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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수성이 간다 - 신주쿠 구호센터의 슈퍼히어로
사사 료코 지음, 장은선 옮김 / 다반 / 2011년 5월
평점 :
삶 그 자체가 르와르, 액션, 스릴러, 범죄 등 나열할 수 없을 정도로 다채로운 영역의 소설인 남자가 있다. 재일 한국인인 현수성이 바로 그 인물이다. 스스로도 많은 범죄를 저질렀고, 그도 많은 범죄현장에서 피해자로 살아왔던 그는 일본의 가장 범죄율이 높은 환락가 가부키쵸에 뜸금없이 「신주쿠 구호센터」를 차린다. 제 몸을 팔아서라도, 미수금이 있던 수도 가게의 여주인에게 몸을 팔게 해서라도 악착같이 돈을 위해 살았던 인물로, 잘 나가는 사업도 하고 있었을 때였다. 하고 있던 사업도 모두 양도하거나 처분하고 가부키쵸에서 구호활동을 하다니, 사람이 이렇게 변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달라진 모습이다. 이 책은 그의 구호센터에서 기부금 모금을 위한 웹매거진의 편집 및 집필을 담당하고 있는 사사 료코가 자원봉사를 하면서 알게 된 현수성의 모습에 흥미를 느껴 그를 이해해보려고 시작한 일의 묶음으로 나온 책이다. 솔직히 악마였던 사람이 천사가 되었다고 하면 누구나 그의 진의를 의심부터 하게 된다. 아마도 이 사람이 처음 구호센터를 차렸을 때도 다들 그런 생각이 들었지 않았을까 싶다. 어떤 이는 그가 돈을 버는 데는 귀신 같은 놈이라 구호센터를 차릴 때도 옆에 있었다가 이 단체가 순수하게 비영리기관이라는 것을 알게 되자마자 내뺐다고 하니까, 처음부터 그의 진심을 이해한 사람은 없었을 것 같다. 이제 8년 째 같은 자리에서 꾸준히 구호활동을 하고 있으니까 조금씩 그의 의도가 전달되었을 것이다.
아마 평범한 사람의 눈으로는 이 사람을 제대로 이해할 순 없을 것이다. 그에겐 약점이 하나도 없어서 알만한 조폭들조차 ‘익혀도 구워도 못 먹을 사내 같으니’이라고 부르니, 거의 불사신에 가깝다. 죽고 나서의 문제는 둘째치고라도 이생에서 가족이 있나, 부모가 있나, 그가 소중히 여기는 대상이 하나도 없으니 그에게 배신을 하고서 살아남은 사람은 없을 것이 분명하고 그에게 복수를 하려해도 당사자를 죽이지 않는 한 특별한 방법이 없을 것이다. 왠지 만화책의 한 주인공 같지 않은가. 남성용 만화는 그다지 보지 않아서 잘은 몰라도 그처럼 탐욕에 불타올라 수단을 가리지 않고 돈을 긁어모으는 주인공으로 한 만화책 『제니게바』도 일본에는 있다고 한다. 완전히 돈만 빨아대는 수전노였던 현수성이, 구호센터를 하면서 그런 돈에 대한 욕심을 딱 끊은 것을 보면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모르겠다. 사사가 그렇게 할 수 있었던 이유를 묻자, 그 만화책을 보고 나서 현수성이 한다는 말이, “그래봤자 만화책은 상상 속의 인물이지. 작가도 그 다음을 상상할 수 없었던 거야. 실제는 더욱 지독했어. 상상도 할 수 없는 탐욕이 나를 몰아댔어.” 그러고서 들려준 현수성의 수전노였던 시절의 이야기는 상상을 초월한다. 아마 어떤 사람들은 이 이야기를 듣고 영화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도 할 수 있을 법하다. 그만큼 우여곡절과 화려한 모습이 다양하게 등장한다.
