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권으로 끝내는 신혼 인테리어 - 집 구하기부터 배치, 수납, 인테리어까지
카와카미 유키 지음 / 리스컴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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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수 인테리어'가 근래 화두가 되고 있습니다.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라는 말이 있듯이,  인테리어도 집 구조와 사는 사람의 성향에 잘 맞아야 좋은 집, 살고 싶은 집이 됩니다. 집은 잠만 자는 곳이라는 고정관념이 일부 우리 사회에 자리잡고 있는데, 아파트 문화가 인구의 70% 정도를 차지하는 요즘,  내부 인테리어에 관심을 가져볼 때라 생각합니다. 늘상 똑같은 일상만 반복되는 생활 속에 가정의 소품이라도 조금씩 변화를 주다보면 삶에 숨통이 트일 것 같습니다.

 

한국에서 잘 사는 부자가 아니라면 호화롭게 가구를 배치하거나 인테리어를 세련되게 하기에는 금전적인 부담이 많이 따를 것입니다. 소문에 서울의 강남이나 부산의 해운대 같은 고급 아파트에는 기존의 인테리어를 모두 무시하고 새로 돈을 들여서 자신의 성향에 맞게 고친다고 하는데, 비용이 억단위를 넘는다고 하니, 보통의 가정에서는 엄두를 못낼 일입니다. 그만큼 그런 비싼 집에 사는 사람에게는 자신만의 독특한 인테리어를 갖추고 살고 싶겠지요.

 

평범한 아파트에서 보통사람으로 살아가는 우리들은  '저비용, 고효율'을 추구할 것입니다. 적은 돈으로 집안의 분위기를 확 바꾼 것 같은 느낌이 들도록 인테리어를 가치있게 단장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그러나 사람마다 자신이 잘 아는 분야도 있지만, 잘 모르는 분야가 더 많습니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이 그 분야의 전문가를 찾거나 책을 통해 정보를 얻는 것입니다. 저도 직접 20년 가까이 된 집을 사서 올 리모델링하면서 인테리어 조언까지 받았는데, 생각보다 비용이 많이 들었습니다. 좋은 경험을 얻긴 했지만 그 이후로는 가급적 일을 벌이지 않고 조용히 살고 있습니다.

 

얘기가 잠깐 옆길로 빠졌지만, 사람이 한 집에서 오래 살다보면 인테리어를 다시 하고 싶은 충동에 빠져 듭니다. 처음에는 좋아 보였던 인테리어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식상하고 평범해 보입니다. 남자는 특성상 대개 인테리어에 관심이 적은 편이지만 여성들은 평소에도 관심이 많아 인테리어 책을 탐독하면서(여성 주간지 같은) 인테리어 안목을 기릅니다. 그래서 집안 인테리어는 아내에게 많이 맡기지요. 그러나 여성들이 인테리어에 관심을 가지는 것도 신혼때 그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요즘 맞벌이 가정이 늘면서 육아까지 신경써야 하니 애가 생기면 자연히 다른 쪽에 관심이 적어지는 게 인지상정입니다.

 

인생에 단 한 번 뿐인 신혼생활, 누구든 예쁘게, 자신만의 캐릭터를 살려서 집단장을 하고 싶어 하지요. 그래서 달달한 신혼분위기가 느껴지도록 가급적 밝고 세련된 디자인을 선호합니다. 이 때는 정말로 부부의 인테리어 안목이 빛을 발할 때지요. 알콩달콩 이것은 이쪽으로 배치하고 요것은 저쪽으로 배치하자며 서로 의견을 조율합니다. 시중에 인테리어 책자가 많이 나와 있지만 결국은 자기가 본만큼 생각하는만큼 인테리어에 반영되므로, 부부가 선호하는 인테리어풍으로 꾸미게 됩니다. 

 

인테리어 고수(전문가)들의 많은 의견과 실물 사진을 참고하는 것이 더 세련되고 독특한 인테리어를 만드는 비법이라면 비법이겠습니다. 평소에는 좋은 집에 잘 된 인테리어를 구경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요즘 옆집 사람과도 잘 모르는 아파트 문화에서 선뜻 자기집 구경을 시켜 주는 사람이 많지 않기 때문에, 아파트 모델하우스나 책을 통해 인테리어 산지식을 쌓을 수밖에 없는 현실입니다. 신혼때는 특히 평생을 함께 할 부부간의 보금자리를 꾸미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한 만큼 인테리어 단장에 각별히 신경이 쓰일 것입니다.  '한 권으로 끝내는 신혼 인테리어'를 통해 오순도순 사랑이 묻어나는 분위기를 연출해 보는 것도 삶의 재미가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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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녀전 - 여성의 삶을 말하다 인문플러스 동양고전 100선
유향 지음, 김지선 옮김 / 동아일보사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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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상괴녀(傷槐女)는 홰나무를 훼손한 연()의 딸로, 이름은 정()이었다.

