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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의 길 - 인내와 순종으로 완성된다
이철신 지음 / 두란노 / 2010년 11월
평점 :
품절
이 책을 고른 이유는 아무래도 교회에서 얻은 직책 때문이었을 게다. 나를 오스왈드 챔버스와 만나게 한 것도 바로 그 직책 때문이었고, 나를 울게 하고 성장시킨 것도 다 그 때문이었다. 아무래도 이 직책을 계속 가지고 있는 한 나는 계속 ‘리더’란 화두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을 예측해볼 만도 하다. 그러나 내게 ‘리더’란 단어는 그리 좋은 이미지는 아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진정한 ‘리더’란 예수 그리스도 외에 누구를 말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그러니 ‘리더’로 세움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진정 마음 편히 다가올 수는 없는 것이 인지상정 아니겠는가. 그렇게 평소 ‘리더’라는 단어를 혐오함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내 손에 들린 것은 저자의 가슴 아픈 고백이 내 손을 잡아끌었기 때문이었다. 【하나님의 종으로 리더의 길에 접어들었으나 뼈아픈 실패를 경험한 후 리더는 단순히 직책이 주어진다고 되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는 이철신 목사님의 고백이 내 아픈 영혼을, 혹은 내 아픈 과거를 위로해주실 수 있겠다 여겨졌다. 물론 그 위로는 하나님께서 오는 것이지만 말이다.
책을 계속 가지고서 처음 책장을 넘겨들었던 것은 일주일동안 내 멋대로 살아가 육신을 피곤에 찌들게 한 죄를 범하고 금요일에 있었던 리더 모임에서 회개를 통해 조금씩 치유를 받고 난 후의 주일 오전이었다. 교회에 가려고 버스를 타고서 펼쳐든 그 책은 나를 끊임없이 울게 했다. 정확하게 기억은 안 나지만, 그 당시에 들었던 생각은 내게 이 책을 보게 하신 것이 감사했고, 내 죄악성에도 불구하고 나를 사랑하신다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감격했고, 나는 나를 죄악의 길로 이끌며 나를 무너뜨렸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이끄신 이는 하나님이셨기에 내 주제로는 감당키 어려운 리더의 자리를 감당하게 해주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때 이 책을 다 본 것이 아니기에 며칠 후에 이어서 뒷 부분을 보고 난 후에는 그 때 내가 왜 울었는지 잘 기억은 안 난다. 그저 감격해서 울었을 뿐. 누군가, 낙심되어 낭떠러지에 떨어져 아무도 나를 도와줄 이가 없다고 느꼈을 때 위로가 되었던 오스왈드 챔버스의 글을 읽고, 그도 이런 암흑의 길을 걸었다는 알았을 때 위로가 되었고 감격했다는 일을 읽은 적이 있었다. 나도 마찬가지로 이철신 목사님의 뼈 아픈 패배를 들었을 때 - 비교는 안되는 일이지만 - 내 이전의 실패가 생각나 위로가 되었다. 그 당시에 내가 실패했던 것도, 이철신 목사님께서 실패했던 것도 다 내 힘으로만 무언가를 하려고 했다는 공통점이 있었기에, 아마도 더 위안이 되었을 것이다. 그것이 좋았던 것이 아니라 그 일을 또다시 되풀이하지 않도록 마음에, 골수에 새기게 해주었으니까 말이다.
이 책은 이스라엘의 위대하지만 비운의 주인공이었던 지도자, 모세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모세의 인생을 따라가며 그의 실패와 아픔과 두려움, 그리고 승리를 조망해주면서 이철신 목사님이 얻었던 리더십에 대해 알려준다. 만약 책 제목인 〈리더의 길〉외에도 부제로 〈모세를 따라가며 리더십을 배운다〉 라고 뭐, 이런 언질이라도 주었다면 선택하기나 내용을 예측하기가 쉬웠을 거라는 아쉬움이 들긴 했다. 다 읽고 나니까 책 표지에 자그마한 목자와 양 그림이 내용을 암시하고 있는 것 같아 재미있었기는 했지만 말이다. 많은 학자들이 ‘비운의 리더’라고 부른다는 모세에 대해 목사님께서 주목하신 것은 그의 인생 전체가 ‘리더’의 모습에 합당했기 때문이었단다. 보통은 그가 하나님께 부여하신 권위를 가지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잘 섬기며 가나안 땅으로 인도해내고도 끝내 가나안 땅에 들어가보지도 못하고 죽은 것 때문에 안타까운 리더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 모양이 우리 ‘리더’가 따라야 할 모양이라고 하셨다. 모세에게서 살펴볼 수 있는 여러 가지 중요한 리더십이 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그것이다. 그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했던 것!! 목사님이 말씀하시길 모세가 가나안 땅에 들어갔다면 많은 백성들에게서 인정도 받고 하나님께서도 인정을 하셨을 때였기에, 아마도 보이지 않는 하나님보다 보이는 모세가 훨씬 더 큰 영광을 받았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혹시라도 아는가, 양처럼 우둔한 이스라엘 백성(그리고 나도)들은 그를 추앙하는 마음을 가졌을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러니 참된 리더는 소리 소문없이 사라져야 맞는 것이란다.
모세가 얼마나 자신을 믿지 못하고 자존감이 낮아서 ‘리더’로 서는 데만도 오래 걸린 것과 그가 아홉 번이나 출애굽시키는 데 실패한 것, 그리고 주변 사람들에게서 받은 권위에 대한 도전에 대해 대처하는 그의 방식이 그가 하나님 앞에 합당한 리더로 성장하는 과정이었다는 것도 놀라운 깨달음이었지만 그보다도 역시 나는 마지막에 모세가 무덤조차 전해지지 않는 ‘비운의 리더’로 남는 것에 대한 의미가 더 놀라웠다. 아, 리더인 우리가 이 세상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바라는 마음이 있어선 안 되겠다는, 그 당연하게 알고 있었던 원칙이 생생한 현실로 재탄생되었다고나 할까. 생각해보면, 모세의 무덤이 현재까지 전해진다고 했을 때 거기가 성지가 되고도 남음이 있다는 것은 누구나 상상할 수 있는 일일 것이다. 우리는 - 우리가 아무리 위대하다 말하는 하나님의 일꾼들조차도 -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한 도구라고 봤을 때, 모세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는 것이다. 물론 그가 혈기를 주체하지 못해서 받은 벌이기도 했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모세가 이 땅에서 아무것도 얻은 것이 없을 때 하늘에서 위대한 자리에 오른 것을 우리는 신약에서 볼 수 있다. 마태복음 17장 1~4절을 봐라. 좀 더 깨끗해진 시야로 하늘의 상급만을 바라는 마음으로 내 욕심 많은 마음을 다시금 정리해야 할 때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