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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암 이병철 義 (<호암 이병철 義> + <경영의 정도>) - 신뢰, 원칙, 인재 경영으로 이뤄낸 초일류기업 삼성의 신화
민석기 지음 / 리더스북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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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암은 항상 인재를 중시하고 적재적소에 배치해야 전쟁에서 이긴다고 생각했다. 역사서 <사기(史記)>의 <회음후열전(淮陰侯列傳)>에는 한나라 고조 유방과 한신이 나눈 이야기가 나온다.
유방은 천하를 통일한 뒤 정권 안정을 위해 세력 있는 개국공신들을 차례로 숙청했다. 일등공신인 한신도 모반죄로 잡히자 유방이 한신과 장수의 그릇을 얘기하면서 물었다.
“나 같은 사람은 얼마만한 군사를 거느릴 수 있겠는가?”
“폐하께서는 10만 명쯤 거느릴 수 있는 장수에 불과합니다.”
“그대는 어떤가?”
“신은 신축자재(伸縮自在)해 많으면 많을수록 좋습니다.”
“그런데 그대는 어째서 10만의 장수감에 불과한 나의 포로가 되었는가?”
“저는 병사를 잘 쓰지만 폐하는 장수를 잘 쓰는 ‘장의 장’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신이 폐하의 포로가 된 이유입니다.”
이 일화는 나라든 기업이든 리더가 사람을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를 시사한다. 맹자는 군주가 천하를 도모할 정도의 제왕이 될 뜻이 있으면 불소지신(不召之臣)을 얻으라고 했다. 불소지신은 임금도 함부로 오라 가라 하지 못할 만큼 소신과 판단력을 가지고 군주가 가서는 안 될 길을 막을 수 있는 신하를 뜻한다.
피터 드러커는 인재를 발탁할 때는 먼저 무엇을 할 수 있는 사람인지 봐야 한다고 했다. 사람을 잘 쓰는 장의 장, 껄끄러워도 불소지신을 찾는 리더의 모습은 호암의 가장 큰 특징이다. 호암은 사람들의 특성을 정확하게 파악해 귀신같이 부렸다. 주변에 기발하고 창조적인 ‘기획통’, 치밀하고 분석적인 ‘관리통’, 돌파력이 뛰어난 ‘불도저형’ 등 여러 종류의 사람을 뒀고 이들을 잘 조합해 부렸다.
공장을 지을 때는 불도저형을 써서 밀어붙이고, 공장이 완성되면 관리형을 넣어 조직을 안정시켰다. ‘공격형과 안정형’은 그 나름대로 문제가 있으므로 오래 두지 않고 적절히 교대시켰다. 사업의 확장 과정에서 외국기업들과 합작사업을 많이 했는데, 합작사가 무리한다 싶으면 ‘싸움꾼’을 넣어 사정없이 싸우게 했다.
그래서 호암은 사람을 넣고 빼는 타이밍과 리듬이 절묘하다는 평가를 많이 받았던 것이다. 보통 사람은 대개 10명 정도, 능력 있는 사람은 30명 정도를 직접 관리할 수 있다는데, 호암은 100명이 넘는 사람을 직접 활용하는 것 같았다.
호암은 인간 집단의 30퍼센트는 우수하고 10퍼센트는 떨어지며 나머지 60퍼센트는 환경과 제도 여하에 따라 달라진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일을 맡겨보면서 점점 그릇을 키워가다 더 이상 가능성이 없다 싶으면 다시 부르지 않았다. 호암이 불러서 야단을 치는 것은 그나마 가능성이 있다고 본 것이었다. 안 되겠다 싶으면 아예 다시는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호암은 기업 경영에서 막연히 온정 때문에 인사를 머뭇거리면 조직을 병들게 하고 결국 사업을 망하게 한다고 강조했다. 1977년 5월 호암은 <사보 삼성>에 이렇게 썼다.
“나는 사업을 처음 시작할 때부터 모든 일을 사람에서 비롯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출발했고 지금도 그 원칙으로 일관하고 있다. 우리 직원들이 나를 생각하고 대접하고 있지만, 나는 인재라고 기억되는 사람을 그들이 나를 대접하는 것보다 수십 배로 더 생각해 준다. 그런 인재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해놓고 그들의 장래와 생활안정을 보장한 후에 모든 일을 떠맡겨버리는 것이 경영의 요체라고 생각한다. 즉 성실하고 책임질 줄 아는 사람, 더 욕심을 낸다면 급할 때 판단이 빠르고 부하들이 따를 수 있는 덕망까지 갖춘 사람, 이런 사람들에게 모든 것을 위임해 버리는 것이다.”
1983년 11월 14일 사장단회의에서는 이런 말도 했다.
“항간에 삼성은 최고 경영자를 빈번히 교체하는데도 불구하고 회사의 경영이 순탄한지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이 많다는 얘기를 들어 알고 있다. 최고경영자의 경질을 기분에 따라 우연히 할 수는 없다. 회사가 안 되는 경우는 그 책임을 물어 바꾸고, 잘 되는 경우는 어려운 회사를 맡겨 더 한층 역량을 발휘하고자 교체하는 것이다. 따라서 자만하는 사람은 책망으로써 자만하지 않도록 하고 사기가 저하된 사람은 격려해줌으로써 사기를 북돋워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선할 여지가 없다고 생각하면 간섭조차 하지 않는다.”
호암이 수많은 인재를 수족같이 부려가며 많은 일을 한데는 항상 ‘긴장과 냉철한 자기절제’가 핵심에 자리잡고 있다. 호암은 24시간 일을 생각하고 있다고 보일 정도로 긴장을 풀지 앟았다. 골프를 치는 것도, 여행을 하는 것도, 휴식을 취하는 것도 사업을 밑바탕에 두고 있었다. 에버랜드 안에 있는 호암의 묘비에는 이런 말이 쓰여 있다.
“자기보다 현명한 인재를 모아들이고 노력했던 사나이 여기 잠들다.”
재계에서 호암과 수위 자리를 놓고 평생을 겨뤘던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호암이 세상을 떠난 뒤 어떤 평가를 내렸을까.
“호암은 사업이란 사람의 일이라는 것을 잘 알고 계셨던 분이다. 흔히 삼성사관학교라는 말이 통용될 정도로 인재에 대한 호암의 열정은 기업사에 하나의 기업문화를 일궈냈다.”
잭 웰치 제너럴 일렉트릭(GE) 전 회장은 “경영자에게 가장 필요한 네 가지는 책임감, 사람을 중시하는 경영, 적재적소에 사람을 배치하는 능력, 올바른 비전이라고 생각한다. 호암은 그 네 가지를 고루 갖춘 경영자다.”라고 술회했다. <경영의 정도 p.97~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