경공(景公)이 아끼는 홰나무가 있었는데, 사람을 시켜 나무를 지키게 했다. 또 나무에 현판을 달아 명을 내리길, “홰나무를 건드리면 형벌을 내리고, 홰나무를 훼손하면 사형에 처한다.”라고 했다.

 

그런데 어느 날 연이라는 사람이 술에 취해 홰나무를 훼손하고 말았다. 경공이 이를 듣고 말했다. “이 자가 처음으로 내 명을 어겼다.” 경공은 관리를 시켜 연을 잡아가두고 사형에 처하려고 했다. 그의 딸 정()이 두려워하며 재상 안자(晏子)의 대문 앞으로 찾아가 말했다.

   

제가 과분한 생각을 억누르지 못하고 아룁니다. 부디 저를 재상의 시녀로 거두어 주시기를 청합니다.”

   

안자가 듣고 웃었다. “나에게 음탕한 마음이 있어 보이는 것인가? 어찌하여 이 늙은이가 사사로이 도망쳐 온 여인을 만나야 하는가? 아마도 하고 싶은 말이 있나 보군. 안으로 들어오게 하여라.“

   

정이 문 안으로 들어가자, 안자가 멀리서 바라보며 말했다.

이상하구나! 얼굴에 깊은 근심이 있구나.”

들어오게 해서 물어보니 정이 대답하였다.

   

제 아버님은 연이라는 분이신데, 다행히 성곽 안에 거주하게 되면서 공민(公民)이 되셨습니다. 어느 날인가는 음양이 조화롭지 못하고, 비바람이 제때 내리지 않으며, 오곡이 잘 여물지 않는 것을 보고, 명산과 신수(神水)에 제사를 지내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제사를 올린 술을 드시고 술기운을 이기지 못해 왕의 명령을 가장 먼저 어기고 말았습니다.

 

이 지경에 이르도록 술에 취해 죄를 지은 것은 진실로 죽어 마땅합니다. 하지만 제가 듣기로 현명한 왕은 나라를 다스릴 때 봉록을 줄이고 형벌을 가하지 않으며, 또 개인적인 원한으로 공법을 어기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육축(六畜) 때문에 백성을 다치게 하지 않고, 잡초 때문에 곡물의 싹을 해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옛날 송나라 경공(景公) 때 큰 가뭄이 들어 3년 동안 비가 내리지 않았다고 합니다. 태복(太卜)을 불러 점을 치게 했더니 사람으로 제사를 지내야 한다.’라는 점괘가 나왔습니다. 경공은 이내 대청에서 내려와 북쪽을 향해 머리를 조아리며 내가 비를 비는 이유는 내 백성을 위한 것이다. 지금 반드시 사람으로 제사를 지내야 한다면, 과인이 직접 그 일을 감당하겠노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랬더니 말이 끝나기도 전에 사방으로 천 리까지 크게 비가 내렸습니다. 왜 그런 줄 아십니까? 천리(天理)를 따르고 백성을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 왕께서는 홰나무를 심어놓고, 훼손하면 죽이겠다는 명을 내렸습니다. 그리고 나무를 훼손했다는 이유로 저의 아버지를 죽여 저를 고아로 만들려 하십니다. 저는 왕께서 나라를 다스리는 법을 어기고 현명한 왕의 도리를 잃으실까 봐 걱정이 됩니다. 이웃나라에서 이를 들으면, 모두 왕께서 나무나 사랑하고 백성은 천시한다고 비난할 것인데, 그래도 괜찮겠습니까?“

 

안자가 말을 듣고 놀라며 자못 깨달은 바가 있었다. 다음 날 조회에 나가서 경공에게 말했다.

   

제가 듣기로 백성의 재산과 힘을 다 뺏는 것을 포()하 하고, 좋아하는 물건을 아껴서 엄한 명령으로 위세를 부리는 것을 역()이라 하며, 형벌을 부당하게 내리면 적()이라 했습니다. 이 세 가지는 나라에 큰 재앙을 불러옵니다. 지금 왕께서는 백성의 재산과 힘을 다 빼앗아 좋은 음식을 먹고, 종고(鐘鼓)의 음악을 들으며, 궁실의 경관을 화려하게 꾸미십니다. 이는 가장 큰 폭정입니다. 좋아하는 물건을 아껴서 엄한 명령으로 위세를 부리니, 이는 명백히 백성을 거스르는 일입니다. 홰나무를 건드리면 형벌을 내리고, 훼손하면 사형에 처하는 것은 도리에 어긋납니다. 심히 백성을 해치는 일입니다.”

