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 헴펠 연대기
세라 S. 바이넘 지음, 박찬원 옮김 / 은행나무 / 2011년 2월
평점 :
절판




 

교사가 주인공이 되는 소설은, 마음에 와닿기도 하고 주인공을 닮고 싶은 욕구가 생기기도 하고 그들의 능력과 재치와 매력에 반하는 것이 다른 소설보다는 훨씬 반응이 빠르다. 이는 아무래도 같은 업계에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은데, 이 소설은 이제까지 내가 읽었던 교사가 등장하는 소설과는 조금은 다른 느낌을 받았다. 이제껏 내가 봤던 소설들은 교사인 주인공이 아주 탄탄하게 그 자리에 서서 모든 것을 다 알고, 모든 것을 참을 수 있는 슈퍼 만능 교사였던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은 아니다. 아마도 조금씩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소설 속 주인공에게 감화되는 감성도 퇴화되어 버리기도 하는 것일까. 이제까지 봤던 교사가 주인공인 소설에서 이렇게 담담하게, 혹은 이렇게 혼란스럽게 자신의 미래를 고민하는 교사 주인공은 처음이었기에 딱 깔끔하게 떨어지는 맛은 없었다. 하긴 그 교사도 푸릇푸릇한 이십 대 중반이 아닌가. 교권 붕괴니, 수업 포기니 하는 우울한 전망들이 나오는 이 때에, 어쩌면 나는 마법과도 같이 교사 한 사람의 능력으로 모든 것을 바꾼 기적을 바랐는지도 모르겠다. 이 소설은 그런 생각을 가지고 읽으면 조금은 그 빛이 바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 감동까지 바래지는 것은 아니지만.

 

‘연대기’라는 독특한 제목을 붙은 것처럼 이 소설은 헴펠 선생님을 주인공으로 하는 단편소설을 묶은 것이다. 실제 작가의 중학교 교사 시절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소설이라 그런지 개연성과 현장감은 뛰어나다. 아이들에게서 사전에도 나오지 않는 단어를 옮아오는 에피소드만 해도 실제 교사가 아니였다면 알 수 없었을 내용이었기에, 그 장면을 읽으며 내 경험도 더듬어볼 수 있었다. 아이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단어들은 대부분 비속어이거나 과격한 표현이나 모든 것을 함축해서 쓰는 단어들인데, 이런 단어들이 자연스레 내 입에서 사용되거나 실제로 입밖에 내뱉지는 않아도 어떤 상황에 아이들이 할 것 같은 단어가 머릿속에서 번뜩이는 것을 보면 정말 놀랍다. 그러나 이것은 약과다. 얼마나 많이 아이들의 글을 교정해주었던지 이젠 나도 맞춤법이 헷갈리기 시작하는데, 미스 헴펠도 같은 경험을 해주셨다. 이 소설의 특징은 이런 에피소드는 한 에피소드의 진행 중에 잠깐씩 등장해준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는 중에 다른 이야기가 삽입되는 꼴이랄까. 이런 탓에 가끔은 내가 무얼 읽고 있는지 다시 앞부분으로 돌아가기까지 했는데, 이렇게 이야기가 흘러나오니까 진짜 미스 헴펠이 서있는 그 자리에 같이 있는 것 같은 기분은 들긴 했다.

 

