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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고함 - KBS 국권 침탈 100년 특별기획
KBS 국권 침탈 100년 특별기획 '한국과 일본' 제작팀 지음 / 시루 / 2011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작년 2010년은 1910년 일본에게 주권을 빼앗겼던 국권 침탈의 100주년이 되는 해였다. 그것을 기념하여 KBS에서는 앞으로의 일본과의 관계를 어떻게 만들어나가야 할지 찾아가기 위해 일본과 한국의 과거 면면들을 조명해보는 아주 특별한 프로그램이 제작되었다. 그것이 바로 「한국과 일본」이었고 그것을 다시 책으로 엮은 것이 바로 이 책이다. 서기 600년대부터 거슬러가는 일본과의 인연은 참으로 끈질기게 우호와 반목을 반복하며 끊어질 듯 끊어질 듯 하며 안 끊어지고 이어져 내려왔다. 세종 때부터 성종 때까지 4대 공신으로 추대되는 신숙주가 유언으로 남긴 말이 바로 일본과의 화친을 끊지 말라는 말이었을 정도로 우리에겐 ‘왜놈’이라는 말로 하찮게 여길 대상이 아니였던 것이다. 명문을 내세우면서 교묘하게 일본과의 관계에서 실리를 취하는 입장을 가지는 것이 유리하다는 것이다. 솔직히 우리나라보다 발전이 늦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들을 전부 토벌할 정도로 우리나라가 대군은 아니였던 까닭에 두 나라가 손을 잡고 공존을 유지함이 바람직한 것이다. 사실상 우리가 대군을 가졌어도 그들을 모조리 몰살시킬 필요는 없지 않은가. 서로의 이익을 챙겨주면 알콩달콩 잘 살았으면 좋았을텐데 그 바람은 동아시아의 정세에 따라 이루어지지 못했다.
우리의 입장에서는 101년 전 국권 침탈 문제와 정신대 할머니 문제도 아직 해결이 나지 않은 상태에서, 애먼 독도를 가지고 시비를 걸고 말도 안 되는 역사를 교과서를 실는 등 적반하장의 입장을 내세우는 일본이 솔직히 얄미울 수 밖에 없다. 본전을 찾자고 저번 쓰나미 때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런 식으로 역사 왜곡을 자행한다면 그 때 기부한 돈을 도로 찾아오고 싶은 심정이다. 그러나 역사적 상황으로 본다면 그들이 우리를 끔찍하게도 싫어하는 이유가 있다. 이는 우리가 원한 일은 아니지만 결과적으론 우리의 국력이 약해서 벌어진 일이기에 비난해도 솔직히 할 말은 없다. 몽골에서 원나라를 세웠을 때 고려와 왜를 다 정벌하고자 했던 그들의 원대한 꿈을 이루기 위해 먼저 고려를 쳤다. 바로 병자호란... 아예 수도를 강화도로 옮겨가며 고려 왕조의 위신을 땅에 떨어뜨린 일이지만, 내 짧은 소견으로는 생사가 걸린 문제에서 위신은 아무 소용이 없다고 생각한다. 원나라가 어떤 나라인가. 인류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제국으로 삼고 그 군사력을 감당해낼 나라가 없었던 제국이 아니였던가. 그들은 언제 자신들을 추격해오는 적들을 대비하기 위해서 지나온 나라들은 모조리 불태우고 끔찍한 학살을 일삼을 수 밖에 없었다. 일단 적에게 공포심을 주어 대적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필요했기 때문에 그들이 행한 일들은 차마 입에 담을 수 없을 정도로 끔찍했다. 그런 그들에게 굴욕적인 항복을 하고 일본을 칠 때 군사를 제공한 것이 일본에게는 크나큰 두려움의 기억으로 남아 있게 된 것이다.