   

경공이 말했다.

과인이 그대의 명을 삼가 받아들이겠소.”

안자가 조정에서 나오자 경공은 즉시 명령을 내려 홰나무를 지키는 일을 그만두게 하고, 걸어놓은 팻말을 뽑아냈다. 홰나무를 훼손하면 형벌을 내리는 법도 폐지했고, 홰나무를 훼손한 죄인을 풀어 주었다.

   

군자가 말했다.

상괴녀는 말로써 어려운 상황을 벗어날 수 있었다.”

<시경>그렇게 하려고 궁리를 도모하면, 정말로 그렇게 될 것이네.” 라고 했으니 이를 이르는 말이다.  p.223~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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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 러브레터
강혜선 지음 / 북멘토(도서출판)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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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 않을 님을 기다리며 거울 앞에서 화장을 하는 여인을 상상해 보라. 시나브로 저무는 봄날 붉은 꽃처럼 시들까봐 수심에 젖어 있는 여인을 그려 보라.

  

기약하고 어찌 이리 돌아오지 않나요?

뜰에 핀 매화도 지려 하는데,

문득 들려오는 가지 위 까치 소리에

부질없이 거울 보며 눈썹 그려봅니다.

    

有約來何晩

庭梅欲謝時

忽聞枝上鵲

虛畵鏡中眉

   

매화 필 때 만날 것을 약속했으나 매화가 지려 해도 님은 오지 않는다. 어느 날 아침 나뭇가지 위에서 까치가 울자 행여 님이 오시지 않을까 하는 설렘에 거울 앞에서 화장을 해 본다는 것이 이 시의 내용이다. 님과의 재회가 이루어질 수 없음을 알면서도 님을 위해 단장하는 여성의 심리가 잘 드러나 있다. 그래서 이 시의 매력은 마지막 구의 부질없이()’에 응축되어 있다.

   

위의 시를 쓴 여성은 이옥봉(李玉峯)이다 본명은 이숙원(李淑媛). 옥봉은 옥천군수 이봉(李逢)의 시녀로 태어나 조원(趙瑗. 1544~1595)의 소실이 되었는데, 임진왜란 직전 35세를 전후하여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조원의 현손인 조정만(趙正萬)이 편찬한 <가림세고(嘉林世稿)>의 뒷부분에 <옥봉집(玉峯集)>이 수록되어 있어 그녀의 시를 아직도 읽어볼 수 있다.

   

허균은 옥봉의 시를 맑고 굳세며 여성의 화장기가 없어 가작(佳作)이 많다.”고 평가했으며, 신흠과 홍만종 역시 옥봉이 허난설헌과 더불어 조선 제일의 여류시인이라 높이 평가하였다. 또한 그녀의 시는 <명시종(明時宗)>, <열조시집(列朝詩集)> 등에 실려 중국까지 알려졌다.

그런데 이렇게 시를 잘 쓰는 옥봉이 도리어 시재(詩才) 때문에 남편에게 버림을 받았다.

   

버들 숲 밖 강 언덕에 다섯 필 말이 우는데

술 깨자 근심에 취하여 누각을 내려왔었지.

붉은 봄꽃처럼 시들까 봐 경대를 마주하고서

매화 핀 창가에서 반달 같은 눈썹 그려보네.

   

柳外江頭五馬嘶

半醒愁醉下樓時

春紅欲瘦臨粧鏡

詩畵梅窓卻月眉

 

-흥에 취해 님에게 보내다(漫興贈郞)-

   

1구와 2구에서는 남편이 떠날 때 버드나무 심어진 강둑길로 떠나는 님을 누대에서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근심에 취해 술을 마시고, 술이 깨면 근심을 잊으려고 다시 술을 먹다가 해가 기울어 누대에서 내려오는 장면을 그렸다. 3구와 4구에서는 낭군과 헤어진 뒤 그래도 부질없는 화장을 새로 한다고 하여 낭군을 기다리는 심정을 넌지시 전하였다.

   

옥봉이 남편에게 준 <운강에게 주다(贈雲江)>라는 시가 있다. 이 작품은 일명 <꿈속의 넋(夢魂)>이라고 전하고, <자술(自述)>로도 알려져 있다.

