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을 좋아하세요? - 인생을 사랑하는 당신을 위한 33편의 음악 편지
김순배 지음 / 갤리온 / 2010년 8월
평점 :
품절



김순배(피아니스트)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졸업 후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 대학교에서 음악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귀국 독주회를 시작으로 20세기 현대 음악과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은 레퍼토리를 소개하는 연주그룹 ‘오퍼스 원(OPUS 1)’을 결성하는 등 활발한 연주활동을 벌었다. 오퍼스 원이 국내 최초로 시도한 ‘해설이 있는 음악회’는 청중들로부터 큰 호응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음악과 관련된 ‘글쓰기’에 각별한 애정을 쏟고 있는 그녀는 클래식 칼럼니스트 및 음악 평론가로도 친숙하다. 음악 관련 아티클 및 음반 리뷰, 연주회평을 기고하는 한편 KBS FM <실황음악회> 해설을 비롯하여 여러 매체를 통해 대중들에게 클래식을 알리는 일에도 적극적이다.
현재 한세대 피아노 페다고지 대학원 석·박사 과정 담당 겸임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경희대 대학원, 영남대 대학원 등에서 음악미학, 서양음악사, 피아노 교수학 등 전(全) 방위적인 주제로 강의하고 있다.



 

클래식의 ‘클’자도 모르는 사람도 부담 없이 볼 수 있는 책이 나왔다. 계간지 《성서와 문화》에서 ‘음악편지’라는 꼭지로 나왔던 33개의 조각글들을 묶어 내놓은 책인데, 유려하게 뿜어나오는 깊은 내공이 담겨있는 클래식들의 이야기라 처음엔 황당할 정도로 이해되지 않을지라도 이러저러한 사람이 있구나, 혹은 이러저러한 음악은 이렇구나 하는 등의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창구로 여긴다면 못 읽을 정도까지는 아니겠다. 하지만 처음엔 정말 황당할 정도로 내가 놀 무리가 아니구나라는 것을 깨달았다. 프롤로그로 시작되는 그 짧은 글에도 나는 모르는 음악가나 곡을 13개나 찾을 수가 있었으니~! 그러니 내가 얼마나 클래식, 아니 음악에 문외한이었는지 알 수 있지 않은가. 또한 그럼에도 충분히 이 책을 읽을 수가 있었다는 것도 알 수 있지 않은가.

 

솔직히 이 책을 다 읽은 뒤에도 머릿속에 남은 음악가 하나가 없다. 읽고 싶은 것은 무한대로 생성되지만, 듣고 싶은 것은 드문드문 가뭄에 콩 나듯이 만들어지는 내 경우에는 그것이 타당할지도. 음, 아마 그러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다만, 그런 이유로 듣기에 이 세상 구석구석에서 흘러나오는 황송할 정도로 아름다운 음악을 찾아 듣지도 못하고, 들어놓고서도 글로서든, 말로서든 표현하지 못한다는 것이 조금 속상할 뿐이다. 뭔가 알아야 표현을 하지, 듣는 귀가 없는데 어떻게 표현을 하겠나. 책은 읽으면 바로 글이든 말이든 다른 이에게 전달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참으로 편리한데 말이다. 그런 의미에선 음악은 절대 편리한 매체는 아닌 듯 싶다. 하늘의 선택을 받은 몇몇 사람만이 재능을 부여 받아 연주할 수 있는 그런 도구로서는 어줍잖은 실력으로 표현하긴 좀 아쉽지 않나 말이다.

 

하지만 머릿속에 남는 음악가를 굳이 생각해내보라고 하면, 그녀가 그렇게나 심취했다던 메시앙 정도일까. 진짜 고전적인 인물들이 아니라서 더 생소했던 이름이라 더 머릿속에 박혔나보다. 그의 피아노곡 〈아기 예수를 바라보는 스무 개의 눈길〉은 처음 들었음에도 그녀가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에 비유를 했을 때부터, 그러니까 프롤로그에서부터 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음악을 들어보진 못했어도 그녀가 표현하는 미사여구를 조금이라도 훔쳐볼라치면, 딱 머릿속에 박힐 수 밖에 없을만큼 형형색색인 이미지가 떠올랐기 때문에. 또한 기독교도임에도 불구하고 성탄의 의미를 항상 퇴색시켜 하루를 보내버리는 내게, 종교음악의 불모지라 할 수 있는 20세기에서 유일하게 황홀한 영성의 음향을 만들어낸 메시앙은 상당히 의미있는 음악가로 기억되었다.

 

이런 기회를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이 작품을 찾아낸 저자이자 피아니스트인 김순배 교수가 ‘영성’에 대해 관심이 생겨서 그녀의 눈에 작품이 들 수 있었던 덕분이기도 하고, 어린 시절 가톨릭에 귀의해 20세기 작곡가로서는 드물게 일생을 파리 성당의 오르가니스트로 봉직했던 메시앙 그 작곡가 덕분이기도 하다. 그가 자신의 음악적 재능을 모조리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해 바친, 실천적 사랑을 보여준 작곡가이기에 그의 음악이 한 세기를 넘어 김순배 교수에게 감동을 주고, 또한 음악을 들어보지도 못한 나에게도 반향을 일으킨 것은 아닌가 생각이 든다. 연주 시간만 장장 2시간에 이른다는 〈아기 예수를 바라보는 스무 개의 눈길〉은 역사적으로도, 영적으로도 전무후무한 예수님의 탄생을 지켜보는 각기 다른 스무 가지의 시선들을 무수히 다양한 음향으로 형상화했는데, 그것은 성부이신 아버지의 시선으로부터 어머니인 처녀 마리아의 시선, 그리고 탄생의 밤을 지켰던 하늘의 뭇 별들, 목자들, 동방박사들과 같이 쉽사리 인지할 수 있는 시선들로부터 추상적인 시간 그리고 어떤 침묵의 시선에 이르기까지 표현되었다고 한다. 설명을 들으니까 대충 그림이 그려지는 것이 그다지 어렵게 느껴지지 않게 했다.

 

그 외에도 괴테를 존경해 그의 작품에 곡을 붙였던 슈베르트의 이야기라든지, 불운의 성악가였던 아내 니나에 대한 지극한 사랑과 조국 노르웨이에 대한 무한한 자긍심으로부터 음악을 뽑아낸 그리그의 이야기, 니체와 바그너의 불온한 만남과 결별에 대한 이야기, 전통 탱고에 클래식과 재즈의 빛깔을 덧입혀 새로운 개념의 음악, 즉 누에보 탱고를 만들어낸 피아졸라의 이야기, 우리나라의 대단한 피아니스트 백건우 선생의 이야기, 슈만의 아내 클라라를 사랑하고도 내면으로 끊임없이 침잠해 들어가기만 했던 브람스의 이야기 등 여러 다채로운 이야기가 살아숨쉬고 있다. 우리에게 대단하게만 보였던 위대한 음악가들도 상처받고 실망하고 사랑을 하는 보통의 사람이라는 것을 가감없이 보여준 이 ‘음악편지’는 그런 이유로 음악에 문외한에게 더 필요하고 소통되는 글일 수밖에 없다. 나랑 다를 것 하나 없는 인간사 이야기를 음악이란 옷을 살짝 걸친 것뿐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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