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읊다, 서사시 대백제 1881 함께 읽는 교양 13
강수 지음, 오순제 감수.해제 / 함께읽는책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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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사시는 학창시절에 한 번도 배워본 적이 없는 장르의 문학인데, 이렇게 백제 역사를 통해 서사시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이 반가울 따름이다. 어째서 우리는 학교를 다닐 때 서사시를 배워본 적이 없을까. 지금 바뀐 국어 교과 과정을 알지는 못하지만 이제 새삼스레 서사시 장르가 교과 과정에 들어갔을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세계적인 서사시로 손꼽히는 「오디세이」같은 서양의 작품만 서사시의 전형적인 표본이라고 배우기만 하는 것이 상당히 안타깝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라는 말도 있지만 21세기를 살아가는 한국 사람들은 솔직히 우리 고유의 문화를 발굴하고 현대까지도 즐기고 향유하는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상당한 의문이 든다. 단지 학교에서 배우는 '우리 문화의 맛과 멋'이라고 쓰인 단원명에서뿐만 아니라 우리의 실생활에서 그런 우리 문화의 맛과 멋이 살아숨쉬었으면 좋겠다. 또한 정부에서도 그런 문화가 자랄 수 있는 토양을 뒷받침해주었으면 좋겠다. 우리 문화를 지키는 사람들이라고 해서 꼭 개량 한복을 입어야 한다거나 창소리만 즐길 필요는 없지 않은가. 그저 청바지와 같이 우리 날염 기술로 만든 티셔츠도 입고, 김치와 같이 피자를 먹는 등의 개방성을 가지면 될 것이 아닌가. 그렇게 할 때, 우리의 숨겨진 문화가 많이 발굴되고 즐길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시인 강수가 지은 『역사를 읊다, 서사시 대백제』는 참으로 의미가 깊다. 나는 한 번도 읽어본 적 없고, 즐겨본 적이 없는 서사시에 대해 강수 시인이 본격적으로 접근한 것은 2002년 무렵 결성한 〈서사시 연구회〉의 모습으로 드러났을 것이다. 현대시가 앞으로 가야할 길과 많은 사람들이 같이 즐길 수 있는 장르를 생각해봤을 때 '리듬이 있는 이야기'인 '서사시'라는 장르가 떠올랐고, 우리에게는 서사시로 바꾸어 표현될 수 있는 수많은 역사가 존재한다는 것에 착안하여 역사와 서사시를 결합한 장르인 '펙트 포엠'을 만들어냈다. 그래서 2008년에 〈문학과 창작〉에서 「서사시 흑치상지」로 '바움작품상'을 수상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 숱한 노력은 타 장르와의 융합을 시도하게 해서 '포토포엠'이나 '오페라 리브레토' 등으로도 성과를 냈다. 이런 다양한 시도 끝에 우리는 대백제의 역사를 서사시로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이 한 권의 역사서사시는 백제 역사의 큰 획을 그은 온조왕, 근초고왕, 의자왕, 흑치상지의 네 명을 들어 이야기하고 있다. 다른 나라보다 드러난 사료가 휠씬 적은 백제라 숨겨진 역사를 많이 이야기로 채워넣어야 했지만 대백제의 면면을 아는 데는 그리 무리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그런 역사적인 상상력을 동원했기에 딱딱한 역사만이 아니라 기쁨과 슬픔을 간직한 사람들의 이야기임을 확실히 알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다. '서사시'라는 낯선 장르라고 해서 외면했다면 이렇게 재미나고 웅장한 대백제의 이야기를 알지 못했을 것이라는 깨달음을 안고 즐겁게 볼 수 있었다.


앞 부분에는 20페이지 가량 서울문화예술대학교 교수이자 한국고대사연구소 소장이신 오순제 소장님의 해제가 삽입되어 있는데, 그 이야기를 참고해서 서사시를 읽으면 대백제의 역사가 한 눈에 그려지는 듯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것은 해제 부분에 요동 반도를 중심으로 설명한 부분(p. 25)에서 지도가 한 바닥 크게 삽입되어 있었다면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뻔 했다. 물론 그 뒤에 29페이지에 지도가 하나 나오긴 하지만 그 지도를 보고 다시 앞으로 넘기기는 조금 힘들기에 다소 아쉬운 부분으로 남아있다. 


이 책에서 인상에 남는 부분은 온조왕 부분이었다. 흑치상지는 아예 몰랐던 인물이고, 삼천궁녀로 표현되는 향락에 빠졌다고 생각해온 의자왕이 원래는 자주성이 강했던 왕이었으나 의붓어머니의 세력과 아내의 세력을 이기지 못해 제 뜻을 펼치지 못했다는 이야기도 신선하기는 했지만 그 스스로가 주색에 빠진 것은 맞으니까 별로 중요한 인물은 아니고, 근초고왕은 워낙에 많은 업적을 남긴 왕이라 알고 있는 것이 많았는데, 온조왕은 백제의 시조인데다가 그 부분은 좀 다르게 알고 있었던 것이 있어서 새로웠다. 형인 비류왕과 아우인 온조가 나뉘어서 나라의 터를 잡았는데 비류가 세운 나라의 터가 험하고 백성들이 살기에 좋지 못해서 온조 곁으로 와서 스스로 자결했다는 이야기를 알고 있었는데, 여기서는 좀 더 현실성있게 대륙으로 뻗어나가는 비류 백제지역에서 다른 나라에 의해 쫓겨왔고, 미리 소서노가 보내 자리를 잡으라고 했던 온조 백제지역으로 왔다가 자객에 의해 소서노와 비류는 죽임을 당했다는 이야기는 상당히 멋졌다. 자리를 잘못 잡았다는 이유만으로 스스로 자결했다는 멍청이 왕 이야기보다야 훨씬 신빙성 있고 개연성이 있지 않은가. 


역사는 살아남은 자의 이야기라는 말도 있지만, 둘째인 온조가 왕이 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어릴 때부터 백성들과 어울리기 좋아하고 체면보다는 사랑으로 아랫사람들을 부리는 것이 백성들의 신임을 받았다는 설명에서는 만나보고 싶었을 정도로 멋진 사람으로 여겨졌다. 실제로 유리왕을 피해 백제를 건국할 때부터 이들을 신임해서 따라온 유민들이 있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일이 아닌가 싶다. 살던 터전을 버리고 새로 경작해서 나라를 만드는 것 자체가 얼마나 어려운데 그럴 수 있었는지, 여기에 소서노의 명망과 온조의 인망을 유추해볼 수가 있겠다. 그런 지도자였으니 700년 간이나 지속된 백제라는 나라가 있을 수 있었을 것일테다. 그리고 여기에 등장한 근고초왕만 해도 그런 인품과 명망으로 백성들을 지도했고, 그런 사랑에 보답해서 백성들도 그를 신임했다. 진정한 권력은 백성들을 지키는데 사용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그것을 실천한 멋진 조상들이 있었다는 것이 정말 자랑스럽다. 백제에 대해 관심이 있다면 꼭 읽어보길 권한다. 고대 역사는 그저 역사적 사실만으로 구성하기보다는 오히려 이런 문학적인 장르에서 재구성하는 것이 훨씬 사실에 가까울 것임에 의심치 않는다. 그들도 피가 흐르고 살이 따뜻한 사람들이었을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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