   

요사이 안부는 어떠신지요?

창가에 달빛 이르면 제 한은 깊어만 가요.

만약 꿈속의 넋이 자취를 남길 수 있다면

문 앞의 돌길이 반쯤은 모래가 되었겠지요.

   

近來安否問如何

月到紗窓妾恨多

若使夢魂行有跡

門前石路半成沙

   

-옥봉집-

   

운강(雲江)은 남편 조원의 호다. 쉬운 어투로 편지 쓰듯 쓴 시인데, 오랫동안 찾아오지 않는 님을 은근하게 원망하고 있다. 님을 향한 그리움의 정도를 구상화해 낸 결구가 매우 돋보이는 구절이라 했다.

   

옥봉은 어려서부터 집안일이나 길쌈, 바느질 등에는 관심이 없고 글공부와 시 짓기를 즐겼는데, 시집갈 나이가 되어도 혼처를 쉽게 정하지 못하였다. 그러던 중 조원의 명성을 듣고 스스로 첩이 되고자 하였다고 한다. 그런 옥봉이 소박을 맞았는데, 이수광의 <지봉유설>에서는 그 사연을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어느 날 평소에 옥봉을 잘 알고 있던 이웃의 백정 아낙이 찾아와서 자기 남편이 남의 소를 잡다가 끌려갔으니, 형조에 소장(訴狀)을 써달라고 애걸했다. 옥봉은 그녀를 위해 소장에 세숫대야로 거울을 삼고, 참빗에 물을 발라 빗습니다. 첩의 몸 직녀가 아닐진대, 낭군이 어찌 견우이겠습니까?”라는 시구를 써 주었다. 이 소장을 본 당상관 들은 곧 남편을 석방하였다. 그런데 이 사실을 안 조원은 옥봉이 지나치게 재주가 승한 것을 못마땅하게 여겨 그녀를 내쳤다 한다. 아마도 위의 시는 옥봉이 남편 조원에게서 내쳐진 다음 그가 다시 자신을 찾기를 바라며 쓴 것이 아닌가 싶다.

   

후에 위 작품이 널리 알려져 꿈에 다닌 길이 자취 곧 날 양이면, 임의 집 창밖이 석로(石路)라도 닳으련마는 꿈길이 자취 없으니 그를 슬퍼하노라.”라는 시조로 탈바꿈해 노래로 불리기도 하였다. 또한 서도소리의 대표격인 <수심가(愁心歌)>에는 약사몽혼(若使夢魂)으로 행유적(行有跡)이면 문전석로(門前石路)가 반성사(半成沙)로구나 생각을 하니 임의 화용(花容)이 그리워 어이나 할꺼나.”로 삽입되기도 하였다. P.142~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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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향기 2017-04-03 18: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옥봉의 <몽혼(夢魂)>이란 시를 보면 황진이의 <상사몽(相思夢)>이란 작품이 연상됩니다. 둘 다 조선을 대표하는 여류시인이고, ‘꿈 속‘이라는 시의 배경이 비슷해서 그런지 저는 두 작품의 느낌이 아주 비슷하게 다가오네요.

서로 그리워하면서도 만나볼 길은 꿈길밖에 없는데
내가 임 찾아가면 임도 날 찾아 떠나셨다고.
바라건대 다른 날 밤 아득한 꿈에서라도
똑같은 시각 서로의 꿈길을 떠나 도중에서 만났으면.

相思相見只憑夢
儂訪歡時歡訪儂
願使遙遙他夜夢
一時同作路中逢

시골향기 2017-04-06 17: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6세기는 조선조의 르네상스라 불릴 정도로 문화적 융성기였습니다.
유학자로 이황, 이이, 조식, 서경덕, 이언적, 조광조, 김성일 등이 활약을 펼쳤고, , 문학(예술)가로 이지함, 정철, 한석봉, 유성룡, 허준(의술), 허균 등 쟁쟁한 분들이 있었지요. 그리고 엄격한 성리학의 시대였지만, 신사임당, 황진이, 허난설헌, 이매창, 홍랑, 이옥봉 등 조선의 대표적 여류시인들이 한 시대를 풍미했던 시기이기도 하고요. 정치적 혼란기임에도 문화적 절정기를 꽃피웠던 것은 수차례의 사화를 겪으면서 지방으로 물러난 성리학자들의 문학적 탐구가 사회 전체에 영향을 끼친 결과가 아닐까 싶습니다.
 
