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유기의 삼장 법사, 실크로드에서 진리를 찾다 실크로드로 배우는 세계 역사 1
프리실라 갤러웨이.돈 헌터 지음, 양녕자 옮김 / 아카넷주니어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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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크로드는 역사서에서 무슨 문물이 들어오기만 하면 심심풀이처럼 거론되는 이름 중의 하나이다. 사실상 사막을 헤치며 물건을 팔러 간다는 것은 목숨을 담고 하는 일임에 분명한데도, 우리는 아주 손쉽게 이 단어를 말하고 들어왔다. 신라 시대의 유물로 발견된 황금 보검도 신라 양식이 아니라 로마네스크 양식인 것을 볼 때 지금으로부터 1500년 전에도 로마에서까지 교류가 있었다는 증명하는데, 정말 놀랄만한 일이다. 지금도 건너가기 어려운 사막 지대를 1500년 전에 목숨을 걸고 물건을 사고 팔았던 인간의 욕망이나 집착은 가히 대단하다고 할 수 있다. 그 당시에 어떤 연유로 목숨을 걸 생각을 했는지 완전히 추측할 수는 없지만 이 책을 보면 하나의 실마리를 얻을 수는 있을 것이다. 중국의 유명한 소설인 『서유기』에 등장하는 삼장 법사는 실존 인물인데, 소설에 등장한 것만큼 약하거나 나이 들지 않았다는 증거가 있다. 2미터 가량 되는 키만 봐도 그런데 덩치가 큰 사람이었기에 실크로드를 다녀오겠다고 생각한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강인하고 열정적이였던 그의 원래 이름은 현장이지만, 세 가지 불경을 다 통달했다고 해서 ‘삼장법사’라고 불린다. 그는 유학자 집안에서 태어나 불교를 받아들여 승려가 되었지만, 공부를 하면 할수록 인도에서 받아들인 불교 경전이 상당히 혼란스러운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인도어인 산스크리트 어로 기록된 원전을 번역한 책마다 서로 내용이 다르기도 했고, 오랜 시간 구전되다가 나중에 글로 옮겨져 그 내용이 확실하지 않은 것이 많았던 것이 못내 마음에 걸렸던 삼장은 자신이 인도로 가서 원전을 구해서 스스로 번역을 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고 그것이 그의 실크로드 여행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신체를 단련하고 명상으로 마음을 가다듬고 산스크리트 어를 공부하는 등 나름의 준비를 다 마치고 나서 황제의 허락을 받고자 했지만, 당나라의 젊은 황제인 태종은 실크로드의 주된 지역인 동돌궐과 전쟁 중였던 관계로 중국 국경을 막아버리고 말았다. 어떻게든 진리를 확실히 알고자 했던 삼장은 황제의 허락 없이 인도로 가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힘든 걸음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런 구도의 길을 걸으면서 목숨의 위협을 받지 않을 수가 있나. 처음부터 자신을 안내해줄 사람부터가 강도였으나 자신의 재치로 위기를 모면하고 운 좋게도 서역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다섯 봉화대 중 불교도인 첫 번째 봉화대의 사령관을 만나 큰 도움을 받게 되었다. 진리를 위해 길을 떠나는 사람에 대해서 큰 분노와 살해의지를 품기란 어렵기 마련인가 보다. 실제로 강도를 만나게 되더라도 자신이 구도자임을 밝히고 선물을 줄 테니까 목숨만을 살려달라고 하면 백이면 백 선물만 받고 아량을 베풀어주는데, 이를 이용해 카라반이라는 상인들의 무리에서도 한, 두 명씩은 승려들과 같이 길을 떠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그래서 16년에 걸쳐서 그는 당나라를 떠나 ‘한번 들어가면 나오지 못하는 곳’이란 뜻을 지닌 타클라마칸 사막을 지나 파미르 고원에 위치한 사마르칸트를 거쳐 인도에 갔다가 다시 되돌아 둔황을 거쳐 당나라의 장안으로 돌아왔다. 그는 지나오면서 만났던 지형들, 기후들, 각각 나라들의 풍습과 문화들을 꼼꼼히 기록했고 많은 대칸(왕)들과 친분을 유지할 수 있었다. 불교라고 하는 종교를 믿는 대칸들은 물론이고 딱히 불교에 관심이 없던 대칸들이라도 삼장이 설법을 전파하고 사람들이 알기 쉽게 설명하는 것을 보곤 감동하여 많은 돈과 호위병들과 선물들을 주어 그가 인도까지 무사히 도착하는데 아낌없는 도움을 주었다. 이것이 종교의 힘이 아닐까 싶었다.

 

진리를 위해 목숨까지 걸었던 한 구도자의 여정은 결국 당태종이 요구한 『대당서역기』라는 책으로 편찬되었고, 그 이후에 19년이란 세월동안 그는 인도의 경전을 번역하는데 평생을 바치게 된다. 삼장의 이런 노력이 동북아시아의 정신을 하나로 모으게 하는 불교로 성장할 수 있게 한 것이다. 당나라뿐만 아니라 고려와 저 멀리 일본까지 중국의 불교가 주는 영향은 상상을 초월한다. 그런 힘의 뒷배경은 이렇게 목숨을 걸었던 한 구도자가 있었던 것이다. 실크로드는 물건만 전파되는 통로였는 줄만 알았더니 이렇게 정신적인 부분까지도 전파되었던 아주 중요한 통로였던 것이다. 예전에 노자의 「도덕경」이 서역의 종교와 비슷한 내용이 있는 것에서 착안하여 아마도 실크로드를 통해 정신적인 사상까지도 교류된 것이 흔적으로 남아있는 것이란 독특한 시각의 책을 본 적이 있다. 동양적인 사고로 똘똘 뭉쳐있다고만 생각했던 「도덕경」이지만 그렇게 생각해보니 서양의 기독교와 비슷한 구석도 더러더러 보였던 것이 참 신기하게 여긴 적이 있었는데, 어느 정도의 가능성은 있을 법한 이야기인 듯 싶다. 불경을 구하러 중국에서 인도로 갈 수 있었더라면 기독교란 종교도 멀리 멀리 중국 땅에 도착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동양과 서양을 잇는 실크로드는 그래서 매혹적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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