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근 평전 : 시대공감
최열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11년 11월
평점 :
절판


총 컬러판 도판으로 되어 묵직한 273페이지 분량의 책이 이렇게나 쉽사리 읽힐 것이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박수근이라는 화가가 남긴 흔적을 따라 대략 300페이지의 분량으로 엮어낸 이 책은 아마도 수많은 박수근 평전 중에서 가장 간단하고 쉬울 것이다. 본인이 남긴 글이라곤 자신이 죽던 해에 여성 잡지 <여원>에서 청탁받은 ‘신사임당’에 대한 글 뿐이었으니 그에 대한 이야기를 엮어내기란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인데 저자는 책에다 박수근이 살던 강원도 양구의 지역적인 설화까지도 채집해왔다. 그것을 들으니 그 양구라는 곳이라는 곳의 풍경이 그저 눈으로만이 아니라 귀로도, 상상으로도 확 끼쳐 왔다. 실제 이 책의 무거운 두께를 보고 기가 죽기도 했던 터라 이렇게 쉽게 읽힐 것은 예상하지는 못했다.

 

내가 박수근이라는 화가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그가 독특한 유화 기법으로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는 것, 그 뿐이다. 일제강점기의 시대를 지나 한국 전쟁을 지나고 15년을 더 산 근현대기의 화가라고, 그것도 조그만 나라의 유화 화가라고 하기에는 그의 화풍이 놀랍도록 독보적이지 않는가. 내가 그의 작품을 처음 봤을 때는 아마도 미술 수업이 있었던 중학교 때쯤이 아닐까 생각하는데 90년대의 어린 내 눈으로 봤을 때도 파격적일 정도로 단순한 그 유화 덩이들이 그렇게나 시선을 잡아끌 수가 없었다. 소재로만 보면 순수하게 우리 조선의 것이지만, 몇 개의 선으로만 그린 소녀나 나무, 엄마는 단순성을 획득하면서 세계성을 지향하지 않는가. 그 당시에는 현대 작가인 줄 알았지만 근대 작가의 작품이라는 것을 이렇게나 알고 보니 그 세계성이 더 놀랍다. 그런데 이 책을 보니 그것은 제대로 된 미술 학업을 받지 못 했기 때문에, 순전히 박수근 작가의 독학으로만 얻어낸 화풍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닌가 싶다. 미술에 대해서는 제대로 배우지 못한 화가와 미술에 대해서는 전혀 문외한인 독자가 만났으니 이것도 인연이라고 한다면 인연이겠다.

 

박수근은 1914년 강원도 양구에서 유복한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삼대 독자인 아버지는 아들을 그렇게 소망했지만 박수근 이전에 딸만 내리 셋을 낳아놓은 상태라 두 번째 며느리를 더 들이고자 하는 어른들의 소망을 묵살하고 낳은 아들이 박수근이다. 그 이후에도 남동생 동근과 원근이 줄줄이 태어나자 그야말로 부러움이 없던 집안이었다. 대대로 부유했던 가산도 일제의 개발정책과 맞물려 한 몫 잡아보겠다는 아버지가 광산을 개발하는데 다 쏟아 부어 망한 후에는 박수근에게는 가난의 그림자가 떨어진 적이 없었다.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가정 형편으로 진학은 꿈도 꿀 수 없었던 그에겐 그림만이 유일한 낙이었다. 보통 학교 시절 그림을 그렸다 하면 교실 벽에 붙여지고 일본인 교장 선생님이 직접 화구들을 사서 챙겨줄 정도로 특출난 재능을 인정받았으나 미술학교 같은 곳은 언감생심이었던 것.

 

그래서 자신보다 한 살 어린 이철이가 조선미술전람회에 두 번이나 연속으로 입선한 것을 보고 그제서야 겨우 출품할 마음을 먹게 되었다. 그 후로부터 여러 번 입선을 했으나 특선도, 작가도 될 수 없었던 그에게는 항상 혹평이 따라다녔다. 제대로 된 미술 수업조차 받지 못했던 그였으니 일반 화가의 눈에 어설픈 붓질이라 여겨진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또한 박수근은 항상 조선의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풍경을 그린 탓에 그 당시에 미술계에서 요구했던 세계성을 획득하기에는 다소 부족해 보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이전까지 그 어떤 화가들도 시도해본 적 없었던 유화 표현 방식을 보면 그는 이미 가장 한국적인 것으로 가장 세계적인 그림을 그렸던 것이다. 그래서였을까, 그의 그림은 동족의 작가들에게 인정받기 전부터 미국에서 호평을 받아 더러 더러 구매가 이어지고 있었다. 게다가 미국에서 한국 화가들을 소개하는 잡지 매체에서도 조선이 추천하는 작가들이 아닌 박수근의 이름이 당당히 들어가게 된 것이다.

 

어떠한 학연도 지연도 얻을 수 없었던 박수근이었기에 주류 화가들에게는 항상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지만 그가 죽은 해부터 그의 이름이 암암리에 알려지게 되더니 이제는 같은 분야에 있는 화가뿐 아니라 일반 서민들도 그의 그림에게서 감동을 받아 그의 이름이 전국적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이미 죽은 다음이 무슨 소용이냐고 그렇게 생각했던 과거도 있었지만, 어쨌든 예술가에겐 자신의 그림을 이해해주는 단 한 사람을 만나는 것이 가장 행복하지 않을까. 그는 전시회 때문에 빌려준 그림을 도둑맞고서도 자신의 그림을 좋아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그 사실만 기뻐했던 사람이었으니 그가 안타깝게 죽은 후이라도 그의 가치가 재평가되고 많은 팬들이 생긴 것을 싫어하지 않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유화를 두텁게 바르고 하나씩 하나씩 붓질하는 그 어렵고도 힘든 화풍을 제대로 정립한 다음에 완성된 그의 많은 그림들은 절대로 싫어하는 사람이 없을 것 같은 따뜻함이 풍겨져 나와서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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