어릴 적부터 학대를 당하며 살아오면서 부모의 정을 느끼지 못했기에, 왕따를 그렇게 당해도 자신의 몸 하나는 잘 건사하려고 했다. 그 방법 중 하나가 미친 놈처럼 굴어서 상대방이 느끼는 공포의 힘으로 상대를 제압하는 것. 떼로 덤비면 당할 수가 없으니까 나중에 아이들의 집으로 찾아가서 공격하는 방법으로 아이들의 기선을 제압했고, 절대로 급소를 피하면서 맞을 수 있는 연습을 했단다. 자신이 다치면 아무도 치료해주지 않을 것이기에 치명상을 입으면 바로 죽는 것이란 것을 벌써 10살쯤에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학교 공부는 못했지만 일하는 것은 귀신같이 외우고 잘해냈다. 그것이 그에게는 살 길이었기에 신문배달을 해도 초밥을 만들어도 목수일을 해도 하루에 다 외우고야 만다. 쫓겨나면 놀이터에서 자고, 아버지가 기분이 나쁘면 발로 뻥 차여서 방 한구석으로 날라가고.. 이런 삶을 살다가 일을 하기 시작한다. 한 번도 배불리 먹어본 적이 없어서 훔치는 것은 당연한 일상이었다. 나는 이런 그에게 어떤 판단을 내려야 할지 모르겠다. 배 고파서 훔치는 아이에게 법의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말도 안 되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다고 그가 어른이 된 이후에 저질렀던 악행을 다 변호해줄 순 없지만 말이다. 초밥집에서 몇 개월 배우고 나서 이직하고 몇 년이나 경력이 쌓인 척하고 돈을 배로 받고, 목수 일을 조금 배워서 하다가 책임자가 사라지는 일이 생겨서 그것을 눈대중으로 마무리해서 돈을 벌고, 사고가 났던 것을 뻥을 쳐서 수술을 받아 보상금을 챙기고, 그 돈으로 인부 파견업체를 차려서 배로 불리는 등 그는 돈이 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했다. 스스로도 똥을 먹으라고 해도 먹을 수 있다고 말했을 정도이니 할 말이 없다.
그런데 그 시기가 일본에서 가장 어려웠을 시기였던 것을 감안해야 한다. 그 시기에 학벌 없고, 인맥 없고, 차별을 당했던 조선인이란 신분으로 일어선다는 것은 정말 보통일이 아닐 것이다. 인부 파견업체만 해도 일당을 만들지 못하면 칼부림이 날 수 있는 시기였기에 그는 목숨 걸고 사람을 부렸고, 타고난 눈썰미로 사람을 판별해냈다. 현장에서 일해야 하는 사람, 사람을 부릴 줄 아는 사람, 혼자 두면 농땡이칠 사람 등 여러 부류로 나누어서 잘 파견하는 그의 실력은 대단했다. 돈을 번 만큼 번 이후에는 그 돈을 물 쓰듯 쓰면서 새로운 인맥을 만들어나갔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자신과는 다른 부류의 동네를 구경하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그렇게 해서 알게 된 다양한 직업군의 사람들, 정치인, 연예계, 사업가, 조폭, 변호사, 도박꾼, 게이 등을 알게 된 것이 지금 구호활동을 하는 데는 적지 않은 도움을 받는다. 그렇게 특이한 이력을 가진 자가 왜 구호활동을 할까 생각해보면, 아마도 그는 자신의 어릴 적에 누군가 이렇게 끌어주는 사람이 있길 원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뭐, 아니면 말고. 하지만 정말 법의 손이 미치지 않는 사람들이 도움 청하기엔 딱인 사람이라고밖에 표현할 길이 없다. 불법체류자로 몸을 팔면서 돈도 뜯기고 학대를 당하는 여성이 있다고 치자. 일본 경찰이 그를 도와주겠는가. 강체 소환이나 당할 테니 그들은 경찰의 도움을 받을 수 없다. 그럴 때는 현수성을 찾아가는 것이 깔끔하다. 조폭조차 두려워하지 않는 그이기에 십만 엔이나 받고 여성이 원하는 대로 한적한 곳에서 돈을 벌어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해주었다.
우리는 그런 곳이 없길 바라지만 실제로 존재하는, 법이 유명무실한 세계에서는 더 많은 구호센터가 필요하다. 그런데 조폭과 게이, 도박이 횡횡하는 이런 곳에서 누가 구호센터를 열 수 있을까. 유일무이하게도 현수성이란 복잡다단한 사람만이 이런 구호센터를 차릴 수 있을 것이다. 그가 좋다 나쁘다라고 어떤 평가도 내릴 순 없지만, 지금은 가부키쵸에 그가 있어서 다행이다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