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기
한국에서 가장 신뢰받는 번역작가이자 인문학적 글쓰기의 독특한 세계를 구축한 문인. 난해하기로 이름난 세계적인 기호학자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 『장미의 이름』과 『푸코의 진자』를 우리나라에 소개한 장본인으로, 지난 20여년 간 내놓은 번역서가 1백 50여권에 이른다. 그의 글들은 질적으로 아주 양호한 최상등품일 뿐 아니라, 양적으로도 엄청난 속필다작이다. 1년에 열대여섯 권의 번역서와 소설, 산문집을 낼 정도니 알 만하다.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는 그에게 번역의 즐거움을 만끽하게 한 소설인데, 열 번쯤 되풀이해 읽은 후 번역에 들어가 1주일 만에 끝냈다.
그러나 이 놀라운 작가의 학력을 굳이 따져보자면 ‘중졸’이다. 대입 검정고시를 통과했고 서른이 넘어 신학교도 다녔으니 ‘중졸’이라는 것이 정확한 표현은 아니지만, 여하튼 고등학교는 진학 후 두세 달 만에 작파했고, 그 후로는 모든 것을 독학으로 배우고 익혀 왔다.
그가 인문학의 바다에 처음 뛰어든 것은 중학교 2학년 때. 학비를 면제 받는 대신 교내 도서실 사서를 맡으면서, 물을 만난 고기마냥 도서관을 가득 메운 지식의 세계 속으로 한없이 빠져 들었다. 이렇게 중학 시절에 이미 인문학의 단맛을 보아버린 이윤기에게 개발시대 대한민국 고등학교 교육은 더 이상 의미가 없었다. 그는 지금도 스스로가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무언가에 얽매이는 것을 거부한다. 직장생활을 한 것도 일생을 통틀어 딱 4년이다. 생활도 남들과 반대로, 조간신문을 읽고 취침해서 대낮에 일어난다.
1969년 국군 나팔수로 근무하던 그가 베트남전에 자원하여 참전했던 것도 별난 일이었고, 귀국 시 남들은 전자제품이다 뭐다 해서 한 밑천 장만해 오는데, 700여 권의 서양책들을 질머지고 돌아온 것도 별난 일이었다. 이 책들은 이윤기의 재산목록 1호가 되었으며, 그 중 여러 권이 번역되어 국내에 소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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