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흐르는 대로 노자의 도덕경 Easy 고전 2
한국철학사상연구회 기획, 김갑수 지음, 최남진 그림 / 삼성출판사 / 2006년 12월
평점 :
절판



 



원전/노자

 

중국 고대 철학자로 도가의 창시자. 노군(老君) 또는 태상노군(太上老君)이라 불리며 신성화되기도 하였다. 유가에서는 철학자로, 일부 평민들 사이에서는 성인 또는 신으로, 당에서는 황실의 조상으로 숭배 받았다. 사마천에 의하면 노자가 늙었을 때 젊은 공자를 만나 토론하고 공자의 오만함을 질책하였으며, 공자는 노자에게 깊은 감명을 받아 그를 ‘구름과 바람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는 용’에 비유했다고 한다.

 

글/김갑수

 

1961년에 태어나 성균관대학교에서 동양철학을 공부하고 철학박사학위를 받았다. 국민대학교, 경기대학교 등에서 강의했으며, 1999년부터 2001년까지 중국 산동사범대학 초빙교수를 역임했다. 2006년부터 한국철학사상연구회 전임연구원 및 성균관대학교 유학동양학부 겸임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중국고대철학(특히 도가)에 관심을 갖고 연구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장자와 문명』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는 『천인관계론』, 『주역-유가의 사상인가 도가의 사상인가』(공역), 『현대중국의 모색』(공역) 등이 있다.


 

 

중학교 1학년부터 고등학교 1학년까지 읽을 수 있게 정리된 EASY 고전 시리즈가 삼성출판사에서 나왔다. 2006년에 나왔으니까 출간된 지는 꽤 되었다. 동서양의 주옥 같은 고전뿐만 아니라 한국의 명서, 그리고 여러 과학 고전까지 정리해준 시리즈라서 고전을 처음 접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충분히 읽을 수 있게 했다. 판형도 작고 아담한 데다가 기껏 많아봐야 150페이지를 넘지 않는 분량이라 아주 쉽게 읽을 수 있다. 표지도 어찌나 알록달록한지 한 자리에 다 모아두고 보면 색감도 아주 예쁘다. 이번에 본 『노자의 도덕경』은 연한 보랏빛 표지로 된 아담한 책이 분량도 121페이지밖에 되지 않아 아주 금방 읽을 수 있었다. 사실 어른인 내가 읽어서 어려운 중고등학생 책이라면 실제 중고등학생들에겐 무척이나 어렵겠지만, 이 책만큼은 그 이면의 의미까지는 다 못 파악하더라도 충분히 한 권을 다 읽고 그 감상을 말할 수 있는 정도는 될 정도의 난이도라 누구나 권해줘도 무리가 없을 게다. 예전에 두리미디어에서 나온 철학 책을 하나 읽기 시작했다가 상당히 어려워서 진도를 다 나가지 못한 채 포기한 적이 있었는데, 그 책의 컨셉이 ‘청소년이 꼭 읽어야 할’뭐, 이런 종류의 것이라 무척이나 자존심이 상했던 적이 있었다. 그래서 청소년 용으로 나온 책이라도 내가 읽을 수준으로 쉽게 나와있지 않으면 쉽사리 도전하지 않는데, 삼성출판사에서 나온 이 시리즈는 처음 도전한 이 책이 상당히 마음에 들어 다른 책도 계속 봐도 어렵지 않게 접근할 수 있겠다 여겨진다.

 

