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만난 옛 벗 공자의 논어 Easy 고전 1
한국철학사상연구회 기획, 황희경 글, 정훈이 그림 / 삼성출판사 / 2006년 12월
평점 :
절판



원전/공자(孔子, BC 552~ BC 479)

 

중국 춘추시대의 교육자이자 철학자, 정치 사상가이며 유교의 시조. 노나라의 창시자이며 주왕조의 건국 공신이었던 주공을 흠모하여 그 전통적 문화습득에 노력하였다. 최고의 덕은 인이며, 인은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정의하였다. 수양을 위해 부모와 연장자를 공손하게 모시는 효제의 실천을 가르치고 이를 인의 출발점으로 삼았다. 그의 철학은 동아시아 전 문명권에 깊은 영향을 끼쳐 소크라테스, 예수, 석가와 더불어 세계 4대 성인으로 꼽힌다. 『시경』, 『서경』, 『주역』, 『예기』 등을 정리하였고, 242년간의 역사를 옳고 그름이라는 관점으로 다시 기록한 역사책 『춘추』를 지었다. 그의 언행은 제자들이 편찬한 『논어』를 통해 전해지고 있다.

 

글/황희경

 

1959년 강화에서 태어나 성균관대학교 유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중국철학을 전공하여 <풍우란의 철학사상에 관한 연구>로 철학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영산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며 중국문명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현대중국의 모색』(공저), 『삶에 집착하는 사람과 함께 하는 논어』, 『우리들의 동양철학』(공저)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는 『중국철학문답』(공역), 『동양의학은 서양과학을 뒤엎을 것인가』(공역) 등이 있다.

 

 

세계 4대 성인 중의 한 사람으로 꼽힌 공자는 익히 들어 알고는 있었고, 중고등학교 때도 도덕 시간과 윤리 시간에 꼬박꼬박 빠짐없이 수업을 들었지만, 솔직히 그의 사상이 무엇인지 설명해보라고 하면 지금도 딱히 설명할 말이 없다. 그만큼 공자라고 하면 시대와 동떨어진 느낌이 먼저 들곤 했으니까. 오죽하면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란 책의 이름만 보고도 반가워했겠는가 말이다. 물론 그 책도 앞의 몇 장만 읽고 내용이 쉽게 추리할 수 있을 만큼 뻔해서 읽지는 않았지만. 그런데 이미 알고 있던 4대 성인 중의 한 사람이란 설명을 또 읽으니까 공자가 ‘구름과 바람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는 용’에 비유했다던 노자는 왜 4대 성인에 들어가지 않았을까란 의문이 들었다. 바로 전에 『노자의 도덕경』이란 책을 읽어서 확실히 아는데 노자의 사상은 범인의 사고방식으로는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을 정도의 고귀하고 고차원적인 생각이던데 말이다. 그래도 노자의 책보다는 이 책이 훨씬 재미가 있고 알기가 쉽다. 물론 노자의 범상치 않은 사상 때문이란 생각이 들긴 하지만, 한편으론 필자의 역량 탓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연유가 어쨌든 공자의 사상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 아주 기쁘다. 재미있게 읽어야 그 내용이 머리에 깊게 남을 것이 아닌가. 또한 명색이 어른인데, 중고등용 책은 충분히 이해하고 남아야 하지 않겠는가.

 

먼저 『논어』가 어떤 책인지를 살펴본다면, 『논어』는 공자의 어록이라고 할 수 있다. 공자, 소크라테스, 예수, 석가로 대표되는 세계 4대 성인들은 하나같이 자신의 손으로 글을 남기지 않았는데, 역시 이 책도 공자의 사후에 공자의 제자들의 제자들이 전국 시대 쯤에 편찬한 글이다. 진시황의 분서갱유 때 한동안 사라졌다가 제나라에서 전해진 『제논어』, 노나라에서 전해진 『노논어』, 공자의 옛집 벽에 감추어 두었던 『고논어』, 이렇게 세 가지 판본이 나타났는데, 그 중 『노논어』를 중심으로 한나라 때 장우라는 사람이 만든 최초의 교정본이 지금 우리에게 전해진 『논어』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사서삼경(四書三經)’의 ‘사서(四書)’는 『논어』, 『대학』, 『중용』, 『맹자』를 말하는데, 이것은 송나라 때의 주희라는 학자가 『예기』의 한 편이었던 『대학』, 『중용』, 『맹자』를 『논어』와 함께 묶어서 ‘사서’라 부르고 이 네 책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주석을 달았던 것에서부터 유래했다. 이후 원, 명, 청 시대에 주희의 주석본이 과거 시험의 모범 교재로 채택되어 다른 학파의 책과 구별되는 지위를 얻게 된 것이다. 그러니까 동양인으로서 ‘사서’를 모르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만큼 선비라면 꼭 배워야 했을 교양의 근본 내용이 되었다. 그러나 시대가 변해서 그 내용을 아는 사람이 극도로 적어질 이 때, 이런 식으로 알게 되어 기쁘다.

