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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에게 말을 걸다 - 흰벌의 들꽃탐행기
백승훈 지음 / 매직하우스 / 2011년 4월
평점 :
언젠가 풀꽃을 본 적이 있었을까. 아마도 내 생애 가장 치열했던 고3의 수험생 시절이 아니였을까 싶다. 지금은 헐렁하게 지내면서도 들꽃 하나 시선 주지 못할 때가 많으니 이것 참~. 아마도 가장 치열하고 열정적으로 살아갈 때 작지만 치열하게 온 힘을 다해 피워내는 꽃과 공명할 수 있는 것은 아닐까. 어쩌면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맛을 안다고, 아름다움도 볼 줄 아는 사람만 볼 수 있고 많이 봐야 그 아름다움을 구별할 수 있는 것일뿐 일지도 모르지만. 이제까지의 내 궤적은 꽃과는 하등 어떤 관계를 맺어본 적이 없으니 말이다. 화분 하나에 2000원 하는 허브도 무던히 사나르다가 죽이길 일쑤였던 나는 그저 지나가면서 감상하는 것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내겐 꽃을 즐기는 것은 유한 마담 같은 여유도 많고 돈도 많은 사람이나 즐기는 것이란 인식이 박혀있어서 딱히 꽃을 즐기는 것이 일상적인 일은 될 수가 없다. 왠지 꽃을 감상하는 날이라도 있다손치면 그 날은 다른 사람의 옷이라도 입은 양 어색하기 그지 없다. 아, 내게도 이런 꽃을 감상하는 날이 다가오는구나 싶은 것이. 이렇게 누군가에게는 귀부인의 상징인 꽃이, 누군가에는 삶의 낙이요, 살아갈 이유가 될 수도 있다. 바로 이 책의 저자 백승훈 씨가 그렇다. 십년 넘게 전국에 있는 야생화만 찾아다니면서 살아오신 그 분은 꽃이 일상이 된 분이다. 게다가 꽃 한 송이를 보고 유유자적하게 시 한 수 뽑아낼 줄도 알아 풍류를 아는 분이시다. 아, 과거 선비들이 이러할까.
야생화는커녕 집에다 키우고 있는 몇 안 되는 화분 속의 꽃들의 이름조차 알지 못하는 나는, 여자치고는 지극히 꽃에 대해 무신경하다. 집에 있는 몇 안 되는 꽃도 아버지께서 정성들여 키우시는 것이니 나와는 전혀 상관 없는 일일진대 이 책을 왜 골랐을고. 아마도 이 책의 표지에 말갛게 피어있는 복수초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꽁꽁 얼어붙은 눈을 녹이면서 노랗디 노란 꽃망울을 하늘을 향해 피어놓은 복수초는 복 복(福)자에 목숨 수(壽)자를 붙여 장수를 기원하는 마음을 담아낸 이름이지만, 처음 들었을 때는 앙갚음을 한다는 의미로 들려 묘한 생각을 하게 했다. 정말로 꽃이랑 친하지 않아서 이 책에 나오는 여든 종류가 넘는 야생화 중에 아는 것은 몇 안되지만 이 꽃도 처음 보고 처음 듣는 이름이었음에도 처음 보고 반해버렸다. 얼음을 녹이고 꽃을 피워낸 것도 기특하지만, 일단 그 모양이 독특한 것이 이제껏 내가 꽃이라고 생각했던 것을 깨뜨리는 것이 얼마나 신선한지. 수술인지 암술인지도 모를 꽃술대가 엄청 크고 많이 자라서 정작 꽃잎보다도 자리를 많이 차지하는 것이 상당히 예쁘게 보인다. 누구나 제 눈의 안경이라고 하지만, 섹시하고 청초한 수많은 꽃들 놔두고 이 꽃이 내 마음에 들어와버렸으니 이것도 참 모를 일이다. 특별히 아는 꽃도 별로 없고, 없어도 그만이었던 꽃이 이렇게나 예쁘게 보이다니~. 원래 꽃 사진을 찍을 때는 접사 촬영을 하기 때문에 실제로는 작은데도 사진으로 찍어놓으면 무척 커보이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는데, 이 꽃은 실제로 어떤 모습일까 궁금하다. 일반 꽃잎처럼 얇고 부들거리는 것이 아니라 가짜처럼 번들거리기도 한다니까 실제로 보면 정말 독특할 것 같다.
이 책은 각각 야생화를 소개해주기 위해 사진과 그에 대해서 자신의 생각이나 느낌을 편지글 형식으로 표현하는데, 그 중간 중간에 꽃에 대해 관련 설화나 이야기, 쓰임새나 자생지와 같은 정보를 주저리주저리 잘 꿰여맞춘다. 어디로든지 시골로 여행갈 때, 친구한테 온 편지 읽듯이 읽을 수 있는 아주 부담 없는 책이다. 또한 생각도 많이 할 수 있게 해주고, 어떤 지역을 지날 때라도 혹시 야생화 한 송이 없는가 두리번거리게 해주는 책이다. 야생화 가이드북이라고 하면 문체나 전달 방식이 어색하지만 실상 그렇게 이름 붙여도 하등 이상할 것이 없을 정도로 정보가 많이 있다. 몸에 좋은 약재로 쓰일 수 있는 것이 한 가득이라서 그것만 표시를 해도 꽤 많았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야생화일 것이다. 그것이 우리 몸에 좋은 효과를 전해주기 때문에 쓸모가 있는 것이 아니라 하등 쓸모가 없어도, 꽃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야생화는 그렇게 제 존재의 가치를 다 하는 것일 것이다. 우리네야 삶이 바쁘면 못 보고 지나칠 수 있는 것이자만, 그들은 온힘을 다해서 꽃을 피워내니 그 마음과 향기가 어떨지 상상하기가 어렵지 않은가. 제 삶을 치열하게 살고도 더욱 열심히 살아내려고 하는 사람들이라면 충분히 상상해볼 여지는 있겠다만, 자꾸만 느슨해지려는 내겐 아직도 갈 길이 멀다. 요즘엔 심심치않게 목련을 자주 본다. 내겐 봄 하면 떠오르는 꽃이 바로 이 목련인데, 아마도 아파트에서만 살았던 것이 큰 영향을 준 듯 싶다. 요즘에는 어디를 가도 아파트 단지 안에는 꼭 목련을 심기 때문에 봄 하면 목련을 떠오르는 사람이 많지 않을까 싶다. 이 목련은 추운 상태에서는 오래 붙어있으나 더워지면 금방 저버려 추하게 떨어져버리는데 그것이 다소 아쉽기는 하지만 그것만 제외하면 충분히 아름다운 야생화라 할 수 있겠다.
이제 성큼 봄이 다가오는데 이 책 한 권이면 야생화 정도는 쉽게 구별할 수 있을 것이다. 날이 따스해지면 이제 이 책 한 권만 챙기고 나들이를 가는 것도 좋은 일이겠다. 잔디밭에 둘러앉아 자연을 바라보고 성큼 다가온 봄을 만끽할 수 있다면 인생이 꽃처럼 아름다워질 수 있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