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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가의 전인적 공부법 - 조선 오백년 집권의 비밀
도현신 지음 / 미다스북스 / 2011년 9월
평점 :
품절
고려 말의 혼란한 치세를 본다면 고려 때 정치가 바르게 세워지지는 않았던 것 같기는 하지만, 여성의 인권적인 면을 봤을 때 아무래도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는 말이나 일삼은 공자를 따르는 성리학을 근본으로 하는 정치보다는 여성의 권리를 인정해주고 개가를 하는 등 보다 자유로운 활동이 가능했던 고려 시대가 훨씬 매력적으로 뵈기 마련이다. 물론 고려 시대에도 여성이 정치 판에 뛰어든 적은 없지만 조선보다는 낫지 아니한가. 왜 그 당시에는 그렇게나 편협한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다. 남편이 젊어서 죽으면 평생을 수절해야 하는 법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만든 것인지 모를 일이다. 남자들은 첩질이나 하느라 집안을 바르게 다스리지도 못하는 경우가 있으면서 여성에는 너무 가혹하게 하는 것은 아닌가. 그런 의미에서 조선이라는 나라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는 책이 등장할 정도로 유교적인 사상에 뿌리 깊이 내렸던, 그것도 효를 실천한다든가 동방예의지국과 같은 좋은 쪽이 아니라 꼭 여성에게 불리한 것으로만 골라서 응용하는 우리 나라 남자들의 고루한 사고 방식에 더 짜증나는 것일테지만 그 꼬투리를 제공한 조선은 그다지 좋은 모범을 제공해주지 못했다. 그래서 제대로 아는 것도 없으면 고려에 대해 무한한 애정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제대로 알지 못했던 것은 조선이 전 세계사에서 통틀어 세 번째로 오랫동안 존속한 나라라는 점이었다. 10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로마 제국과 터키의 오스만 제국의 다음으로 조선이 518년을 유지했던 것은 그 유래가 없던 일이다. 솔직히 한반도처럼 작은 반도 국가에서는 말할 것도 없겠다. 그런데 저자는 조선의 오랜 존속의 이유를 왕실만의 체계적이고 훌륭한 교육 체계와 공부법에서 찾았다. 사교육의 단위가 억 단위를 넘어가고 교육열 하나만큼은 비상식적으로 뜨거워져 조기 유학 1위라는 오명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어쩌면 이 열기는 인류학적으로 한국인에게만 흐르는 민족성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조선 왕실에서 하는 교육법은 지금 훑어봐도 뛰어날 따름이다. 일반 평민들까지 그런 식의 훌륭한 교육을 받았던 것은 아니지만 성균관이라는 기관을 설치해 무상교육을 실시했던 것은 복지국가라는 지금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이다. 또한 무상의료를 표방하여 혜민서를 설치한 것은 21세기의 대한민국이 따라가지 못할 부분이 아닌가 싶다. 실은 어떤 책 하나를 읽고 이성계가 조선을 세우고 나서 복식의 색 같은 사소한 규례부터 하나씩 제정해내는 과정을 보면서 상당히 부실한 나라라고 여겼다. 그런데 세종대왕이 통치한 시기에 다른 나라를 살펴봐도 국민들의 복지, 보건, 교육 등에서 조선을 앞서가는 나라는 없었다. 여기까지만 놓고 봐도 역사적 지식의 부재, 역사적 사유의 부재에서 비롯되는 오해가 상당히 많을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이 책은 부족했던 역사적 사실을 알려주고 잘못된 오류를 바로잡아 깨우쳐주는 등 조선 왕실의 교육에 대해서만 알려준 것이 아니라 역사에 대한 다방면에 대해서 한 번씩 짚고 넘어가준다. 