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 등척기 - 정민 교수가 풀어 읽은
안재홍 지음, 정민 풀어씀 / 해냄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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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백두산이라고 하면 현재 한국인, 즉 남한 사람들에게는 그다지 익숙한 산이 아니다. 현재 명산으로 불리는 설악산이 조선 시대 당시에는 금강산에 가려서 그 빛을 못 봤던 것처럼, 남과 북으로 나뉜 현 시점에서는 우리에게 백두산은 멀고도 먼 산으로 만들어버렸다. 물론 중국을 통해서 백두산에 발을 디딜 수는 있지만 그것이 과연 대한민국에서 맛보는 백두산의 참맛은 아닐 것이기에 아쉽고 통탄스러울 뿐이다. 그런데 그런 명산을 나는 올해 가봤다. 역시 중국을 통해서 갔던 하루 일정의 백두산 나들이였는데, 걸어갈 수 있는 길을 놔두고 바로 전에 벌어졌던 낙석 사고 때문에 차를 타고 올라가게 되었다. 간 때는 한여름이었지만 산 위에 올라가니 겨울이 절로 생각날 정도로 차가운 바람을 한 시간 동안이나 맞으면서 기다린 후에야 겨우 천지를 볼 수가 있었다. 정말 백두산 꼭대기에서 보는 천지는 장엄하고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지척에 바로 북한이 보여서, 그것도 너무 가깝게 보여서 가슴이 설레이기까지 했다. 지척이면 갈 수 있는 저곳이 바로 우리 동포의 땅이구나 하는 생각에 말이다. 이념이 무엇이고, 이권이 무엇이관대 이렇게 애닯도록 같은 민족이 서로를 그리워하고만 있어야 하는지! 과연 통일은 어느 시기에 올 것인지! 오오, 통재라!!

 

민세 안재홍 선생이 바로 지금의 한국꼴을 보신다면 얼마나 가슴 아파하셨을지 상상도 안 간다. 선조들이 목숨을 걸고 지켜낸 민족과 국가를 이렇게나 두동강이 만들어놓다니~! 후손으로서 몸둘 바를 모를 뿐이다. 민세 안재홍 선생이 활동하던 시기는 일제 강점기 때로, 지금의 상황보다 훨씬 나빴던 시기였다. 민족의 선각자로, 후세에 길이 남을 지식인으로 제 할 도리를 끝까지 다하셨던 그 분을 본다면 우리는 정말 많은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나라와 민족을 위해 제 목숨 하나 아깝게 여기지 않았던 선조들을 보면 내 것만을 아둥바둥 챙기려는 내 모습이 참으로 부끄러울 뿐이다. 사실 민세 안재홍 선생의 이름조차 이전까지는 알지 못했다. 그나마 알고 있는 한국사도 겨우 고대사 정도인, 그것도 얄팍하게 알고 있는, 그야말로 역사의식이 결여된 인간으로서 나는 그를 알지 못했다. 근현대사에 대해서도 전무하다시피하는데 일제강점기 때에 더 말해 무엇하랴. 그래서 이 책의 출간이 참으로 반갑다. 내가 알지 못했던 위인 한 분을 알아가는 기쁨과 더불어 백두산을 그 당시에도 유람하며 기행문을 남겼다는 사실이 놀랍고도 반가웠기 때문이다. 특히나 올해 내겐 백두산을 한 번 가봤다는, 물론 안재홍 선생이 갔던 길을 가보진 못했지만, 영광스러운 경험이 있기 때문에 다른 산도 아닌 백두산 등척기라 더욱 반가웠음은 물론이다.

 

그런데 곰곰히 생각해보면, 궁금한 것이 생긴다. 명산이라고 중국에서도 자자한 백두산을 민세 안재홍 선생은 일제 강점기 때 왜 오르셨을까. 민족과 나라를 위하는 마음 말고는 아무것도 가지지 않으셨던 그 분께서 아무 이유 없이 오르시진 않으셨을텐데 말이다. 나라가 일본에게 먹히고 있는 와중에서, 기차로 북녘 땅을 이동했을 때 보았던 피폐하고 말라가는 동포들의 모습이 가슴에 한으로 남지는 않았을까. 내가 백두산 정상에 올라 안개 사이로 언뜻 천지 너머의 북한 땅을 보면서 그들의 어려움에 대해 가슴이 아팠던 것처럼. 이번에 중국에 다녀오면서 북한 접경 지대를 다 거쳐왔는데,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지척에 보이던 그들의 모습은 정말 사그러들어가는 것처럼 보였다. 사람들도 별로 안 보이고 건물이 제대로 서 있기를 하나, 딱 봐도 민둥산이 되어버린 그들의 땅은 정말 안타까울 뿐이었다. 경로는 다르지만 안재홍 선생도 원산을 지나시면서 그들의 안쓰러움을 보고 안타까워하셨다. 나라의 정기가 흐른다는 백두산을 등정하면서 피폐해진 동포들의 모습도 가슴 한 켠에 담아둔 그의 마음씀씀이가 눈물겨웠다. 

 

그랬기에 그의 백두산 등척기는 단지 생태 보고나 산기행기가 아니라 나라와 민족을 위하는,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찾고자 하는 기원을 담아 다녀오신 걸게다. 그랬기에 나중에 소실될 것을 알지도 못했던 백두산 정계비에 대한 현장 고증도 꼼꼼히 실어두었던 게지. 그 모든 것이 바로 나라와 민족을 위한 마음,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였을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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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en 2010-12-07 14: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백두산을 가본 사람들은 대개 비슷한 생각과 느낌들을 가지는 것 같습니다. 저도 2007년 여름에 백두산을 '종주'하고 왔는데, 그토록 멋지고 그토록 아름다운 우리 민족의 영산이 그토록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게 너무 가슴에 아려오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종주를 한다고 해도 우리 땅으로는 한 발치도 밟지 못하고, 오히려 남의 나라 하늘과 땅을 거쳐 남의 나라가 된 반쪽으로만 돌아보고 되돌아와야 하는 처지가 참으로 속상했었습니다. 언젠가는 우리나라도 통일이 되어 되찾은 우리 땅을 통해 당당히 백두산을 다시 오를 수 있기를 희망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