미스 헴펠의 장점이라면, 모든 사람들이 공인하는 문제아에게도 관심을 게을리하지 않아서 그 아이의 안의 고독이나 스스로를 괴롭히는 듯한 절망감을 읽어내어 미스 헴펠이 그 자리에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아이가 아주 조금이지만 안정감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다. 물론 그녀는 자신이 이렇게 하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항상 자신이 아이들에게 최선을 다하는지, 더 잘할 수는 없는 것인지 고민하며 걱정하는 평범하고도 비범한 선생님이었다. 또한 모든 아이들에게 가까이 가서 고민을 들어주고 인정해주고 호기심을 유발해주는 등의 노력을 아끼지 않았는데 교재를 바꾼 에피소드를 읽을 때는 완전히 푹 빠져버렸다. 미스 헴펠이 이제껏 아이들에게 읽혀왔던 소설과는 다르게 조금은 파격적인 『그 소년의 삶』을 읽게 했을 때의 변화는 놀라웠다. 꼭 내가 그런 일을 한 것처럼 자부심이 들기도 했다. 한 번도 책을 읽지 않았던 아이들까지도 밥을 먹으면서, 화장실을 가면서 그 책을 붙잡고 놓지 않는다고 부모님들이 고맙다고 했을 때, 미스 헴펠은 얼마나 기뻤을까! 완전히 얼어붙어버려서 그 기쁨을 제대로 표현하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소심할 땐, 소심한 그녀는 정말 사랑스러웠다. 하지만 그녀가 그럴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진로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고민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매일 다람쥐 쳇바퀴 돌듯 학교로 출근하는 것이 너무 지치고 힘들어서 나름의 방법으로 다치는 것을 상상했던 미스 헴펠의 노력이 동료 교사의 임신과 대학원 입학을 통해 좀 더 우아한 방법으로 해결할 때는 다소 웃기기도 했다. 사실 나도 수십 번 상상하고 상상했던 방법 - 몸을 다치는 것, 발만 좀 기브스하면 안 될까? - 이기에 어쩌면 더 웃겼던 것인지도 모른다. 중학생을 가르치는 것이 자신의 일이 맞는지에 대해서 깊이 고민하며 진로를 위해 모험도 하고 실패도 하고 결국 정착을 해내면서 그렇게 시행착오를 겪는 그녀의 모습이 어쩌면 아이들을 가르치는 모습이 아닌가 싶어서 묘했다. 어떤 일도 그렇게 고민하지 않는다면 발전하지 못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아서 말이다. 나는 아이들과 씨름하는 것이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힘들어서 이제 그만하고 싶었다. 그래서 나도 몸을 다칠까, 사고가 좀 나주면 어떨까, 대학원을 갈까 등의 여러 궁리를 하기도 했다. 다른 직업은 이렇게 아이들의 소소한 것들 - 그러니까 내성적이냐 외향적이냐 하는 성향이나 긍정적이냐 부정적이냐 하는 가치관, 혹시 엄마나 아빠가 안 계시냐 하는 가족관계, 칭찬을 많이 받고 자랐느냐 꾸지람을 많이 받고 자랐느냐 하는 양육 배경 등 - 을 다 고려하면서 일을 하지는 않을 것이란 얄팍한 부러움에 다소 마음을 잡지 못하기도 했다.

 

다른 사람은 모르겠지만, 내게는 보이는 것들을 어찌 안 볼 수 있으며 어찌 도와주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지금은 그냥 포기해버렸다. 아니, 항복해버렸다. 내가 여기에 자리하고 있어서 무언가를 꼭 해야 할 사명이 있기에 부르셨다는 것을 알겠다. 아직은 여기가 내가 있을 곳이라는 것을. 자만하지 말고, 교만하지 말고, 제 것이라고 유세 떨지 말고, 이 자리를 지키는 것이 내 일이라는 것을.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들을 사랑하는 것이 내 일이라는 것을. 사랑이 없는 내게 하나를 알려주시려고 이 곳으로 부르셨던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사랑해보라고. 사랑하는 연습을 하라고 말이다. 아마도 미스 헴펠은 천성적으로 남을 사랑할 수 있는 재주를 타고 났는지 그런 고민한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그녀는 아둥바둥 하며 아이들에게 더 많은 것을 해주고 싶어서 노력했지만, 결국 학교를 떠났다. 그리고 끝이 났다면, 우리가 바라는 감동은 얻지 못했을 것이다. 마지막에 한 에피소드가 남아있다. 미스 헴펠이 어째서 선생님이었는가를 알 수 있는 마지막 편이. 이 마지막 에피스도를 본다면 뭉클한 감동을 우리에게 선사해줄 것이다. 아, 바로 선생님은 이런 것이지~ 하는 깨달음과 함께. 나도 나중에 이런 평가를 듣고 싶지만, 아직은 멀었다. 그저 그런 선생님이라도 되지 말아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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