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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왕자와 깊이 만나는 즐거움 - 최복현 시인이 <어린왕자>를 사랑한 30년의 완결판
최복현 지음 / 책이있는마을 / 2014년 11월
평점 :
섭씨 90도, 목욕탕에 가면 고온 찜질방이 있어요. 거기에 모래시계가 있잖아요. 그놈을 시작으로 해 놓고 들여다보고 있으면, 모래가 밑으로 규칙적으로 쏟아져요. 뜨거움을 참으며 그것을 보노라면 아주 더디게 내려가요. 그러다 반이 넘으면 제법 빨리 쏟아져 내려요. 그게 빨라진 것은 아니잖아요. 이렇게 심리적인 시간과 물리적인 시간은 확연하게 차이가 나요. 이를테면 사랑하는 사람과 있을 때와 미운 사람과 있을 때에 느끼는 시간은 심리적 시간이에요. 아주 확연하게 시간이 빠르거나 더디지요. 우리는 때로 그런 자기 심리에 속곤 해요.
요즘 사람들은 아주 바빠요. 시간은 예나 지금이나 같은 속도로 흐르는데, 이전 사람들보다 현대인은 더 바빠요. 그러다 보니 할 수만 있다면 모든 것은 쉬운 방법으로 해결하려고 해요. 가능하다면 돈으로 해결하려고 해요. 그렇게 쉬운 것만 생각하니 자기 세계 외엔 관심을 두려 하지 않아요. 그래서 점점 이기적으로 바뀌는 거고요. 세상이란 자기 안에만 있는 것으로 알고, 자기가 알고 있는 것으로만 세상 모든 일을 판단하려고 해요. 그러니 다른 사람의 조언이나 충고가 귀에 들어올 리가 없지요. 그렇게 아집만 늘고, 알량한 지식으로 자기가 아는 것이 다인 양 우기는 것이에요.
바쁘다는 구실로 자기 안에 갇혀 있어서 그래요. 이렇게 현대인들은 겉으로는 아주 똑똑한데 실상은 점점 어리석어져 가요. 그래도 살아가는 데 지장은 없어요. 웬만한 건 자기 안에 있는 것들로, 자기가 길들인 것들로 그럭저럭 살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우리에겐 언젠가 문득 사람이 그리운 날, 사람이 필요한 날이 와요. 다른 사람이 아닌 자기 속내를 터놓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정말 친한 사람, 정말 친구라 칭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한 날이 오고야 말아요. 어린 왕자와 여우도 친구란 존재의 필요를 느꼈어요. 서로가 서로에게 필요한 그런 만남은 참 좋은 거니까요. 그 다음에 서로를 맞춰보고, 맞추어 가야지요. 그래서 서로가 친구가 되기로 했어요.
여우는 말없이 오랫동안 어린왕자를 바라보았어요.
“제발....나를 길들여 주렴!”
여우가 말했어요.
“나도 정말 그러고 싶어. 하지만 난 시간이 별로 없는 걸. 나는 친구들을 찾아야 해,
알아야 할 것도 많고.“
어린왕자가 대답했어요.
“누구나 자기가 길들인 것밖에는 알 수 없어. 사람들은 이제 무얼 알 만한 시간조차 없어.
그들은 상점에서 만들어져 있는 모든 것을 사는 거야. 하지만 친구를 파는 상인은 전혀 없기 때문에 사람들은 친구가 없는 거야. 네가 친구를 갖고 싶다면 나를 길들이면 돼!“
여우가 말했어요.
“뭘 해야만 되니?”
어린왕자가 말했어요.
“아주 참을성이 있어야 돼. 우선 넌 나와 좀 떨어져서 그렇게 풀밭에 앉아 있는 거야.
난 곁눈질로 널 볼 거야. 그리고 넌 아무 말도 하지 마. 말은 오해의 씨앗이거든.
하지만 날마다 너는 조금씩 더 가까이 앉으면 돼.....,“
참으로 좋은 친구가 필요한데, 그날엔 친구를 만들 수 없는 거예요. 친구란 돈으로 살 수 없잖아요. 길들여야 하는데, 길들인다는 건 제법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해요. 상대에 대해 많이 알아야 하니까요. 겉모습만이 아니라 속 모습을 제대로 알아야 하니까요. 겉모습은 잘 변하지만 진정한 속 모습은 변하지 않으니까요. 중요한 모든 것은 겉모습 뒤에, 말이나 행동이란 표현 뒤에, 겉으로 드러난 표정 뒤에 숨어 있으니까요. 그걸 알 만한 시간이 필요해요.
좋은 사람을 곁에 두려면 그만큼 시간이 필요해요. 조급해선 안돼요. 아무리 사람이 필요해도 진실한 관계를 위해선, 가까워지려면 기다림과 그에 따르는 참을성이 필요해요. 아무리 급해도 조금씩 가까워져야 하는 거예요. 그래야 상대를 제대로 알아요. 상대에게 나를 제대로 알려줄 수 있어요. 그럼에도 조급한 마음에 말을 앞세우면 그건 실수를 부르는 지름길이에요.
말은 오해의 씨앗이니까요. 말로 마음을 포장하려고도 말아야 해요. 그래야 내가 상대에게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어요. 물론 나도 상대를 그렇게 봐야 하고요.
문명이 발달할수록, 진실한 사람이 필요해요. 사람이 사람인 것은 사람 없인 살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에요. 귀여운 강아지가 사람에게 한동안은 마음의 위로를 줄 수 있어요. 하지만 강아지는 사람이 줄 수 있는 걸 다 줄 수 없기 때문에 결국 사람이 필요해요. 이제라도 바쁘다는 구실을 대지 말고, 뭐든 돈이나 명예나 힘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편견을 버리고, 억지로라도 여유를 만들어 사람을, 옆에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자고요. p.200~2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