사실 이 책말고도 노자의 『도덕경』과 같은 고전책을 몇 권 정도 봤기 때문에 이 책이 쉽게 느껴질지 모른다는 생각도 하긴 했지만, 되돌이켜 생각해보면 그 때 봤던 다양한 내용들이 지금 이 순간에 기억나는 것은 아니기에 그런 배경지식 덕분에 이 책이 쉽게 느껴지는 것은 아닐 것이라 생각한다. 내가 이렇게 이 책이 쉽다고 강조하는 이유는 청소년들이 쉽사리 이런 책을 접하려고 들지 않기 때문이다. 읽어서 충분히 도움이 되지 않는 책은 하나도 없건만, 아니 그런 책은 권해주지도 않건만 머리가 컸다고 권해주는 책을 그다지 즐기지 않는 아이들을 보면 조금은 안타깝다. 고기도 많이 먹어본 사람이 먹을 줄 안다고, 책도 많이 봐본 사람만이 그 재미를 안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만나는 사람들마다 책을 좀 보라고 귀에 딱지가 앉도록 이야기를 하지만 사실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 사람이 태반이다. 현란한 영상의 시대에 고루하게 활자를 들여다보라고 하는 사람이 이상한 취급을 받는 것이 맞는 현상인지는 모르겠지만, 책은 책을 읽는 사람에게 그 노력을 헛되이 여기지 않아서 책을 읽는 만큼 즐거움과 참된 깨달음을 준다는 것만은 절대 변하지 않으니, 어떤 제테크보다도 그 남는 이익이 크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인문학의 위기라는 시대에 역설적으로 인문학이 많이 강조되는 이때에 이런 책쯤 읽어두면 좀 좋은가? 하여튼 걱정스러울 뿐이다. 그래서 나도 아이들에게 추천해주기 위해서라도, 그리고 어른용으로 된 책을 읽기 전에 먼저 배경지식을 깔아두기 위해서라도 청소년 책을 읽어보자 마음 먹었다.

 

먼저 책은 두 부분으로 나뉜다. 1부에서는 책 밖에서 노자가 어떤 인물인지, 그가 살았던 시대는 어떤 때인지를 간략하게 알려준다. 사실 그의 존재가 처음 기록된 문헌은 사마천의 『사기』인데, 이 책에서는 신빙성이 없는 내용은 그렇다고 자세하게 밝혀놓아서 노자라는 인물의 실존이 정확하지 않다고 한다. 하지만 다른 책에 없는 그가 한 벼슬에 대한 기록이 있어서 학계에선 그 기록을 사실로 추정한다. 당나라의 이연은 그와 같은 성을 가진 노자를 조상으로 추존했고, 평민들에게는 신적인 존재로까지 추앙받았고, 공자가 ‘구름과 바람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는 용’과 같은 인물이라고 평까지 받은 존재는 과연 어떤 인물일까? 게다가 이 책의 주인공인 ‘도덕경’이란 책도 본인이 쓴 것이 아니라 윤희라는 사람이 은거하러 들어가는 노자에게 한 수 청해서 받은 글이라는 설만 있을 뿐, 정확히 누가 썼는지조차 알 수 없다고 하니, 노자에 대해서는 한결같이 신비스러운 내용 뿐이다. 하지만 전세계적으로 성경 다음으로 많이 팔린 데다가, 노자 연구서만 1700 여 종이 있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에게 큰 깨달음을 주는 책임에는 분명하다. 서양에서도 10대 고대 작가 중에서도 첫 번째로 꼽았다고 하니까 그의 인기는 동서양을 아우르는 대단한 것이다. 그렇다면 전세계인들이 반색하며 받아들이는 노자의 사상은 어떤 것일까. 그것은 2부 책 속으로 들어가기에서 살펴볼 수 있다.

 

제37장에는 이런 말이 있다.

 

도는 언제나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도 못하는 것이 없다.

왕이나 제후가 그것을 지킬 수 있다면 만물은 저절로 살아갈 것이다.

살아가다가 욕망의 싹이 트려고 하면 나는 그것을 이름 없는 통나무로 막을 것이다.

이름 없는 통나무로 막아 놓으면 욕망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욕망이 일지 않고 잠잠해지면 천하는 저절로 제 모습을 찾을 것이다.(제37장, p. 49-50)

 

여기서 가장 중요한 말은 첫 번째 문장, 도는 언제나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도 못하는 것이 없다 는 것이다. 마치 봄이 가면 여름이 오고, 가을이 가면 겨울이 오는 자연의 질서처럼, 도는 규칙성은 있되 그 안의 어떤 의도나 목적 의식이 없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아무것도 하지 않지만 못하는 것이 없는 것이다. 우리가 휴일에 가만히 집에 있으면서 컴퓨터도 했다가 책도 봤다가 뒹굴었다가도 친구에게 전화를 받으면, “아무것도 안해”라고 하지 않는가. 우리의 의식 안에 이것을 해야 한다는 것이 없기에 무언가를 하고 있지만, 그것은 안하는 것과 같게 되는 것이다. 이 말은 제1장과도 일맥상통한다.

