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워하다 죽으리
이수광 지음 / 창해 / 2011년 3월
평점 :
절판





 



 이수광

 

1954년 충북 제천에서 태어났다. 1983년 <중앙일보>에 「바람이여 넋이여」가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다. 제14회 삼성문학상 소설 부문, 미스터리클럽 제2회 독자상, 제10회 한국추리문학 대상을 수상했다. 이수광은 오랫동안 조선시대 살인사건 기록에 남다른 관심을 기울여왔으며, 냄새가 물씬 풍기는 생생한 역사서를 집필해왔다. 지금은 수 년 안에 한국뿐만 아니라 영미권 독자들을 사로잡을 작품을 쓰고 싶은 꿈을 갖고 있다.

오랫동안 방대한 자료를 섭렵하고 수많은 인터뷰를 하면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역사의 지혜를 책으로 보여주는 저술가로 유명하다. 우리나라에서 팩션형 역사서를 개척했다는 평가를 받는 베스트셀러 작가. 특히 추리소설과 역사서를 넘나드는 자유로운 글쓰기와 상상력으로 자신만의 독특한 대중 역사서를 창조해왔다. 1983년 「중앙일보」에 단편 「바람이여 넋이여」가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으며, 『저 문 밖에 어둠이』로 제14회 삼성미술문화재단 도의문화저작상 소설 부문, 『우국의 눈』으로 제2회 미스터리클럽 독자상, 『사자의 얼굴』로 제10회 한국추리문학 대상을 수상했다.

지금까지 단편에『바람이여 넋이여』,『어떤 얼굴』,『그 밤은 길었다』,『버섯구름』 外 다수가 있고, 장편에『나는 조선의 국모다』,『유유한 푸른 하늘아』,『초원의 제국』,『소설 미아리』,『떠돌이 살인마 해리』,『천년의 향기』,『신의 이제마』,『고려무인시대』,『춘추전국시대』,『신의 편작』,『왕의 여자 개시』, 『조선을 뒤흔든 16가지 연애사건』, 『조선을 뒤흔든 16가지 살인사건』 등 다수의 저작을 발표했다.



 

 

조선 시대의 사대부와 기생의 만남을 과연 우리는 사랑이라 정의할 수 있을까. 사대부의 눈으로도 허난설헌과 춘추전국시대을 뒤흔들었던 미모와 재능을 겸비했던 위강을 능가하는 실력을 지녔다고 호언할 수 있음에도 천한 신분 덕에 박복하게 살아야 하는 기생의 절개를 과연 절개로 봐주기나 할까. 여기 피 비린내 나는 조선 시대에 출중한 문장으로 이름을 날렸으나 오랜 시간 유배만 당했던 선비 김려와 천하일색에 명문을 가진 기녀 연화가 만났다. 하루라도 이틀이라도 비겨서 지나갔더라면 평생을 못 보고도 지나칠 수 있는 그런 만남이었는데, 과연 운명이라 이름지어도 될까. 변방에서 태어나 평생 한 번이나 한양에 갈까 말까하는 연화는 부령에 부임했던 목사를 따라 첩실이 되기 위해 한양에 갔다가 우연히 김려를 만나고, 관노를 첩실로 데려온 죄를 물어 그 목사는 잡혀들어간 상태에 연화는 이 김려에게 사랑을 느껴버렸다. 그 길로 같이 살림을 차린 둘은 짧은 시간을 행복은 느꼈지만 그 후로 16년이나 강제로 이별할 수밖에 없었다. 그 기나긴 시간을 떨어져 있으면서 절개를 지킨 연화는, 그가 부령 땅에 올 수 있기만을 바라고 또 바랐다.

