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량 사회와 그 적들 - 좋은 시민들이 들려주는 우리 사회 이야기
김두식 외 지음 / 알렙 / 2011년 4월
평점 :
품절


칼 포퍼의 열린 사회와 그 적들』이란 책은 보지 못했지만 그 내용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차에 이 책이 등장했다. 그 제목에서 풍기는 도발적인 메시지가 마음에 들었고, 불량 사회에 대해 과연 적으로 행동하고 있는 사람들이 과연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책을 들었다. 책을 읽고 나서 드는 생각은 이 사회에 대해 잘 알지 못했던 나로선 큰 수확이었다고 감히 말할 수 있겠다. 실제로 움직이지는 못하지만 의식적인 노력으로 사회에 대해 비판적인 견지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나 의도적으로 애매모호한 행보를 하면서 사회 전반에 자극을 주는 사람도 있고, 진보와 보수에 대해 날카롭게 직언하며 앞으로의 한국 사회의 미래에 대해 설파하는 사람도 만나볼 수 있었다. 그 중에서도 단연 두드러진 발언을 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바로 윤희정 씨였다. 아직 파릇파릇한 20대 학생으로, 엄기호 씨가 쓴 『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에 대해서 인터뷰하는 자리에 20대를 대표하여 나오게 되었단다. 여기에 등장한 발언자들은 일단 어느 정도 살기가 괜찮은, 좋은 스펙이나 실력을 갖춘 사람이었고 나이도 어느 정도 완숙해진 상태이지만 20대 대표로 나온 윤희정 학생은 치열한 현실을 살아내고 있는, 아직 완성되지 않은 어린 청춘이기에 그녀의 발언이 더 값지게 느껴졌다. 액면가로 보면 내가 훨씬 많이 먹었지만 생각하는 수준을 본다면 그녀가 훨씬 어른스러울 정도로, 요즘 나는 현실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지도 않아서 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한창 이슈가 되었던 ‘88만원 세대’란 명칭에 대해서도 그들이 생각하는 바를 솔직하게 들을 수 있었다.

 

명문대 학생으로서 멋있게 자퇴를 하고 유명 시민단체로 행보를 계속하면서 책까지 낸 김예슬 학생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서 그것은 명문대 학생이기 때문에 가능한 행동이란 그들의 생각이 놀라웠다. 그렇게 자퇴를 할 수 있다는 생각 자체를 해본 적이 없었던 나로선 그저 김예슬 학생이 멋있게만 보였는데 그런 폼 나는 행동 하나도 학벌이 받쳐줘야 가능하다고 생각할 만큼 우리나라의 중고등학생들은 어린 시절부터 이미 많은 상처를 받아왔다는 것이 슬펐다. 나는 단지 그렇게 깨어있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 없어서 많은 대학생들이 수동적으로 반응만 할 뿐이라고 나를 기준으로 그들을 매도했었는데 그것이 아니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감탄했고, 한편으론 미안했다. 20대들을 돈독 오른 세대라고 말할 때도, 그들은 겨우 소시민으로 살아가기 위해 그렇게 발버둥치는 것뿐이란 것을 알면서도 잊고 있었던 것을 다시금 이 책으로 정리할 수 있었다. 결국 20대가 문제가 아니라 내가 사고와 철학의 부재를 겪고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훌륭한 소시민이 되지도 못하면서 이런 생각조차 갖고 있지 않은 나를 바라볼 때 정말 생각이 없이 사는구나 싶다. 윤희정 학생이 했던 발언 중에 가장 압권이었던 점은 정치에 관심 없는 20대를 주제로 이야기할 때였다. 486(386)세대들이 정치에 관심없는 20대들에게 대해 한심하게 생각하지만, 오히려 1980년대에 대학을 다녔던 486세대들이 자신의 경험에만 갇혀 민주주의를 제대로 포작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니냔 반론을 제기하는 것을 들었을 때 요즘 20대들은 희망이 있단 생각이 들었다. 물론 모든 20대가 이런 통찰력을 보여주진 못하겠지만 이렇게 의식있는 20대들이 많아진다면 충분히 우리 사회의 미래를 긍정적으로 생각해도 문제가 없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과거 486세대 때의 자유란 정치적 의미의 자유였다. 박정희 독재 정권이나 5.18 민주화 항쟁을 생각하면 그 평가는 당연하다. 하지만 현대의 자유란 경제적 자유를 함의한다. 정치적으로 자유를 얻기 위해서라도 경제적 자유를 확립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최소한의 정치적 자유라도 쟁취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책을 통해 그런 이야기를 마음껏 듣고 생각할 수 있어서 평소 코앞의 문제만 생각할 때와는 달리 내 의식도 조금 넓어진 듯 싶다. 하지만 역시 한두 번 읽는 것만으론 쉽사리 내 의식이 넓어지진 않는다. 좀 더 깊이 생각하고 좀 더 고민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누군가가 말했던 것처럼 고민하는 힘이 있어야 우리 현실을 좀 더 명확하게 보고 동물에서 괴물로 변하지 않도록 자신을 지키고 좀 더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도록 우리를 희생하는 일을 감당할 수 있겠다. 이것은 다른 책에서 봤던 것인데, 우리 사회에 대해서 고민해야 희생할 수 있고, 그런 큰 대의를 위해서는 큰 희생도 그리 크고 힘들게 여겨지지 않는다. 바로 그런 힘이 우리에게 필요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