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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과 짝하지 마라, 자칫 그에게 속으리니 - 이지누의 폐사지 답사기, 전남 편 ㅣ 이지누의 폐사지 답사기
이지누 지음 / 알마 / 2012년 3월
평점 :
사람이 정말 편견이 무서운 듯 싶다. 폐사지를 찾아다니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처음 듣고서 이 책을 선택한 것도 난데, 이 책을 보자마자 지은이의 말이나 행동이 너무 감상적인 것 같아서 짜증이 났었다. 그래서 책을 한동안 못 읽고 있었는데, 웬 심경의 변화인지 다시 펴들고 보니, 너무나 아름다운 풍광과 운치있는 절터의 이야기가 내 마음에 오롯이 파고드는 것이 아닌가. 참 변덕이 죽 끓듯 하다. 이번 책은 「이지누의 폐사지 답사기 : 전남편」이다. 전라도는 나와는 한 번도 인연이 닿지 않아서 갈 기회가 없었던 곳이고 그런 연유로 인해 항상 가고픈 고향이다. 이렇게 책으로나마 접해보는 전남편이지만 그 풍경과 향취가 그립다. 책 표지에도 표기되었듯이, 글과 사진이 모두 지은이 이지누 씨의 작품인데, 다른 여행서와는 다르게 적재적소에 사진이 등장한다. 그런 책을 읽다가 제일 짜증났던 때가, 글로는 맛깔스럽게 묘사해놓은 부분에 대한 사진은 항상 빼먹는 책들이다. 특히 해외여행서들은 그런 경향이 다분한데, 아마도 이 책은 단순한 여행안내서나 여행기라기보다는 꼼꼼한 눈썰미가 필요한 답사기이기 때문에 달랐던 것 같다. 답사기에는 어디로 갈지 어떤 절을 먼저 이야기할지 등에 대한 개인적인 취향과 정서도 분명히 반영하겠지만, 문화유적에 대해서는 사진과 글로 꼼꼼히 기록해놓은 듯하다. 그래서 내 맘에 쏙 들었다. 앞부분에는 탑이나 부도탑, 혹은 탑의 한 부분인 귀부나 이수와 같이 아주 자그마한 유적일지라도, 그것이 그곳에 절이 있었다는 증거가 되니 무늬나 기법까지 세세하게 묘사해놓으면 뒷장에는 어김없이 그것에 대한 사진이 등장한다. 그것도 아주 다양한 방향에서 문외한이 이해할 수 있는 각도를 가지고서 말이다.
진도 금골산 토굴터, 장흥 탑산사터, 벌교 징광사터, 화순 운주사터, 영암 용암사터, 영암 쌍계사터, 강진 월남사터, 곡성 당동리 절터, 무안 총지사터로 총 아홉 개의 절터를 소개하고 있는데, 하나같이 아름답기도 하고 처연하기도 하다. 자연과 항상 조화롭게 공존하는 이미지만 가지고 있었던 절이란 곳에 대해 심각한 고찰을 해본 적조차 없던 내게 이 책은 절도 사람이 살아 숨쉬는 곳이었음을 알게 해주었다. 그 살아숨쉬는 이야기가 그리 아름다운 이야기가 아닐지라도 말이다. 징광사터의 이야기에선 조선시대에 와서 각 절마다 종이 만드는 부역을 과도하게 강제로 시키곤 할당량을 못 채우면 돈으로 거둬가는 일들이 많이 벌어져 결국 중들이 그 부역을 이기지 못해 도망가고 폐사된 절이 많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유교를 숭상하던 조선시대에 중들의 삶이 그리 만사형통하지는 못했을 것이란 생각은 했어도 이렇게 강제 부역에 동원될 정도로 배려가 없었단 사실이 정말 놀랍고도 안타까웠다. 모든 절의 행정이 시주로 이루어지는데 그들이 무슨 돈이 있으며, 또한 속세를 떠나 도를 닦으러 들어왔지만 오히려 속세에 이용만 당하는 일이 빈번하게 자행되었다는 사실로 인해 유학자들의 속내가 정말 추악하게 느껴졌다. 물론 고려 시대에 승승장구하던 불교가 변질되어 정말 추악하게 변해버린 많은 중들도 있었을 줄 상상되지만 힘없다고 아예 깔아뭉개는 짓은 정말 아니올시다다. 게다가 용암사터에서는 중들이 일개 종들처럼 절에 놀러오는 유학자들의 가마꾼 역할까지 해야 했다니 정말 끔찍하다. 오히려 먹는 것이라도 든든하게 먹고 살고 팔자 늘어지게 살아가는 유학자들은 제 발로 산에 오르면 다리에 뿔이라도 나는가 싶다. 아무리 유학자들이라도 건강한 신체에 건전한 정신이 깃드는 이 단순한 진리를 모른단 말인가.
어쨌거나 여러 사연들이 구비구비 들어가는 절터에는 항상 생동감이 넘칠 수 밖에 없다. 언제 절이 있었는지도 모르게 여염집으로 바뀐 구슬픈 사연도 있지만 분명 절터였으나 많은 사람들의 왕래로 인해 절터가 아닌 절이 되어버린 아름다운 사연도 있다. 그곳이 바로 화순 운주사터인데, 황석영 소설가의 《장길산》으로 인해 절터였지만 이제는 어엿한 절이 되었다. 그러나 이 절은 이상하게도 법당이 없고 그저 중간 중간 탑들과 더러 더러 깨지고 목이 잘린 혹은 목만 남은 돌불상만 군데 군데 위치할 뿐이다. 그러나 멀리서 바라본 운주사터는 아름답기가 이를 데 없었다. 부처님께 공양하러 온 절이 아니라 민중들의 생활 속에 살아 숨쉬는 장소라서 그런지 이 운주사터는 초파일에 사람이 많이 모이는 것이 아니라 추석 5일 전후라고 한다. 그것도 신기하고 새로울 뿐이다. 절이나 절이 아닌 그런 곳이라니, 아름답지 않은가. 이런 책을 보고 어디론가 가보고 싶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없었는데, 이번에는 《장길산》을 읽고 운주사터로 떠나가볼까 싶다. 내가 그토록 가보고 싶어했던 전라도이니, 겸사겸사 기회가 참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