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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집트 인들은 피라미드를 지었을까? - 쿠푸 왕 vs 헤로도토스 ㅣ 역사공화국 세계사법정 1
차영길 지음, 진미선 그림 / 자음과모음 / 2010년 8월
평점 :
이 책은 역사적인 인물들 간의 법정 공방을 통해 우리가 알고 있었던 역사적 사실 그 이면을 살펴볼 수 있게 해주는 책이다. 역사공화국에서는 세계사법정과 한국사법정 시리즈로 나뉘어 있는데, 이번 책은 세계사법정이다. 역사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헤로도토스가 쓴 <역사>란 책에서 제4왕조 2대 왕인 쿠푸 왕을 잔인하고 극악무도한 왕으로 묘사해놓은 것이 문제가 되어 쿠푸 왕이 헤로도토스를 고소했다. 그렇게 원고와 피고로 재판정에서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고 또한 그들의 이야기를 대변해주는 변호사들을 앞세워서 자신을 변호하는 과정이 나열되어 있다. 또한 증인도 여럿 등장하는데 여기에는 실존 인물로 <플루타크 영웅전>을 쓴 유명한 역사가인 플루타르코스가 등장해 쿠푸 왕을 옹호하는 한편, 역시나 고대 로마의 정치가이며 군인, 학자로 활동했던 플리니우스가 반대편 증인으로 등장해 헤로도토스를 옹호해준다.
세계사에 대해 알고 있는 지식이 많은 초등학생 정도라면 충분히 재미있게 읽기에 부담이 없는 책이다. 그도 그럴 것이 정말 말도 안 되는 시비로 법정에서 양쪽 변호사들이 소란스럽게 하는 것 하며, 방청객들의 우스꽝스러운 대화 내용들이 책 전반적인 내용에 대해 그리 부담스럽지 않게 접근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다른 말로 하면, 이 내용은 어느 정도 나이가 든, 어느 정도 세계사에 대한 자그마한 지식이 있는 사람에겐 무척 재미없는 책이란 의미도 된다. 그래서 내겐 사실 많이 지루했던 책이었다. 나는 가끔 동화책이나 초등학생/ 중학생 위주의 사회, 과학 책을 볼 때가 있는데 대부분의 책이 재미있고 흥미로운 사실을 전해주지만, 어떤 책들은 너무 쉬워서 지루할 때가 있었다. 이 책도 마치 그럴 때와 같이 너무 지루했다. 피라미드에 대해 몰랐던 것도 아니고, 그것을 세우기 위해서는 어마어마한 노동력이 필요할 것이란 것쯤도 예상할 수 있었던 것이기 때문에 이 책에 대한 내 기대치는 아마도 다른 책을 볼 때와는 달리 더 높았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몰랐던 다른 이유가 등장할까 싶어 꽤 설레며 책장을 넘겼으니까.
내가 알고 싶었던 결론은 처음에도 잠깐 등장했다가 맨 마지막 페이지쯤 되어서야 등장하기에 더 지루했는지도 모르겠다. 처음에 이미 눈치채게 한 후에 다시 보여주니까 신선한 맛이 떨어지지 않은가. 하지만 아이들에게는 그런 식으로 호기심을 유발시킨 후에 마지막에 결론을 내려주는 방식에 꽤 적절할 것 같긴 하다. 게다가 중학교 사회교과서와 고등학교 세계사교과서에 등장하는 분량도 중간 중간에 작게 제시해주기도 하니 교과 학습과 연계가 될 수 있다. 또 다양한 표나 부연 설명 등을 적절하게 제시해주기 때문에 이집트에 대한 풍습이나 문화, 정치, 경제 등도 더불어 알 수가 있어 역사를 좋아하고 잡다한 것에 호기심을 느끼는 아이들이라면 누구나 재미있어 할 책이다. 결국 쿠푸 왕이 제 위업을 드러내기 위해 어마어마한 규모의 피라미드를 노예 10만 명을 20년 동안 혹사시켜서 만든 것이 아니라 일을 할 처지가 안 되는 실업자를 구제해주기 위한 사회사업의 일종이었음을 드러난다. 이것도 어디까지나 역사학자들의 많은 사료들과 역사적 유물 등으로 얻어진 추론일 뿐이겠지만 말이다.
일단 이 역사법정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역사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헤로도토스가 이집트에 대해 쓴 내용이 직접 자기가 가서 보고 들은 것을 쓴 것이 아니라 사제나 노인들의 이야기를 토대로 썼다는 데에 있다. 그래서 이 책을 보고 있으면 역사에서는 역사가의 관점이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니냐 하는 생각도 하게 만든다. 만약 한 역사가가 다른 한 나라에 대해 사실과 다르게 비하하는 내용을 기록으로 남겼다면 후대에서는 그 역사가의 관점이 사실인 것으로 곡해해서 받아들이게 될 가능성이 높지 않은가! 그러니 이 책을 한바탕 깔깔대며 읽고 나면 한 가지 생각할 거리가 생긴다. 역사가의 관점은 어느 선까지 긍정해주어야 할 것인지, 그리고 역사가로서 어떤 관점으로 역사를 바라봐야 할 것인지를 말이다. 아이들이랑 같이 읽어보고 더 호기심을 나타내는 아이가 있다면 이런 질문에 대해서 같이 토론을 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생각이 풍성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서 미처 생각해보지 못했던 역사에 대해 역사를 남기는 인류의 한 부분으로서 좀 더 책임감있게 행동하게 되지 않을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