삼국 시대만 해도 백제와 신라 유민들이 건너가서 불교와 한자 등의 기술을 가르쳐주고 그럭저럭 우호적인 관계를 만들어갔다면 고려 때는 침략군의 이미지로 일본에게 다가갔던 것이다. 그 공포가 아직까지도 내면화되어 있어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매우 두려운 존재’를 가리키는 말을 ‘무쿠리고쿠리’라고 부르기 시작했는데 ‘무쿠리’는 몽골군이고 ‘고쿠리’는 고려군을 말하는 것이니, 그들의 공포가 가히 상상이 된다. 그러니 그 이후에 조선 때까지 극심하던 왜구의 노략질이 빈번하게 일어났던 것도 무리는 아니였다. 기본적으로 척박한 땅에서 양식을 구하지 못했던 것이 그 이유였겠지만 그들에게는 고려이든 조선이든 한반도는 적이라고 여겼던 것이 큰 이유였을 것이다. 조선 조정에서는 일등공신 신숙주의 유언을 받아들여 그들에게 필요한 무역할 수 있는 권리를 주는 대가로 왜구를 소탕하도록 오우치 영주에게 일임했다. 그 때부터 제포, 염포, 부산포의 세 포구가 개항이 되고 일본인들이 와서 무역을 하거나 장사를 하며 살아갈 수 있는 일본인 마을이 생기기까지 했다. 하지만 평화의 시간은 짧았다. 목면을 주는 대가로 구리를 받아들이며 무역을 했던 조선과 일본의 관계는 일본의 정세가 급변하는 탓에 큰 영향을 받기 시작했다. 일단 서양에서 받아들인 조총을 연구 개발 및 생산까지 성공한 오다 노부나가와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연합세력이 당시 최강 전력을 자랑하던 다케다 가쓰요리의 기마군을 쓰러뜨리고 세력을 장악하기 시작했고, 결국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전국통일을 하고 나서 한반도를 넘겨보게 된 것이다.
막부 시기에 내부의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외부로 눈을 돌렸던 것이 바로 그 유명한 임진왜란이었다. 혼란한 나라를 통일하기 위해 연구했던 조총 실력이 더욱 성장해 외부 침략을 하는데 큰 도움이 된 것이다. 상대적으로 안정적이었던 조선에서는 조총을 일본을 통해 입수했음에도 크게 생산하지 못했던 것도 큰 문제였다. 성리학이라는 기본 이념이 우주의 본질을 찾는 현실적인 것이 아니다보니, 급변하는 이웃 나라 일본의 정세에 무심했던 것이 큰 문제였다고 생각한다. 그 이후로도 미국과의 수교를 굴욕적으로 했던 일본이 그들에게 빼앗긴 것을 조선에게 빼앗자는 양육강식의 논리로 강화도 조약을 체결했고 그 이후는 대다수가 아는 그대로이다. 이런 불평등조약 아래에는 미국과의 강제적인 조약 후 갈고 닦은 선진 기술이 바탕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조선에서는 대원군의 쇄국정책으로 이상한 선박이 있으면 모조리 때려부쉈지만, 일본은 이왕 수교하게 된 것 적극적으로 서양의 문물을 받아들여 각 지방 영주들이 학교도 설립하고 병원도 설립하기 시작했다. 그 차이가 지금의 한국과 일본을 만든 것이다. 과거에서 유추해보면, 지금 일본이 이렇게 가만히 있는 한국을 건드리는 것은 자국의 상황이 그리 좋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실업률은 올라가고, 출산율은 내려가고, 최악의 불황을 맞고 있고, 원전은 터졌고, 공교육은 썩었고, 자살률이 최대에, 이지메도 한창이다. 어디서 그들이 희망을 찾겠는가. 아마도 과거를 돌아보아 예전에 했던 대로 우리를 건드리면 되겠지 했나 보다.
그렇다면 우리 한국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자국의 현실이 끔찍해서 외부로 눈을 돌리고 있는 그네들의 행태에 속만 태우고 앉아 있을 것인가. 아마 여기서 우리가 현명하게 대응하지 않는다면 앞으로 100년간의 밝은 미래는 보장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신숙주의 유언대로 그네들의 필요를 채워줘야 하는 것이 맞겠다. 우리의 뛰어난 문화로 그네들의 병적인 퇴폐문화를 치유하려면 우리들의 나가요 문화나 술 문화는 좀 고쳐야 하지 않을련지. 너무 얄미워하지도 말고 너무 좋아도 하지 말고 공존과 화합을 키워드로 우리는 우리의 행보를 거듭해야 할 것이다. 좋은 라이벌이 있어야 좋은 성적이 나오는 것처럼 어쩌면 우리들이 더욱 큰 성장을 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존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해당 서평은 무료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된 서평입니다.
본 서평은 작성자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