 

하여튼 『논어』는 총 20편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책에서는 중요한 부분만 짤막하게 인용만 되었을 뿐 전체를 다 수록하지는 않는다. 각 편마다 학이(學而), 위정(爲政) 같은 이름이 붙어있는데, 각 이름은 각 편의 처음 두 글자나 세글자를 딴 것일 뿐 별다른 뜻이 없어 내용상 뒤죽박죽 섞여있을 때도 많이 있다. 주제별로 분류해보면 대략 ‘개인의 인격 수양에 관한 교훈’, ‘사회 윤리에 관한 교훈’, ‘정치론’, ‘철학론’, ‘제자들이나 다른 사람에게 준 가르침’, ‘사람에 대한 비평’, ‘공자 자신의 술회’, ‘공자의 일상 생활과 제다들이 보낸 찬사’로 구분되는데 앞의 두 가지가 전체 분량의 3분의 2를 차지하고 있으니 공자가 무엇을 더 중요하게 여겼는지는 말 안해도 알 수 있다. 공자의 사상을 들여다보면, 대표적으로 인(仁)으로 표현할 수 있는데 그 ‘인’이라는 사상은 한 마디로 정의내릴 수 없는 애매모호한 구석이 많다. 어떤 경우에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란 아주 단순하고 기본적인 가르침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어떤 경우에는 실천을 강조하는 높은 수준의 지식과 수양이 요구되는 것임을 강조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자의 말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인’의 뚜렷한 형상은 알 수 없지만, ‘인’에 가까이 갈 수 있는 방법은 찾을 수 있어 충분히 이해가 된다. 이 책에서는 효에 대해서, 우정에 대해서만 몇 가지 공자의 말을 발췌해서 정리해주었는데, 독특한 것은 누가 물어봤느냐에 따라 공자의 대답이 달랐다는 것이다. 이는 각 제자의 성품과 상황을 고려했기 때문인데, 그래서 해설이 없어서는 쉽게 이해할 수가 없다는 단점도 있기는 하다.

 

가장 처음 공자의 이야기를 읽을 때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공자가 제 뜻을 이루어내지 못한 실패자였다는 사실이다. 공자가, 그의 사상을 인정해주고 제 뜻을 펼 수 있게 지지해준 권력자들을 만나지 못했다는 원초적인 슬픔을 가진 사람이란 사실은 그의 말을 현실적으로 받아들이게 한다. 『논어』‘학이 편’의 첫머리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학이-1】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않겠는가?

  벗이 먼 곳에서 찾아온다면 또한 즐겁지 않겠는가?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성내지 않는다면 또한 군자답지 않겠는가?”(p. 69)

 

이 말은 아주 유명하고도 익숙한 말인데, 배움에 대해서, 벗과의 관계에 대해서, 인정받음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는 것을 넘어서 현실적으로 자신의 뜻이 받아들여지지 않았음에도 그 슬픔을 억누르고 (지금 공자의 현실처럼) 아무도 그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해도 화내지 않는 것이 바로 군자임을 몸소 표현해주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공자는 제 뜻을 펼치지 못한 실패한 사상가였지만, 자기 스스로 군자란 어떤 것임을 보여준 행동하는 사상가이기도 했다는 점에서 그는 아주 실제적인 인물이었던 것이다. 공자 스스로가 ‘구름과 바람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는 용’이라 비유했던 노자는 평범한 인간으로서는 따라가기에 벅찬 비범한 도인에 가까운 인물이었기에 그를 본받기도, 배우기도, 따라하기에도 어려웠던 문제가 있었다. 노자의 『도덕경』은 읽기에는 재미나지만 실천하기엔 문제가 있는 사상이었던 것으로 볼 때, 공자가 얼마나 인간적이고 실제적인 모델이었는지 알 수 있지 않을까 한다. 공자 그 자신이 정치판에 끼여들지 않고 그 더러운판에서 벗어나 유유자적히 자연을 벗삼아 명상만 하면서 우리에게만 치열한 삶 속에서 배우기를 강권하고, 인하기를 종용하고, 군자가 되라고 했다면 그의 말은 씨알도 먹히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 자신이 정치판에 끼기를 소망했고 그 소망이 좌절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군자가 되기를 포기하지 않고 항상 배우고 익히기를 힘써 인(仁)하기를 원했던 역사적 사실은 우리네 범인(凡人)의 입장에서 볼 때, 그의 인생 한 자락 한 자락이, 그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주옥 같은 인생이자 명언이 되는 것이다. 아마도 그래서 4대 성인에 노자가 아니라 공자가 끼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우리 인간에게는 모든 것을 초월한 도인의 뜬 구름 잡는 소리보다는 치열하게 살다 인생의 쓴맛을 본 사람의 경험담이 더 도움될 테니까 말이다.  

