면 돈으로 해결하려고 해요. 그렇게 쉬운 것만 생각하니 자기 세계 외엔 관심을 두려 하지 않아요. 그래서 점점 이기적으로 바뀌는 거고요. 세상이란 자기 안에만 있는 것으로 알고, 자기가 알고 있는 것으로만 세상 모든 일을 판단하려고 해요. 그러니 다른 사람의 조언이나 충고가 귀에 들어올 리가 없지요. 그렇게 아집만 늘고, 알량한 지식으로 자기가 아는 것이 다인 양 우기는 것이에요.

   

바쁘다는 구실로 자기 안에 갇혀 있어서 그래요. 이렇게 현대인들은 겉으로는 아주 똑똑한데 실상은 점점 어리석어져 가요. 그래도 살아가는 데 지장은 없어요. 웬만한 건 자기 안에 있는 것들로, 자기가 길들인 것들로 그럭저럭 살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우리에겐 언젠가 문득 사람이 그리운 날, 사람이 필요한 날이 와요. 다른 사람이 아닌 자기 속내를 터놓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정말 친한 사람, 정말 친구라 칭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한 날이 오고야 말아요. 어린 왕자와 여우도 친구란 존재의 필요를 느꼈어요. 서로가 서로에게 필요한 그런 만남은 참 좋은 거니까요. 그 다음에 서로를 맞춰보고, 맞추어 가야지요. 그래서 서로가 친구가 되기로 했어요.

   

여우는 말없이 오랫동안 어린왕자를 바라보았어요.

제발....나를 길들여 주렴!”

여우가 말했어요.

나도 정말 그러고 싶어. 하지만 난 시간이 별로 없는 걸. 나는 친구들을 찾아야 해,

알아야 할 것도 많고.“

어린왕자가 대답했어요.

누구나 자기가 길들인 것밖에는 알 수 없어. 사람들은 이제 무얼 알 만한 시간조차 없어.

그들은 상점에서 만들어져 있는 모든 것을 사는 거야. 하지만 친구를 파는 상인은 전혀 없기 때문에 사람들은 친구가 없는 거야. 네가 친구를 갖고 싶다면 나를 길들이면 돼!“

여우가 말했어요.

뭘 해야만 되니?”

어린왕자가 말했어요.

아주 참을성이 있어야 돼. 우선 넌 나와 좀 떨어져서 그렇게 풀밭에 앉아 있는 거야.

난 곁눈질로 널 볼 거야. 그리고 넌 아무 말도 하지 마. 말은 오해의 씨앗이거든.

하지만 날마다 너는 조금씩 더 가까이 앉으면 돼.....,“

   

참으로 좋은 친구가 필요한데, 그날엔 친구를 만들 수 없는 거예요. 친구란 돈으로 살 수 없잖아요. 길들여야 하는데, 길들인다는 건 제법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해요. 상대에 대해 많이 알아야 하니까요. 겉모습만이 아니라 속 모습을 제대로 알아야 하니까요. 겉모습은 잘 변하지만 진정한 속 모습은 변하지 않으니까요. 요한 모든 것은 겉모습 뒤에, 말이나 행동이란 표현 뒤에, 겉으로 드러난 표정 뒤에 숨어 있으니까요. 그걸 알 만한 시간이 필요해요.

   

좋은 사람을 곁에 두려면 그만큼 시간이 필요해요. 조급해선 안돼요. 아무리 사람이 필요해도 진실한 관계를 위해선, 가까워지려면 기다림과 그에 따르는 참을성이 필요해요. 아무리 급해도 조금씩 가까워져야 하는 거예요. 그래야 상대를 제대로 알아요. 상대에게 나를 제대로 알려줄 수 있어요. 그럼에도 조급한 마음에 말을 앞세우면 그건 실수를 부르는 지름길이에요.

말은 오해의 씨앗이니까요. 말로 마음을 포장하려고도 말아야 해요. 그래야 내가 상대에게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어요. 물론 나도 상대를 그렇게 봐야 하고요.

   

문명이 발달할수록, 진실한 사람이 필요해요. 사람이 사람인 것은 사람 없인 살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에요. 귀여운 강아지가 사람에게 한동안은 마음의 위로를 줄 수 있어요. 하지만 강아지는 사람이 줄 수 있는 걸 다 줄 수 없기 때문에 결국 사람이 필요해요. 이제라도 바쁘다는 구실을 대지 말고, 뭐든 돈이나 명예나 힘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편견을 버리고, 억지로라도 여유를 만들어 사람을, 옆에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자고요. p.20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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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월은 오디의 계절입니다. 뽕나무는 아주 오래 전 중국이나 우리나라에서도 자생해 온 인간의 생활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 나무입니다. 처음엔 야생 뽕나무들이 산에 많이 군락을 지어 자랐을 것이고, 사람들은 뽕잎을 이용해서 누에치기를 했습니다. 중국의 고서나 시경 같은 책을 보면 뽕나무와 관련된 시문이 자주 등장합니다.