 

십대에 만나 사랑을 하고 이제 16년 만에 유배지로 부령에 온 김려를 만난 연화는 4년간 행복했다. 그와의 행복을 오래 누리고 싶으나, 그를 사랑하기에 그가 빨리 누명을 벗기를 기도하는 연화는 그저 기생이 아니라 사랑하는 남편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는 열부와도 다름 없었다. 하지만 이런 사랑에는 항상 시련이 있는 법이다. 처음에는 둘의 깊은 사랑을 시기한 친구 간의 작은 질투심에 비롯된 일이었지만, 그것이 점점 더 커져서 목숨까지도 위협하는 시련이 찾아온다. 김려를 사랑하기에 죽음에까지 이르게 되는 연화.... 과연 연화는 행복했을까? 어릴 때는 일,이 년 정도 같이 살았을까, 진정으로 사랑을 했던 것은 부령으로 유배를 와 4년 정도 같이 지낸 기간 뿐이었다. 5년 정도 꿈결같은 행복을 누리며 살았던 것을 대가로 22년을 그리워하기만 했던 그들에게 과연 사랑은 아름답기만 했을까. 선비로서 급제를 하지도 못하고 친구의 모함으로 인해 귀양을 가게 된 김려의 경우는 사내대장부로 태어나 입신양명하지 못해 괴로웠을 인생에 한 줄기 빛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연화에게는 이리저리 남자들에게 시달리며 한 떨기 꽃 같이 아리따운 인생을 다 져버릴 인생을 김려가 있어 행복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니까 결국 사랑은, 짦은 사랑일지라도 현실의 모진 박해와 어려움을 이기는 한 가닥 희망이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애가 끓고 절절한 사랑이 있었기에 그네들의 퍽퍽한 삶이 조금은 부드러워졌는지도 모르겠다. 사대부 집안의 여자로 태어났어도 대단한 실력과 무예를 가져봤자 제 뜻을 펴지도 못하고 스러졌을 인생인데, 기생으로 태어난 것을 보면 얼마나 박복하냐. 하지만 지금 연화에게 물어보면 자신이 기생이어서 김려를 만나게 될 수 있었던 것을 감사한다고 할지도 모를 일이다. 조선 시대는 여자로 태어난 것 자체가 그리 행복한 요소가 아닐진대, 무어 그리 서러운 것이 있겠나. 또한 조선 시대에는 선비로 태어난다 할지라도 썩 좋은 일은 되지 못한다. 벗에게 배신당하며 이리 저리 사화에 연루되어 하지도 않은 죄를 지었다며 모진 고초를 당해야 하는 그런 인생이라면, 아예 노비로 태어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그래도 그에게는 글이 있고, 시가 있으니 한평생 한스러워도 그 한을 풀어낼 수 있어 좋았다. 만약 무지렁이였다면 또 얼마나 답답했겠나.

 

이 모든 이야기는 실제 있었던 일이라 더욱 놀라움을 안겨준다. 과연 정말로 사대부 집안의 선비가 기생을 보고 극찬을 아끼지 않고 그녀를 절절히 사랑해다니~. 놀라울 뿐이다. 허난설헌보다도 낫고 위강보다 능하다고 평했던 연화의 글이 한 조각이라도 남지 않았던 것이 무척 아쉽지만, 아마도 하늘은 천재를 잘 보여주지 않고 싶으셨나 보다. 예전에 이런 비슷한 사랑이야기를 본 적이 있다. 이 책은 실제 조선 선비인 김려의 실화를 각색한 것이지만, 전에 봤던 『능소화』는 무덤에서 발견된 아내의 편지에서 모티브를 따와서 각색한 것이라 실제 사건과는 전혀 다를 수도 있었던 이야기이지만 그 감동은 이 소설 못지 않았다. 어쨌든 두 소설을 보니, 몇백 년 전의 여자들은 어떤 신분으로 태어났건 그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미약한 존재임이 확실히 알겠다. 정말 그런 이야기를 접하고 있으면 정말 안타깝고 한스럽다. 신분이 뭔데, 여자라는 조건이 뭔데, 끔찍하지는 하지만 그녀들에게 이렇게 절절한 사랑이라도 남아있다니 한편으론 다행스럽기도 하다. 어쩌면 다른 이들은 가슴이 절절하다는 느낌조차 받지 못하고 평생을 살다 그렇게 허무하게 죽을 것이니까 말이다. 그나마 자신의 뜻을 알아주는 진정으로 사랑하는 상대를 찾았던 것만으로도 위안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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