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자의 철학법 - 프로이트에서 뒤르켐까지 최고의 인문학자들, 여행의 동행이 되다
김효경 글.사진 / 웅진지식하우스 / 2011년 11월
평점 :
절판


 

 

 

여행기라기에는 너무 뜬금이 없고 철학서라기엔 그 깊이가 없는 책이 등장했다. 단아한 표지에 땀내가 물씬 풍기는 밑낯의 여행기을 볼 수 있겠다 내심 기대감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것은 조금 다른 여행기였다. 그녀가 말했다시피, 낭만적인 풍경과 매력적인 날씨를 가득히 드러내는 사진와 소소한 에피소드를 가득히 채운 여행기와 블로거들의 자랑질에 속아서 여행을 오면, 실제로는 그렇게 아름답기만은 않다고 하는 그 부분에서는 깊이 공감되었다. 여행이라는 말에, 불편한 이동 시간과 여독과 짐을 챙겨야 하는 귀찮음만 떠올리는 나로서는 그녀의 푸념이 무척이나 끄덕여지는데 그녀가 말한 것은 겨울비에 뼛속 깊이 스며드는 추위와 바닥난 체력, 벼룩이 창궐하는 공동숙소의 불편함과 삭사를 때워야 하는 번거로움 등이었다. 그녀가 말한 것은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는 부분이여서 혼자서 배낭 하나만 달랑 들고 여행 떠나본 적 없어 그런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이런 모든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적지 않은 비용이 드는 여행을 꾸준히 다녀오고 싶다는 그녀의 말에는 공감할 수 없으니 내가 봐도 정말 여행과는 맞지 않는 것 같다. 여행을 다녀오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분위기가 조성되는 요즘 시대에 여행은 갖다오면 혹시나 큰 도움이 될런지는 몰라도 어쩐지 나에게는 그리 가까운 이야기는 아닌 것 같다. 훌쩍 떠났다가 다시 훌쩍 돌아오는 진정한 노마드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부럽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앉아서 제 자리에서 삶을 관조하는 것도 충분히 의미가 있지 않을까. 그녀도 말했지만, 제 인생을 사색하며 생각해보는 것을 꼭 먼 타향에서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물론 새롭게 환기되는 일은 어렵겠지만 그럼에도 가능은 하다.

 

예전에 중국에 잠깐 다녀오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는 계속 나가고 싶고 다른 곳에서도 살아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순간적으로. 그것은 단순히 여행을 하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아예 정착하고 싶은 생각이긴 했지만 내 나라, 내 땅이 아닌 곳에서 살아갈 마음이 들었던 것은 처음이라 상당히 놀랍기도 했다. 그 때 생각했던 것이 있다. 익숙하고 정든 곳을 떠나 새로운 곳에서 경험하는, 지나가는 사람들이나 사소한 물건 하나에도 어떤 의미가 부여되고 반짝반짝 빛나 보였던 것이 사실은 내가 살던 곳에서도 충분히 경험할 수 있는 것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러니까 낯선 그 어떤 곳도 내게 새로운 것은 없었던 것이다. 해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고 하던가. 내가 지금 거하고 있는 곳에서도 충분히 의미를 만들고 세상을 반짝반짝 빛나게 생각한다면 그것도 여행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지 않은가 한다. 바로 그것이 내 처음이자 마지막일지도 모를 외국 여행에서 느꼈던 것이다. 이렇게 여행에 대해 그리 긍정적이지 못한 나도 여행에 대해서 환상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은 아니였다. 내 생활이 바쁘게 돌아갈 때마다 한가로운 파란 바닷가에서 흰 원피스를 입고 긴 머리카락을 흩날리며 거니는 상상을 안 하는 것은 아니기에 여행이 그리 싫은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적극적인 여행이라기보단 현실에서 회피하고 싶어하는 본능이니까 제외하기로 한다. 하지만 누군가도 나와 같이 여행의 단점을 분명히 알고 있다는 사실에 어쩐지 이 책과 동질감이 느껴진다.

 

서문에 밝혀놓았듯이, 여러 철학자들의 사상을 제대로 포착하기 위해 대화식으로 풀어놓았다는 것도 어찌 보면 위험한 시도일 수도 있는데 최대한 사실로 복원해놓았다는 점에서 그 의의를 둘 만 하다. 그녀의 목적이 제대로 먹혀들어갔는지 여러 철학자들과의 대화가 무척이나 재미있게 이해됐다. 또한 천재적인 데카르트가 그렇게 오만하고 방자했다는 것도 말이다. 그렇게 힘들고 짜증나는 일을 경험하며 유럽을 돌아다니다가 불현듯 떠오른 것들을 사회학을 공부한 사람답게 여러 철학자들과 연결해서 갈무리해두었는데 가장 마음에 와닿는 것은 그 중에서 베이컨의 경험론에 대한 새로운 '발견'을 했다고 했던 것과 게으른 데카르트의 방법론에 대해서이다. 오만 방자하기도 하고 바람둥이 기질이 농후한 데카르트 편도 아주 재미나게 읽었는데 그가 말한 사상이 이전의 시대, 즉 신을 최고로 두고 고속도로를 깔아둔 것 같은 세뇌로 인류의 모든 인생을 주관하는 신학을 깨부수는 아주 혁명적인 사상이었음을 다시 알게 되었다. 내가 알기론 자신이 생각하는 것 그 자체만 의심하지 않는 아주 시니껄한 사람인 줄로만 알았는데 아주 게으른 무척이나 매력적인 사람이었다. 또한 별것 아니게 보였던 베이컨의 경험론 또한 감각으로 경험할 수 있는 것만을 인정하라는 의미로, 이전까지의 신학에서 받아들여져왔던 모든 것을 보이지 않는 신을 말하는 것을 무조건적으로 수용하지 말라는 혁명적인 사상임을 알려주었다. 고등학생 때 잠깐 윤리 과목에서 배웠던 베이컨의 경험론이 이런 의미였는 줄은 이제야 겨우 알게 되었다. 카톨릭 사상이 지배했던 시대이다 보니 워낙 많은 비리와 많은 부분에서 개혁이 필요했던 시대임은 분명하다. 그런 시대였기에 이런 개혁적인 사상이 나올 수 있었을 것이다.

 

어쨌든 누군가의 여행 중의 사색이 새로운 앎의 기회가 되는 것은 더할 나위 없는 경험이었다. 여행을 하진 않았지만 마치 같이 가서 벼룩에라도 뜯기고 온 것처럼 생생한 체험이 있어 반가웠다. 그랬기에 게으른 여행가인 나로선 움직이지 않고서도 좋은 경험이 가능할 수 있었을 것이다. 반가운 일이다.

 

 

[네이버 북카페를 통해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된 서평입니다.

본 서평은 작성자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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