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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사랑한 작가, 작가가 사랑한 소설 - 이 시대 최고 작가들의 질투와 사랑을 부른
안톤 파블로비치 체홉 외 지음, 박여진.한은정 옮김 / 다음생각 / 2010년 11월
평점 :
절판
작가들이란 과연 어떤 존재들일까. 항상 그것이 궁금했다. 범인으로서 나는 글을 잘 쓴다는 평가를 받는 작가들이란 족속은 항상 뭔가 다르다고만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다른 사람의 감성을 울리는 글을 쓸 수가 있을지 소설을 붙잡고 있을 때면 소설 속 결말보다 그것이 궁금했다, 항상. 그런 그들은 다른 작가들에게 영향을 받고 영향을 주었을 것임은 분명할 게다. 그들도 사람인 이상 혼자서만 하늘에서 뚝 떨어져 내려올 수는 없었을 테니. 그래서 이 책은 그렇게 우리가 위대하다고 칭송하는 여덟 명의 작가들이 말하는 작가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런데 특이한 점은 이것이 우리나라 사람의 손에서 출간되었단 것이다. 보통 이렇게 외국작가들이 등장하는 문학적인 감성이 솔솔 풍기는 책은 외국에서 출판되어 번역되어 들어올 때가 허다한데, 또한 그네들의 감성이 우리의 감성과는 달라 혹은 그 시대를 제대로 조명하지 못해 이런 책은 대부분 외국 저자가 쓴 책만 읽었던 터라 이 책은 정말 신기하게 생각됐다. 책을 볼 때면 항상 지은이와 편집인을 유심히 보는데 이 책은 숨겨진 해설자까지 포함해서 총 세 명의 한국인이 편찬한 것이라 더 놀라웠던 것이다. 어떻게 우리 한국 사람이 이 시대의 글을 평가했을까. 옮긴이의 서문을 보아하니 수십 편의 논문을 참고했다고 하던데 그의 열정과 용기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한 권의 책이 나오기까지 많은 사람들이 수고를 보탤 텐데 정말 소중한 이 책이 이 땅에 나와줘 정말 고맙다.
이 책의 구성은 간단하다. 대단한 평가를 받는 한 작가가 존경하는 어떤 작가에 대해 소개하거나 그가 다른 작가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 간략한 언급을 하고 나면 소개받은 작가의 대표적인 단편이 같이 실려 나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의 제목처럼 작가가 사랑한 작가와 작가가 사랑한 소설이 한데 묶여져 나올 수 있는 것이었다. 처음 봤을 때부터 표지의 아름다움에 홀딱 반했고, 두 번째로 이 책의 아이디어에 홀딱 반해 꼭 갖고 싶었던 책이었다. 아마도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유명 작가의 이름만 대면 누구나 한 번쯤 읽고 싶을 만한 책이지 않을까 싶다. 안톤 체호프, 구스타프 플로베르, 스콧 피츠제럴드, 셔우드 앤더슨, 제임스 조이스, 캐서린 맨스필드, 잭 런던, 이디스 워튼까지 총 여덟 명이다. 이들의 이름만 대도 알 만한 유명인사이지만 간혹 셔우드 앤더슨이나 잭 런던과 같이 잘 모르겠던 사람들도 그를 추천한 사람만 보면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의 유명인사이니, 덩달아 그들도 알고 싶어진다. 셔우드 앤더슨은 헤밍웨이와 윌리엄 포크너를 진정한 작가의 길로 인도한 작가이고, 소년 사회주의자라고 불리며 레닌이 가는 마지막 발걸음까지도 희망을 주었던 작가가 바로 잭 런던이라고 하니까 더욱 궁금해졌다. 그리고 더욱 흥미로웠던 것은 헤밍웨이가 끓어오르는 질투심을 감출 수 없었던 인물이 바로 스콧 피츠제럴드였던 것을 본다면 그의 작품은 꼭 읽고 싶어진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그의 책에서 <위대한 개츠비>를 세 번 본 사람과는 친구가 될 수 있다고 말할 정도이니, 그가 안 궁금할 수가 없는 것이다.
처음에는 이런 구성이 신기해서 딱 이해하지 못했다. 간략하게 작가의 설명이 등장하더니 - 내가 이런 설명을 더 좋아한다, 그의 작품보다는 - 갑자기 단편소설이 나오지 않겠나. 18페이지에는 안톤 체호프의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이란 작품이 등장하는데 작은 글씨로 ‘이 작품은 러시아어를 영어로 번역한 중역본을 번역한 것입니다’란 글이 나와서 그런가보다 했지, 그런 설명이 없었다면 한참을 신나게 읽고 있다가 다시 한 번 책을 뒤적여봤을 것이다. 그 설명 덕분에 뒤에는 단편소설이 삽입되어 있는 줄 알게 되었다. 그런데 워낙 소설 읽은 것이 전무하다시피 해서 이 책에 등장한 여덟 편의 소설 중에 내가 아는 소설이거나 읽은 소설은 없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어쨌든 그 중 내 마음을 강하게 끄는 소설이 하나 있었는데, 바로 버지니아 울프가 질투했다던 캐서린 맨스필드의 <차 한 잔>이었다. 그녀의 서술기법은 자기가 생각하고 있는 순간의 느낌까지도 모두다 글로 재현해내는, 이른바 일종의 일기체 형식인데 지금 내가 하고 있는 블로깅에 가장 근접한 형식이 아닐까 싶다. 맨스필드는 일기가 가장 중요한 글이라고 여겨서 일기에 성공하면 모든 글쓰기가 잘 되었는데 일기가 실패하면 쓰기조차 싫다고 울부짖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녀는 폐결핵에 걸려있어서 그런 한계가 그녀에게 글쓰기에 집착에 가까운 강박증을 가지게 한 것 같은데 일기에 실패했다는 말이 도저히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 어쨌든 그녀의 소설은 여덟 편의 다른 재미난 소설 중에서도 압도적으로 나를 이끌었다. 그 이유가 주인공이 여자였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지만.
<차 한 잔>이란 소설을 본 사람은 알겠지만, 진짜 별 내용은 아닌 소설이다. 하지만 주인공 로즈마리 펠이 가진 능력이 사람 하나를 살릴 수도, 죽일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그녀를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정말 선한 일을 할 것 같은 상황에서는 마치 내 일처럼 기뻐하게 되는 것이 진짜 몰입할 수 있었다. 그런 이유가 아마도 여주인공의 순간적인 기분까지도 모조리 적어내려가는 기법 때문일 수도 있겠다. 그래야 여주인공이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에 모든 초점을 맞출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어쨌든 그 소설은 결말이 아쉬울 정도로 내 마음을 흔들었다. 아마 우리 모두는 그런 식으로 다른 사람에게 배려하거나 선대해주는 것을 사소한 말 한 마디나 감정 하나 때문에 안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나를 지배했기 때문이다. 그녀, 로즈마리는 자신의 허영 때문에 선행을 금했다. 아, 나는 또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내 기분이 나쁘다는 이유만으로 악행을 저질렀을지! 아주 사소하고 보잘것없는 일화 하나를 가지고 캐서린 맨스필드는 나를 크게 흔들어버렸다. 무섭고도 무섭다. 인간이란 이렇게 허영만 가득찬 존재였던가! 어쨌든 좋은 소설들을 접하고 음미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더불어 여러 작가들의 위치나 평가도 알 수 있었던 좋은 시간이었고. 더 기회가 된다면 이들 여덟 명의 작가들 외에도 더 다양한 작가들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세상은 넓고, 작가들도 많으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