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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복을 입은 원시인 - 진화심리학으로 바라본 인간의 비이성과 원시 논리
행크 데이비스 지음, 김소희 옮김 / 지와사랑 / 2010년 10월
평점 :
절판
원시인들을 우습게 여기는 현대인들의 오만을 꼬집어내는 도발적인 문구로 시작되는 이 책은 정말 놀랍도록 신기한 책이다. 저자의 모든 주장과 논리에 다 동의할 순 없어도 내 흥미를 끝까지 불러일으키는 그의 관점은 누구에게나 심사숙고해볼 무언가를 남긴다. 또한 그가 제시한 실례를 듣고 있으면 그가 가진 딜레마도 또한 알아챌 수가 있었다. 무신론자로서, 믿음이란 명목 하에 맹목적인 추종을 보이는 사람들을 보며 - 또한 그런 믿음 하에 인간으로서 저질러서는 안 되는 행동을 하는 것을 보며 - 이 책을 써야겠다는 절박한 필요성을 가졌을 것이란 생각을. 아마도 그는 그것이 자신이 가진 사명이라고 여겨졌을 것이다. 그리스도인인 나로서도 믿음이라는 이유만으로 과연 그런 행동을 할 수가 있을까 싶었던 것이 많이 등장했으니 그가 가진 절박함이란 이루 다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같은 신을 믿는 것도, 같은 종교적인 색채를 가진 것도 아니지만 신에 대한 믿음을 가진 나도, 과히 좋게 보이지 않는 일들이 믿음이라는 이름 하에 자행되고 있는 것을 보며 경악스러웠으니. 그것도 21세기란 과학과 이성의 시대에 그런 미신이라 치부할 수 있는 행동을 하는 것이 무신론자의 눈에는 얼마나 끔찍하게 보였을까 공감된다. 19세기에 이 땅에 선교사들이 들어와 거의 미개한 수준으로 삶을 영위하고 있던 조선인들을 봤던 그 때와 같지 않았을까. 화장실에서나 풍겼어야 할 냄새들이 조선땅 전쳬에서 났으니 그들이 그렇게 생각했어도 할 말은 없다. 지금 우리가 덜 개발된 시골만 가도, 덜 발달한 아시아권에 여행을 가도 똑같은 생각을 할 테니까 말이다.
이 책에서 내가 새롭게 알게 된 것도 또 있다. 나는 많은 사람들이 진화론을 믿는 줄 알고 있었다. 우리 한국인들만 해도 고등학교 때 진화론 교과서로밖에 공부하지 않으니 그게 다라고 알고 있는 줄 알았는데 미국사람들은 또 그게 아니였나 보다. 그것이 청교도들의 세운 나라여서 그런지, 단지 원숭이에서 발전된 존재가 인간이란 사실이 자존심이 상했는지는 모르지만 그들이 그렇게 생각했던 사실이 나로선 의외였다. 아직 그쪽 분야에 대해 읽은 것이 거의 없어서 내 판단은 아직 보류해야겠지만 그런 식으로 내 생각을 뛰어넘은 세상의 흐름을 알게 되어 신기했을 따름이다. 어쨌든 그런 미국사람들의 진화론을 믿지 않는 것부터 비판하면서 저자는 우리에게 아주 쉽게 설명해주려고 노력한다. 그런 설명 중간에 삽입된 유머는 보너스이다. 나는 내용은 둘째치고 그런 유머를 구사하는 미국식 글을 좋아하는 터라 별을 아주 후하게 주었다. 무엇이든지 유쾌하게 전달하려는 노력은 정말 중요하기에. 그런데 이 책은 진화심리학의 관점에서 서술된 것이라 진화론은 당연히 접고 들어가야 한다. 조금 불쾌하더라도 계속 읽어보자. 그러면 인간은 수만 년을 살아오면서 자연선택을 하며 생존과 번식을 거듭해온다. 수많은 유전된 요소들 중에 돌연변이된 한 요소가 번식하는데 유리하면 그것이 선택되어 계속 이어가는 것인데 이것이 얼마나 천천히 진행되는지 모른다고. 그런데 여기서 독특한 것이 저자는 이런 유전적인 기억이 우리 몸안에 있다고 주장한다. 원시인의 생각이 현대인의 몸에 깃들여있다고 주장하는 그의 근거로는, 유전적인 요소는 생존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다른 것은 신경도 안 쓰기 때문이란다.
그것이 무슨 말인고 하니 뭔가를 봤을 때 그것이 적이 아니라면 괜찮지만 적일 경우 내가 피하지 않으면 무조건 죽는다. 그렇기에 뭔가 봤다 싶으면 무조건 움직여서 피해야 그는 사는 것이다. 그렇게 원시적인 마음은 생존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에 그것을 극복하기가 어렵다. 가장 큰 이유라면 두려움일 것이다. 시험 날에 머리를 감으면 지식이 다 잊어버릴 것이라는 믿음에서 파생된 징크스는 우리의 대표적인 원시 논리이다. 하지만 저자는 그것을 고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어떤 것이라도 고정되어 있는 것은 아니기에 우리가 연습만 꾸준히 한다면 바꿀 수 있다고 한다. 가장 좋은 방법은 모든 일에 의심해보는 것인데, 과학에서 항상 사용하는 방법이다. 과학을 최고의 지침으로 여기는 저자에게서 나올 수 있는 방법이긴 하지만 나쁘지는 않다. 나도 미신이나 징크스는 그리 권장하고 싶지 않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그와 나의 근본적인 차이는 신의 존재 유무인데 그것은 좀 마음에 안 든다. 뭐, 대다수의 우상이 그런 식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맞으니 대단한 통찰력이라 생각은 하지만 어쨌든 내 관점과는 다르다. 그럼에도 그의 이야기는 참 흥미롭고 매력적이다. 누구나 현대인의 원시성을 보고 싶다면 일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