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인문주의자의 과학책 읽기
최성일 지음 / 연암서가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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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국문학과를 나오셨다는 인문주의자 최성일 씨의 글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러니 그에 대한 어떠한 지식도 없었음은 물론이다. 그런데 이거야 원... 나는 국문학과를 나오기만 하면 무조건 글을 잘 쓴다는 고루한 사고방식의 소유자는 아니지만, 이것은 해도 너무 하지 않은가란 생각이 들었다. 비문이 많다거나 글을 말도 안되게 썼다거나 하는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데 이상하게도 쉽게 읽혀지지가 않았다. 제일 처음 당혹스러움을 느겼던 부분은 서문이다.
 

‘나의 첫 과학책’은 『소년소녀발명발견과학전집』(국민서관, 1971)이다. 그러니까 이 아동 전집은 내가 네 살 때 세상에 나왔다. 달수로 따지면 3년 6개월이다. 이 책의 존재를 안 것은 1970년대 후반, 형들이 보던 1970년대 초반 어린이 잡지를 통해서다. 나는 아버지에게 월부 책장수가 팔았을 이 책을 사달라고 졸랐다. 아버지는 서울 청계천 헌책방 거리의 어느 서점에서 책을 사다 주셨다. 책갑만 없었을 뿐이지 새 책이나 다름없었다. - p. 4~5

 
문장에 비문은 없다. 하지만 온갖 구어체와 짧은 길이의 문장으로 쓰여져서 문맥의 흐름이 끊겨버린다. 사실은 내가 평소에 서평을 쓸 때 저런 식으로 쓸 때가 많았는데 아는 분이 구어체로 쓰지 말라고 주의를 주셔도 책의 첫인상대로 문체를 바꾸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나름의 개성이라고 치부하고 그런 식으로 쓸 때도 있었다. 하지만 책에서 본 구어체는 나를 참 당혹스럽게 했다. 요즘 소셜네트워크가 활발해지면서 심각한 수준까지는 아니여도 간간히 구어체와 외계어가 보이는데 그 정도는 애교로 보아 넘길 수가 있었다. 하지만 공적인 통로인 단행본에서까지 그런 표현을 보아 넘기기에는 다소 무리가 따르지 않은가 한다. 평소 과학책을 좋아하는 문과 성향의 일반인으로서 다른 사람들은 어떤 과학책을 어떻게 읽고 있을까 궁금해서 이 책을 들었는데 결단코 어렵지는 않지만 문체가 마음에 안 들어서 읽는데 난항을 겪었다.
 
그런데 그런 서문의 글이 그대로 본문에서 찾아볼 수가 있다. 서문에서 자신이 만난 과학책에 대해 나열해두는데 서문에 나왔던 책이 본문에 나올 차례가 되면 서문과 거의 흡사하게 옮겨놓은 듯한 느낌이 든다. 글을 쓸 때는 같은 내용이라도 다르게 표현하여 새롭고 참신함을 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은 비단 나만 생각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본문을 봐도 독자를 배려하지 않는 듯한 문체에 서문에서 봤던 그 말이 그대로 베껴쓰기해서 나오니, 순간적으로 서문을 다시 읽고 있나 착각을 했다. 전반적으로 봤을 때, 상당히 성의없는 글이라 하겠다. 인문주의자라 자처하는 그에게 과학은 자신의 전공이 아니니 좀더 편안한 분위기로 가려는 의도는 읽을 수 있으나 그 의도가 상당히 지나치지 않았나 한다. 어쨌든 모든 사람에게 찬사를 받을 순 없으니.
 
총 39권의 주요 과학책을 들어 조목조목 분석해놓는데, 한 꼭지에 두 권이 같이 편집된 경우도 있어서 실제로 설명된 책은 39권이 조금 넘는다. 가장 좋아하는 과학자인 칼 세이건에 대한 책이 앞부분에 와있고, 각기 좋은 점이나 나쁜 점 등을 설명해놓는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은 오탈자나 번역의 미흡함을 지적해놓은 부분이다. 아무래도 과학에 정통하지 못하다보니 그렇게 꼬집어서 오류를 수정해주지 않으면 잘못된 정보 그대로를 기억하게 될 수도 있는데, 그래서 참 고마웠던 부분이다. 다만 뭐 묻은 개가 뭐 묻은 개를 나무란다는 속담이 떠올랐을 뿐. 그런데 어쩌면 나는 과학책을 좋아하는 마음에, 이 책에 큰 기대를 한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좀 더 깊이있는, 그리고 편파적이지 않는 정보를 구하고 싶었던 것이 내가 이 책을 읽은 이유였는데, 이 책은 그런 내 기대를 충분히 만족시켜주지 못해서 더 크게 실망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여기에 등장하는 책들 중에서 내가 읽은 책은 『뮤지코필리아』와 『세계를 움직인 과학의 고전들』로, 전자의 저자인 올리버 색스의 경우에는 나도 긍정적인 평가를 내린 신경학자이고 내용도 충분히 잘 전달해주어서 좋았는데, 후자의 경우에는 몇 쪽 할애하지도 않고 누구나 아는 내용만 나열해서 상당히 별로였다. 나는 그 책을 읽을 때 정말 생각할 거리도 많아지고 내용도 더 깊이 이해하면서 읽었는데, 최성일 씨는 그냥 책의 내용을 몇 가지 옮겨와 적은 것 같은 불성실함을 보여주었단 생각이 든다. 『세계를 움직인 과학의 고전들』을 쓴 가마타 히로키 교수의 요약도 훌륭하지만 그 외에도 자신이 정리하고 평가한 것까지 알기 쉽게 전달해준 것이 내겐 특별한 기억으로 남아있는데, 이 책에서는 그저 구색을 맞추기 위해 이 책을 넣었단 생각이 들어 아쉬웠다. 물론 이것은 어디까지나 내 개인적인 평가이고, 같은 책을 읽었지만 서로 다른 생각을 할 수도 있는 것이기에 오해의 소지는 항상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둬야 한다. 
 
체계적이지는 않지만 다방면의 상식을 얻고 좀 가볍게 쓰여져서 부담 없이 과학책을 보고 싶다면, 이 책을 강권한다. 과학책의 입문서로는 나쁘지 않을 것이, 쉽고 재미난 일화를 간간히 넣어주고 폭넓은 범위의 내용을 아우르기 때문이다. 다만 창조론을 염두에 두는 사람이라면 그 성향이 달라서 읽기에 불편할 것이기에 별로 권하고 싶지는 않다. 여기서 한 마디 하자면, 창조론은 과학이 아니라 믿음일 뿐이라는 말에는 당연히 동의하지만, 진화론도 같은 기준에 의거해 과학이 될 수 없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분명 최성일 씨가 비판한 책에는 둘다 과학이 아니라고 말한 것인데, 진화론에 대해서만 그 반론을 제기하는 것이 이상스럽게 여겨졌다. 어쨌든 빅뱅이론이니 초끈이론이니 하는 우주를 설명하려는 이론은 반복가능할 수도 없고, 전적으로 추측과 수학적인 모형으로만 평가를 받아야 하는 가설일 뿐인데 그것이 사실인 양 설명하고 전파하는 것이 참 의아할 뿐이다. 사실 아무도 빅뱅을 눈으로 확인하지는 못하지 않은가. 그러면 같은 비중으로 창조론과 진화론 모두 가설로 받아들여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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