펍, 영국의 스토리를 마시다 - 창조적 여행자를 위한 깊이 있는 문화 기행 Creative Travel 1
조용준 지음 / 컬처그라퍼 / 2011년 5월
평점 :
절판




 



 

영국의 맥주를 언제든지 즐길 수 있는 Pub 펍은 우리나라의 선술집과 같은 장소이지만 단순히 그런 술집으로 여기면 곤란하다. 펍의 정싱 명칭은 Public House으로, 말 그대로 공공장소로의 기능을 담당했던 역사가 오래 된 하나의 문화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민주주의를 논의하고 축구팀을 응원하고 반란을 꾀하고 『반지의 제왕』과 같은 작품이 탄생했기에 펍의 가치를 논의해보는 것이 이 영국이라는 나라의 역사적 문화적 가치를 알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일 것이다. 사실 유럽이라고 하면 프랑스나 오스트리아, 독일 같은 대륙에 붙어있는 나라가 떠오르지, 영국 같이 동떨어진 섬나라가 얼른 떠오르지는 않는다. 내 유럽 여행 위시리스트에서도 영국은 꼽힌 적이 없을 정도로 내겐 존재감이 전무했다. 이 책을 보니 많은 사람들이 런던을 가고 싶어한다고 하지만, 루브르 박물관으로 대표되는 프랑스 파리나 음악의 나라 오스트리아 빈, 르네상스의 황금기 이탈리아의 로마 등과 같은 나라와 도시가 주는 강렬한 이미지가 영국의 런던에는 없다. 그저 휴 그랜트가 로맨틱하게 등장했던 <노팅 힐>, <러브 액츄얼리>와 같은 영화의 배경일 뿐이었다.

 

그런데 독일의 맥주만 알고 있던 내게 영국의 펍이란 장소를 알게 되니, 호기심이 일었다. 옛부터 술이 있는 곳에 사람이 끼기 마련이라 펍에도 어떤 역사가 있을 것으로 예상되었기에 자연히 내 관심이 그리로 쏠렸다. 술을 하지 않는 내가 영국을 가게 되더라도 펍에 갈 일이 있을까마는, 이 책을 보니 펍엔 웨이터가 없어 한 시간이고 자리에 앉아있어도 아무도 주문을 받으러 오지 않는다고 하니까 여행을 다니다가 자리를 잡고 사람 구경을 하기엔 딱일 것 같다. 영국에도 독일 못지 않게 맥주에 대한 사랑이 지극하다. 아침에 한 잔 들고 30분씩 떠들기도 하고, 사람들이 모일 장소로 이용된 우체국 등이 많이 없어진 지금에서는 펍이 유일한 공공장소로 사람들과의 소통의 장이 된다고 한다. 그런데 여행객이 처음 영국에 들러서 펍을 찾기에는 쉽지 않다. 펍이라고 적힌 간판도 없을 뿐더러 100년 이상된 건물에 있다보니, 눈에 뜨이지도 않는다. 그래서 펍임을 알려주는 중요한 간판을 알아두고 가야 하는데 그 간판의 종류와 의미가 각양각색이다. 처음에는 글을 모르는 서민들을 상대하는 장소이다보니, 글씨 대신 그림이 먼저 생겼다. 맥주를 저을 때 사용했던 막대기가 밖에 있거나 술통, 포도넝쿨이 있는 것으로 펍을 표시했던 것이 시작이었다. 그러다가 리처드 2세가 세금을 더 쉽게 걷기 위해 맥주 말뚝을 세워야 한다는 칙령이 공포했고 이후부터는 간판을 매달고 있는 막대기 하나를 펍 옆에서 볼 수 있게 되었다. 

 

맥주를 상징하는 기호인 포도넝쿨, 담쟁이 넝쿨에서부터 술통이나 각양 각색의 직업들이 등장했고, 기독교의 영향으로 양도 등장했다. 교황의 힘이 세면, 교황이 왕이 힘이 세면 왕의 모습이 등장하기고 했다. 특히 장미 전쟁으로 대표되는 랭카스터 가문과 요크 가문의 상징인 빨간 장미와 흰 장미도 많이 등장했다. 그러다가 엘리자베스 1세의 초상화나 빅토리아 여왕과 앨버트 공, 다이애나 비와 같이 인기가 많았던 왕이나 여왕, 비도 단골 메뉴였다. 이렇게 왕가의 브랜드 역할을 했던 것이 펍의 간판이었다. 게다가 해적질로 자국의 선박을 보호하고 돈도 벌 수 있었던 과거의 상황으로 볼 때, 해적을 상징하는 것도 펍의 간판이 되었다. 영국에는 캡틴 키드라는 아주 유명한 해적이 보물을 어딘가 숨겨두고 교수형을 받았다고 하는데 실은 영국 정부가 그를 배신하고 잡은 것이라는 슬픈 역사가 있다. 그런 이야기가 펍의 간판으로 아주 잘 보존이 되어있는데 와핑의 ‘캡틴 키드’가 바로 그 곳이다. 입구 정면에 교수형을 당한 캡틴 키드를 상징이라도 하듯 교수대와 포승줄이 달려있다. 이 사진을 보니까 일본 만화 <원피스>의 전설적인 해적이 생각난다. 그 이름이 캡틴 키드가 아니었던가.

어쨌든 그 나라의 역사를 아예 그림으로 표현한 펍의 문화가 진기하다. 이 뿐만이 아니다. 영국에서 신대륙으로 떠난 배의 이름인 메이플라워도 펍의 이름으로 남아있다. 이는 로서하이트란 곳에 있는데 실제로 메이플라워호의 갑판에 올랐던 잔교가 이 펍에 붙어있었던 것이니 그 펍의 이름을 메이플라워로 바꿔도 전혀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그 외에도 유명인물이나 사건을 따서 이름 붙인 펍도 많다. 영국에게 최강 해군을 안겨준 인물인 넬슨 제독이나 유명한 해전인 트라팔가르 해전을 이름 붙인 곳만 해도 전국에 113곳+20곳이나 된다니, 가히 우리나라의 이순신 장군에 비견될 만하다. 또한 워털루 전투를 승리로 이끌어 진정한 해가 지지 않는 제국으로 만든 웰링턴 장군의 이름을 단 펍은 그 당시 400곳 가까이 달했고 현재는 136곳 정도나 된다. 문학 쪽에서는 셜록 홈즈와 셰익스피어와 관련된 펍이 있으니 찾아가볼만 하다. 이렇게 문화적으로나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들을 펍의 간판만으로도 알아낼 수 있다는 것은 무얼 의미할까. 그 나라의 역사 문화가 사람들의 생활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은 아닐까. 가장 오래된 것은 1000년, 가장 짧아도 100년은 되어야 펍이라고 할 수 있는 영국과 매일 새롭게 옷을 입는 서울만 비교해놓고 봤을 때 정말 한국은 문화적 콘텐츠가 없는 나라 같다. 이렇게 술집 하나만 가지고 그 나라를 역사를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은 그 안에 담겨져 있는 정신이 뭔가 다른 것 같다. 새것만 좋게 여기는 한국이 조금은 더 생각할 필요가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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