얼마 전에 종영되었던 드라마 <공주의 남자>에서 단종을 폐위시킨 수양대군이 세조로 왕위에 오르고 나서 그의 아들이 죽는 장면에서 세조 다음에 보위에 오를 왕이 누군지 몰라서 가족끼리 한참을 고민했는데 찾아보기도 귀찮아서 내버려두었지만 이 책에는 친절하게도 왕이 받아야 하는 경연의 횟수를 제공해주면서 태조부터 고종까지 한 번에 다 보여주었다. 그래서 이제껏 사극으로 등장했던 왕의 이름을 찾아보면서 재미있게 볼 수 있었다. 그래서 새롭게 발견한 왕이 성종이다. 연산군의 아버지로 안타까운 일의 빌미를 제공했지만 그 자신은 그의 재위 기간 25년 동안 총 9229번 경연에 참여해서 학문도 잘 닦고 백성들을 위한 정책을 펼친 성군이었다. 평균적으로 1년에 대략 369번을 한 꼴이다. 경연이라 함은 신하가 왕을 상대로 학문을 강의하고 가르치는 방식으로 진행되는데 하루에 4번, 조강과 주강과 석강과 야대로 구성되었다. 경연관은 당연히 학식은 높아야 하고 인품을 꼭 고려해서 뽑아야 한다는 규칙이 있었다. 이는 경연이 단지 학식만 배우는 시간이 아니라 덕과 예까지도 갖추는 자리였기 때문이다. 경연의 교재에는 유교의 경전인 [논어], [소학], [성리대전], 역사서 [국조보감], [정관정요], [자치통감]을 사용했는데 유교는 상당히 현실적인 문제를 다루기 때문에 정치를 펼쳐야 하는 왕은 유교를 공부하야 했고 역사서를 통해 잘못된 과거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배웠다. 이 때의 방식은 토론하고 문답하는 형식이었기에 주입식으로 공부하는 현재 교과과정을 다시금 생각해보게 한다.
또한 정말 신기했던 것은 공부하기를 즐겨했던 세종이나 성종은 그 생각이 지금에 사용되어도 모자람이 없을 정도로 민본사상에 가까이있다. 절대 군주인 왕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오는 것이 참으로 아이러니하지만 성종은 나라의 근본이 백성에게 있다고 하고, 가뭄이 심할 때의 백성들의 고충을 생각하여 파격적인 정책을 시행했고 도둑떼도 또한 먹고 사는 것이 막막하여 악한 짓을 하게 되었을 것이라는 백성들의 실상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혜안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세종은 죄없는 노비를 죽인 주인에게는 그 노비의 아내와 자식을 석방하여 양민이 되게 하라는 파격적인 조치를 취했다. 이제까지만 해도 조선 시대의 노비는 마음대로 희롱하거나 죽여도 어디에다가 하소연할 데가 없는 인권이 유린된 시대라고만 생각했는데 노비도 같은 백성이라는 세종 대왕의 말은 정말로 놀라울 뿐이다. 궁궐에서 한 발자국도 밖에 나갈 수 없었던 임금이 백성들의 실상을 정확히 알게 된 것은 바로 경연으로 학문에 더욱 정진하고 토론으로 신하에게서 백성들의 실상을 정확하게 듣게 하고자 했던 조선의 놀라운 정책 때문이었다. 성군이라면 조선의 르네상스를 이룬 세종대왕과 일찍 죽어 더욱 안타까운 정조대왕만을 알고 있었는데 그 외에 수많은 왕들이 백성을 가엽게 여기고 아끼고 노력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왕이 되면 하는 경연 뿐만 아니라 세자일 때부터 시행해온 서연부터 차곡차곡 쌓아온 것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 아닐까 싶다. 한편 경연을 폐지한 연산군을 보면 이 경연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궁궐 안에 갇혀서 현실이 어떤지 알지 못한 왕이 얼마나 비참한 말년을 보내는지 생각해본다면 배움으로써 나라는 다스린다는 가장 중요한 덕목을 지금 대한민국도 따라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네이버 북카페를 통해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된 서평입니다.
본 서평은 작성자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