중국의 미래 - 49가지 단서로 예측한
마르테 셰르 갈퉁.스티그 스텐슬리 지음, 오수원 옮김 / 부키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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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우리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역사적, 문화적 공통점을 갖고 있지만,여태껏 우리는 중국의 진실한 실체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거대한 영토와 인구를 가진 대국이라는 허울만 볼 뿐. 저자는 49가지 관점을 통해 중국을 샅샅이 해부한다. 양면의 중국과 그들의 미래를 알기 위해 꼭 읽어야 할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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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함도, 끝나지 않은 전쟁
김민철.김승은 외 지음, 민족문제연구소 기획 / 생각정원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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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조선인의 고통과 상흔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섬, 군함도, 섬의 모양이 군함을 닮았다고 하여 군함도라 부른다는데, 19세기부터 탄광사업이 번영했던 섬으로 1940년대 초반 태평양전쟁이 끝나가던 무렵 수많은 조선 징용인들이 군함도에 끌려와 강제노역을 당했다.

 

이렇듯 조선사람에겐 수모의 땅인 군함도를 우리의 반대에도 무릅쓰고 20157월 일본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시켰다. 조선 청년들의 한맺힌 사연이나 고된 노동의 아픔을 묻어두고 그들은 군함도를 세계적 관광지로 개발하여 역사를 왜곡하고 한국민의 공분을 샀다. 일제강점기 35년의 기록은 사실적 역사로서의 기록으로 영구히 남아야 한다. 독일의 유대인 수용소가 나치의 학살을 증빙하는 자료로 길이 남겨졌듯, 일제의 강제동원으로 젊은 나이에 쓰러져간 조선인의 영혼을 달래기 위해서라도 군함도의 진상은 세계만방에 알려져야 하고 강제징용의 자료로써 인류문화재로 길이 보존되어야 한다.

 

일본은 군함도를 등재를 추진하면서 조선인 강제징용 사실은 일절 언급하지 않고, ‘메이지 산업혁명 유산으로 철강, 조선, 탄광이 세계유산으로 최종 등재하였다. 조선인 57,900여 명이 강제 동원된 바 있는 군함도(하시마 탄광)의 노동착취 사실을 숨기고, 일본의 근대 문화유산을 선전하는데 군함도를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바다 한 가운데 군함도라는 작은 섬에 조선인 수 만 명이 강제로 끌려와 하루 12시간 이상씩 탄광 속에서 강제노역을 당한 역사적 아픔을 돌아보면 결코 일본이 군함도를 자신들의 산업화의 일등공신으로 선전하는 일을 좌시할 수 없다. 청운의 꿈을 품고 일본으로 건너간 조선 청년의 꿈을 짓밟고 임금착취 및 열악한 노동환경 속에 많은 조선인이 죽어간 통한의 섬, 군함도를 우리는 결코 잊어서는 안 되겠다.

 

늦었지만 근래군함도를 영화로 만들어 국민들에게 그 실상을 알린다고 하니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아무 죄 없이 끌려가 이국의 바다 낯선 섬에서 죽어간 원혼을 달래고, 그들의 가족이나 후손을 위로하기 위해서라도 잔악한 실상이 낱낱이 밝혀져야 한다. 일본이라는 민족이 수 천 년 동안 우리나라를 침략하고도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듯이, 앞으로도 충분히 역사를 조작하고 침범할 우려가 높다. 한국 고유의 땅 독도를 올해부터 일본의 학생들이 배우는 역사교과서에, 예부터 일본의 땅이라 기술하고 한국이 불법점령하고 있다고 가르치고 있다. 아마 수 십 년이 지나지 않아 독도를 국제사법재판소에 회부하여 세계적 여론을 등에 업고 한국과 영토 전쟁을 벌일지 모를 일이다.

 

군함도가 일제강점기 한국민이 당한 피해상황의 일부에 지나지 않을망정 이제 당시의 산증인이 하나 둘 사라져가는 현실에서 군함도의 역사적 현실을 길이 후손들에게 남길 필요가 있겠다. 저자는 수 십 년에 걸쳐 현장을 답사하고 기록들을 모아 후대에 길이 남을 군함도의 역사를 생생히 기록했다. 우리 후손들은 다시 있어서 안 될 치욕의 역사를 올바로 배우고, 일본의 끊임없는 역사부정과 영토야욕을 철저히 분쇄해야 할 것이다. 일본은 지금도 위안부 소녀상 설치 반대 및 2016.12.28. 위안부 합의 이행을 요구하고 있는데, 우리는 너무 안이하게 대응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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