 

말할 수 있는 도는 진짜 도가 아니다.

부를 수 있는 진짜 이름이 아니다.

이름 없는 것은 천지의 시작이고,

이름 있는 것은 만물의 어머니이다.(제1장, p. 41)

 

일견 무슨 말인지 도통 알 수 없는 말을 나열해 놓은 것 같지만, 이 말은 도의 무궁무진성, 전지전능성을 말하고 있다. 그러니까 도는 사람들이 이러저러하다고 말할 정도의 수준이 아니라 그보다 훨씬 고차원적인 것이라서 인간의 말로 표현되지도 않고 할 수도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봄이 가면 여름이 오는 것에서 그리 심각하게 숙고하지 않는다. 그것은 매번 어김없이 찾아오는 자연 현상일 뿐이니까. 하지만 그 현상의 원인을 파고들어가면 우리는 그것을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마치 그런 이유처럼, 도도 인간의 설명으로 표현할 수 없다는 것이다. 모든 것의 원인이 되고, 모든 변화의 이유가 되는 것, 바로 그것이 도이다.

 

그렇기에 하늘과 땅은, 모든 만물은 착하지도, 나쁘지도 않다. 공자는 하늘이 선하기에 인간이 선하지 않으면 그에 맞는 벌을 하늘에서 내린다며, ‘인’을 강조했지만 노자는 도에게는 어떤 목적 의식도 개인적인 감정도 없기에 자연은 인간에 대해 아무런 관심이 없다고 말한다. 그래서 성인이든 현자이든 아무것도 우리는 존경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통치자가 그런 것을 강조했던 것은 백성들을 좀 더 편하게 지배하기 위해, 그러니까 좀 더 쉽게 백성들의 이익을 빼앗기 위해 만들어낸 것일 뿐이라며 도덕이니 법이니 하는 것은 오히려 백성들의 삶을 피폐하게 만든다고까지 주장했다. 다시 말하면, 공자는 도덕규범이 사라졌기에 사회가 혼란해졌다고 보았다면, 노자는 도덕규범이 세상에 들어왔기에 사회가 혼란해졌다고 본 것이다. 처음에 들으면 황당하지만 계속 듣다 보면 묘하게 수긍하고 싶은 구석이 있는 노자의 주장이었다. 그가 바라는 이상사회가 작은 촌락 같은 자그마한 국가로 본다면 그의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할 수가 있다. 백성들이 많고 국토가 넓은 나라라면 여러 제도나 통치 법규가 필요할 테지만, 노자가 바라는 사회에서는 법조차도 무용지물일 테니까 말이다.

 

인간이 만든 모든 법 체계나 도덕 체계를 다 쓸모없는 것으로 본 노자이기에 그가 공자에게 범접할 수 없는 도인과도 같은 인물로 여겨진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인간의 일반적인 사고방식을 뛰어넘는 역설적인 그의 사상이 오히려 인간의 내면적인 심리를 정확하게 포착해냈기에 아주 훌륭하다. 57장에서는 요즘 우리에게 특히나 문제가 되는 ‘상대적 빈곤’에 대해 피력하고 있다.

 

세상에 금지하는 것이 많을수록 백성은 더욱 가난해진다.

사람들이 편리한 도구를 많이 사용할수록 나라는 더욱 혼란스러워진다.

사람들이 기술과 재능을 많이 발휘할수록 신기한 물건이 더욱 많이 나타난다.

법령이 많을수록 도적도 많아진다. (제57장, p. 79)

 

그 당시에도 상대적인 빈곤으로 인해 마음이 어지러웠나보다. ‘해 아래 새로운 것이 없다’는 진리처럼, 적어도 전국 시대 이전의 사람에게서 현대의 문제점까지 지적을 받다니, 그의 사상이 왜 지금까지 왕성하게 연구되는지를 알 수가 있는 대목이다. 결국 노자는 세상의 모든 인위적인 것을 벗어버리고 자연의 원리로 돌아가서 마음을 비운 채로 평화를 누리며 살아가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가진 것이 많아서 과거 시대의 사람들보다 더 많은 근심을 싸안고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꼭 필요한 말씀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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