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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가 주는 위안
피에르 슐츠 지음, 허봉금 옮김 / 초록나무 / 2011년 3월
평점 :
절판
32년 인생동안 한 번도 반려동물과 시간을 보낸 적이 없는 이런 책을 읽으면 상당히 반려동물을 키우고 싶어진다. 사실상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반려동물과의 친근한 관계를 잘 상상되지가 않기 때문이다. 내 발치에서 맴돌며 내가 가자고 하는 장소로 기꺼이 따라가기 위해 무슨 일이든 하는데다가 항상 내게서 시선을 떼지 않는 존재란 아직도 경험해보지 못했기에 그런 무조건적인 사랑을 베푸는 존재가 그리운지도 모르겠다. 바로 여기서 도시인들이 개에게서 어떤 위안을 얻는지 고찰해볼 필요가 있겠다. 사람은 사람들과 기쁨과 슬픔을 나누며 보람도 느끼며 일평생을 살아간다. 하지만 어떠한 이유에서든지 사람과 그런 건강한 관계를 맺지 못한다면 우리는 그때 반려견을 생각해본다. 내게 돈이 있든 없든, 내 외모가 어떠하든, 말주변이 좀 없거나 인기가 없어도 개는 그런 것을 따지는 존재가 아니라는 함의가 우리에겐 있기에 마음놓고 개에게 의지할 수 있는 것이다. 개를 키울 때 위험한 일이란 개가 먼저 이 세상을 뜬다거나 혹은 내가 먼저 이 세상을 뜨게 되어 남겨질 개에 대한 걱정일 뿐이니,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될 때까지 충직함을 보여준다는 것만은 확실하게 믿을 수 있다.
인간이 목숨처럼 생각하는 사랑이란 감정은 어찌나 양날의 칼과도 같은지 너무 과해도 독이 되고 너무 없어도 문제가 된다. 그런데 인간관계에서 더욱 신기하게 생각되는 것은 서로 사랑해서 결혼했으면서도 어떤 이유로든지간에 이혼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서로에게 웬수라는 이름을 붙이게 된다는 점이다. 감정을 칼로 자르는 것처럼 정리한다는 것 자체가 인간으로선 불가능한 일이겠지만 그렇게까지 서로에게 상처를 줄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다. 아직 결혼을 하지 않은 입장에서 이런 문제에 대해 논의하는 것이 어불성설이지만, 인간에게 있어 가장 정신적으로 스트레스가 되는 것이 배우자의 죽음이고, 그에 못지않게 이혼이란 결과를 놓고 보면 결혼 문제는 항상 신중하게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결혼할 때 ‘안 되면 이혼하지, 뭐~’란 생각을 가지고 하는 사람이 있을까. 그것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을 것이다. 이미 끝을 놓고 시작한다는 것이 말도 안 되지만, 그렇게 마음을 먹었는데 그 결혼이 성공적으로 끝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어리석다. 이제 결혼을 해야 할 시점에서 이런 생각은 상당히 중요하다고 본다. 무슨 일이 있든 절대 이혼만은 없다라는.
세상이 쉬워진 것인지, 사람들이 변해버린 것인지, 과거에 중요하게 여겨져 왔던 가치들 중 대다수는 지키면 어리석은 사람 취급을 받는 시대가 되었다. 물질이 풍요해진 반면 사람이 귀한지 모르게 된 요즘에, 아마도 사람들은 그 공허함을 반려동물에게서 찾을 수 밖에 없어진 것 같다. 어느 누구도 그런 풍조가 좋은 것은 아니라는 것쯤은 알지만, 누구 하나 그것에 대해 반론을 제기하거나 묵묵히 살아가는 사람이 없어진 듯 싶어 안타깝다. 개는 인간보다 영리하지 못하고, 할 줄 아는 것도 거의 없다. 개를 하나 키우려면 예방접종을 비롯하여 각종 의료기술의 도움이 필요하고 사료값만 해도 한 달에 꽤 나간다. 그럼에도 할 줄 아는 것도 없고 유지비용도 적잖이 들어가는 이런 개에게서 인간은 어떤 위안을 갖는 것인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이 책에 등장하는 개의 매력 중에는 열등함, 관심 집중, 신비감, 현명함, 단순함 등 서로상반되어 보이는 항목이 자연스럽게 나열된다. 인간보다 열등해서, 할 줄 아는 것이 없어서 오히려 위안을 받기도 하고 현재에만 관심을 두는 현명함도 가지고 있다. 특히 나는 개들이 말을 못한다는 점이 가장 우월한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이라면 말을 못할 경우 같이 살아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답답한가. 하지만 개들은 그의 풍부한 표정과 다양한 표현을 하는 활기로 인해 말을 못한다는 것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혼자가 아니라는 것, 외로움을 느끼지 않게 해준다는 것, 내가 어떤 짓을 해도 나만 바라보고 나만 좋아해주는 것... 바로 현대인들의 가장 취약한 점을 개가 해소해주는 것이다.
이제는 개들을 인간 취급하는 것이 너무나 자연스러워졌다. ‘개 팔자가 상 팔자’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인간의 편의시설 못지 않게 개의 편의시설도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는 실정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개도 좋아하고 내가 싫어하는 것은 개도 싫어할 것이라는 감정적인 동화와 달리 외적인 부분까지도 인간 취급을 해서 개 호텔, 개 병원, 개 장례식장, 개 납골당 등 개를 위한 시설들이 많아졌다. 그러나 개에게 의존하는 사람들이 많아짐에 따라 개가 돈이 된다는 점에 착안해 만든 여러 시설은 내게 그리 곱게 보여지지는 않는다. 일개 동물에게 그런 화려한 시설들이 별로 맞지는 않는다는 생각이 들 뿐만 아니라, 듣기만 해도 비용이 비쌀 것 같은 그런 시설을 자신의 형편도 안 되면서 이용할 것 같은 어리석은 사람들이 많을 것 같기 때문이다. 개와 감정적인 교류를 통해 인생의 질을 높이는 것은 물론 찬성이지만, 그렇게 요란하게 개를 사랑한다는 증표를 보이는 것은 오히려 인간의 변덕스런 감정이 드러난 것 같단 생각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아니 그렇다면 이렇게 개를 사랑하는 요즘 시대에 유기견 또한 많아지고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말이다. 그저 하나의 일회용품처럼 취하고 버리는 일이 생명체인 개에게까지 확대되는 것 같아 안타까울 뿐이다. 무엇을 하든 개가 생명체라는 사실만 정확하게 인지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