 

뽕나무는 하나도 버릴게 없습니다. 예전에는 오디를 딸 목적보다 주로 양잠을 할 목적으로 뽕나무를 심고 키웠습니다. , 가을에 누에치기를 했는데, 시골에서 특별히 돈벌이를 할 만한 일들이 부족했기에 온 가족이 누에치기에 몰두했습니다. 우리나라도 7,80년대 누에치기를 통해 수출의 일익을 담당했고 시골에서는 가장 큰 부업으로 가정에 짭잘한 수입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세상이 바뀌어 양잠산업이 노동력이 풍부한 중국으로 넘어가면서 일순간 뽕나무가 우리 주변에서 사라졌습니다. 누에치기를 하지 않으니 돈이 되지 않는 뽕나무를 베어 내거나 대체 과실수를 곳곳에 심었습니다. 오디의 효능이나 뽕잎의 유용한 가치가 알려지기 전이라 대부분 뽕나무는 천대를 받았고 매실나무나 자두나무, 감나무 등이 많이 심겨 졌습니다. 우선 과실이 크기도 하고 오디에 비해 저장도 오래할 수 있어 인기를 끌었습니다.

 

그런데 건강을 중시하는 요즘, 예전에 몰랐던 각종 효능이 알려지면서 각광을 받는 과일이 있습니다. 오디도 그 중의 하나인데, 요즘은 뽕나무를 기르는 목적이 오디를 따기 위해섭니다.

시골에서 자란 사람이라면 유년의 추억도 한두 가지씩 갖고 있겠지만 오디는 정말 시골 꼬맹이들이 즐겨먹는 간식이었습니다. 당시에는 뽕나무가 많았을 뿐만 아니라 농약이 제대로 개발되지 않던 시기라 무공해 오디가 지천에 널렸을 때입니다.

 

뽕나무 밭에서 뽕잎을 따다가 남녀의 연정이 많이 이루어졌듯, 어린 꼬맹이들도 뽕나무에 숨어 오디를 몰래 따 먹기가 일상이었습니다. 유월이 되면 밀사리와 감자도 맛있는 간식이 되었지만 달기로 치면 오디를 따라올 수 없었습니다. 뽕나무 밭에 앉아 까맣게 익은 오디를 훑어 먹다보면 손이나 입 주변이 시커멓게 물들어 한동안 지워지지도 않았고, 흰옷에 물이라도 들면 옷을 버렸다고 혼이 나기도 했습니다.

 

뽕나무 주인은 오디를 따 먹는 것에 대해서는 꾸지람을 별로 하지 않았는데, 오디를 따 먹다가 뽕잎을 다치게 한다고 나무라기가 일쑤였습니다. 뽕나무의 골을 따라 숨어서 오디를 따 먹는 즐거움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었지요. 가끔 좀 덜 익은 오디를 먹다가 시큼한 맛에 인상을 찡그리기도 하지만 그것도 나름 새콤달콤 맛이 있었습니다.

 

며칠 전 친구네 뽕밭에서 오랜만에 오디를 따면서 옛날 생각이 나서 불쑥 오디에 관한 글을 써 봅니다. 뽕나무는 초봄 여린 잎을 따서 차를 만들기도 하고, 잎이 좀 더 자라면 뽕잎나물을 무쳐 먹기도 하고, 또 뽕잎을 따서 상추처럼 고기를 싸 먹기도 합니다. 심심한 뽕잎이 맛은 좀 덜하지만 건강(당뇨)에 좋다고 하니 도시인들이 시골에 오면 뽕잎을 따가기도 합니다. 뽕나무도 농약을 치지 않으면 진딧물이 생기고 잎이 깨끗하진 않지만 그래도 다른 작물에 비하면 농약을 안치거나 덜 치는 편입니다.

 

친구 얼굴도 보고 오디도 실컷 따 먹고, 또 통에 가득 담아 와서 효소액과 오디주를 담가놓고 보니 마음 한결 풍성해집니다. 요즘 어린이들은 오디 맛을 잘 모르겠지만 여느 과자나 아이스크림보다 맛과 영양이 풍부하다고 생각됩니다. 오디 주스도 맛이 아주 좋습니다. 올여름 시원한 오디푸드를 먹으며 더위를 날려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 아닐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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