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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더 릴리언의 위대한 선물
지미 카터 지음, 에버리치홀딩스 편집부 옮김 / 에버리치홀딩스 / 2011년 5월
평점 :
품절
39대 대통령인 지미 카터의 어머니인 마더 릴리언의 이야기가 담겨 있는 책이다. 릴리언 카터는 일흔 살의 나이에 미국 평화봉사단의 일원으로 인도에 다녀오신 대단한 열정을 지닌 분이셨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느꼈던 의문점은 한국과 미국이 무엇이 다르기에 한국에는 일흔 살의 할머니가 평화봉사를 하러 나가는 일이 없을까 하는 것이었다. 태생이 달라서일까, 공동체를 향한 관심이 달라서일까, 아니면 받아온 교육이 달라서였을까. 일단 릴리언 여사가 아들들에게 한 교육과 한국의 어머니들이 아이들에게 하는 교육이 다르다는 것을 볼 때, 적어도 앞으로 30년 동안은 우리나라에는 이런 할머니가 나타날 수는 없을 것 같긴 하다. 학연 지연 혈연을 따지는 한국에서는 평화, 자유, 민주주의, 인권, 환경, 나눔, 사랑, 봉사, 법치 같은 가치를 자녀들에게 가르치는 부모가 귀하지 않은가. 자수성가한 사람들 중에도 사회에 환원하는 사람들도 거의 없을 뿐 아니라 나를 포함해 내 아이, 내 가족, 내 마을의 이익만 챙기는 사람이 더 많은 이 사회에는 아직 이런 분들이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저 공공장소만 가더라도 제 아이만 귀해서 시끄럽게 떠들어도 별로 개의치 않은 고등교육 받은 엄마들이 즐비한데 이런 할머니가 나타나길 기대하는 것은 어쩌면 어불성설일지도. 더 곰곰히 생각해보니까 이 릴리언 여사도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났고, 미국 자체가 청도교들이 세운 나라인 것을 감안해볼 때 그런 문화 자체가 우리나라에 무르익지 않은 것이 당연한 귀결이다. 우리나라에 기독교가 들어온 것은 100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오천 년 역사를 자랑하는 우리나라가 동방예의지국으로 인식되어 왔고, 온 나라가 알아주는 부잣집에서는 동네 전체를 아우르는 베품을 미덕으로 삼았던 나라임을 생각해보면 우리가 평화나 봉사, 사랑이란 미덕을 가지고 표현하지 못했던 것은 아주 가난했기 때문이라는 변명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나도 우리 나라를 이기적이라 매도하고 싶지 않기에 아예 못됐기만 한 나라는 아니라고 변명해보고 싶다. 우리가 자식 교육에 열성을 보이는 것도, 아이들에게 최고가 되길 강요하는 것도 못 살고 못 먹었던 할머니 할아버지 세대를 진저리치게 보고 자랐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자신들은 못 먹고 못 배우지 않았지만 뿌리 깊이 새겨진 가난의 흔적은 그렇게 아들 세대를 쪼아대는 것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실제로 그들을 공부하게 하는 것은 굶주림 뿐인 것을 모르고 말이다. 흔히 말하는 헝그리 정신이야말로 사람들을 강인하게 만드는 것이며, 성공의 열쇠인 것을 조금 생각만 해보면 다 알텐데. 귀하디 귀한 제 자식에게 잘 입히고 잘 먹이고 싶은 것이야 모든 어머니들의 열망이지만, 그렇게 자란 자식이 배고픔이 무엇인지 열망이 무엇인지 선행이 무엇인지 어떻게 알까. 릴리언 여사는 세상에 다시 없을 대단한 여성이지만, 그런 여성을 바로 근거리에서 보고 배우며 자랐기에 지미 카터가 대통령의 자리에까지 오르고 그 후에도 평화의 전령으로 활동하다가 끝내 노벨평화상까지 받게 된 것이 아닐까. 상을 받고자 해서 분쟁을 조정하고 평화를 옹호하는 행동을 한 것이 아니라 평생을 그런 삶을 사신 엄마 밑에서 자라왔기에, 그리고 전직 대통령이란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었기에 세계를 무대로 하는 평화의 전령사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혹자는 일개 땅콩 농부였던 그가 대통령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대표되는 정치계의 불신 덕분이었다고 말하지만 그것은 준비되지 않은 자의 질투어린 모함일 뿐이다. 아무리 그런 분위기가 조성되었을지라도 평소에 그가 청렴 결백하고 거짓말 하지 않는 사람이 아니였다면, 선행을 강조하고 인권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아니였다면, 다시 말해 준비된 일꾼이 아니였다면 멍석이 깔려있어도 그가 당선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위대한 사람의 뒤에는 항상 더 위대한 어머니가 있다는 말처럼 확실히 그는 어머니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 어머니는 우연히 아들이 대통령이 되었을 뿐, 항상 그렇게 대단하신 분이셨고 말이다. 즉, 그녀가 유명해진 것은 아마도 대통령 아들을 두었기 때문이겠지만 그래도 그녀 자신이 가치 있는 행동을 했기 때문에 그런 유명세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이런 유명세를 얻기 위해 했던 행동들은 아니지만. 한 번 생각해본다. 사람이 대단한 가치를 가진 행동을 할 수 있는 원동력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하고. 그것이 명예를 얻고 돈을 얻는 등의 개인적인 욕구에서 오는 것일까, 아니면 어떤 외부적인 영향일까. 단순히 편하고 싶고 즐기고 싶은 욕망에서 벗어나 다른 사람들을 위한 행동을 하는 사람은 개인적인 욕구에 휘둘리는 것은 아니다. 만약 그랬다면 일흔이라는 나이에 못 먹고 못 쓰는 인도까지 가서 봉사를 했을리가 없을 테니까 말이다. 마더 테레사에 비견될 수는 없겠지만 마치 그런 열망을 지닌 사람처럼 보이지 않는가. 종교적인 부르심을 받지는 않았지만 종교적인 가르침에 따라 살았으니, 아마도 그녀는 그런 가치관에 온몸을 내던진 사람이었을 것이다. 실제로 만나봤으면 더 대단한 인상을 받았을 텐데 아쉽다. 그나마 그의 아들이 남긴 그녀에 대한 책이라도 옆에 있으니 다행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