 

그래서 공자는 부단히 노력하는 사람의 전형이다. 자기 스스로 그런 말을 했던 것을 찾아볼 수 있다.

 

【계씨-9】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나면서부터 아는 사람이 최고이고, 배워서 아는 사람은 그 다음이고, 곤란을 겪은 다음에 배우는 사람은 또 그 다음이고, 곤란을 겪고도 배우지 않으면 그런 사람은 최하이다.”(p. 88-89)

 

【술이-19】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나면서부터 알고 있는 사람이 아니다. 옛것을 좋아하여 부지런히 찾아 배운 사람이다.”(p. 75)

 

공자 자신이 그리 대단한 인물이 아니라서 부단히 노력해왔고 배우기를 힘썼기에 누구나 배우면 자기만큼 성장할 수 있다고 이야기해주는 스승이라니, 이런 스승만 있다면 누구나 다 배우기를 힘쓰지 않을까. 원래 수학을 무척 못했던 사람이 수학선생님이 되면 훨씬 더 잘 가르치고 동기 유발을 더 잘하는 것처럼 동양의 거대한 스승인 공자도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자신이 부족해서 배웠고, 배워서 변화했고, 변화해서 조금은 남을 가르칠 수 있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된 그런 스타 강사~~ 

 

양화-3】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오로지 가장 총명한 사람과 가장 어리석은 사람만이 변화할 수 없다.”(p. 89)

 

【위정-11】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옛것을 익혀 새것을 알면 (남의) 스승이 될 수 있다.”(p. 72)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

 

그래서 이 책의 저자(황희경 교수)는 공자가 본래 매우 총명한 사람인데, 부단히 공부해서 ‘어질어진’ 것 같다고 말한다.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인자(仁者)는 인을 편안히 여기고, 지자(知者)는 인을 이롭게 여긴다.”(이인 편)거나 “지자는 물을 좋아하고, 인자는 산을 좋아한다.”(옹야 편)는 식으로 지자(知者)의 심리를 잘 알 수가 있겠느냐는 것이다. 이 말에 나도 동의한다. 한문책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지자요수 인자요산(知者樂水 仁者樂山)이라는 말의 의미를 전혀 몰랐다가 이 책 덕분에 알게 되었는데 그 심오한 의미가 정말로 잘 들어맞기 때문에 동의할 수 밖에 없다. 그 전까지는 지자가 왜 물을 좋아하는지, 인자가 왜 산을 좋아하는지 전혀 가늠이 되지 않았다.

 

【이인-2】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인하지 않은 사람은 곤궁함을 오래 견디지 못하고 안락함을 오래 누리지도 못한다.

  인한 사람은 인이 편안하고, 지혜로운 사람은 인을 이롭게 여긴다.”(p. 94)

- 지혜로운 사람은 장기적으로 볼 때 인한 것이 자신에게 이익이 된다는 것을 간파하고 인한 행동을 합니다.

  이것을 나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인과 하나가 되어 편안한 경지와는 분명 차이가 있지요. 스스로 편안하지 않으면 오래가지 못합니다.

 

【옹야-18】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무엇을)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못하다.”(p. 74-75)

 

【옹야-21】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지혜로운 사람은 물을 좋아하고, 어진 사람은 산을 좋아한다.  ▶ 지자요수 인자요산(知者樂水 仁者樂山)

  지혜로운 사람은 동적이고, 어진 사람은 정적이다. 지혜로운 사람은 늘 즐겁고, 어진 사람은 오래 산다.”(p. 102)

- 생각이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물처럼 막힘 없이 흐르는 사람은 총명하고 지혜로운 사람이고, 그는 다양한 각도에서 생각할 수 있기 때문에 많이 보고 느낄 수 있어 즐거운 것이지만, 끊임없이 동요하고 흔들리기 쉽습니다. 인의 경지는 나름의 신앙이나 깨달음이 있기 때문에 산처럼 고요하고 안정될 수 있는 것이지요.

 

공자는 스스로를 낮추면서 지자와 인자에 대해서 설파했고, 가장 중요한 것은 인(仁)임을 천명했다. 자신도 인에 도달하지 못했다고 겸손하게 말하지만 실은 그렇게 말하는 것에서부터 그가 인자라는 것을 드러내는 스승이기에 아마도 그렇게 많은 제자들이 그에게서 가르침을 받고자 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 뜬구름 잡는 소리가 아니라 실생활에서 처절하게 몸부림치며 얻어낸 주옥 같은 가르침을 제시하는 스승, 그런 스승을 닮기 원하며 스승의 가르침에 목숨까지도 다 받드는 제자, 그런 사제 관계가 있었기에 이런 명징한 삶의 가르침들이 이 때까지 전승되었던 것은 아닌가 싶다. 참고로, 『논어』에는 일상적으로 들어왔던 명언들이 많다. 그런 것만 읊어도 충분히 배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것이 내 짧은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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