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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훔치는 공간의 비밀 - 왜 그곳에만 가면 돈을 쓸까?
크리스티안 미쿤다 지음, 김해생 옮김 / 21세기북스 / 2011년 3월
평점 :
품절
세계적인 공간연출가는 어떤 사람인지는 몰라도 이 책의 저자는 꼭 푸근해 보이는 옆집 아저씨 같아 보인다. 일본의 하이에크 센터로 미리 견학할 장소를 조사하면서 절만 받는다고 속을 욕할지 모르는 경호원 아저씨들 이야기할 때는 누구나 스스럼 없이 접근할 수 있는 사람으로도 느껴졌다. 물론 그런 부분은 손에 꼽을 정도였지만 말이다. 어쨌든 머리가 허옇게 센 할아버지이시니까 내 말의 근거가 전혀 없지는 않을 것이다 (p.126 사진 참조). 하지만 이 책에 담겨 있는 내용은 인간의 본성에 대해 조금은 냉철할 정도로 적나라하게 드러내준다. 인간의 행복감을 구성하는 감정의 요소로는 총 일곱 가지가 있다고 하는데, 이는 영예(장엄함), 환희(희열), 파워(통쾌감), 탁월함(명석함), 열망(욕구), 황홀감(강렬한 인상), 여유(편안한 기분)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런 행복감을 구성하는 각각의 감정들이 부정적인 감정에 그 근원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 간단히 말해서, 행복감의 모태는 죄악이다!! 처음에는 이 말이 주는 효과가 너무 강렬해서 겁을 집어 먹었다. 역시 죄악이었어~! 하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면, 그 말이 가지는 의미가 어떤 것인지 파악할 수가 있다. 인간이 해야 하는 것들 중에는 중용을 지켜야 하는 것이 많지 않은가. 생각해보면 인간이 행하는 모든 것이 지나치게 과해도 문제고, 지나치게 부족해도 문제인 것이기에 이 행복감도 예외는 아닌 것이다.
각각의 행복감을 구성하는 감정의 부정적인 근원을 보자면, 순서대로 오만, 탐식, 분노, 시기심, 탐욕, 음욕, 나태가 되겠다. 다른 것도 다 곰곰히 생각하면 이해가 될 만한 것이지만, 나는 특별히 ‘나태’를 보는 순간 마음이 뜨끔했다. 항상 여유를 가지고 싶다고 하면서, 떠올리는 장면은 카페에 앉아 여유롭게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거나 넷북을 두드리는 모습인데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대학 때는 그럴 수 있는 카페가 근처에 없었고, 지금은 자기에도 바쁘기에 하기가 쉽지 않다. 또 솔직히 넷북이 좀이나 무겁나. 여유와 나태는 종이 한 장 차이임을 여실히 느끼며 여유를 가지려다가는 나태할 수도 있을 것이란 자각이 든다. 그렇지 않아도 나는 충분히 나태하기 때문에 굳이 시간을 할애해서 여유를 누릴 필요는 더욱 없겠다. 자기를 드러내고자 하는 오만한 감정에서 영예가 등장하는 것은 고대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오는 장군들의 기상만 생각해도 충분히 알 수가 있다. 모든 것을 풍족하게 쓰는 데서 오는 감정이 희락이랑 상통한다는 것은 카니발 축제에서 흥청망청 쓸 때 느끼는 풍족함의 감정과 비슷하고, 또 분노란 감정을 품고 있으면 일반적인 힘 이상의 힘을 발휘하게 되는 것도 알만한, 상상 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남이 가진 재능이나 환경에 대해서 시기하는 마음도 긍정적으로 변하면 탁월함에 대한 감탄으로 바뀌는 것이다. 고음을 자유자재로 낼 수 있는 소프라노 가수들을 볼 때처럼 도저히 질투할 수 있을 정도가 아닌 실력자들을 보면 시기심이란 부정적인 감정이 파고들 수가 없는 것이 인지상정이 아닌가. 그럴 땐 그저 감탄만 해줄 뿐이다.
열망은 탐욕에게서 등장했다는 것도 쉽게 이해가 된다. 라스베가스 호텔에 가면 음식이나 음료수가 무료인데 거기서는 먹을 것으로 유혹하고, 특별 세일을 할 때도 팔 물건을 높은 단 위에 올려서 사람들에게 갖고 싶다는 감정을 만들어준다. 모든 물건은 실제로 필요해서 사기도 하지만 요즘에는 그보다는 다른 사람들이 갖고 싶어하는 물건을 내가 소유하고 싶어 사기도 한다. 그야말로 명품 효과가 바로 그것이지 않은가. 황홀감은 인간에게 겉표지와 속내용이 다른 충격을 주어서 새로운 즐거움을 주는 것이다. 아동 마네킹이 쓰고 있는 유명 상표의 모자에는 벌거벗은 여자와 해골이 그려져 있거나 진짜 호랑이 가죽 위에 신발을 전시해놓는 퇴폐적이고 음란한 것을 그렇지 않은 것과 같이 두어서 사람들에게 강렬한 효과를 주는 것이다. 뉴욕의 가장 문란한 나이트클럽은 과거 교회였던 장소를 빌려 연 곳이었다는 사실만 봐도 사람들은 상식을 깬 연출에 호감을 느끼게 마련인 것이다. 여유를 느끼고 싶다면 빈의 박물관 구역에 설치한 엔치스가 대표적일 것이다. 다리를 높이 올리고 누워 있을 수 있게 고안된 엔치스는 그 재질이 딱딱한데도 충분히 각광을 받고 있는 것은 다리를 높이 올리는 것이 여유로움의 대표적인 자세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공공장소에서도 발을 물에 넣고 쉴 수 있게 한다든가 다리를 위로 올려 긴장을 풀 수 있게 해주는 다양한 시설이 우리의 눈을 사로잡는다. 이런 곳에서 돈을 요구한다고 할지라도 어느 누가 거부할 수가 있겠는가.
인간의 근원적인 죄악들을 면밀히 파고들어 교묘하게 긍정적인 방향으로 끌어내 행복감을 이루는 일곱 가지의 감정들은 인간이라면 절대로 포기하지 못하는 감정일 것이다. 그래서 이제는 마케팅에도 이런 인지심리학 분야가 파고들어 인간의 호주머니를 어떻게 하면 쉽고 편안하게 털어낼 수 있을까 연구하게 된 것이 아닐까. 점점 지능적으로 접근하는 자본주의의 위력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고, 또한 내 안에 잠자고 있었던 여러 열망들이 표면으로 드러난 시간이기도 했다. 여기에 등장하는 몇몇 장소는 꼭 한 번 가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