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샹은 왜 변기에 사인을 했을까? - 명화로 배우는 즐거운 역사
호세 안토니오 마리나 지음, 안토니오 밍고테 그림, 김영주 옮김 / 풀빛 / 2012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은 미술에 관한 책이 아니다. 그보다는 '자유'에 관한 책이라고 불러야 옳다. 수백년의 미술의 역사를 되짚어보면서 제목에 「뒤샹은 왜 변기에 사인을 했을까?」을 붙였는지를 살펴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는데, 미술은 자연이나 사물을 혹은 이 세상을 있는 그대로 옮기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그리는 행위를 나타내는 작업 흔적일 뿐이라는 정의에서 봤을 때 이 책에서 말하는 바는 분명하다. 인간은 고대, 그 이전 선사시대부터 자유롭지 않았는데, 자유롭게 되기 위해서는 많은 것을 알고 탐구하고 갈구해서 무지에서 벗어나 두려움 없이 스스로를 드러낼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을 전제로 깔고 있다. 미술이라 하는 것은 우리 인간이 자유롭게 세상을 탐구하고 분석하고 더 나아가 나 자신을 드러내는 한 방법으로 쓰일 뿐인 것이다. 과거 중세 시대나 르네상스 시기에 초상화는 권력자들의 신분과 지위를 표시하기 위한 방법이 되었지만 현대에 들어서는 미술가를 존재케 하는 방법으로서의 미술이 존재할 뿐인 것이다. 이 말에 나는 반은 동의하고 반은 동의하지 않는다.

 

처음에 이 책을 봤을 때는 단지 미술사적인 초등학교용 책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래서 단순히 선사시대의 벽화에서부터 크레타 섬에 있는 크노소스 왕궁의 화려한 벽화 , 그리스의 조각상과 로마의 초상화, 중세의 고딕양식이나 혁명가 조토, 원근법의 창시자인 브루넬레스키, 우리가 흔히 아는 라파엘로, 미첼란젤로, 레오나르도 다 빈치 등의 르네상스 화가들과, 바로크의 벨라크케스, 북유럽의 베르메스, 플랑드르의 루벤스, 인상파의 마네, 모네, 드가, 야수파의 반 고흐, 마티스, 세잔, 현대 미술의 거장 피카소, 뒤샹에 이르기까지 역사적 '사실'만 따라가길 기대하고 있었다. 그저 단순히 사실의 나열만 기대했던 것이다. 그러나 역시 책도 첫인상만 보고는 모르다더니, 정말 그런 미술사적인 사실도 물론 담겨져 있지만 그보다는 더 중요한 '무엇'인가를 바탕에 깔고 있어서 처음부터 쉽게 읽히는 책은 아니였다. 분명 읽었는데 눈은 읽고 있는데, 책장은 넘겨졌는데, 머릿속에 하나도 들어온 것은 없는 듯한 느낌... 이 느낌이 줄곤 이 책을 읽는 동안에 나를 따라다녔다.

 

글을 쓰면서 조금 정리가 되고 있는데, 작가를 보니 더욱 확실하다. 머리말에서도 '미술사를 살펴보자'란 말은 일언반구도 없었고 뜬금없이 인간의 '창조력'을 깨워야 한다느니 하는 말로 나의 방향을 모호하게 했는데, 역시나 글쓴이는 미술가가 아니였다. 그저 철학자이자 작가, 교육자로서의 이 책을 썼던 것이었다. 어쩐지 말하는 뉘앙스가 이상야릇하더니만~ 책의 마지막을 보면 뒤샹이 변기에 사인을 해서 미술관에 출품을 했고, 비평가들이 그것을 받아들이고 나니까 대중들도, 풍조들도 변기가 예술품인 것을 인정해주는 분위기로 바뀌었다. 하지만 만약 그 변기가 마네의 <올랭피아>나 <풀밭 위의 점심>과 같이 결렬한 구설수에라도 오르내렸다면 뒤샹의 변기는 과연 예술품이 될 수 있었을까 의문이 든다. 과거처럼 예술품이 단지 눈에 보이기에 아름답기만 해서는 안 되고 누가 제일 처음 시도를 했는가에서부터 그 예술적 가치를 평가받는다는 점에 대해서는 어쩌면 놀라울 만큼 인정하지만, 우리 인간이 선사시대에는 자유롭지 않았고 창조적으로 무언가를 만들었을 때 비로소 자유를 얻을 수 있다는 점은 다소 현대인의 오만한 발언이 아닌가 싶다.

 

물론 기본적으로 인간은 스스로 증명해내야 한다고 생각하는 철학자와, 인간은 인간이 주인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나는 기본 개념 자체가 다를 수 있겠지만, 우리는 선사시대를 경험해보지 못했기 때문에 그 당시의 인간들이 자유롭지 않았을 것이라고 나는 감히 단언할 수 없기 때문이다. 톨스토이의 단편에서도 볼 수 있듯이, 오히려 과거가 훨씬 더 단순하고 살기 좋았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수세식 화장실이나 스마트폰, 인터넷과 같은 문명의 이기는 없었겠지만 오히려 그런 이유로 훨씬 덜 범죄하고 훨씬 덜 외로워하고 훨씬 더 자유롭지 않았을까 싶다. 청소년들이 하루 24시간 중에 16시간을 스마트폰을 보면서 산다고 우려를 표명하는 신문기사를 봤는데, 그런 삶이 과연 자유롭다고 말할 수 있을까 싶다. 물론 미술사적인 관점에서 인류의 '자유'를 말하는 책이긴 하지만 선사시대보다 훨씬 더 많이 알고도, 더 많이 갖고도 자유롭지 않은 인간의 역사라고 생각한다. 미술사의 껍질을 덮은 철학이야기를 만나본 느낌이다. 나랑 생각하는 기본 방식은 달랐지만, 깊지 않게 미술사를 조망하는 데는 괜찮을 성 싶다. 한 가지 우려스러운 것은 딱 손에 잡을 듯이 명확하게 설명되어 있는 표현보다 모호하게 두리뭉실하게 뭉뚱그려서 설명하는 표현으로 내용이 채워져 있어서 그다지 썩 빨리 읽을 수 있는 책은 아니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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