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안다는 것의 기술
하타무라 요타로 지음, 황소연 옮김 / 가디언 / 2010년 11월
평점 :
절판
밝은 노랑 바탕에 까만 글자가 제목으로 적힌 이 책은, 딱 보기만 해도 읽고 싶어지게 하는 요소를 가지고 있다. 더군다나 제목만 봐도 급변하는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솔깃한 제목일 수밖에 없다. 작은 사이즈의 책이라 가지고 다니기에도 편리하고, 필자가 기계공학자 출신답게 군더더기 없는 설명과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준 도식까지 곁들어져 있어서 내용을 이해하기에도 부담 없는 책이다. 그러니 정보의 가치가 중요시되는 이 때에 더할 나위 없는 책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그저 이 제목만 믿고 읽기만 하면 바로 앎의 기술을 알 수 있을 것이라 착각하고 덤벼들어선 곤란하다. 진정한 앎이라고 하는 것이 그런 식으로 알아지는 것도 아니고, 스스로 깨닫지 않고서 얻어진 지식을 가지고선 이 세상을 살아가기에 무척 힘겨워질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목도 잘 지어졌고 판형이나 디자인도 잘 나왔지만, 이 책을 진정으로 이해해서 앎의 기술을 제 것으로 만들고 싶다면 심사숙고하면서 기술의 무한 반복이 필요하다. 옛 말에도 있지 않은가. 공부엔 왕도가 없다고.
맞다. 공부엔 왕도가 없다. 암기식 학업을 무한 반복하고 있는 중고등학생들만 봐도 왕도란 없다는 말에 동의한다. 요즘이 한창 기말고사 준비기간이다. 평소 공부와 담을 쌓고 지내던 아이들도 분위기상 참고서 한 장 정도는 들쳐 볼 때일 텐데, 공부하는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정말 앎의 기술은 스스로 깨치지 않으면 어렵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가르쳐봐도 잘 알아듣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아무리 알려줘도 전혀 생뚱맞은 표정을 짓고 있는 아이가 있으니 이런 차이는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 하고 나름 생각을 정리해보기도 했다.
근본적인 원인은 기초 지식의 차이라고 생각했다. 같은 나이의 학생들이라 할지라도 평소에 책을 좋아해서 많이 읽고 앎에 대한 호기심이 많은 학생들은 특별히 따로 과외나 학원을 다니지 않아도 어휘력이나 이해력면이 월등하게 좋다. 그러나 책과는 담을 쌓고 살고 게임에 조예가 깊거나 친구들과 돌아다니는데에서 즐거움을 느끼는 학생들은 아무래도 어휘력 부분이 현저하게 낮고, 말귀도 어둡다. 중학생이지만 이해력 수준은 초등학교 5학년에서 딱 멈춰있는 아이를 하나 보고 있는데, 정말 어떻게 하면 저 정도로 낮을 수 있을까 신기할 때가 많다.
필자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암기식 위주의 학습 방법은 그다지 훌륭한 것은 못되지만, 지식을 쌓아가는 과정 중에서 가장 기초적인 능력을 쌓는데는 꼭 필요하다고. 새로운 지식을 하나 배우게 되더라도 그와 유사한 두뇌 템플릿(무엇인가를 만들 때 안내 역할을 하는 데 사용되는 형식 혹은 틀, 모형을 의미하는 필자가 만든 조어)을 가지고 있어야만 그가 쉽고 자세히 이해할 수가 있기 때문이란다. 중고등학생들이 암기해야 할 지식의 분량이 어마어마하게 많은 이유가 바로 그것에 있다. 그들은 그것을 알아야만 사회인이 될 수 있으니까. 중고등시절 때 배우는 모든 것은 어른들에게는 상식, 그 이상은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가끔 아이들이 내게 어떻게 하면 그렇게 쉽게 암기할 수 있느냐고 질문할 때가 있는데, 그것을 계기로 곰곰히 생각해보니 아주 당연한 이유가 있었다. 같은 내용을 암기해도 내가 아이들보다 훨씬 빨리 외울 수 있는 이유는 이미 배운 것이기도 하겠지만, 그보다 그 아이들보다 내가 배경지식이 훨씬 많기 때문이었다. 필자의 표현대로 이야기하자면, 두뇌 템플릿이 나는 아이들보다 훨씬 많이 갖춰졌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연상기법을 사용해도 여기저기 걸리는 요소들이 많으니 암기력 시합에서 한번도 진 적이 없었던 것이었다.
그런데 이런 암기식 학습 방법은 진정한 앎의 기술이라곤 할 수 없다. 한번 언급했다시피 지식을 쌓아가는 기술 중 가장 기초적이고 기본적인 것일 뿐 절대 훌륭한 방법은 못 되니까 말이다. 그것을 증명해줄 수 있는 사례가 필자에겐 너무나 많은데, 그가 가르쳤던 도쿄대학생들만 봐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단다. 소위 명문대 학생인 그들은 이미 알고 있었던 유형의 문제를 만나면 순식간에 해결해버리지만 새로운 유형의 문제에 대해서는 지레 겁을 먹고 포기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그런 유형을 과제 해결형 인간이라고 부를 수 있는데, 요즘 시대에는 과제 설정형 인간이 더 각광받기 때문에, 즉 이 시대는 무엇이 문제인지 스스로 찾아가는 사람이 필요하기에 진정한 앎을 알아가는 데 있어 상당히 어려움에 처할 수가 있다. 그러니 무엇이 문제인지를 스스로 찾아가며 생각하여 문제를 풀어내는 능력을 배양해야 할 것이다.
그런 방법으로 여러 가지를 소개하고 있는데 대개 일상생활에서 꾸준히 해야 할 것들이다. 그저 마음 먹고 한두 번으로 끝낼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에 어려울 수 있겠다. 어떤 상황에서든지 자기 몸이나 소지품의 길이를 이용해서 계단의 높이나 거리를 가늠하거나 상황을 유추해보는 연습, 생각을 링크하거나 역으로 생각해보는 연습 등이 그것이다. 기적의 연산법과 같은 단순 수 놀이도 계속 즐기는 것도 나쁘지 않다. 자신이 숫자와 관련없는 직종에 종사하더라도 계속적으로 연마하고 단련해놓는다면 분명히 현상을 보고도 본질을 꿰뚫을 수 있는 능력을 얻게 될 것이다. 그러니까 앎이라고 하는 기술은 단기간에 이뤄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디지털 시대라고 하지만 진정한 앎은 자신의 능력을 키워내는 것이기에 그 만큼의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하는 것이다.
인스턴트가 판을 치고 꾸준함이 외면받는 시대이긴 하지만 자신을 만들어내는 데는 한 가지 방법밖에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근면과 성실! 바로 그것이다.